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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16. 2024

다같이 공부합시다! 학원 없는 스위스 교육



▐ 스위스 공교육


스위스 공교육은 만 4세가 되는 해의 9월에 시작된다. 꽤 이른 나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보통 9시에 등교해서 오후 4시에 마치는데, 신청하면 점심도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다. 우리 부부가 딸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이렇게 공부를 안 시켜도 되나?’ 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도가 상당히 느려 보였기 때문이다. 숫자를 배우는 것과 알파벳을 익히는 것 모두 말이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한국의 교육과 비교를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수요일에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데, 그 시간에는 보통 부부가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보거나, 외부 활동에 등록해 오전이나 오후 2시간 정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마저도 대부분 공부와는 상관없는 활동들이다.


여름방학은 보통 6월 마지막 주부터 8월 마지막 주까지로, 약 2개월에 달한다. 겨울방학은 연말과 연초에 걸쳐 비교적 짧게 2-3주 정도지만, 그 외에도 부활절 방학, 2월의 스키 방학 등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다. 게다가 방학에는 방학 숙제도 없다. 그래서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가면, 연필 잡는 법을 잊어버려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공부를 위한 학원을 찾는 것도 어렵다.



  부모가 곧 학원, 생활 속 배움의 장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다 보니,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아주 많을 수밖에 없다. 학교를 다녀온 이후에는 따로 어디를 가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부모와 있다가, 저녁에는 다 같이 식사를 한다. 그리고 잠들 때까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보통 스위스의 일상이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부모의 삶의 패턴이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스며든다는 것이다. 오후부터 잠들 때까지 매일 함께하니,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 아이의 공부 습관, 따라 하며 배운다. 



우리 부부는 제네바에 도착하자마자 불어 공부를 시작했다.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점심시간을 쪼개어 학원을 다녔고, 나도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거기에 각자 대학원을 더 다니기로 하고, 번갈아 가며 석사 학위를 따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도서관처럼 변해갔다. 딸의 입장에서는 다른 집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으니, ‘아, 집에서는 원래 이렇게 책을 읽고 공부하며 책상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이것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자산이 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니 딸도 자연스럽게 책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책상 사이에 자기 책상을 두기 시작하더니 이후에도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결국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음에도 한글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쓰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딸의 부모 행동 따라하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아빠가 책상에 앉아 불어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던 걸까? 아니면 ‘아빠는 왜 저렇게 틈만 나면 공부를 하지?’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딸은 내 책상에 앉아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는 아빠처럼 공부하는 흉내를 그대로 냈다. 자기가 쓰는 연습장을 가져와서 필기도 열심히 하고, 들리는 대로 따라 하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불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당시 딸의 눈에는 불어가 저렇게 보였나 보다. 정말 열심히 적는다. 그러고는 아빠에게 외친다. “아빠! 이거 내가 공부한 거예요! 이거 버리면 안 돼요! 이거 소중한 거예요, 알았죠?” 버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무엇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딸 앞에서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후로도 이런 종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책상에 앉아 있기, 책 읽기 등의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긴 딸은, 중학생이 된 지금도 그 패턴을 유지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성장했다.



▐  삶으로 보여주는 교육의 힘, 그리고 치열한 일상



말보다 삶을 살아보여 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교육이라는 것을 알지만, 부모로서 본을 보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스위스라는 땅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시간들이 점점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든다.


스위스에서의 삶은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삶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깨끗한 환경과 안정된 사회 시스템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큰 혜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한 부분일 뿐, 실제로는 어느 곳에서 살든 치열한 일상과 마주해야 한다. 높은 생활비와 인건비로 인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외국인으로서 새로운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제 돌아보니, 이러한 치열한 일상이 딸에게는 소중한 교육의 장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 어디에 살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핵심인 것 같다. 스위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환경이 바뀌어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작은 성실함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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