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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라 Oct 25. 2020

기억에 남는 숙소

오랜만에 여행을 오니까 쓰고 싶은 소재가 많아졌다. 지금 해파랑길 34코스를 걷고, 35코스의 시작점인 옥계역 근처의 숙소 바닥에 누워있다. 침대가 있긴 하지만, 보일러를 틀어둔 방바닥을 무시할 순 없다. 어느새 침대 위에는 짐을 올려놓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다. 이 근처에 숙소가 없어서 예약한 곳인데, 따뜻한 방바닥이라는 이유로 너무 마음에 드는 숙소가 되어버렸다. 숙소를 나갈 때까지 지글지글 끓는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을 생각이다.


숙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론이 장황했다. 아무튼, 누워있다 보니까 생각난 숙소가 있다. 리스본의 에어비앤비이다. 리스본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잘 모르기도 했고, 포르투를 가기 전에 잠깐 들른 도시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 고민 없이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리스본에 대한 이미지도, 기억도 바뀌게 해 주었다.



갑자기 침대가 두개 / 침대에서 본 테라스





숙소를 예약할 때는 몰랐는데, 언덕 위에 있는 숙소였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없는 6층짜리 건물. 헥헥대며 도착한 건물 앞에서 우리는 호스트에게 연락했다. 그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가서 방을 안내받았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공용화장실을 사용하고, 더블베드가 있는 개인방이었다. 그런데 오늘 예약이 없다며, 더블베드가 두 개 있는 큰 방으로 주었다. 이게 웬일이야~~ 짐을 대충 풀고, 고개를 들었는데 방 창문에 있는 테라스와 눈이 마주쳤다. 유럽 거리를 다니다 보면 테라스 있는 집이 대부분이다. 항상 그걸 부러워했는데, 며칠 동안 묵을 내 방이 그런 테라스를 가진 집이라는 것에 놀랐다. 나도 모르게 그 창문에 붙어서 밖을 보고, 침대에 누워서도 보고, 그렇게 한참을 눈에 담았다.


주방 테라스에서 즐기는 노을과 아침


그리고는 집을 구경했다. 이 숙소의 하이라이트는 주방에 있었다. 주방 뒤에 테라스가 진짜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이 숙소에 묵는 내내 아침과 저녁을 여기서 먹었다. 아침엔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포근했고, 저녁엔 노을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 그리고 꽤나 자주 비행기가 지나다녔다. 괜히 하늘을 보면서 어느 항공사인지 맞추는 재미가 쏠쏠했다.


리스본에서 무얼 했는지 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건 이 숙소다. 사실 숙소가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심지어 도시에 대한 기억을 좌우하기도 하니까. 리스본을 떠올리면 다른 어느 것보다 테라스에서 봤던 노을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리스본의 숙소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에 리스본을 가더라도, 언덕에 있다는 단점을 감수하고, 기꺼이 묵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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