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Mar 31. 2021

존 에버렛 밀레이 - 오필리아

비전문가의 그림감상

Sir John Everett Millais - Ophelia


꽃 계절이다. 여기도 꽃, 저기도 꽃, 꽃 천지의 문이 열렸다. 벌써 시들고 지는 꽃들도 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백목련, 자목련, 라일락 ... 꽃들은 계속 이어지며 계절을 가로지르고 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피는 고향이 그립고,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텔(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 한 구절 첨가해서 보낸 연애편지도 떠오르고, 모과꽃인지 사과꽃인지 살구꽃인지 그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꽃이 피면 그저 좋다고 들로 산으로 나돌던 시절도 그립다.

꽃은 무엇으로 우리를 유혹할까? 우리 인간들은 아마도 곤충보다 더 다양한 감각으로 꽃에 유혹당할 것이다.

냄새로 유혹당한 사람은 그 냄새의 샴푸를 쓰는 누구누구가 생각날 것이고, 봉긋봉긋 돋아나는 봉오리에 유혹받은 사람은 풋풋한 첫 사랑을 추억할 테고, 만개하여 활짝 젖혀진 꽃송이에 눈길을 준 사람은 함박꽃같은 그녀 또는 그의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릴 것이다.

향기를 말하자면 나는 우리집 뒷담을 넘어오던 성당의 아카시아 향기를 잊지못한다. 중.고등학교 6년을 봄마다 그 향기에 취해서 이것저것 되지도않는 글들을 끄적이며 봄바다를 건너왔다. 아카시아보다 한 발 앞서 나를 유혹한 것은 라일락이었다. 우리집엔 하얀색도 보라색도 다 있었다. 더구나 그 시절이 바로 나의 십대(teenage)였으니 감수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 아니던가!

지금은 베란다에 로즈마리와 장미허브가 있는데 향기에 취하여 시 한 수 나오기는 커녕 꺾어서 부엌으로 가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데 사용한다. 써놓고보니 이 이야기가 참 슬프다. 생각의 방향을 바꿔서 꽃 그림 감상이나 해야겠다. 꽃 그림을 보고 생각나는 것은 화무십일홍이나 바니타스일 것이다. 그 허무함은 뒤로 미루고싶다. 좀더 멋진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등장하는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오필리아>를 생각해본다. 우선 <햄릿>의 내용을 살펴보자.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

<햄릿>은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쓴 5막의 극본이다.

덴마크의 죽은 왕 햄릿은 아들 햄릿에게 새로 왕이 된 햄릿의 삼촌을 죽이라고 한다. 햄릿은 광기를 가장하고 복수를 꿈꾼다. 삼촌도 역시 햄릿을 죽일 음모를 꾸민다. 결국 이 연극은 결투로 끝이 나는데 왕, 왕비, 햄릿의 상대, 햄릿 모두 죽는 것으로 막이 내리는 비극이다.

<햄릿>은 수세기를 거치며 그 논쟁이 그치지 않는다. 햄릿이 삼촌을 죽이는 것을 망설이는 것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계산된 복수, 좌절된 욕망, 햄릿의 무의식적 욕망, 오필리아와 거트루드의 악의적인 인물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평까지 이어진다.

<햄릿>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여러 화가들이 극의 장면이나 극중 캐릭터들을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그 중에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살펴본다.


https://www.tate.org.uk/art/artworks/millais-ophelia-n01506

Sir John Everett Millais - ophelia. 1851-52, Oil paint oncanvas, 762 × 1118 mm, Tate Britain.


오필리아는 햄릿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덴마크의 귀족인 폴로니우스의 딸로 그녀의 오빠는 라에르테스. 햄릿이 아버지 폴로니우스를 죽인 일로 오필리아는 광기에 휘둘리다 강에 익사한다.

많은 빅토리아 화가들이 세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 오필리아의 죽음에 대한 그림은 밀레이의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기 위해 '테이트 브리튼'에 몰려든다. 죽음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린다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눈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나는 꽃이 피는 봄이면 가끔 이 그림이 생각나곤 한다.



감상感想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느낌이다. 그림 속 빨간 노을을 보고 '저쪽 동네에 불이났나?' 이렇게 말을 해도, 하늘을 바다라고 해도, 전신주를 나무라고 해도 괜찮다. 그건 개인의 느낌이기 때문에 누가 뭐랄 수 없다.

