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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n 01. 2020

향수와 역향수의 그리운 맛

맛에 대한 추억


<향수와 역향수의 그리운 맛>


사람의 기억은 시간과 공간이 지배한다.나의 기억 역시 그 시절, ㅇㅇ시절에, 그 때, 거기에서, 그 곳에서, 지금여기서, 이렇게 시작된다. 시간 속에서, 공간 속에서 청각이 기억하는 울름 대성당의 파이프올갠 연주 소리, 후각이기억하는 뮌헨 비어가르텐에서 생선 굽는 냄새, 시각이 기억하는 눈부신 알프스, 토스카나 지방의 감미로운 훈풍과 습도 높은 북부독일의 한 겨울 싸한 추위를 나의 촉각은 잊지않고, 모국의 국물맛 같은 느낌에 허겁지겁 들이켰던 헝가리안 굴라쉬 스프를 나의 미각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외국에 살면서 그리워하던 모국을 향한 향수, 귀국하여 종종 생각나는 외국에 대한 역향수, 이런 그리움 속에 맛에대한 그리움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전통 한국의 맛도 제대로 내지 못해 그저 흉내만 내고, 거주지의 음식 맛도 겨우 시늉만 내는 나의 요리는 항상 아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 맛이 때로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모국에서 온 방문객들에게는어설픈 현지 요리로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했고, 외국인 초대손님에게는 한국음식을 슬쩍 변화시켜 대접하며‘한국의 맛’에 대한 찬사도 받았다.


이렇게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계절에 따라 생각나는 우리의 제철 음식들, 그것은 지워버리기 어려운 그립고 그리운 것이었다.


 


독일의 큰 도시에는 한국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한국식품점이 있고, 아시아식품점이 여러 군데 있어서 필요한 식품을 구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 독일마트에도 한국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신선식품들이 있다. 그러나 늘 “2프로부족”했고, 모국의 맛에 대한 그리움을 없애지는 못했다.


한국 식품점에서 잘 포장된 김치를 사먹다가 가끔은 현지 식재료로 김치를직접 담그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맛을 내기 위함이지만 그것 역시 만족스럽진 못했다.


밀가루 풀국을 끓여서 청경채로 열무김치 흉내를 내고, 래티시를 사와서 피쉬소스로 총각김치를 담는 식이다. 그곳 무는 너무물러서 콜라비로 깎두기를 담았다. 쇠고기 국물에 파와 당근 잎을 넣어 육개장을 끓여 먹었다. 우리집 정원엔 민들레가 많아서 봄철엔 민들레 나물을 실컷 해먹었는데, 그집에서 이사 나올 때는 정원의 잔디를 다 망가트려놨다고 잔디를 새로 까는 비용을 부담해야했다.


모든 재료가 다 갖춰지더라도 양념에서 맛의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어쩔수 없다.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늘냄새 풍기는 아이로 기피대상이 되지 않도록, 한국사람이 살다 나가면 집에서 마늘냄새 난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마늘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웃집에 실례될까봐 창문을 닫고 끓이는 된장냄새는 집안에 갇힌채 며칠씩 머물렀고, 맛있게 먹은 된장찌개 냄새는 그 맛과는 달리 우리가 맡아도 불쾌했다, 온바닥에 다 카펫을 깔았고, 커튼도 묵직하게 드리워진 집에서 냄새는 오래 갇혀있었다. 그래도 입안에 맴도는 한국음식의 맛을 씻어낼 수가 없어서 가끔씩 한국에서 공수해온 김치와 된장과 장아찌를 먹곤했다.


한국 사람들끼리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면 어떤 이는 공감하고 서로 불편을토해내며 위로했고, 어떤 이는 뭣 때문에 그렇게 눈치를 보고 사느냐고,자신은 먹고싶은 대로 다 해먹고 산다고 으시대면서. 나를 핀잔했다. 내 생각은 약소국민족이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쪼그라들어서 눈치보는 것이 아닌데, 그 당당한 사람의 핀잔에 속상할 때도 많았다. 내가 싫어하고 구역질나는냄새가 있는 것처럼 내 이웃들도 익숙치않은 된장냄새 김치냄새가 싫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건데…


 


외국손님이 올 때는 소불고기, 잡채, 간장소스의 야채 겉절이를 하거나, 고추장과 케쳡을 반반씩 섞은 소스로돼지 불고기, 야채전, 무생채를 대접했다. 한국에서 방문한 우리 여행객들에게는 고기값이 큰 부담없는 갈비요리를 하면 모두들 좋아했다. 이제 생각하면 모두 다 엉터리였다. 내가 외국인에게 대접했던 음식들이진정한 한국의 맛도 아니었고, 양념들은 모두 현지의 마트에서 구입한,그들의 입맛에 거부감이 없는 것들이었으니.


 


귀국후 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그리웠던 맛을 탐닉했다. 청국장도 묵은지찌개도 눈치볼 것없이 마음놓고 먹었다. 그런데 내입맛이 어쩜 그리도 변덕스러운지 갑자기 외국에서 먹던 맛이 그리워질 때가 가끔 있다.


봄철이면 흰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스파라가스에 홀랜더소스를 듬뿍 부어서먹던 그 맛, 직화에 구은 고등어를 호두나무 그늘 아래에서 즐기던 그 맛, 돼지갈비를 한 짝 통째로 구워먹던 바비큐 맛, 그곳에서 그리워하던한국의 맛을 제치고 그곳의 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노마드의 삶인가.


이제는 아들 딸 모두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있는데 우리는 가족 모임에서가끔 외국에 있을 때 먹었던 음식 이야기를 한다. 거기 있을 때 그리웠던 우리나라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서 한국음식을 먹으며 그리워하는 그쪽 음식 이야기를 한다. 마트에서버리는 무청을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 나를 바라보던 계산원의 눈길, 생선 시장에서 버리려는 연어 머리를달라고 해서 가져온 나의 용기도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면서 각자 그리운 음식 이야기로 배를 채운다.


이럴 때 거듭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재독 한인간호사 M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M이 근무하는 병원의 독일 간호사가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 아이는갓 돌지난 아기였는데 분유를 먹지않고 며칠을 울어서 고생한 그 간호사가 M에게 자기 아기를 어떡하면좋으냐고 하소연을 했다. M은 쫄쫄이 굶은 아기를 품에 안고 김치조각을 물에 헹궈 입에 넣어줬더니 아기는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그 김치조각을 오물오물 빨더라는 이야기이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 아기는 엄마의 탯줄을 통해서 받아먹은 김치맛에 익숙해졌었던 걸까?


 


음식은 그 종류를 다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음식에 대해 우월하거나 뒤쳐지는 것을 규정지을 수 없는 건 사람들의 입맛도 개인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때문일 것이다. 맛이 좋다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도 있지만, 내입에 맞아야 맛이 좋은 것이다. 여러 나라 식당의 메뉴판에 ‘가정식’ ‘할머니 손맛’ ‘엄마 손맛’ 이런메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에게 그 맛이 가장 익숙하기 때문이리라. 그 익숙한 맛이 우리들의허기진 그리움을 채워주는 것이다.


내가 가슴에 꽉 차오르는 한국음식의 맛을 즐기면서도 타국의 음식에 대한역향수를 느끼는 것은 그것에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국과 타국의 음식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우리 가족들은 음식 이야기를 하는 식탁에서 더욱 든든한 끈으로 묶인다. 추억이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서 더욱 귀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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