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그림 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벽에 걸어둔 액자를 보고 일곱살 나은이가 물었다.
"저 그림에서 나무가 왜 파란 색이에요?'
"추워서 그렇치."
"아, 찬 색깔이요?"
나은이는 내가 가진 미술관련 책들을 동화책처럼 즐겨 보곤 하는데, 틈틈이 <컬러, 그 비밀스러운 언어>조앤 엑스터트, 아리엘 엑스터트 지음/신기라옮김-책을 재미있게 보곤 하였다. 이미 찬 색과 따뜻한 색에 대한 이해가 있는 나은이다.
"근데 땅은 왜 노래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내가 몇 마디 덧붙였다.
나무는 꼭 초록색이고 땅은 흙색깔로만 그리지 않아도 돼. 나뭇잎 색깔도 자꾸 변하잖아. 하늘색도 쳐다볼 때 마다 다르잖아.
나은이 핑크색 좋아하지? 그럼 나무를 네가 좋아하는 핑크색으로 칠해도 괜찮아. 네 마음대로 그리고 네 마음대로 칠하면 돼.
스케치 북에 열심히 색칠하고 있는 나은이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나은이만의 그림, 색 구성이랄 수도 있고, 추상표현이랄 수도 있는 일곱살 나은이의 그림은 놀라웠다. 한 번도 이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다.
어쨋든 첫 눈에 예쁜 색감, 정말 색감이 예쁘다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그렸는지 설명을해달라고 했다.
나은이는 작은 색 조각들을 짚으며 이건 풀밭, 이건 바닷가 모래 밭, 이건 내가 좋아하는 핑크... 오른쪽 끝 부분은 사람이라고한다.
그런 설명을 했다.
그림을 본 후에 나는 나은이에게 월렘 드 쿠닝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해줬다.
월렘 드 쿠닝 이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닷가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바닷가 그림을 그렸단다. 그런데 갈메기의 모습도, 파도나 모래밭도 없고, 하늘이 어딘지도 모르게 아무런 모습도 없이 그냥 이것 저것 색깔만 마구 칠해놓은 그림이야.
그 사람은 자기가 바닷가에서 본 색깔들을 그냥 마음대로 칠한 거지.
모래 색깔, 바다물 색깔, 하늘색깔 이런 여러가지 색깔을 그냥 다 칠해버렸어. 자기 마음대로!
나은이가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아이가 "이건 풀밭, 이건 바닷가 모래밭"하면서 설명한 그림을 보니 내가 설명한 월렘 드 쿠닝이란 화가의 마음을 나은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은이에게 월렘 드 쿠닝의 그림도 보여줬다.
롱 아일랜드 바닷가 그림뿐 아니라 여인들의 그림도.
나는 나은이가 그림을 그릴때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재현에 매어 그 어린 나이에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에게 앵 포르멜이나 추상표현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 생각을 주저함없이 옮길 수 있는 아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꼭 그림이어야 할이유도 없고, 소리이든 글이든 만들기든 몸짓이든, 어쨌든 제가 생각한 것을 드러내 표현할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
Two Figures in a Landscape, 1967 oil on canvas, 70 x 80 inches Collection Stedelijk Museum, Amsterdam
oil on canvas, 79 1/2 x 69 1/4 inches Collection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https://www.dekooning.org/the-artist/documentation/44#44
Willem de Kooning working on , 1984, in his studio, East Hampton, Long Island, February 2nd, 1984 Photograph by Tom Ferrara
네델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윌렘 드 쿠닝은 1948년 뉴욕에서의 첫 개인전 후, 추상표현주의의 중요화가로 부상한다. 드 쿠닝은 60년대 초반 뉴욕을 떠나 롱 아일랜드 뉴 햄프턴에 정착한 후, 뉴햄프턴의 바닷가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추상 연작을 제작했다. 바다, 모래, 나무, 하늘, 파도 등 자연으로부터 받은 색채 인상을 즉흥적으로 화폭에 옮겨 담은 그의 작품은 폭발적이고 자유로운 에너지로넘치는 완전한 추상의 화면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어떠한 재현의 형태도 찾아볼 수 없다. 작가 내면의 표현이 분출되었음을 느낄 뿐. 우리가 그림 그릴때 어떤 형태를 묘사하는게 어려워서 포기한다면 이렇게 내 눈에 들어온 색깔, 내 마음에 있는 색깔들을 자유롭게 쏟아부으면 어떨까?
왼쪽 Stowaway, 1986 Öl auf Leinwand, 178 x 203 cm
오른쪽 Untitled XL VII, 1983, Öl auf Leinwand, 195,5 x 223,5 cm
나는 요즘 어떤 정형화된 그림보다는 이렇게 자유로운 표현의 그림들에 마음이 끌린다. 일상을 떠난 여행지에서 만났던 여러 화가들의 자유분방한 표현들을 보면서 나도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뿐!
지금은 나라 안에 갇히고, 도시 안에 갇히고, 심지어는 집안에 갇혀서 피붙이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산다. 이럴수록 나의 생각은 더 멀리멀리 날아가 낯선 곳을 더듬는다.
날아가다 추락하다 떠나다 머무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점심식사 준비할 시간이다. 집안에 갇힌 나는 이제 부엌으로 간다. 우리집 갤러리, 냉장고 문에는 사이 톰블리 그림도 있고, 조안 미첼 그림도 있고, 월렘 드 쿠닝 그림도 있다. 그들의 그림이 나의 활력소, 청량음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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