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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pr 25. 2021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 판도라

비전문가의 그림 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John William Waterhouse- Pandora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읽다보면 심심찮게 마주하는 문장이 몇 가지 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릴 것인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참 신경쓰이고 아슬아슬한 표현들이다. 인생 경험으로 보면 정치가들은 루비콘 강을 수시로 건너고 되돌아오고를 반복한다. 루비콘 강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이 아니라 그 위에 넓은 다리가 놓여진 강이 아닌가 싶다. 얼마든지 유턴을 할 수 있는 다리.

판도라의 상자는 또 왜그렇게 툭하면 열릴 것인가 안 열릴 것인가로 관심을 모으는 것일까? 열리면 온갖 재앙이 쏟아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를 하는 것인지, 이미 쏟아져서 세상에 두루 퍼진 재앙의 밑바닥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인용하는 문구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도 경험상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인용될 때가 많다.

금지된 것을 거역했을 때 벌을 받는 일은 신화에 많이 있다. 뒤돌아보면 안되는데 돌아봐서 소금기둥이 된 일도, 열어서는 안되는데 열어서 재앙이 쏟아진 일도. 신화는 우리에게 조심스러운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금기된 것은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온갖 유혹속에 파묻혀 사는 인생속에서 참 어려운 문제다.

어린이에게 사탕상자를 주면서 절대로 먹으면 안되니까 그냥 가지고만 있으라고 한다면 그 얼마나 잔인한 인내를 요구하는 것인가. 이렇게 잔인한 정도는 아니지만, 어린이가 받는 과자종합선물상자도 대대로 아이를 실망시켜왔다. 좋은, 마음에 드는, 맛있는 과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 한 개는 절대로 돈내고 사먹지 않을 것도 슬쩍 끼워져 있다.


어쩌다가 "판도라"라는 여성보다는 "판도라의 상자"가 더 유명해졌는지 모르겠다.

"판도라"는 그리스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명에 따라 물과 흙으로 만든 여성이다. 신神들은 그 여자에게 많은 재능을 부여했다. "판도라"라는 이름은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이다. 이 선물에는 '과자종합선물셋트'처럼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이 섞여있다. 판도라는 제우스에게서 한 상자를 선물로 받는다.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준 그 상자는 사실 불을 훔친 인간들에게 화가 난 제우스가 내린 벌이었다.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항아리였다고도 함)를 열었고, 순간 그 안에 담겨있던 모든 재앙들이 쏟아져나왔다. 전쟁, 슬픔, 가난, 질병, 증오... 인간이 겪는 모든 재앙이 쏟아져나왔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그 상자를 얼른 닫았는데 맨 밑바닥에 깔려있던 희망이 나오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판도라의 상자는 열면 튀어나오는 재앙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가끔은 아직 남아있는 희망 때문에 긍적적인 의미로도 인용한다.


유명한 신화이다보니 많은 예술가들이 신화 "판도라의 상자"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작품을 창작해냈다. 영국 TATE 박물관 소장품에  Harry Bates의 대리석 조각품이 있는데 현재는 전시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는 화가가 그린 <판도라>를 구경해보자.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이 그림은 개인소장품이고 나는 원화를 본 적이 없다. 원화를 봤을 때의 감동을 전할 수는 없지만, 화가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다른 그림들을 여러 점 봤고,  그가 속했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화가들의 원화를 봤을 때의 감정을 상기하며 이 그림을 다시 본다.


http://www.jwwaterhouse.com/view.cfm?recordid=69

John William Waterhouse - Pandora.  oil on canvas,1898, 91.12 x 152 cm , private collection


정말 아주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 들여다보는 판도라의 모습이 워터하우스의 다른 여자 모델들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여자는 호기심 덩어리인가, 그 호기심 때문에 금기를 깬 존재는 왜 여자여야 할까, 에덴에서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성경의 첫 여자 이브, 땅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여성 판도라,  내가 '여자'라는 단어에 매달려서 그런지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상자보다는 판도라에게 더 집중한 느낌이 든다. 그림의 제목도 <판도라의 상자>가 아닌 <판도라>이다.

