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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Dec 10. 2020

아름다운 집

싱크대앞에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서 부엌일을 하며 정원을 내다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휘청,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바람이려니 했다. 옆집에서 담을 넘어와 늘어져있는 나뭇가지, 이름 모를 빨간 열매가 닥지닥지 매달린 가지가 흔들렸다. 언뜻 바라보니 탐스러운 다람쥐 꼬리가 보인다. 아직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들이 수두룩한데  다람쥐는  가늘고 가는 가지 끝의 열매에 눈독을 들인 걸까. 나는  놈을 '조나단' 이라고 이름지었다. 이제  놈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마당엔 토끼만한 다람쥐들이 있고, 거실엔 산타클로스가 드나들만한 커다란 벽난로가 있는 . 아이들이 잠든  산타할아버지가  벽난로에서 살금살금 나와 양말 속에 선물을 넣고 가겠지. 금년엔  이름의 양말도 벽난로 가에 하나 걸어두리라.
낡은 목재 바닥은 삐걱거리고 고풍스러운 고가구들이 구석구석 버티고 있는 이 . 정원에 있는 창고엔 정원을 손질하는 연장들이 가득하다. 반짝이는것, 파란 녹이  , 그러다가 아예 붉은 녹이 연륜을 말해주는 , 전지가위, 호미, 가래,

얼마 전에  주인이 다녀갔다.
변기가 깨져서 연락을 했더니 상황을 보고 고쳐주러  것이다. 거실에 들어온 그는 우리 아들이 치는 전자기타를 보고 아주 반가워 했다. 옛날에 자기가 쓰던 기타와 같은 거란다. 같은 상표에 모양까지 똑같다며 얼마나 반가워 하던지. 전자기타는 갑자기 타임머신이 되어 그를 싣고 옛날로 미끄러져갔다.
그는 젊었을  친구들과 어울려 밴드를 조직하고 매주 모여 연주 연습을 했단다. 지금 우리가 식당으로 쓰고 있는 방에서 연주를 했는데 그는 기타를 머리 위로 넘겨 ( 이걸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데) 몸을 꼬며 연주하는 폼을 잡다가 천장에 있는 전등을 건드리곤 했단다.  때가 1960년대후반기였다니 그들의 연주에서 클리프 리차드나 비틀즈가 빠질  없었을 게다. 여긴 그들이 활동하던 런던, 지금도 거리의 악사들이 비틀즈의 노래들을 연주하는 런던이니까.
우린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사진을 깔아놓았는데 그가  시간에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그걸 보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얼굴엔 주름도   눈에 띤다. 아마 나이 60 어느 정도는 넘겼으리라. 그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살았고,  집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세를 놓았단다. 어머니를 사설 보호기관에 모시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세를 놓은 것이란다. 그는  집보다  작은 집으로, 늙은 어머니는 시설이 아주 좋은 양로원으로 가셨다고 한다.


우리는  집에 노인이 살았었다는 것을 이사 오는 날부터 알았다. 화장실 , 샤워실 , 현관, 곳곳 마다 앉았다 일어날  붙들  있는 손잡이가 설치돼있다. 침실엔 인터폰이 있고, 계단이 꺾어지는 부분에는 거울을 달아 아래층과 위층에서 서로   있도록 해놨다. 게으른 나는 가끔  거울을 이용하여 아래층에 있는 아이들과 거울 속에서 마주보며 얘기를 한다. 어쩜 그렇게 마주   있는 것이 신기하여 즐기는지도 모른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손잡이들을  때마다 어머니를 배려하는 아들의 손길을 느끼곤 한다.
의자 중에 하나는 특히 다리가 짧은데 우리들은 그것을 할머니 의자라고 부른다. 주인 아저씨는 키가 아주  사람인데 특별히 낮은  의자는 그가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것이리라. 목욕탕에는 앉을 판에 예쁜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놓은 의자가 있다. 물을부으면 구멍으로 물이 내려간다. 샤워하는 짧은 동안에도 힘이 드신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배려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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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사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전화도 없이 불쑥  번을 찾아왔었다. 처음엔 볼일도 없이 혼자 왔고,   내가  춥다고 했더니 그다음엔 전기난로를 사가지고 아내와 함께 왔다. 이제 생각하니 그는  집에 그냥 그렇게 오고 싶었던것 같다. 갑자기 방향을 바꿀  없는 그의 귀소본능이 발걸음을  집으로 인도했으리라. 온갖 군데를  헤매고 다녀도 결국엔 이곳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무의식 중에 그날도 여기로 향하였는지도 모른다. 어쩜 그는 자기 어머니가 양로원으로 가신  깜빡 잊고 여기 오면 어머니가 자기를 맞으리라는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  가슴이  이렇게 찡해지는 걸까.


전자기타를 보고 아주 반가워하며 자기가  식당에서 친구들과 연주하던 시절을 회상하던 그의 마음이 애틋하게  가슴에  닿는다. 그가  집을 떠난 후로도 그의 마음은 얼마간  집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가 꿈을 꾸면  배경은   집이리라. 그가  집에서 태어났는지는 묻지 않아서 모른다. 기타를 치던 시절부터 세어도 40년이 넘도록  집에서 살았는데,  동안 그는 결혼을 했고, 자식도 낳았고,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생의 마감을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섰고 … …
 집은 건물로서 만의 집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다. 그의 영혼이다. 그의 어머니의 손길이    없이 곳곳에 남아 체온이 느껴지는 집이다. 집은 그래야   같다. 집은 소유의  목록이 아니라 인생을 담는 그릇으로 존재해야 한다.


 집엔 족히  년쯤 묵었을 듯한  나무도 있고,  기둥이 어른 팔뚝만큼 굵은 장미나무도 있다. 동백나무도  그루가 있는데 나는 이번  내내  동백을 보며 계절병을 앓았다. 봄이면 정원 구석구석에서 수선화와 튤립이 서로 다투며 피어나고, 봄이 무르익음에 따라 마당에 딸기도 빨갛게 익어가고, 장미는 11월을 넘기고도 지칠  모르고 피어나는 정원. 이곳에서 그의 꿈이 씨앗으로 심어졌고, 싹이 돋아 쑤욱쑤욱 자라나고  대궁이 솟아오르고 화려한 꽃을 피웠었겠지.
정원의 나무들, 꽃들이 어제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가     장미를 심었을까,  꽃이 처음 폈을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기쁨으로  꽃을 즐겼을까. 이제 생의 막바지에 와있는 그의 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장미 송이에 떠오른다. 그의 전자기타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아들의 전자기타 연주를  어머니는 때론 즐거워했고, 때론  굉음에 시달리기도 했으리라. 지금의 나처럼.
집안 곳곳에 어머니를 위한 손잡이를 설치하는 그의 망치소리가 들린다. 언젠가 그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 그날 그의 어머니는 여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때까지도 남아있을 어머니의 체온을 느낄  있을 것이다.    씩이나 배어있던 것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허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키의 그가 머리위로 기타를 넘겨서 연주하느라고 자주 건드렸다던 전등은 아직도 천장에 매달려 있다. 우리 아들이 흉내 내다가  등을  건드린다.

모든 존재는 아름답다. 정신이 깃든 모든 물질은  이상 무생물이 아니다.
무생물에 사람의 호흡이, 손길이, 사랑이 닿으면 그것은 생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따뜻한 체온으로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나는  아름다운 집에 살고 있다. 그의 어머니의 장미와 함께. 통통하게 살이 오른 조나단과 함께.




오래 전 런던에 살 때 쓴 글입니다. 계속 아파트 생활을 하니 런던 집이 자주 그리워집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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