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란 무엇일까

by morgen

수필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부터 나의 책 읽기는 소설에서 수필로 바뀌었다.

나이 탓일까?

젊은 시절, 소설은내게 꿈이었다. 갇혀 사는 나이 때, 소설은 하나의 출구였다. 시간에 갇혀서, 공간에 갇혀서, 턱턱막히는 숨을 헐떡이며 살던 나이에 소설은 길이었다. 그 길은 평면에 놓여져 있지 않고 위로 뚫려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길을 통하여 힘껏 발돋움을 하면서 솟아오르곤 했다. 담 밖의 세상을 내다봐야만 살 수있을 것 같았다. 울타리 바깥 세상이 왜 그렇게 궁금했었는지. 바깥세상은 내가 사는 곳과는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세계를 내다보려고 항상 발돋움을 하고 살았다. 그 시절엔 그런 마음이 왜 그렇게 절박했을까?
소설을 통하여 모르던 많은 세상을 구경 다녔고, 내 나이로서는 상상도 못 할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소설이 나를 사로 잡은 것은, 내가 주인공 행세를 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대리만족이야말로 소설 읽기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소설은 나를 황홀한 여주인공으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가끔가다가 재미삼아 마귀할멈도 되자면 될 수있는 변신의 통로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 내 맘대로 하나를 골라서 그 사람을 쫓아내버리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앉는 기분은 만족이랄까, 쾌감이랄까… 그 시절, 다른 어느 것도 내게 그렇게 충만한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오랫동안 소설을 읽어왔다. 소설 읽기의 세월이 길었던 만큼, 나는 그 동안 별의별 인물이 다 되어봤었다. 별난 세상을 다 체험했으니 나의 책 읽기는 소설읽기라기 보다는 세상읽기라는 것이 더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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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꿈결에 신이 내게 지시하기를 "얘야, 이제 너는 남의 세상 엿보기에만 몰두하지 말고 네세상을 꾸며 보아라" 하고 속삭이셨던가?
아니면, 나는더 이상 탈출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됐음인가. 대리만족 같은 짓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됐음인가. 세상을 알만큼은 알게 됐다는 위험한 자만심 때문인가.
나의 책 읽기는 어느 새 수필 읽기로 바뀌었다.
수필은 소설과 다른 매력이 있다. 이건 완전히 사생활 엿보기이다. 허구의 세계를 엿보는 것보다 진짜 생활을 엿보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거짓이 전혀 없는 진실한 삶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필 읽기의 매력이리라. 이 사람 저 사람의 진솔한 삶이 내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은 독특했다. 수필 한편 한편 마다 제각기 다 다른 색깔로, 다 다른 맛으로, 다 다른 모양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의 글을 섭렵하다가 끝내는 "나도 수필을 쓸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해내고 말았다.


나는 수 십년 동안 남의 책을 읽기만 해왔다. 한 때는 소설을 써보고도 싶었지만,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가 없어서 포기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나의 재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꾸며내지를 못하겠다. 그러나 수필은 자기가 느낀 것을 사실 그대로 쓰면 된다는 생각에, 남의 얘기를 꾸미지는 못하지만 내 얘기야 옮길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결코 소설가를 거짓 꾸밈 쟁이로, 수필가를 별 재주도 없이 자기 사생활이나 쓰는 사람으로 비하하여 정의내림은 아니다. 다만, 나의 생각들을 전혀 꾸밈없이 진실되게 그려내는 일이 내게더 적합하다는 뜻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내가, 나의 생각들을 그대로 그림처럼 그려놓는 일은 할 수 있겠다는 나 개인의 생각이다.

수필이 뭔지도 모르고 덤볐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글 몇 토막 완성도 채 못하고 수필 쓰기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평소에 이것 저것 생각나는 대로 글을 한 토막 쓰고는 그것이 수필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여러 매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수필을 읽고 계속 달라붙는 의문부호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 나는 수필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배워야 할 것 같다.
삶의 향기가 배어있지 않은 글, 삶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글은 생명이 없는 글, 죽은 글이다. 그러면 삶의 모습이 다양한 것과 문학적인 소양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수필이란 무엇일까? 남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인가,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상인가, 상황의 설명인가? 과거로의 회상인가, 현재의 포착인가, 미래의 꿈인가? 갈수록 어렵다. 갈수록 미로 속에 갇혀서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냥 쉽게 생각하고 말까?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고. 꾸며낸 이야기와 다르고, 자신을 고백하는 수기와도 다른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단 말인가. 나는이제 글짓기의 첫 순서부터 차곡차곡 배워야겠다.

수필이란 무엇일까.
모든 글은 읽는 이에게 느낌을 준다. 느낌은 움직임에서 전달된다. 가만히 있던 것이 움직이게 됨은 무엇인가가건드리기 때문이다. 아, 매체가 필요하다.
여기서 나는<물과 돌멩이>를 유추해 낸다.
시인이 호수에 돌을 던지면, 그 돌은 바로 시가 된다. 돌은 시이다. 시를 감상하는 것은 돌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시인이 그 물결까지 그려주면 시를 읽는 독자는 너무 재미없다. 계모에게 천대받던 콩쥐가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집을 갔는데 이러고 저러고 한참 시집살이의 이야기로 또 이어지는형상이 되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그냥 돌멩이 하나 호수에 던지는 것으로 시를 쓰면 될 것이다.
이제 돌멩이가 첨벙 빠져서 물결이 일어나는 호수. 그 물결의 모양을 그려내는 것이 수필이 아닐까? 제일 가장자리의 희미한 물결에서부터 안으로 안으로 자세히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이 수필의 몫이다. 물결을 좁혀가다보면 가장 가운데 돌멩이 하나 빠진 흔적까지 다다를 것이고 맑은 물 속에서 그 돌멩이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그리는 것이 바로 수필이리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수필에 매력을 느낀다. 유화보다는 투명 수채화를 더 좋아하는 나는 수채화 같은 수필을 좋아한다. 밑그림의 흔적을 숨길 수 없는 수채화처럼 수필에도 쓰는 이의 숨김없는 삶과 생각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빠진 돌멩이는 어떻게 됐을까? 용왕님의 머리에 맞아서 용왕님이 진노를 했던지, 열애중인 물고기를 습격했던지, 그건 소설가의 몫이다. 소설가는 여기서 별의별 얘기를 다 꾸며대는 것이리라.

내가 수필을 쓰는 까닭은 내 자신의 일이니 설명할 수 있으나, 정작 누가 내게 수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순간 말더듬이처럼 더듬거릴 수 밖에 없다. "수필 은 붓 가 는 대로 쓰 는 게 수 필…"
나는 '수필'에 대한 정답을 모른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수필에 대한 것 뿐이다. 가슴 속에 담겨있던 내 생각들을 그대로 글자로 엮어놓은 것이 나의 수필이다.
'남의 글읽기'의 오랜 시간들을 '나의 이야기 하기'로 바꾼 과정이 나의 수필 쓰기이다. 나이 만큼의 이야기가 내 안에 쌓여있는 것일까. 이제는 수필을 써도 될만한 나이가 된 것일까…


<행복해지는 약> 수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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