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애쓰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부터 혼자 서울생활을 하며 부단히도 애쓰며 살았었다.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것에 기를 쓰고 열을 올리고, 내가 맡은 것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 혹시나 직장에서 짤릴까봐 두려워 안되는 일도 될 때까지 기어코 밤을 새며 끝내고야 말았다. 태어날 때부터 좋은 머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행동이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일 하는 센스도 서툴렀기 때문에 직장생활은 항상 나에게 긴장의 연속이었다.
밥을 제대로 챙겨먹기보다는 허기질 때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자 식사를 했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일 못한다는 소리를 하면 집에 가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변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싶었지만 밤새는 일이 많았고 퇴근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던 나는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고, 돈이 없을 때는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편을 택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때까지도 나는 그들에게 별로 해 준것이 없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지나고 당뇨가 찾아오면서 과도한 에너지를 꾸역꾸역 쓰면서 나를 긴장시키고 있는 모든 것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감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평생 일을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자 라고 내 자신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생활 해야했던 일들은 다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출퇴근시각과 점심시간, 휴식시간이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일을 시작했다. 남들이 내 뒷담화를 하든 말든, 회사에서 내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나는 하루하루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집중하기로 했다. 딱 거기까지. 회사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그냥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직장 동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는 것도 부질없고, 고객들이 내가 권유하는 상품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도 다 부질없다. 대출이자. 카드값, 방세... 매달 내야하는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지만, 욕심부려서 일하지 않으면 당장 내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 몸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짓는 하지 않기로 했다. 화를 내거나 자책하거나 다른 사람을 질투하거나 내 스스로의 인생을 비하하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마음을 비우면 마음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쓰지 않게 된다.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 된다. 쉽지는 않지만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스트레스의 양이 엄청나게 줄어든다.
힘들게 애쓰고 싶지 않는 것 중에 하나. 연애다. 내가 마음에 드는 상대는 내가 별로일 때가 많고,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데 내 마음이 별로일 때도 있고, 게다가 서로 마음에 들어 만난다 하더라도 남녀관계는 늘 어긋남의 연속이고 복잡한 감정싸움의 연속이다. 맞춰 나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헤어지고 마는 게 연애. 연애의 목적이 결혼이라면 나는 더더욱 애쓰고 싶지 않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연애는 연애일 뿐. 연애가 결혼의 수단이 되는 것은 싫다. 순수한 연애의 과정을 나와 오롯이 잘 밟아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많이 모자라고 보잘것없어도 나를 불안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결혼이라는 걸 차근차근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떤 목적이 보이고 그 목적을 위해 의식적으로 데이트하고 연기하고 의미없이 시간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나는 더 이상 애를 써가며 만나지 않을것이라 결심했다. 나는 과정을 길게 보고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데, 보통 남자들과의 연애기간은 6개월에서 1년 안에 끝이 난다. 3개월만에 끝난 적도 있다. 당뇨가 생기면서 남자들이 부질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외적인 모습만 보고 다가왔다가 막상 내가 당뇨라고 하면 도망가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를 감당할 자신도 없고 그릇도 안되면서 말로만 사랑을 이야기하다 떠나가버리는 연애. 그 연애의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보니 이제는 시작 조차 겁이 나고, 남자가 하는 모든 말들을 철썩 같이 믿었던 옛날의 내갸 아니다보니 이제는 연애도 결혼도 설렘도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부질없는 것들이 늘어가고 처음부터 마음을 덜 쓰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다보니 욕심이 줄고, 스트레스도 줄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느낌은 감출 수 없다. 뜨거웠던 나의 불씨들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랄까. 노년이 되어야 느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나에게 일찍 찾아온 건 왜일까. 당뇨 때문일까. 어쩌면 질병과 죽음이 내 앞에 좀 더 일찍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채우려고 하는 것보다 비우려고 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고, 내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순간을 더 행복하게 후회없이 살고자 하는 내 의지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