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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Dec 06. 2024

스위스에서 슈퍼맨 아빠로 살기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아빠는 슈퍼맨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살다 보면 비싼 인건비로 인하여 웬만한 것들은 몸으로 때워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렇다 보니 딸의 눈에는 아빠가 슈퍼맨처럼 보였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빠를 부르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멋진 아빠로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구 조립, 전등 설치, 전기 관련 수리, 막힌 수도 뚫기(심각하지 않은 것), 자동차 관련 기본정비, 디지털 기기를 잘 다뤄야 한다. 그런데 살다 보니 또 하나의 미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스포츠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학교는 다양한 방학이 있는데 그중에 2월에 스키방학이 있다. 정식 명칭이 스키방학은 아니지만 다들 스키방학이라 부른다. 스키를 타러 다들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 지인으로부터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스키를 좀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스키장으로 캠프를 가기도 하고, 겨울에 친구들과 함께 놀려고 해도 스키 정도는 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년을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 부부는 큰 맘을 먹고 스키복과 스키를 구입하였고, 딸은 시즌권으로 스키를 빌리기로 하였다.



▐ 아빠랑 같이 스키 탈래요!



당시 나는 스키를 안 탄지 10년이 넘었고 아내는 타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스위스에서 살면서 스키를 안 탄다는 것은 말이 되는가? 게다가 겨울이 되면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해를 보는 날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해를 보기 위해서라도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 가보자!! 서서히 계획을 세우며 장비들을 구입하러 다니기 시작하자 딸이 묻는다.


딸 :"아빠! 스키 탈 줄 알아요?"

나는 우선 대답부터 해버렸다. "그럼! 아빠 잘 타지~!!"

딸 : "그럼 나는 아빠한테 배우면 되겠네요?"

나 : "아니 그래도.. 학원 등록해서 배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딸 : "싫어요! 나는 아빠랑 스키 탈래요!"

나 : 그... 래...


그날부터 나는 유튜브를 통하여 스키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10년 전에 몇 번 타봤던 기억을 더듬으며 말이다. 이제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은 마음에 집에서 딸을 위한 개인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스키를 어떻게 신어야 하는지, 넘어지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 중심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말이다.


처음 스키를 신은 날


은 스키를 신고 이리저리 걸어 다녀보더니 무섭지 않을 것 같다며 스키를 타러 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로 스키장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얼마나 스키를 잘 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딸을 안전하게 지키며, 스키를 가르쳐 줘야 하는데 내 몸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ㅎㅎ



▐ 스키장 사전 답사



그래서 나는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혼자 스키장으로 연습을 하기 위하여 떠났다. 아직 방학 전이고 날씨기 그리 좋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다. 리프트를 타기 전에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서 스키를 신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생각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 10년이라는 세월이 길긴 길구나...


혼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며....


그래도 유튜브를 통해 열심히 연습한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 딸이랑 다시 오려면 모든 슬로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주 기초부터 시작해서 상급자 슬로프까지 위치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스키를 타면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러던 중 잘못 들어간 상급자 코스에서 몇 번을 굴러서 내려오기도 하였다.


아... 세월이여... 슈퍼맨 아빠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루를 풀로 연습하며 시간을 보냈고, 이 정도면 딸을 가르쳐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 딸과 함께 스키장으로...



시간이 흘러 방학이 되었다. 엄마는 회사로 보내고 (두 여자를 동시에 케어할 자신은 없었기에) 딸과 함께 스키장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딸은 큰 두려움 없이 나에게 몸을 맡겼고, 내가 알려주는 동작들을 빠르게 배워 나갔다. 딸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래서 어릴 때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딸은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무섭다...(나를 닮아서 그렇다ㅠㅠ) 스키가 재미있다고 쉬지도 않고 계속 타자고 한다. 정말 열심히 스키를 탔고, 그렇게 우리는 스키장 문이 열릴 때 들어가서 문 닫을 때에 나왔다. 딸은 차에 타자 마자 기절해서 잠에 들었고 나도 졸음과 투쟁을 벌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스키장 투어는 막을 내렸다.


다음 날, 또다시 스키장으로 출발했다. 두 번째 미션은 아빠의 도움 없이 혼자서 슬로프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려오기였다. 그리고 오늘 혼자 탈 수 있게 된다면 선물을 사주기로 하였다. 오전 연습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고 이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더니 딸이 이렇게 대답한다.


"아빠!! 점심 그냥 리프트 타고 올라가면서 먹으면 안 돼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요!! "


내 딸 아니랄까 봐... 무섭게 돌진하는 딸을 겨우 설득해서 레스토랑으로 갔다. 밥도 정신없이 해치우고 바로 다시 리프트에 몸을 싣었다. 나의 체력은 서서히 고갈되어 가는데 딸은 지칠 줄 모른다. 오전 연습을 마치고 오후가 되자 적응을 마친 딸은 서서히 혼자 슬로프를 내려오기 시작했다. 감격스러웠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키를 탈 수 있게 된 딸은 스스로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신감이 뿜뿜 차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둘째 날도 약 9시간의 스키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딸이랑 가장 친한 친구가 스키를 잘 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는 함께 높은 산으로 가서 스키를 함께 타보기로 날짜를 정했다. 난의도가 갑자기 너무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좀 되긴 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연습한 시간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결국 딸은 친한 친구와 함께 이렇게 높은 산에서도 스키를 탈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스위스 발레 주 어느 스키장


친구와 함께 스키를 즐기는 딸




▐ 또 스키장으로?


만 5세부터 스키를 타던 딸은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얼마 전 학교를 다녀온 딸이 나에게 말한다.


아빠 내년 3월에 학교에서 단체로 5일 동안 스키 타러 간데요. 내 친구들 다들 너무 잘 타서 함께 타려면 연습을 좀 해야 해요! 아빠! 연습하러 가요~!


그래... 가자.. 가야지... 우리 딸이 가자고 하는데 또 가보자...



스위스에서 슈퍼맨 아빠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아빠랑 같이 하는 시간을 행복해하는 딸이 있어서 행복하다.

건강하게 잘 자라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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