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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Dec 07. 2020

12월의 장미


12월의 장미


12월의 거리는 화려하다. 어둠이 내리면 더 화려하다. 모든 것들이 반짝이는 물체를 위하여 숨죽이고 몸 사리고 바짝 주눅이 든다. 오직 반짝이는 것만이 번쩍번쩍 살아있음을 뽐낸다. 12월의 밤은그렇게 더욱 화려하다.
그런 모습에 감흥이 일어 상기된 사람들, 상대적으로 더욱 쓸쓸한 사람들, 감흥도 고독도 못 느끼는 무서운 사람들,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는 사람들, 꾸던 꿈을 슬그머니 접어두는 사람들 … 거리는 사람의 물결이 일렁인다. 그 물결에 내 몸을 맡긴다. 함께 출렁이다 보면 식어가는 내 몸 조금은 데워지려나, 이국의 겨울을 춥지 않게 나려나.


그리운 이들에게 내게 아직도 남아있는 온기를 전해주고 싶다. 크리스마스카드를 사러 화려한 쇼핑센터에 들어간다. 진열대엔 빨강과 초록의 원색이 성탄을 알리며 으쓱대고 있다. 아기 예수가 온 뜻과는 무관한 금색 은색이 찬란하다. 가라앉은 녹색에 흰 눈이 축복처럼 내리는 북구의 전나무 숲이 차라리 거룩해 보인다. 사랑하는 이들을 꼽아본다. 하나, 둘, 셋, 넷, … … 한 묶음의 카드를 산다.
어두워져도 불 밝혀놓을 이 없는 집으로 돌아온다.

마당엔 빨래 줄에 널어 놓은 옥양목 호청처럼 바람이 펄럭펄럭 소리를 내며 몰려다닌다. 몰려다니는 바람이 가끔 현악기의 고음을 낸다. 그 바람 한 자락, 휘익 나를 훑고 지나간다.


겨울 눈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녹색 잔디를 좋아했었다. 일년내내 신선한 초록으로 숨쉬는 유럽의 녹색잔디. 누군가는 말했다. 사람 눈의 피로를 가장 잘 풀어주는 것이 녹색이라고. 나도 그 녹색에 매료되어 몇 년을 지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고향의 금잔디를 그리워하고 있다. 초록은 일년내내 곁에 두고 보기엔 너무 강렬한 색깔이다. 부드러운 맛이 없다. 금잔디가그립다. 부드러운 색, 따뜻한 느낌, 푸근한 쉼이 있는 금잔디가 그립다. 바람이 늑대의 소리를 내며 몰려다니는 12월의 런던, 나는 몸을 누이고 뺨을 비비적거릴 금잔디를그리워하고 있다.

봄부터 장미나무를 타고 오르던 넝쿨이 있었다. 나팔꽃 같은. 그걸 제거하기엔 여린 순이 너무 안타까웠다. 고무줄 같은 연두 빛의 가는 선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린 순을 감히 잘라낼 수가 없었다. 장미는 넝쿨이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타고 올라도 모르는 척 윤기 나는 잎을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냈고, 봉긋한 봉오리도 맺었다.
장미가 수줍은 봉오리를 맺은 날, 나는 연두 색에서 수박색으로 억세진 넝쿨, 보송보송했던 솜털이 거슬거슬하게 억세진 넝쿨을 보고 공포를 느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억세고 힘이 센 넝쿨을 걷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장미에게 비겁했다. 넝쿨 식물에게서 하얀 나팔 모양의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장미의 실같은 비명이 내 귀에 들려왔다.

넝쿨에 파묻혀 거세게 항거하는 몸짓만이 환상으로 나를 어지럽힐 뿐, 더 이상 장미는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그 넝쿨이 내 몸을 친친 휘감은 듯 숨이 막혔고, 때로는 쑥쑥 뻗어 오름이 시원시원하여 장미를 깜빡 잊기도 했다. 언뜻 장미가 생각날 땐 고운 장미꽃을 그리워했고, 장미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바라보면 나팔꽃이 장미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여름을 나며 장미는 나팔꽃 나무로 이름을 바꿨다. '나팔꽃 나무'

북아트 플랙북 <장미> 사진과 수채화 그림을 한개씩 교대로 부착함.


바람은 현관 문에 뚫린 좁은 우편물 구멍으로 서로 들어오려고 한꺼번에 몰려와 아우성치고, 그 비명이 밤새 귀를 찢는 이 늦은 계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청청하던 그 넝쿨은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폭삭 사그라졌다.
그런데, 그런데 놀라운 일이!
넝쿨이 가라앉자 꽃망울이 맺혀있던 장미나무에서 망울이 터지기 시작한다. 한꺼번에 여섯 송이의 탐스러운 장미가 피었다. 백과사전엔 장미가 11월까지 꽃이 핀다고 쓰여있다.
장미는 넝쿨에 짓눌려 여름 내내 파묻혀 지냈다.
그 동안 화려했던 장미들이 겨울을 맞이한 지금, 찬 서리에 노출된 장미들이 축 처져버린 지금, 넝쿨에 파묻혀있던 장미가 꽃을 피웠다. 자신을 친친 휘감고 있던 그 넝쿨들이 찬 서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계절 모르고 버티는 녹색 잔디에 염증이 난 내게 장미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금잔디를 그리며 자주 망연해지는 나에게 꽃잎을 포르르 떨며 장미는 속삭인다. 장미가 내게 속삭이는 말을 크리스마스 카드에 받아 적는다.
"나는 기다렸어요. 넝쿨 밑으로 보이는 잔디가 녹색인 것을 보며 나는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꽃을 피울 수 있다고 믿으며. "
내 말도 덧붙인다.

"12월에도 장미는 핍니다."

늘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하던 독백이 초록색 잉크를 듬뿍 묻힌 펜 끝을 타고 흐른다.
갇혀있던 장미가 꽃피우고자 하는 몸부림이 없었다면 오늘 꽃은 없다. 지금은 새롭게 꽃망울 맺고 그럴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장미는 갇혀있는 동안 자신도 꽃 한 송이 피우고자 망울을 맺고 햇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장미는 탐스럽게 12월을 맞이한다. 이제는 금잔디를 그리워하지 않으리. 터지지 않은 꽃망울 하나 지니고 있으니.

한 묶음의 카드를 들고 우체국을 향한다. 부랑아처럼 떠돌던 바람이 우우 소리를 내며 내게 몰려온다.
바람이 마녀의 손톱을 바짝 세운 채 할퀴고 다니는 12월의 런던, 내 작은 뜰에서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나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푸르게 날 선 칼 바람이어도 거기 장미향기 한 줌 묻어있으려니!




런던에 있을 때 쓴 글입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꼼짝 못하고 갇혀있는 지금, 자유롭게 다니던 여러 도시들이 그리워 자꾸만 그때를 들춰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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