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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20. 2024

의사 선생님들은 왜 친절할까? : 스위스 의료 현실

아빠! 의사 선생님 진짜 좋아요!




스위스로 이사 온 후, 지인들에게 들은 스위스 의료비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여기서는 정말 아프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대학병원의 위치 정도는 확인을 해두었고, 어른들이야 아파도 좀 참더라도 아이가 병원에 갈 일은 없었었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 아빠! 아픈 것 같아요!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딸이 갑자기 말했다. “아빠, 나 몸이 좀 이상해요!” 그러곤 별일 아니라는 듯 장난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나는 딸이 크게 아파 보이지 않았기에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잠시 후, 딸이 다시 나에게로 왔다. 


딸: "아빠, 귀가요.. 귀 안이? 요기 귀 안이 좀 아파요!"?

나:  귀 안이 아프다고? 많이 아파? 

딸 :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하는데... 지금은 또 안 아프네?"  대답하더니 다시 자기가 놀던 곳으로 간다.

나 :  딸~ 또 아프면 말해줘~ 병원 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딸 : "병원? 거기 비싸지 않아?"


순간 뜨끔했다. 우리 부부가 비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걸까? 아이 입에서 비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들으니 좀 씁쓸했다. 누구든지 스위스에 정착하는 과정을 겪은 사람이라면 초반에 "왜 이렇게 비싸?"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어린 딸이 비싸서 무엇인가를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니...


나 : 우리 딸이 아픈데~ 비싸도 병원은 가야지~ 괜찮아! 걱정하지 마~!

딸 : 그런데 나도 병원은 가기 싫어요... 우선 조금 더 있어봐요.. 괜찮아질 수도 있잖아요~

나 : 그래! 그런데 아프면 꼭 이야기해야 돼 알았지?

딸 : 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눕는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참는 것 같아 보였다. 


나 : 너 아픈 것 같은데? 많이 아파?!

딸 : "응 아빠...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스스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을 보니 아픈 게 분명했다. 급하게 이리저리 검색을 해서 집 근처의 이비인후과를 찾았서 전화를 했다. 병원에서는 예약을 하고 와야 하는데  1-2주 정도 후에나 자리가 있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우스갯소리지만 아파서 병원을 예약하고 병원에 때쯤 되면 자연적으로 통증이 없어져서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은 곳이 스위스라고 들었다.)



▐ 동네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다. 



직장에 있는 아내에게도 연락을 하고, 지인을 통해서 병원을 소개받았다. 큰 병원은 아니지만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었고 집에서도 2km 정도 거리에 있었다. 나는 딸에게 병원을 찾았으니 빨리 가보자고 설득하여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차는 또 다른 전쟁이었다. 아무 데나 주차했다간 벌금이 날아올 게 뻔했기에 몇 바퀴를 돌며 주차 공간을 찾아야 했다. 결국, 출차하는 차를 발견하고는 ‘자리 뺏기’ 전쟁 끝에 겨우 주차에 성공했다.


병원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딸이  "아빠! 갑자기 하나도 안 아파! 다 나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아니야! 네가 지금 긴장해서 그래. 갑자기 귀가 안 아플 수 없어... 아빠랑 같이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가보자.


병원에 들어가 응급실로 향하는 길이 나오자 나도 많이 긴장이 되었다. 어떤 언어로 소통을 해야 하며, 접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국에서 첫 병원 방문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딸의 손을 잡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병원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대기 인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접수하는 곳으로 가서 접수를 하려고 하니 보험카드를 보여달라고 하여 보험카드를 보여주고 접수를 하였다. 30-40분쯤 기다렸을까? 한 의사 선생님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 천사 같은 의사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진료실은 넓은 창문으로 통해 햇빛이 들어왔고, 꽤 넓고 깨끗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시고는 영어가 편하세요 불어가 편하세요? 물었고 다행히도 우리는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부터 아주 친절하셨다. 딸의 귀를 아주 조심스럽게 자세히 살펴보셨다. 진료 중에 딸이 불어를 조금 하는 것 같으니 불어로 장난도 치면서 놀라지 않게 해 주셨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선생님 덕에 나도 긴장을 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은 계속 더 궁금한 것이 없느냐? 물어봐주셨다. 분위기가 왠지 뭐라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도 물어보면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체) 선생님은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사람처럼 차분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용기를 내어 불어로도 떠듬거리며 말을 걸자 “불어 정말 잘하시네요! “라며 웃어주셨다. 


나는 속으로 "아니 환자 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을 써도 괜찮은가? 이런 식으로 하면 하루에 진료를 몇 명 못하겠는데?" 생각했다. 선생님은 이어서 약 처방을 해줄 것인데 어디 약국으로 가야 하는지 까지 설명해 주시면서 주의해야 할 것들도 충분히 설명을 해주셨다. 내가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는지 친절하게 천천히 반복해 주셨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비를 결제하려고 리셉션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앞에서 어슬렁 거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고 나는 결제를... 해야.. 하는데...라고 말을 하니  선생님께서는 "아! 결제는 집으로 청구서가 갈 거예요~ 오늘은 그냥 가시면 돼요!" 대답하셨다. 


돈을 안 내고 그냥 가라고? 처음 경험하는 시스템이라 어리둥절하며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왔다. 딸이 이야기한다. "아빠! 여기 병원 진짜 좋다! 선생님도 진짜 좋은 것 같아! 그리고 이제 안 아픈 것 같아!"  그래? 안 아프다고? 아빠도 너무 좋네~! 대답하면서 약국으로 가서 약을 샀다. 약 값으로 약 50프랑 (7만 5천 원)을 결제하고 집으로 왔다. 


저녁에 퇴근한 아내를 붙잡고, 딸은 오후에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신이 얼마나 씩씩하게 진료를 잘 받았는지, 병원이 얼마나 좋았는지, 의사 선생님도 얼마나 친절했는지 말이다. 



▐ 병원 진료비 청구서가 날아오다. 



2-3주 정도가 지났을까? 우편함에 청구서가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청구서를 열었다. 불어로 명세서가 왔기에 바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숫자로 되어있는 총금액에 눈이 갔다. 320프랑 (약 50만 원)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진료였지만 비쌀 것을 예상을 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세부항목을 번역기를 돌려가며 확인을 해보았다. 다른 것들은 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중복으로 청구가 된 것처럼 보이는 항목이 보였다. 5분 추가... 또 5분 추가... 또 5분 추가... 이렇게 되어있고 5분마다 38프랑 (5만 5천 원) 이 청구가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청구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이것은.... 상담시간이 5분 단위로 추가될 때마다 청구되는 항목이었다. 


5분 추가... 5분 추가... 5분 추가 항목을 보고 있으니... 


아무런 의미 없이 선생님을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서두르지 않고, 너무나도 친절하게 진료를 해주셨던. 선생님의 얼굴… (물론,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다. 진짜로!)


결국 나는 1분당 만 원을 지불하며 의사 선생님과 영어와 불어로 “인생 상담”을 나눈 셈이었다.


“불어 배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시나요? 스위스에 이사 와서 적응하기 얼마나 힘든지… 하지만 우리 딸은 밝고 학교도 잘 다녀서 다행이에요!” 이런 내 이야기를 들으며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번 일을 통해 배운 점은 스위스에서는 모든 것이 비용으로 환산된다는 사실! (친절함도 포함) 역시 이번에도 스위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앞으로 병원에서는 정말 필요한 이야기만 빠르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일어난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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