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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04. 2024

스위스에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3살 딸의 기도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린이집, 딸의 두 번째 집


우리 가족이 한국에 있을 때, 아내보다 비교적 출근시간이 늦었던 나는 딸을 매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딸은 9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기 때문에, 어린이집은 제2의 집 과도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3살 때 스위스로 이사를 온 후에 엄마는 매일 출근을 하는데 아빠는 왜 하루종일 자기와 같이 있는 것이 신기했을까? 아빠는 왜 일하러 안 가고, 또 자기는 왜 어린이집에 안 가냐고 묻는다. 이제는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특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침실 창문을 통해서 초등학교가 보였는데, 거기서 뛰어노는 언니, 오빠들을 볼 때에는 나도 저기 가서 놀면 안 되냐고 묻곤 하였다.


1화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어린이집에 등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부모 중 한 명만 일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 우리도 제네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등록 신청을 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빠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며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를 어떻게든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했다. 스위스의 공교육이 만 4세가 되는 해의 9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직 딸이 불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대로 학교에 들어가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 스위스 어린이집에 등록하기.



우리는 등록해 둔 어린이집을 직접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해 보기로 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단순히 편지만 보내는 것보다는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우리가 방문한 어린이집의 환경은 쾌적해 보였고, 선생님들도 매우 친절해 보였다. 다행히 원장 선생님께서 영어를 하실 수 있어서 우리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우리가 불쌍해 보였던 걸까?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지금 당장은 자리가 없지만, 3개월 정도 후에 우선 오전에 이틀만 등원하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자리가 나는 대로 풀타임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나는 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동안 아빠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까? 안 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가야 친구도 생기고, 곧 학교에 가게 되면 불어를 꼭 배워야 하니 다녀야 한다고 설득했다. 딸이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하더니 다시 그네에 앉아 밀어달라고 한다. (딸은 그네를 너무 좋아해서 집에 설치해 두었고, 나는 하루에 최소 수백 번은 밀어줬던 것 같다.)



▐ 스위스 어린이집 첫날



딸은 그렇게 아빠와의 추억을 점점 쌓아 갔고, 나도 스위스 생활에 점차 적응해 나가고 있을 때, 드디어 어린이집 첫 등원 날이 찾아왔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나오는데 크게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 잘 울지 않는 딸이었기에 마음이 많이 쓰였지만, 주저하지 말고 빨리 돌아서 나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애써 귀에 들리는 아이의 울음을 무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평일에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본다. 우리 딸, 잘 해낼 수 있겠지? 나도 이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 수 있겠지?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을 때 알람이 울린다. 벌써 2시간 30분이 지났다.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 등원 후 아빠와 헤어지고 많이 울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안고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나를 발견한 딸이 말했다. “아빠!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나 더 놀고 싶은데, 여기 더 있으면 안 돼요?”



▐ 우리 딸, 선생님들의 인기스타



한국에서 9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어린이집 생활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딸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선생님들께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던 걸까? 나는 딸이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을 도와 다른 아이들을 잘 챙긴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성향이 스위스에서는 조금 특별하게 보였나 보다. 선생님들은 딸을 칭찬했다. 어린이집에 오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코 흘리는 아이가 있으면 코를 닦아주고, 우는 아이가 있으면 옆에 가서 왜 우는지 물으며 안아주고, 자기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밥도 먹이고, 선생님이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으면 함께 정리를 한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우리 딸이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다고 연일 칭찬하셨다. (그래서 종일반으로 빨리 배정받은 걸까?) 딸이 자랑스러웠던 나는 딸을 꼭 안아 들고 집까지 걸어왔다. 그렇게 딸은 어린이집의 모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 우리 가족을 위한 딸의 기도



그렇게 스위스에서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딸은 예상보다 빨리 종일반으로 배정받았다. 이제 오전 9시에 가서 점심도 먹고 오후 4시에 마친다. 어느 저녁 식사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함께 기도를 하고 저녁을 먹는데, 오늘은 딸이 자기가 기도하겠다고 했다. 무슨 기도를 하는지 귀담아듣는데, 기도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님, 오늘도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재미있게 놀게 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 엄마~ 친구 생기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도 친구 생기게 해 주세요! 아멘.”


이 기도는 평범한 기도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순간 이 기도가 결코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딸의 기도에서 아빠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딸도 생각했을 것이다. 아빠가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여기서는 주변에 사람이 없지? 나는 이제 친구들이 많아져서 너무 좋은데, 우리 아빠도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이제는 딸이 아빠와 깊이 공감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아빠의 딸이에요!



딸의 마음이 담긴 작품

어느 날 어린이집을 다녀온 딸이 평소와는 다르게 현관에서 시간을 더 오래 보내고 있어서 궁금해졌다. 나가보니, 자기 신발을 내 신발 안에 넣어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물었다. “왜 이렇게 했어요?” 딸이 대답한다. “나는 아빠 딸이잖아요!” 그러고는 시크하게 방으로 걸어간다. 나는 이 사진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아내가 보며 묻는다. “자기는 왜 이 사진을 그렇게 좋아해?” 내가 답한다. “나는 이 사진이 너무 좋아. 마치 아빠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진 같아서 그런가 봐.” 이렇게 우리의 스위스 생활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저희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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