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본 요람에서 무덤까지 14
종이책 <삶의 미술관> 출간으로 이 브런치 북에는 도슨트 설명만 남겨둡니다.
https://www.nasjonalmuseet.no/samlingen/objekt/NG.M.00941
Edvard Munch <The Dance of Life>1899-1900. Oil on canvas. 125 x 191 cm
National Museum of Art, Norway
도슨트 설명
노르웨이가 낳은 화가 뭉크의 <삶의 춤>입니다. 이 그림은 긴 설명이 되겠습니다. 마치 소설 같은 서사가 들어있거든요.
첫 눈에 한 쌍의 춤추는 커플과 그림의 양쪽에 서 있는 두 명의 여성이 들어옵니다. 가운데 춤을 추는 커플이 먼저 눈에 띄죠? 빨간 드레스가 눈길을 끄네요. 남자의 다리까지 휘감은 빨간 드레스는 부드러운 물결 같습니다. 가만히 서서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있군요.
그림 왼쪽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있어요. 흰색은 천진함, 순결, 젊음을 상징하죠. 다음엔 시선을 오른쪽으로 향해볼까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서있습니다. 검은 색은 슬픔, 죽음, 질투를 상징합니다.
이 그림에서 뭉크는 인물의 윤곽선을 다르게 사용하여 세 여성을 구별합니다. 왼쪽의 여성은 생생한 스트로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가운데 여성의 테두리는 사람과 배경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넓습니다. 오른쪽의 검은 여성은 각지고 단단한 선으로 윤곽을 그립니다. 왜 이렇게 세 여인들을 구별했을까요? 각각 상징하는 의미가 다름을 나타내는 겁니다. 드레스 색깔이 상징하듯이 왼쪽 여인은 젊음과 순진한 인생의 시작을 알립니다. 가운데는 사랑에 빠진 여인, 생의 한 가운데 있음을 뜻하고요, 오른 쪽 검은 옷의 여인은 인생의 끝에서 늙고 외로움을 나타냅니다.
뭉크가 다섯 살 때 폐결핵에 걸린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누이도 그렇게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관계도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의 시작(왼쪽) 부분은 누나, 중간은 어머니, 끝(오른쪽) 부분은 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뒷받침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뭉크의 사생활, 개인적인 연애사와 맞물리는 해석이지요. 뭉크의 첫 사랑 여인은 유부녀였어요. 밀리 타우로브(Millie Thaulov)라고 해요. 첫 키스를 바친 그녀에 대한 사랑은 매우 순정적인 첫사랑이었지요. 1885년 여름 휴가 때 만나서 열정적인 연애 끝에 1880년대 후반에 헤어졌어요. 이별의 고통은 뭉크를 평생동안 따라다녔습니다. 작가 헬러(Reinhold Heller)에 의하면 "다른 어떤 이미지도 그녀를 완전히 지울 수 없도록 그녀가 내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라는 뭉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뭉크의 새로운 연인 툴라 라슨(Tulla Larsen)과의 연애도 결국은 실패합니다. 첫 사랑을 잃은 뭉크는 여성에 대해 냉소적이었고, 라슨은 열정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뭉크의 냉담함에 툴라는 죽어버리겠다고 권총을 자신에게 겨누고, 말리던 뭉크는 손가락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이런 연애사 때문에 사람들은 <삶의 춤>이 뭉크 자신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가운데 있는 남자가 뭉크인데 첫 사랑 밀리와 춤을 추고 있다고 해요. 툴라는 왼쪽에서 뭉크의 사랑을 갈구하고, 오른 쪽에서 뭉크에게 거부당한 모습으로 있는 거라고 합니다. 이런 해석은 근거가 있는데요, 바로 뭉크의 일기에요.
“나는 나의 진정한 사랑, 그녀에 대한 기억과 함께 춤을 춥니다. 미소 짓고 있는 금발의 여성이 사랑의 꽃을 받고 싶어하지만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내가 그녀에게서 거절당했을 때 춤을 추고 - 거절당하는 커플에 괴로워하는 검은 옷을 입은 그녀를 볼 수 있습니다.” 일기에 이렇게 쓰여있어요,
설명이 좀 길어졌는데요, 다른 해석이 또 있습니다. 세 여인이 다 툴라라는 설이에요. 가운데 커플이 뭉크와 툴라라는 겁니다. 둘이는 마주하면서도 눈을 맞추지 않고 있지요. 영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상징합니다. 왼쪽의 툴라는 순진하게 가운데 커플의 행복을 바라보고, 오른 쪽 툴라는 사랑의 결과를 예견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춤은 결국, 삶의 춤이 죽음의 춤으로 바뀌는 마지막 단계를 나타냅니다. 전경에 배치한 인물들은 창조적 삶, 예술적 삶, 생물학 적 삶이 끝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생의 프리즈 Frieze of Life>라는 시리즈에 속합니다. 뭉크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 사이로 굽이치는 해안선이 휘어져 있고 그 너머에는 바다가 있고, 나무 아래에서는 온갖 복잡한 슬픔과 기쁨을 안고 삶이 계속됩니다" 프리즈의 3대 테마인 사랑, 불안, 죽음은 <삶의 춤>에서 명확하게 표현됩니다. 이 그림은 시리즈의 핵심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 <삶의 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뭉크가 자신의 사생활을 폭로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뭉크 자신이 보편적인 상징과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리즈 –건물의 외벽 윗부분에 있는 띠 모양의 장식. 실내에도 적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