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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Dec 13. 2020

브런치 북 <초상 박춘자>

브런치 라디오 응모작

첫 눈이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창가에 붙어있다. 누군가에게 눈 소식을 알려야 할 것 같다. 하얀 종이 위에 무언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밖으로 나가서 눈을 맞아야겠다. 수 십 년 동안 변함없이 겪어온 첫눈 오는 날의 마음이다. 나이 70에도 첫눈 오는 날의 마음은 똑 같은 설렘이다. 아들이 운전할 때 위험하겠다는 생각은 저 뒤로 밀려있다.

 

눈 풍경을 그린 자작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호수엔 눈이 쌓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다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눈이 호수 속으로 숨어들어가 숨죽이고 있는지를. 옛날 남자 친구는 말했었다. “바다속에는 몇 개의 창고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는 눈이 가득가득 쌓여 있고, 또 다른 곳에는 비가 꽉 차있고, 소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동안 자기가 던진 심술과 욕보따리도 거기 있고, 또 어디 한 군데 창고에는 여자에게 주려고 모아둔 사랑도 가득 채워져있다”고 남자 친구는 말했었다. 여자는 호수에도 그런 창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초상(肖像), 박춘자> 8


https://brunch.co.kr/brunchbook/morgen7


브런치 북 <초상(肖像), 박춘자> 활자화되었지만 읽는 대로 이미지가 눈앞에 떠오르는 글이다. 주인공과 함께 소설  배경을 함께 거니는 기분이다. 브런치  소개를 옮겨본다.


"원고지 300매의 중편 소설입니다. 많이 감상적입니다. 가난의 긴 터널을 벗어난 한 여자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현실 세태에 렌즈를 바짝 들이대고 찍은 사회 풍경화를 배경으로 두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중년 여성의 발걸음을 따라갑니다. 가난을 이기고 성공한 남성의 페이소스가 아련히 피어납니다. 이 소설은 글자로 그린 그림입니다. 글에서 이미지가 연상되도록 글쓰기를 계획하여 읽는 사람은 마치 시화전 전시회를 관람한 듯한 느낌을 갖도록 했습니다. 글을 읽는다기 보다는 영상을 시청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싶은 여자분들. 물질은 가난하나 사랑은 풍부한 연인들. 중년 이후의 부모님을 이해하고싶은 젊은이들."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 소설은 멜로드라마이다. 멜로드라마를 흔히들 삼류소설이라고 한다. “삼류” 그것은 옛말이고 요즘은 “B급”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떠랴. <베이비부머>라고 명명된 집단들은 이 나라의 경제성장의 대로를 맨발로 걸어오면서 삼류소설을 참 많이도 썼다. 소설책을 썼다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썼다는 것이다.

땡볕아래 맨발로, 눈쌓인 길을 맨발로 걷던 중에도 나이에 따라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러면서 “졸부”이거나 “건강한 부자”이거나 다리 뻗고 쉴 자리에 도달했다. 그 도달점에 주저앉으니 새로운 길이 열렸다. “100세 시대”라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 걸어야한다.


브런치 북으로 발행한 삼류 소설 <초상(肖像), 박춘자> 베이비부머 시대의 연애 이야기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시대의 강을 건너온 많은 부부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누군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싶다.


1화에 기록된 내용은 이렇다. 이 소설의 전체 내용을 요약한 글이다.

주인공 <박 춘자> - 50대.수채화를 그림. 부유한 가정주부. 일남 일녀를 둠. 세태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지내다가 놀란 듯 깨어나는 자의식을 추스르지 못하고 가출까지 하게된다.

<중략>

지선(개명하기 전에는 춘자)과 준호는 고등학교 동창, 아주 오래된 친구 사이로 결혼했다.  가난했던 그들이 점점 부유해지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준호가 바쁜 중에 지선은 외로움을 탄다.

딸은 출가하고, 아들은 군에 입대하고 지선은 문화센터에 수채화를 배우러 다닌다.

