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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Oct 29. 2024

새로운 시작 - 한국에서 스위스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겁 없이 떠났던 우리의 미래는?

한국에서 스위스로 떠나기로 결정하다.


10년 전 한국에서 바쁘게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우리 부부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아내가 스위스에 취직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스위스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한국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딸을 데리고 스위스로 따라갈 것인가? 고민 끝에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함께 스위스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무슨 용기로 그런 결정을 했나 싶은데, 인생이란 게 가끔 이렇게 무모함 속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 3살 된 딸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 외식은 꿈도 못 꾸고,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어린이집을 신청해도 언제 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뿐인가? 제네바는 불어를 쓰는데,  당시 나는 불어는커녕 영어도 잘 못하는 상태였다. 단지 어린 시절 중국어를 빠르게 배웠던 기억이 있었기에 긍정회로를 돌리며 '뭐 배우면 되지!'라는 간 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슨 배짱으로 그랬나 싶다.




한국을 떠날 준비


아내가 먼저 스위스로 출국했다. 이제부터 아내의 임무는 제네바에서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내 임무는? 한국에서 남은 일들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3살 딸과 함께 남은 짐을 챙겨 스위스로 떠나는 것이었다. 막상 출발을 준비하다 보니, 정리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이사비용이 지원이 되지 않았기에 필수 용품들은 EMS 택배로 하나씩 스위스로 보냈다. 집도 정리하고, 차도 정리하고, 하나씩 마무리가 되어가니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아들이기에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 손녀를 한꺼번에 먼 타국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님을 볼 때에는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부모님은 우리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주셨다. 마침내 모든 짐을 다 싸고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비행을 앞두고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다. 과연 우리는 잘 한 결정을 한 것일까? 우리 앞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공항에서 짐과의 전쟁을...


인천공항에서

인천공항에서는 가져갈 수 있는 짐을 최대한 추가했다. 말 그대로 '남은 짐이란 짐은 다 끌고' 가려고 했다. 혼자 3살 된 아이를 데리고 저 많은 짐을 어떻게 들고 갈 생각을 했나 싶은데, 당시에는 그게 용기인지 무모함인지 구분도 안 되었다. 우리는 제네바로 바로 가는 대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먼저 경유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제네바로 가는 직항은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루트에는 아내의 삼촌이 살고 계셨다. 당시에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삼촌이었지만 독일로 먼저 와서 생필품을 조금 더 사서 차로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에 차를 렌트해 육로를 통해 스위스로 넘어가는 계획을 세웠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나와서 찍은 첫 사진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나와 찍은 첫 사진. 첫 장거리 비행이라 긴장해서인지 소화가 안 되어 비행기에서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얌전한 딸 덕에 큰 문제없이 독일에 도착했다. 수많은 짐을 찾고 나오는데 세관에 잡혔다. 이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딸을 보여주니 환하게 웃으며 그냥 가라고 한다. 저 짐을 다 가지고 나가려 했으니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공항 밖으로 나와 삼촌을 기다리며 딸과 함께 한숨 돌렸다. 당시 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뭐 하는 중이지?' 하며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제네바로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구입한 후 드디어 제네바로 출발할 준비가 완료됐다. 유럽에 처음 온 사람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제네바까지 약 600km를 운전한다니,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렌터카 업체의 실수로 예약한 것보다 훨씬 작은 차가 배정되어서 짐을 겨우 실었다. 차 안은 마치 야반도주하는 사람의 차처럼 꽉 찬 상태였다. 처음으로 아우토반을 달리며 속도 제한 없는 도로를 경험해 보니, 그 긴장감과 속도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국경을 넘어서인지 다행히 세관도 문제없이 통과했다. 만약 국경에서 짐 검사를 당했다면 꽤나 복잡해졌을 게 분명했다. 긴 여정에도 딸은 엄마를 다시 만날 생각에 투정 한 번 없이 잘 따라왔다. 작은 몸으로 장거리 여행을 견뎌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큰 힘을 얻었다.




제네바에 도착하다.


제네바의 랜드마크

긴 시간을 달려 드디어 제네바에 도착했다. 작은 내비게이션 앱 하나에 의지해 독일에서 스위스까지 600km가 넘는 길을 무사히 안내받았는데, 마치 이 앱이 우리 첫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준 것만 같았다. 새벽 2시에 아파트에 도착하자, 딸은 40일 만에 엄마 품에 안겨 행복해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작은 손으로 엄마를 꼭 안고,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짐을 하나씩 옮기며 아파트를 둘러보니,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확 다가왔다. 우리가 도착한 이 집에는 가구 하나, 세탁기 하나, 냉장고조차도 없었다. 텅 빈 공간 속에서 ‘이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침대도 없으니 당장은  매트리스 하나만 깔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턴 하나하나 직접 구입하며 집을 꾸리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가야 한다. 매일매일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며 살아가야 할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진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는 설렘도 있었다. 이렇게 스위스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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