상자의 황금빛 보다는 판도라의 햐얀 어깨가 더 눈길을 끈다. 하이라이트로 빛나는 어깨는 그림 좌우의 중앙에 있어서 더욱 시선을 끈다. 판도라의 맨발이 아니었다면 이 그림에서 판도라의 어깨 외에는 다 어둠에 묻혀서 보이지도 않을 뻔했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그림이 거의 그렇듯이 이 그림의 배경에는 숲도 있고, 흐르는 물과 꽃도 그려져 있지만 화가는 오직 판도라에게 집중하고 있다.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팜므파탈(femme fatale)'에 열렬한 관심을 가진 화가인데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에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와 함께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그림은 워터하우스의 <The Lady of Shalott>(1888)이 아닐까 한다.


화가 부모를 둔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로마에서 태어났고, 소년 시절을 로마에서 자랐다. 나중엔 런던으로 이주하여 Royal Academy of Art에 등록하고 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그는 고대 신화와 문학에 관심을 두고 그림의 모티프로 삼았다. 호머, 오비드, 세익스피어, 테니슨, 키츠의 작품들은 워터하우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https://www.tate.org.uk/art/artworks/waterhouse-the-lady-of-shalott-n01543

John William Waterhouse - The Lady of Shalott. 1888. 153X200Cm. Tate collection

위 그림은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The Lady of Shallot>이다.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오필리아>와 함께 관람객들의 관심과 사랑이 집중된 그림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계관시인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 <샬롯의 여인The Lady of Shallot>을 그린 것이다. 내용은 아서왕의 전설에서 나왔다. 오늘의 테마는 <판도라>이니 <샬롯의 여인>은 다른 글로 쓸 계획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잠재적인 문제의 시작과 해제의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는데 화가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많이 궁금했다. 그림에서 답은 얻지 못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마치 기도와도 같다. "저 속에 '희망'이 아직 남아있다는데 그것좀 지금 꺼내주면 안될까요?" 제우스가 지금 세상에도 큰 위력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면 제발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을 꺼내주기를 바란다. 흩뿌려진 온갖 재앙들은 다시 상자 속에 가둬두기 바란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 마지막 희망이 세상에 나와서 흡족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판도라의 상자속에 희망은 남아있지 않은데,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희망은 눈앞에 펼쳐질 때보다 감춰두고 그곳에 마음을 두는 것이 더 영향력이 클 것같다. 폭발하고 실현되는 것보다는 지속적인 희망을 공급해주는 것이 삶에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지 않는 게 더 낫겠다.




나는 북아트 작업을 하면서 상자도 만든다. 전시회를 할 때 상자들도 함께 진열한다. 애써서 작업한 창의적인 북아트 작품을 판매하냐고 묻는 관람객은 없는데, 상자를 사고싶다는 사람은 제법 많다. 북케이스에서 출발한 작품이라 본격적인 까또나주(cartonnage) 작품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들은 가지고싶어 한다. 그럴 때면 북아트 작품이 밀려나는 것같아 씁쓸하다.

어쨌든 상자도 제법 팔았다. 비싸게 팔았다. 나라면 그 가격에 빈 상자를 사지 않을텐데... 구매자는 그 상자 안에 무엇을 넣으려고 사는 것일까? 상자 가격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귀한 것을 담아둘 것이다. 선물 포장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테고. 이것도 쓸데 없는 걱정이지만, 내 상자를 산 사람들이 그 상자안에는 상자값보다 훨씬 더 비싸거나 값어치 있는 것을 담아주면 좋겠다.


참 황당한 꿈도 꾼다.  사람들이 어느 날 내가 만든 상자를 열었을 때 <희망>이 쏟아지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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