감상鑑賞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작가 자신이 작가노트와 여러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해설을 밝혔고, 전문 지식을 갖춘 여러 명의 비평가나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작품에 대한 사실들을 발표한 것이다.

미술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글을 보면 그 내용이 여기저기 거의 비슷한 이유가 바로 객관적인 감상鑑賞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혜안을 가진 사람이 공증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밝혀내지 않는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 같다. 여기 내용을 저기에 복붙한 것이 아니라, 공증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글의 내용이 깊고 얕음, 넓고 좁음, 진실과 왜곡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수집한 자료의 나열이냐, 자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표현되었느냐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밀레이가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공동 설립한 이후인 1851~2년에 그렸다. 세익스피어의  <햄릿> 4 5, 7장의 내용이다. 라파엘 전파는 1400년대 이탈리아 예술의 강렬한 색감, 복합적인 구성과 풍부한 디테일로의 회귀를 추구했으며, 역사 회화와 재현, 자연의 모방이라는 개념을 예술의 주된 목적으로 받아들였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가능한한 진실하고 세부사항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연에 직접 나가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당시에는 밖에서 스케치를 하고 스투디오에서 완성을 하는 방식으로 많이 그렸지만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야외에서 그림을 리고 완성했다. 밀레이가 <오필리아> 그린 것도 이러한 라파엘 전파의 이념을 충실히 시행한 것이다.

인물이 들어가는 그림에서는 풍경이 덜 중요한 배경으로 그려졌지만 밀레이와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풍경이 인물에게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오필리아>의 경우엔 풍경을 먼저 그렸다.


<오필리아>의 실제 모델은 그녀 자신이 예술가였던  Elizabeth Siddal이다.

밀레이의 스튜디오에서 욕조에 물을 채우고 오펠리아의 모델이 되었다. 램프로 따뜻하게 데운 물 속에서 4개월 동안 포즈를 취했다. 램프가 꺼져서 찬물에 감기든 적도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달은 나중에 단테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와 결혼했다. 시달은 모델이 되기 전에는 모자가게에서 일했었다.

그당시, 1850년대에는 날씬한 것을 매력으로 여기지 않았고, 빨간 머리는 홀대를 받았다.  시달은 밀레이의 오필리아 모델로 유명해졌고, 그녀의 버드나무 가지와 같은 몸매와 구리빛 머리는 미의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로세티와 시달의 결혼생활(10여년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은 행복하지 않았다. 시달은 쉐필드 미술학교에 등록하여 그림을 그리고 1854년 정식으로 예술가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1857년 런던에서 열린 라파엘 전파 전시회에 유일한 여성 화가로 작품을 전시했다.

시달(Elizabeth Siddal / Lizzie Rossetti)은 1862년 아편(laudanum)을 복용하고 33년간의 짧은생을 마감했다.


    

왼쪽 그림  http://www.john-william-waterhouse.com/ophelia-1894/

John William Waterhouse, <Ophelia>1894  oil oncanvas 73.6 X 124.4Cm

라파엘 전파 화풍의 작품 <오필리아> 이 그림에도 다양한 들꽃들이 그려져있다.


오른쪽 그림 https://www.tate.org.uk/art/artworks/rossetti-elizabeth-siddall-plaiting-her-hair-n04629   Dante Gabriel Rossetti. <Elizabeth Siddal Plating her Hair>, 171X127mm. Tate.

로세티가 그린 시달. 애수적이고 감미로운, 우수에 찬듯 환상적인, 그런가하면 관능적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시달의 모습.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아>에 그려진 식물들.


밀레이는 유얼(Ewell. 런던에서 남쪽으로 약 21Km떨어진 곳) 강가에서 자생하는 꽃들을 보아왔다. 혹스 밀(Hogsmill) 강가에서 그린 이 그림은 5개월 동안 그렸기 때문에 강의 풍경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다 볼 수 있었고, 다른 시기에 피는 꽃들이 한 화폭에 나란히 나타난다.