지선이 수선화 회원들과 함께 전시회를 하게 되고, 전시장에 남편들이 등장하여 화려하게 세 과시를 하는 모습에 지선은 우울해진다. 이웃돕기를 내 건 전시회에서 그림의 가격이 그림의 가치대로 평가되지 않고 기부금의 성격을 띠는 것에 지선은 화가난다.

<중략>

준호는 사람을 시켜 지선 모르게 지선의 그림을 비싼 값에 산다. 우연히 그 일을 알게된 지선은 자신의 성취감을 박탈당한 허탈감에 빠진다. 준호는 임신한 딸 유정이 안타까워 딸 모르게 사위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준다.

<중략>

전시회 일로 우울해 있던 지선은 분노하며 준호에게 덤빈다. 지선에게나 유정에게나 그런 식으로 베푸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외친다. ~ 그런 식의 행복을 손에 쥐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더 이상 이런 허수아비의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뛰쳐나온다. <뒤 생략>


가출 이후  알프스 산자락에 머물고 있는 박춘자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스위스 겨울 풍경과 함께 펼쳐진다.

마지막 장 13화에서 여주인공은 이름이 어찌 그리도 촌스러운 박춘자인지 알려지고 딸의 출산 소식에 가출을 접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으로 소설은 끝난다.


정체성을 찾고 새출발하는 것이 도피처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감은 앞으로 갈 방향이 확고해졌음을 뜻한다.(1화 전체요약 끝부분)


13화

"여자는 겨울의 한 가운데 서있다. 이국의 겨울은 더욱 깊고, 이국의 봄은 더욱 멀다. 여자는 생각한다. 숨쉬는 피붙이들을 다 밀어부치고 이미 숨이 끊어진 죽은 자가 어떻게 더 가까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인지 알수 없다. 발이 있는 자들이 올 수 없는 거리를 발이 없는 자는 단숨에 달려온다. 발이 없는 아버지는 그렇게 알프스를 넘어 툰 호수를 건너 이름을 바꿔버린 여자를 찾아 왔다. 아버지는 여자에게 무어라고 자꾸만 말을 한다. 여자는 온 몸의 세포를 다 열고 아버지의 말을 몸으로 듣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산자가 죽은 자의 얘기를 알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농사꾼인 아버지에게 가장 반가운 건 봄소식이다. 봄이 가까워질수록 쌀자루는 쭈그러져 허깨비처럼 웃목에 흉물로 남아도 농사꾼인 아버지는 봄을 기다렸다.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땅만 파고 살았던 아버지가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자는 봄이었다. 아버지는 굳이 글자로서의 봄을 고른 것도 아니었다. 봄<春>은 글자가 되기 이전에 아버지의 몸에 봄으로 달라붙어있는 감각이었고, 늘 노래로 입에 담겨 있던 말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다가온 귀한 한 생명은 춘자(春子)일 수밖에 없었다."

 

박춘자의 성격은 소설의 시작 첫부분에 잘 드러나있다.

2화

"언제나, 카푸치노를 마실 때마다 여자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짤름거리는 찻잔에 설탕을 넣어도 될지 안 될지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설탕을 넣어서 마시고 싶은데 커피가 넘쳐서 받침 접시가 더럽혀질까봐 걱정이다. 넘치지 않도록 설탕 넣는 일을 조심스럽게 성공한다 해도 그 다음에 젓는 일은 또 어떻게 해야할 지 여자는 아직도 잘 모른다. 가슴 속에 넘실대는 강물을 어떻게 넘치지 않게 할 지 모르는 것처럼."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멜로드라마, 삼류 소설이라고 멀찌감치 밀어붙이는 이 이야기를 공감하며 자신의 추억을 소환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 그 시대의 강에 청춘의 배를 띄우고 온몸을 적시며 건너온 노년의 동지들과 함께 웃으며 함께 눈물 찍어내며 이 소설의 낭독을 듣고싶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orgen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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