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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09. 2024

한 명을 위해 투자하는 학교, 스위스 교육

학생의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해주고자 하는 노력





 ▐ 발음까지 정확하게 외워야 하는 이름들


스위스 공교육은 아이가 만 4세가 되는 해 9월부터 시작한다. 필요에 따라서 그전까지는 어린이집을 다니게 된다. 친구들과 어린이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던 딸은 매일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곤 했다. 누가 제일 말썽을 많이 부리는지, 누구랑 제일 친한지, 선생님들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기 친구들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면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이름을 똑바로 발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제네바에서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어떻게 다 정확하게 기억하겠는가 그것도 정확한 발음과 함께 말이다. 대충 적어보자면 깔리아, 씨몽, 까불리에, 무얀밧, 공수엘로, 악셀, 싸가, 쓰게미, 존다비 등등 엄청나게 많았다. 평소에도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일찍이 포기하고, 엄마만 겨우 딸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을 기억하며 전해주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린이집에 다녀온 딸이 어김없이 그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오늘 "어머니가 왔어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 : 어머니? 누구 엄마가 왔는데? 

딸: 아니! 내 친구 어머니가 왔다고요.

나 : 엉? 그니까 어떤 친구 어머니가 왔는데?

딸: (답답해하면서) 내! 친구! 어머니가 새로 왔다고요!!

나: 어? 무슨 말이야? 똑바로 이야기해 봐~

딸: (살짝 짜증을 내며) 어머니는 내!! 친구라고요!!!

나: 어머니가 네 친구라고? 정말이야? 이름이 어머니라고?

딸: 네! 어머니 맞아요!


몇 번을 물어봐도 어머니가 맞단다. 다음 날, 나는 딸을 찾으러 갈 때, 어린이집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확인하였다. 내 딸의 친구의 이름은 '어머니'가 맞긴 맞았다. 이 친구의 이름이 정확하게 어떻게 발음이 되는지 글로는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보자면, 첫 글자의 '어'는 어와 아와 암 사이의 어디쯤을 발음해야 한다. '어아암'이다. 그리고 그 뒤에 '마니'가 붙는다 그래서 굳이 적자면 '어아암 마니'이다. 그런데 들을 때는 '어머니'로 들린다. (이걸 왜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와 내 딸은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비슷해서 그녀의 어머니와 자주 마주칠 일이 있었다. 자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더욱이 불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하여 선생님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영어로 통역을 해주어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준 분이다. 내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를  굳이 이렇게 길게 언급하는 이유는 다음 에피소드에 핵심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미리 복선을 까는 것이다)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ㅠㅠ


추억의 어린이집


학교에서 맞닥뜨린 인종차별


어느덧 시간이 지나 어린이 집을 졸업한 딸은 그곳에 있었던 대부분의 친구들과 함께 근처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그렇게 행복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즐겁게 학교를 잘 다니던 딸이 어느 날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오빠가 쉬는 시간만 되면 자기를 찾아와서 '칭총, 칭총, 시노아 시노아 (중국인을 칭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그러면서 눈을 옆으로 찢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몰랐다. 선생님한테 바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이한테 그 오빠한테 가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라고 해야 하는지 말이다. 


이리저리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더 흘렀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하기에 우리 부부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선생님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지?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학교에서 면담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학기마다 한 번씩 선생님과 면담시간이 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 부부가 불어를 잘 못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조금 더 신경 써서 면담 전에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불어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 통역사를 부릅시다.


그랬던 선생님께서는 대뜸 통역사를 부르자고 하신다. 나는 네? 통역사를 부르자고요? 스위스에서요? 생각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학생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리고 부모님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선생님! 물론 우리도 그게 중요한 것을 알지요;; 그런데 갑자기 스위스 어디서 통역사를 데리고 오란 말씀이세요? 그리고 찾는다 하더라도 이 인건비 비싼 나라에서...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말씀이세요? 나는 속으로 (선생님 우리는요... 가전제품 구입한 후에 배송비를 보고 감당이 안 돼서 트렁크에 집어넣고 트렁크 줄로 묶어서 집에 가지고 와요...(2화 참조)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한 술 더 떠서 종이를 내미신다. 여기에 어떤 언어로 통역을 받고 싶은지 적으세요!


나는 한국어라고 적으면 선생님이 "아!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하시겠지?라는 생각으로 '한국어!'라고 적었다. 한국 사람이 쓰는 언어요~ 저 멀리 한국 사람요! 북한 아래요! 아시겠지요? 선생님? 어렵겠지요?라는 표정과 함께 종이를 전달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달리 종이를 받아 든 선생님은 '한국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서도 다른 말씀 없이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일정을 잡아 볼게요!"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비용이라도 미리 물어봐야 하나? 아닌가? 너무 없어 보이나? 그냥 괜찮다고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져가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말씀을 이어 가신다. 


저희가 우선 제네바 지역에 먼저 연락을 해서 한국어로 통역하실 수 있는 분을 찾을 거고요. 만약에 제네바에서 찾을 수가 없다면 다른 지역에 연락을 해서라도 통역사 분이 우리 학교로 오실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그러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리고 이 통역사 분이 오고 가시는 것을 포함한 통역과 관련된 모든 비용은 모두 학교에서 부담하는 거니깐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시고, 시간도 넉넉하게 할 테니 모든 궁금증과 어려움 다 해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 한 아이를 위해서 이렇게 투자를 한다고? 너무나 당연한 것을 해주는 것처럼? 그렇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학교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셨을 것이고, 동일하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비용 부분은 아예 말씀조차 하지 않으신 것이었다. 



▐ 우리만을 위하여 준비된 면담


며칠 후에 학교에서 통역사가 배정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우리는 시간을 정해서 면담을 할 수 있었다. 통역사 분은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는 비밀로 유지되므로 편하게 말씀하셔도 된다고 하셨고, 시간도 제한이 없다고 하셨다. 그제야 우리는 선생님께 아이가 겪은 인종차별에 관한 부분을 말씀드릴 수 있었다.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 혼이 났다. 아이가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왜 바로 이야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렸냐는 것이다. 그런 일은 학교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말씀하시면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선생님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가 할 역할이고, 그 이후는 학교의 책임이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는 딸과 바로 면담을 이어가셨다. 



▐ 학교의 철저한 대응과 정식 사과


전체적인 상황 파악을 마치신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절차를 밟게 되는 것인지 상세히 말씀해 주셨다. 내일부터 쉬는 시간에 멀리서 관찰을 할 것이며, 누군지 먼저 파악을 한 후에, 그 학생을 불러서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칠 것이며, 이 내용은 그 학생의 부모님에게도 통보가 된다는 것과 그 학생은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행이 되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른 것도 아니었고 충분히 지켜보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절차대로 진행을 하셨다. 그 결과, 딸은 그 아이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행복한 학교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스위스 교육의 힘을 느껴볼 수 있었다. 어느 사회나 장단점은 있겠지만, 가장 약하고 불안할 때 도와준 사람은 잊지 못한다 했던가? 우리가 언어의 한계로 인하여 아무런 소리를 못 내고 있을 때에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함께 해준 이 학교의 배려와 대처는 아마 평생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이후에 우리 딸이 더 충격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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