식물학 교수가 학생들을 시골로 데리고 가기가 어려워서 밀레이의 <오필리아> 속에 등장하는 꽃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래 꽃에 대한 설명은  http://plantcurator.com에서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왼쪽 Crow flowers 까마귀꽃. 배은망덕이나 유치함을 상징한다. 아마도 세익스피어 시대에는 일반적인 이름이 달랐거나, 예술에서 미나리아재비(crowfoot)를 약어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가운데 Weeping willow 수양버들. 오필리아에 기대어있는 수양버들의 상징은 버림받은 사랑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백버들이나 일반적인 수양버들과는 다르다.

오른쪽 Daisies & Poppies 데이지와 양귀비. 오필리아의 오른손 부분에 떠있는 꽃. 데이지는 무죄를 상징한다. 빨간 색 양귀비는 죽음, 깊은 잠을 상징한다. 원작에는 양귀비가 등장하지 않는데 밀레이가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데이지와 양귀비와 함께 있는 파란색 꽃은 아마도 수레국화일 것이다.  

왼쪽 Rose 장미. 젊음, 사랑,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오필리아의 드레스에 떠있는 핑크 장미.

가운데 Roses. 강둑에 자라는 하얀 들장미. 햄릿 4막 5장에서 라에르테스(오필리아의 오빠)가 오필리아를 "5월의 장미"라고 부른다.

오른쪽 Purple Loosestrife 털부처손. 그림의 오른쪽 위 모서리 부분의 보라색 긴 꽃. 세익스피어는 이 꽃을 보라색 난초를 의미했지만 이꽃은 털부처손이다.

왼쪽 Pansies & Violets 팬지, 제비꽃. 오필리아가 들판에서 꽃을 모으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헛된 사랑을 의미한다.  

가운데 Stinging nettles 쐐기풀. 고통을 상징한다.

오른쪽 Meadowsweet 조팝나무 속의 식물. <오필리아> 그림이 전시된 Tate에서는 이것을 터리풀이라고 설명하지만, 식물 큐레이터들이 볼 대 이 식물은 도깨비산토끼꽃이 분명하다고 한다.


왼쪽 Forget-me-nots 물망초. 잊지말아 달라.

오른쪽 Violet 제비꽃. 충실함을 상징한다. 젊은이들의 순결과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빅토리아 시대에 Viola odorata(제비꽃의 일종)의 향기가 유명했다.

밀레이는 1852년 3월 패트론(예술 후원자)인 토마스 콤에게 편지를 보냈다. "오늘 나는 정말 멋진 고대 드레스를 구입했습니다. 모두 은색으로 꽃을 수놓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오필리아"에 사용할 것입니다."

왼쪽 Carex riparla 또는 Greater Pond Sedge 사초속의 식물.

오른쪽 Fritillaries 패모. 종 모양의 꽃이 피는 식물.



영화를 보면 그 촬영지에, 책을 읽으면 그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에, 그림을 보면 어느 곳인지 그 장소에 가보고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이것이 여행의 테마가 되기도 한다. 런던에서 3년여동안 거주했었는데 그때는 유얼에 가볼 생각을 못했다. 혹스밀 강가를 거닐 생각을 왜 못했을까, 아쉽다. 내셔날 갤러리에, 테이트에 잦은 발걸음을 했었는데 이 그림을 그린 혹스밀 강에도 한 번쯤은 가봤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운 마음을 사진으로 달랜다.


아래 사진은 https://www.kingstononline.co.uk/ 에 올라온 2014년 4월의 사진입니다.

밀레이가 오필리아를 그리던 시대에는 강이 더 넓었고 얕았다. 나무의 수도 적었다고 한다.




봄이 시작되었으니 꽃소식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꽃놀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 답답함을 예술작품을 통해서나마 조금씩 달래본다. 고흐의 해바라기든지 모네의 수련이든지, 꽃들은 화가의 캔버스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난다. 화려한 꽃들에 치어서 그 존재가 미미한 들풀들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때는 이렇게 잔잔한 꽃 장식의 그림들도 감상해보자.


꽃은 시듦으로 끝이 아니다. 낙화의 아름다움은 또 어쩌랴! 이제는 벚꽃 눈이 함박눈처럼 쏟아질 차례가 됐다. 그렇게 계절은 무르익어간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알렉세이 야블렌스키-명상(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