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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07. 2024

수두에 걸린 딸, 아빠의 불침번

자다가 간지러우면 언제든지 아빠를 깨워! 아빠가 지켜줄게!





▐ 수두가 발견되다. 


딸의 몸에서 반점 같은 것들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잠시 뭐가 올라오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수두라는 것을 알았다. 한국이었다면 바로 동네 병원으로 가서 수두가 맞는지 한번 더 확인을 했겠지만, 여기는 스위스 아닌가… 병원을 간다는 것은 아주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갈 일이 없다. 진료를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한데 보통 최소 1~2주는 기다려야 한다. 나는 어깨가 너무 아파서 병원 진료를 예약하려고 좀 큰 병원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한 달 뒤에 예약이 가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그냥 돌아 나온 적도 있다. 그렇다면 수두 걸린 딸을 치료하기 위해 나는 어디로 갔을까? 프랑스다!


지금 엥? 프랑스?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이전 5화를 보시기 바란다. 


https://brunch.co.kr/@eratoss/10


▐ 내 친구 프랑스



이제 프랑스는 나의 가장 가까우며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 무슨 일만 생기면 무조건 프랑스로 달려간다. 당시 우리 집에서 프랑스는 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면 프랑스 병원으로 간다는 건가? 아니다. 약국으로 간다! 아니! 동네 약국도 있는데 왜 프랑스까지 가는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차이가 꽤 난다.


며칠 전 일을 공유하자면 나는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오후에 설사가 시작되었다. 몇 번 설사를 하다가 이건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집 앞 약국에 가서 지사제 하나를 샀다. 약은 고작 4회 분량이 들어 있었다. 그럼 가격은? 20프랑(약 32,000원)이 넘는다. 그러면 1회 분량에 8,000원이라는 말이다. 이게 무슨 홍삼도 아니고… 약도 아껴서 먹어야 한다니. 이노무 스위스....


아무튼 딸을 데리고 프랑스 약국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계속 불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연습했다. 단어를 확인하고 또 연습했다. 어느덧 약국에 도착했고,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내 차례가 왔다. 약사님 앞에 서니 갑자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딸은 나를 쳐다보고 있고, 인터넷도 갑자기 안 된다. 아무리 가까운 프랑스라 해도 데이터 로밍이 되어야 한다. 결국 딸의 등과 얼굴을 보여주면서 약을 달라고 했다.


다행히 약사님이 보시더니 어떤 상황인지 바로 인지하셨다. 예상대로 수두가 맞았고, 약사님은 먹어야 하는 약과 로션 하나를 주셨다. 이렇게 다 해서 20유로도 안 되었다. 아름다운 가격이었다. 잘 챙겨서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이고 발라주며 딸에게 가려워도 긁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가려우면 아빠가 살살 만져주며 가렵지 않게 해줄 테니 언제든지 아빠를 부르라고 했다.



아빠가 30분이고 1시간이고 계속 쓰다듬어주고 있으니 딸이 보기에 아빠가 힘들어 보였을까? 갑자기 딸이 말했다. “아빠,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네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아빠도 어렸을 때 수두가 났을 때 할머니가 이렇게 해주셨거든.”



▐ 딸을 위한 불침번



그렇게 나는 딸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저녁이 되자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왔다. 한동안 엄마 품에서 사랑을 받다가 딸은 잠이 들었다. 밤에 자다가 가려운지 아빠를 찾았다. 그렇게 나는 밤새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게 되었는데, 워낙 심심한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보니 이것도 추억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딸도 아빠가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딸에게 “아빠가 너한테 이렇게 해준 거 절대 잊지 말아라”라고 계속 주입했다. (한국에 있을 때 바빠서 함께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루에 몇 번씩 이야기를 하니 딸도 이제 “절대 안 잊을 거니까 그만 말해요”라고 한다. 내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 이제 중학생이 된 딸에게 물어보았다. “너 4살 때 아빠가 흉터 안 생기게 하려고 열심히 간호해 줬던 거 기억나?” 그랬더니 기억난다고 한다. 흐뭇했다.


스위스에서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심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단조로운 삶 덕분에,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일상도 하나하나 추억으로 기록되어 가는 느낌이 참 좋다. 한국에서는 바쁜 일상에 치여 어렸을 때의 딸과 추억을 많이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딸과 친밀하고 다정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참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글을 쓰고 있자니... 아플 때 나를 보살펴 주셨던 부모님이 문득 생각난다. 나도 이런 사랑을 받았었지...

자녀를 보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https://brunch.co.kr/@eratoss/3




저희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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