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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Nov 30. 2024

준비물이 없는 스위스 학교

문구점은 어디에 있을까?




자녀가 성장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많은 부모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집중된다. 특히,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 부부 역시 아이의 공교육이 시작될 때, 우리가 직접 준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혹시나 불어를 잘 못하는 우리의 실수로 아이가 놓치는 것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닐 때, 정문 앞에 항상 문구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문구점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거기서 준비물을 사기도 하고, 다양한 문구류와 함께 떡볶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량식품을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스위스로 이사 와서 처음 살았던 아파트는 학교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바로 앞'이었다. 우리 집 와이파이가 학교 교실에서 잡힐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문방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곳 사람들은 어디서 문구용품을 구입할까?



▐ 부담스러운 준비물 쇼핑



스위스 깊은 산골이 아니라면, 도시 어디에 살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MIGROSCOOP라는 슈퍼마켓이 있다. 그곳에서도 문구용품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가격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사고 싶은 마음이 정말 1도 들지 않을 정도다. 품질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고, 디자인까지 따지는 건 사치였다.


아이를 학교에 처음 등록하고 나니, 첫 주에 부모가 준비해줘야 하는 물품 리스트가 나왔다. 실내화, 개인 티슈, 물컵, 운동화(GYM), 미술 시간에 입는 보호 재킷 등 내용도 적지 않았다. 불어로 된 프린트물을 하나하나 번역하며 우리가 무엇을 사야 하는지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우리는 여러 곳을 다니며 준비물을 구입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품질이 떨어지고, 품질이 괜찮으면 디자인은 정말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둘 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제품은 가격이 너무 비쌌다. 결국, 스위스와 프랑스를 번갈아 다니며 겨우 준비물을 모두 구입할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eratoss/10



▐  물품의 종류가 늘어나는 이유는?



첫 준비물을 준비할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정작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늘어났다. 공책, 펜, 지우개, 형광펜, 각도기, 자, 각종 교과서 등등. 게다가 다양한 활동으로 만든 작품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우리가 준비해서 보낸 적이 없는 재료들로 만든 것들이었다. 가끔은 재활용품을 가져오라는 요청이 있긴 했지만, 그런 일은 1년에 1~2번 정도에 불과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모든 아이가 똑같은 물품을 받아 사용한다고 했다. “아니, 여기가 무슨 공산국가도 아니고, 왜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나 편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물품을 함부로 사용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물품을 나눠주되, 스스로 잘 관리하도록 가르쳤고, 실수로 잃어버린 물건은 자신이 책임지고 구입해야 했다.


교과서도 아주 소중히 다뤄야 했다. 책에는 필기를 할 수 없고, 비닐로 겉표지를 씌운 후 학기가 끝나면 반납해 다음 학년이 재사용하도록 했다. 일부 학용품도 회수해 다음 해 다시 사용했다. 부유한 나라임에도 이렇게 자원을 아껴 사용하며 그것을 가르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주자.



학교에서는 문구용품들을 단체로 구입해 모든 아이가 같은 제품을 사용한다. 미술도구와 운동용품도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교실 안에서 소유물로 인한 빈부 격차가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친구가 무엇을 더 가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에게 제공된 것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아이들 사이에서 "너희 집 차 뭐야?", "집 몇 평이야?" 같은 질문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  한국 문구류는 세계 최고!



한국에서 가져온 샤프를 딸의 반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샤프 한 자루로 이렇게 기뻐할 수 있다니! 색깔도 예쁘고 실용적인 한국 샤프는 그들에게 신문물처럼 느껴졌다. 단번에 내 딸은 반에서 인기 스타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다양한 한국 문구류를 선물했더니, 딸의 친구들에게 한국 물건은 "최상의 품질과 예쁜 디자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  교육의 남긴 메시지 



스위스 교육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무한 경쟁 사회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순수성을 지켜주며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는 교육 철학은 정말 좋은 점이었다.


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준비물이 없다는 사실은 부모에게도 큰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었다. 부모가 할 일은 숙제를 했는지 물어보고 알림장에 사인하는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학교의 책임이었다.


스위스의 이러한 교육 방식은 아이들에게 물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동시에 자원을 아끼고 공유함을 통하여 좋은 가치관과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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