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그림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독일 뮌헨 근처에 거주할 때 가끔 뮌헨 시내에 나가 렌바흐 하우스에서 그림 감상을 하곤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 폴 클레, 프란츠 마르크,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그들 청기사파 화가들의 그림은 외국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고운 색감에 매료되어 넋놓고 시간을 보내고나면 가슴에 온기가 돌고 이방인의 고독감은 사라진다.
어느 날은 클레의 그림이 좋다가, 다른 날은 프란츠 마르크의 그림이 더 좋아보이다가... 볼 때의 기분에 따라서 특히 더 가슴속에 파고드는 그림이 있다.
가슴 속에 <기도>를 품고 있던 시절에 만난 야블렌스키의 추상 초상화는 그 모습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AlexeiJawlensky Meditation(The Prayer)
https://www.lenbachhaus.de/entdecken/sammlung-online/detail/meditation-das-gebet-30019479
1922,oil on cardboard, 39,5 cm x 30 cm Lenbachhaus, Munich.
<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한다. 모든 종교 의식에는 기도가 있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기도를 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누가 그 기도를 듣고, 누가 그 기도를 이루어주는가?
당연히 기도하는 사람이 믿는 神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 다양한 다수의 신들은 귀를 활짝 열고 정말 개개인의 기도를 다 듣고 있으며 그 기도대로 되도록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이것은 종교의 신비한 힘이고, 믿는 자마다, 기도하는 자마다, 그 해석이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기도를 하는 사람만은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 확신이 없다면 기도를 드릴 이유도 없을 테니까. 기도가 친구에게 하는 무슨 넋두리도 아니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간절히 비는 염원인데 이루어진다는 확신도 없이 어찌 그리 정성을 다 하겠는가.
그러니 기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신앙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이 믿는 신이 반드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리라고 믿는다.
어떻게 들어주는가. 내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신의 영역이고 인간은 감히 그 영역을 넘봐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나처럼, 내 기도가 어떻게 나에게 작용하는지, 내가 믿는 신은 어떤 방법으로 내 기도를 받아들이고 이루어주는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내 기도를 거부하고 무시하는지 생각해 볼 수는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그 생각에 골똘하게 몰입한다.
기도를 받는 대상은 신이지만 그 기도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움직이는 모든 과정은 곧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다. 물론 신앙인들은 이런 과정을 신이 다 예비하고 주관한다고 믿는다.
무신론자의 마음까지 쥐락펴락하시는 분이 바로 신이 아니던가. 한 사람의 기도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 위대한 신은 아주 작은 한 사람을, 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아주 가벼이, 또는 아주 깊숙이 흔들어놓고 일의 성사를 주관하신다.
기도가 성사되기 위한 사람과 사람들간의 소통이란 마치 악보의 한 음표가 하나씩 있을 곳에 있어서 제 음을 표현하여 마디를 이루고 아름다운 음악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절대 음감으로 각 음표를 다 알 수도 있지만, 이웃하고 있는 음표의 소리도 들어봄으로써 그 음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는 <파>와 <레>를 듣고, <도>와 <솔>을 듣고 그 높이를 더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또 음표는 그 하나로서는 완성된 음악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기도는 우리를 움직여 이루어지고, 우리의 기도는 나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그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행동하는 나와 우리가 없다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기도하면 신이 이루어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막연한 믿음이 아닐까? 기도하는 사람이 그 기도가 이루어질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볼 때 신은 기도의 완성을 선물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도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기도를 하는 사람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기도했으니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어떻게 해야 그 기도가 이루어질 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데 신께서 하시는 일은 그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이것이 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신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 뚝딱 이루어주는 전설 속의 신이 아니라, 내가 이루고자 정신적인 기도와 육체적인 행동을 다 할 힘을 주시는 분, 神이란 바로 그런 분이 아닐까!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는 뮌헨의 청기사파(Der Blauer Reiter) 그룹의 러시아 화가다. 관절염으로 쇠약해지던 노년에 종교 명상의 대상으로 인간의 얼굴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순화된 영적 초상화는 그의 러시아 정교회의 신심에서 비롯되어 그의 작품을 일종의 현대 종교 도상학으로 끌어 올렸다.
"나는 내 스튜디오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고 프롬프터로서 자연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자신에 몰두하고 기도하고 종교적 인식 상태에 내 영혼을 준비시키기만하면 되었습니다." 야블렌스키의 말이다.
Mystischer Kopf: Meditation
https://www.lenbachhaus.de/entdecken/sammlung-online/detail/mystischer-kopf-meditation-30019478
1918 40,1 cm x 30,8 cm Lenbachhaus, Munich.
야블렌스키에게 인간의 얼굴은 한때 그의 그림 '신(神)으로가는 길'에서 발견 된 기본 형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초월 체험의 매개체가 되었다. 1938 년 Willibrord Verkade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몇 년 동안 저는 얼굴의 모양을 찾아야 했습니다. 위대한 예술은 종교적인 느낌으로만 그려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인간의 얼굴에서만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색깔과 모양을 통해 그 안에 신성함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 작품은 눈에 보이는 신이고 예술은 '신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믿고는 있었는데, 사실 그동안 간절히 소망했던 많은 기도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진 것 보다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기도가 더 많다. 그럼에도 어떻게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맹신에 매어있지 않기 위해, 내 스스로 신앙의 확신을 얻기 위해 실현되지 않은 기도들 앞에서 오랫동안 번민하였는데, 그건 정말이지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
기도가 이루어짐은 반드시 내 눈앞에 내가 원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확신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생전에 내가 볼 수 있는 것만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다.
많은 기도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은 하면서,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神께서 해결해 주신 일들이 많았음은 왜 생각지 않고 사는 것일까?
아,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다 알아서 미리 이루어주신 은총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는 것, 이것 또한 은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