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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토스 Dec 10. 2024

스위스에서 금값에 팔리는 한국 통조림은?

과연 누가 이 통조림을 구입하는가?




2014년, 우리 가족이 스위스로 이사를 온 당시만 해도 한국 라면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라면 정도는 겨우 구할 수 있었지만, 짜파게티, 너구리, 안성탕면, 진라면 같은 라면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 있을 때는 라면을 많이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이 워낙 많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위스로 이사 온 후에는 라면, 특히 짜파게티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짜파게티 한 박스가 명품 같았던 시절



스위스 생활에 적응하던 초반, 우리 가족의 첫 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스위스로 돌아올 때, 우리가 들고 온 것은 화장품도, 옷도, 특산품도 아니었다. 한인 마트에서 어렵게 구입한 짜파게티 한 박스와 신라면 한 박스가 그 귀중한 짐이었다. 모두의 만장일치로 이루어진 지출이었고,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치 명품을 사들고 오는 기분이랄까.


당시에 지인들이 오늘 뭐 먹었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짜파게티 먹었어요!"라고 대답하면 부러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가 몇 개 드릴까요? 하면 "아니에요! 어렵게 구했을 텐데 그걸 어떻게 가지고 가요!" 맛있게 드세요!"라는 대답을 보통 듣곤 했다. (물론 짜파게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몇 개 남지 않은 짜파게티를 보며 고뇌했던 기억도 있다. “언제 먹지? 좀 더 참았다가 먹자! “라는 스스로의 절제. 그렇게 어렵게 끓여 먹는 짜파게티의 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진정한 짜파게티의 맛은 고뇌와 절제의 시간을 거쳐야만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눈물의 짜파게티...


이제는 마트에서도 한국 라면을?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K-컬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한국 음식도 유럽에 널리 퍼졌다. 이제는 스위스의 동네 마트인 Migros와 Coop에서도 한국 라면과 양념류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신라면은 1.9프랑(약 3,000원), 우동 작은 컵은 3.8프랑(약 6,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가격이 비싸 보일 수 있지만, 스위스 물가를 생각하면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다.




그런데 요즘, “한국”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가격이 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단순히 K-컬처의 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가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면서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분명히 소비자로서는 자랑스러운 부분일 수 있지만, 실제로 현지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더욱이, 표지에 한국어로 쓰여 있는 상품들이라고 해서 모두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한국어’라는 상징을 마케팅으로 활용해 판매되고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김치마저 자기 나라 것이라 주장하던 이들이니, 한국어 몇 글자 붙여서 한국 상품처럼 꾸미는 일이 어렵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통조림 한 통의 가격이 무려…



나는 얼마 전 제네바 말고 비교적 작은 마을에 있는 한 아시안 마켓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어떤  식품들이 판매되고 있을지 기대를 품고 들어갔다. 그러나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곳을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다. 스위스에서 한국 식품들이 비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는 비싼 정도가 아니라 정말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매장을 둘러보며 물건들을 집었다가 가격을 보고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정말 이 가격이 맞는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제품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런천 미트’였다. 통조림 하나를 들고 가격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가격표를 잘못 붙여놓은 것은 아닐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격은 분명히 맞았다.




340G짜리 런천미트 통조림 한 개의 가격은 얼마일가??





이 작은 통조림 하나가 무려 12.5프랑, 오늘 환율로 계산하면 약 20,000원이었다. 국내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평범한 런천 미트가 이곳에서는 마치 금값처럼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순간, 과연 누가 이 돈을 내고 이 통조림을 사갈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동안 한국 식품 가격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나조차 이 가격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폭리를 취하는 곳이라고.. 구글 평정 테러를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국 식료품을 수입해서 판매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는 내 친구...



결국 우리는 근처 프랑스로 넘어가 런천미트를 스위스의 절반 가격인 6프랑(약 9500원) 정도에 구입했다. 덕분에 우리는 한국식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프랑스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감사함을 또다시 느꼈다.


10년 넘게 스위스에 살면서 물가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깜짝 놀라는 일들이 생긴다. 언제쯤 스위스에서 마음 편히 가격표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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