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치

식사시간에 늘 챙겨야 하는 물건

by 씽씽유작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편한 시간이 바로 식사시간이다.

식사 전에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데 가장 적당한 곳이 화장실이다. 인슐린은 식사 전에 너무 빨리 맞아도 안되고

식사 이후에 너무 늦게 맞으면 안 되므로 숟가락을 뜨는 시간대를 정확이 계산해야 한다.

만약 점심 먹을 장소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거나 점심 식사가 언제 식탁 위에 올려질 지 예상할 수 없다면 섣불리 인슐린을 맞기가 애매하다.


식사 장소가 정해지고 난 뒤 메뉴를 주문해 놓고 화장실을 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 그 때 항상 챙겨야 하는 게 파우치다. 파우치 안에 소모성 재료(당뇨인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넣어 두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파우치 속에 챙겨 온 인슐린 주사기, 주사바늘, 알콜 스왑을 꺼내고

주사바늘을 주사기에 결합하고 알맞은 주사량을 조절한 다음, 알콜 스왑을 개봉해 가장 살이 많은 뱃살을 문지른다. 그리고 뱃살을 꼬집고 천천히 바늘을 꽂는다.


아침 저녁엔 집에서 편하게 주입하면 되지만 평소 회사에선 점심시간마다 화장실을 들리기가 번거롭기 그지 없다. 가끔은 사람들과 점심 먹을 장소를 따라가느라 화장실 갈 타이밍을 놓치곤 하는데 그럴 땐 식사가 끝나고 난 뒤 바로 화장실로 가야 한다.


그래서 밥을 같이 먹는 직장 동료에겐 내가 당뇨인이란 사실을 알려야 편하다. 왜 점심시간마다 파우치를 챙기는 건지, 왜 내가 밥 먹기 전에 항상 화장실을 들려야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니면 좋지만 이직이 자주 있는 나로서는 늘 새로운 사람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려야 하고 그들의 반응을 지켜봐야 한다. 정말 말하기가 싫으면 도시락을 싸 와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오히려 편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도시락만 매일 싸 오기도 힘든 노릇이다.

코로나 이후에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 날이 늘긴 했지만 가끔 회식을 한다거나 우연치않게 같이 나가서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오랫동안 당뇨인이란 사실을 숨기기가 어렵다.


한번은 처음 가보는 건물 화장실에 파우치를 놓고 나온 일이 있었다. 한참 후에 그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파우치를 찾아온 기억이 있다. 또 한번은 파우치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는데 누군가 그 파우치를 제발 개봉하지 말아주길 빌었다. 소모성 재료는 집에 충분히 있고 파우치엔 소량만 챙겨서 나온 거라 잃어버려도 큰 타격이 없었다. 그보다 더 민망한 건 내 파우치를 열어 본 사람이 '대체 이건 뭐하는 물건이지?'라고 당황해 하는 얼굴을 상상했을 때이다.


처음 당뇨를 진단받고 의사로부터 소모성 재료 처방전을 받았을 때 너무 절망적이었다. 약국에서 주사기, 주사바늘 뿐 아니라 혈당을 측정하는 기계, 혈당 측정 검사지 등등 다양한 재료의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탄하게 되는데. 그 중 제일 익숙해지기 어려웠던 게 바로 혈당 측정을 위해 혈당 침을 손가락에 찔러 피를 짜내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에 한 번, 아침 먹고 식후 2시간에 한 번, 점심 식사 전에 한 번, 점심 식후 2시간에 한 번, 저녁 식사 전에 한 번, 저녁 식후 2시간에 한번, 자기 전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여러번 손가락에서 방울만한 피를 짜내 혈당을 측정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번거로운 혈당 측정까지 챙기기는 무리였다. 보통 출근하기 전 집에서 한 번, 그리고 퇴근 후 집에 와서 식후 2시간에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혈당 측정을 한다.

혈당 측정을 해서 나온 수치를 확인하고 알맞은 인슐린 양을 조절해 맞아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그러기가 힘들기 때문에 하루 인슐린 양을 동일하게 맞는 방법을 선택했다. 때문에 파우치엔 인슐린 재료들만 챙기는 것으로 하고 세 끼 식사량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평소보다 좀 해비하게 먹었거나, 평소보다 부실하게 먹었다면 반드시 혈당 측정을 하고 인슐린 양도 다시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정확한 시간대에 정확한 식사량을 지키면서 정해진 인슐린 양을 맞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스스로 택했다.


3개월마다 몸 상태를 확인하러 주치의를 찾아가는데, 주치의가 어느날 붙이는 혈당측정기를 권유했다. 내가 늘 혈당측정기를 챙겨 다니지 않아서 새로운 대안을 내놓은 것인데 동전 모양의 센서를 팔에 부착하고 스마트폰을 연동해서 센서를 갖다대면 실시간으로 혈당 측정을 해서 스마트폰에 알려주는 것이다. 처음에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고민했는데 소모성 재료 뿐 아니라 붙이는 혈당측정기도 나라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확실히 매번 손가락에 침을 놔서 채혈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서 편했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직장에서도 수시로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팔 뒤쪽에 부착된 센서를 보여주기가 민망해서 짧은 팔을 입어야 하는 여름보다는 긴 팔을 입을 수 있는 가을, 겨울에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두꺼워서 확실히 눈에 띌 수 있다. 다행히 재택을 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 땐 사용을 잘 했었지만 다시 출퇴근으로 돌아온 지금은 사람들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

회사 사람들에게 아직 보여준 적은 없지만 이게 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하는 게 생각만 해도 고역이다.


당뇨인이 되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아진 것에 대해 착잡할 때가 많다. 월경 할 때만 챙겼던 파우치를 이젠 매일 챙겨야 하고, 외식을 하게 되면 늘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건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화장실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때면 그냥 차라리 인슐린 맞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는 것.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게 이제는 나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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