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중고책을 산다.
이미 오래전에 읽고 누군가에게 줬던 책을 다시 봐야 할 때는 새책을 또 사기 아까워 중고책을 산다. 이제는 가지고 있는 책들을 조금씩 덜어내는 중이므로 새책 구입보다는 중고책 구입 비중이 늘었다.
알라딘이나 예스24 온라인 서점을 이용한다.
구매자로서는 알라딘에서 더 깨끗한 책을 선택할 수 있다. 알라딘의 중고책 매입 기준에는 메모한 페이지가 5군데 이하의 책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이다. 예스24는 중고책을 “사용흔적 약간 있음” “시용흔적 많이 있음”으로 안내하고 있다.
내가 중고책을 살 때는 사용 흔적을 개의치 않는다. 그냥 싼 책을 산다.
개인 판매가 아닌 서점 자체에서 판매하는 중고책은 사용했던 것이 아닌 묵은 새 책일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은 완전 새책이다. 물론 출간한지는 오래된 재고품이다. 그러나 읽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싼 책을 선택한다고 말하니 왠지 어색하다. 같은 내용의 책 중에 싼 것을 산다는 말이다.
중고책의 문제는 “사용흔적”인데 그것이 도대체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오빠가 읽던 책, 아버지가 읽던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발견하면 설레고 가슴이 뛴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런 경험이 전혀 모르는 타인이 표해둔 언더라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다. 누군지 그는 왜 여기에 밑줄을 그었을까, 그 부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며 읽게되고, 간혹 메모해둔 깨알 글씨를 발견하면 마치 보물찾기에서 뭔가를 찾은 느낌이다. 미지의 이전 독자와 무언의 교감이 이뤄진다. 메모 내용에 공감도 하면서, 반론도 제기하면서 읽어나가는 것이 독서에 도움이 될망정 훼방은 되지 않는다.
판매 서점에서 중고책의 가격을 정하는 메뉴얼에는 책의 상태가 중요하겠지만 구매하는 독자로서는 꼭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부분은 각자 구매자의 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에 괜찮다는 것이다.
중고책이 매매하는 물건이냐, 읽을 책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결코 책을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 책에 담긴 내용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낡고 헐었어도 읽을 수 있다면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는.
1년전에 지금 가지고있는 책의 반 만큼을 처분했다.
10여년 전부터는 새로 산 책을 다 읽으면 원하는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책을 늘리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새책은 그렇게 없앴지만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묵은 책들은 선뜻 버릴 수가 없었다. 이미 낡아서 물건으로서의 값어치는 전혀 없지만 책의 내용은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며 손때묻은 책들과 이별을 했다.
나의 책들을 폐지로 버리지 않기 위해 겉 모양이 깨끗한가, 발행년도가 최근인가, 유명 작가 작품인가, 낡았지만 소장 가치가 있는가, 이런 식으로 분류했다. 작은 도서관에서 받아주면 갖다주고, 나머지는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새책과 다름없는 책들조차 <헌책>이라는 이름을 덮어쓴 채 달라고 하는 곳이 없었다. 헌책이란 물건은 값어치 없는 물건이었을 뿐이다.
마침 집에 다니러 온 딸과 사위가 수 백 권의 책들을 경비아저씨가 지정해준 곳에 쌓아두었다. 하루밤 자고 이튿날 내려가보니 주민들이 많이 가져갔다. 아마 200여권은 없어진 것 같았다. 사랑하는 나의 책들이 헌 물건으로 냉대받은 서운함에 언짢았던 마음이 풀렸다.
현재는 120센티미터 폭, 6단 책장 5개 분량의 책이 남아있다. 그동안 수차례의 정리 끝에 살아남은 책들이다. 삶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앞으로 5년후까지는 책장 하나만 남길 계획이다. 아들 딸은 그들 집이 이미 책으로 포화상태라 더이상 수용하기 어렵다. 가능하면 전자책을 구입해서 읽는다고하니 지금의 내 책들은 앞으로 계속 불필요한 헌 물건 취급을 받게 될 것 같다.
어떤 책은 물건으로 치더라도 새것인데 발행년도가 묵은 것이니 헌책이다.
나는 읽으며 밑줄 긋고 메모를 하는 사람이라 내 책은 사용 흔적이 많은 책들이다. 손도 안 댄 것처럼 새것들은 하드커버의 두꺼운 벽돌 책들이다. 펼침이 부드럽지 않아서 별도의 노트에 기록하고 책은 읽은 표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헌 책일테지만.
사물에 대한 가치 평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의 사랑하는 책들은 내가 정한 가치와 남들이 정한 가치가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래도 한번 묻고싶다. 중고 책은 물건의 값어치로 평가 받아야 하는지, 그 내용으로 평가 받아야하는지.
책에 대해서는 내게 책을 선물해주는 사람보다는 내 책을 가져가는 사람을 나는 더 사랑한다. 웃돈을 얹어주더라도.
2019년 7월에 나와 작별한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