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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Dec 04. 2022

프리드리히 실러 <미학편지>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 이론

<미학 편지-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이론> 2012. 프리드리히 실러 작, 안인희 옮김,

휴먼아트 발행. 264쪽..

글중 인용의 쪽수는 이 책에 따름.


베를린에 사는 사촌언니는 실러슈트라세Schillerstrasse에 살고 있다. 나이 80을 훌쩍 넘긴 언니는 실러가 철학자라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언니는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교향곡 9번 4악장을 잘 알고있다. 초등학생인 손녀는 빌헬름 텔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있다.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얹어놓고 활을 쏘아서 명중시켰다는 아찔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흥미있다. 그러나 손녀는 실러가 누구인지, 철학자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에 대한 국내인지도는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전 세계인이 익히 알고 있을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합창 An die Freude/ Ode to Joy”의 작사가인데도 말이다. 어려서 동화책으로 읽은 이야기 “빌헬름 텔 Wilhelm Tell/ William Tell” 극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물론 철학자로서의 그의 명성도 드높다.  덧붙이자면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사랑하는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는 실러의 희곡 “빌헬음 텔”을 작곡했고, 이것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실러의 책 <미학 편지-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이론>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이미 10년 전이었다. 처음엔 그야말로 활자만 읽은 셈이다. 그후로 다른 철학책들과 미학이론서도 읽으며 10년동안 가끔씩 부분적으로 이 책을 읽어왔다.



이 책은 1795년 실러가 발행한 저널 “호렌 Horen”에 실렸고, 그의 후원자 아우구스텐부르크Schleswig-Holstein-Augustenburg의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프랑스 혁명의 진단과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루었다. 아름다움과 인간 심리 분석, 예술의 심리와 정치적 중요성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다. 실러는 이 책에서 인간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새롭고 이상적인 정부 형태를 그린다. 

성실히 번역해준 한글로 읽는데도 이 책을 한번에 독파하지 못했다. “이 글은 읽는 사람에게 끔찍한 노력을 요구한다. 칸트를 거쳐야 실러 미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두 개의 불가능한 작업을 포개어 요구하는 꼴이 아닌가.”8쪽 라는 글귀는 번역자의 고뇌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려운 책인만큼 “옮긴이의 말”이 길게 이어지고, 13쪽에 가서야 책의 순서가 나온다. 총 4장으로 나눈 실러의 미학편지 27편이 이어진다.  실러는 칸트의 중요한 제자였고, 실러의 미학편지는 칸트의 미학 위에서 시작한다. 빙산의 일각이나마 칸트를 우선 알고 실러의 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칸트는 3가지 비판으로 잘 알려졌다. 형이상학을 학문으로 정립하려고 한 <순수이성비판 1781>,  도덕철학을 다룬 <실천이성비판 1788>, 미학과 목적론을 연구한 <판단력비판 1790>이다. 칸트는 예술과 미적 판단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칸트는 계몽주의적 사고로부터 판단을 구출하기 위해 미학에 관한 책 전체를 썼다. 칸트는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사상가였다. 실러는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실러가 미학연구에 집중한 것은 폭력에 대응하는 문명화된 방법은 미학적 판단으로 폭력에 접근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쉴러는 독일인이었지만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에 참여했다. 혁명 기간 동안 설립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조직은 자코뱅 협회(Jacobins)였다. 프랑스 혁명을 적극 지지하던 실러는 어느 날 자코뱅이 왕의 머리를 잘랐다는 메시지를 받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파리 거리에는 왕의 머리뿐 아니라 많은 머리들이 굴러다닐 것이라는 생각에 실러는 <미학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실러는 귀족의 독재가 폭도의 독재로 대체되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의 잔학 행위에서 실러는 합리적인 상태로의 발전은 인간의 일생에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느리고 온화하며 비폭력적인 대중 교육을 제안했다.  <미학편지>의 부제에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이라는 문구가 들어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러는 정치와 사회학(정치적 자유), 미학(아름다움의 구성), 교육학(인간 육성), 의식 철학(사고와 감정)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시적 은유가 포함되어 있고, 동시대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어법으로 쓰여졌다. 어법에 익숙해져야 하고, 첫 번째 편지에서 생긴 질문은 책 전체를 다 읽어야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프랑스 혁명의 잔혹한 장면이 실러를 ‘미학 교육’의 중요성으로 인도했으므로 이 책의 이론적 기반은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 안에서 미학적 교육은 모든 것의 기초이자 핵심이다. 미적 경험을 통해서만 인간이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책은 아름다움에 대한 이론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에서 목격한 인간의 폭력성을 발견한 실러의 깊은 정치적 불안이다. 실러는 사람이 두 가지 충동에 의해 움직인다고 한다. 형식충동과 감각충동이다. 형식충동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자유에 관심이 있다. 감각충동은 신체적 필요에 기반을 둔다. 오직 예술만이 두 극단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 세번째 놀이충동의 결과를 도출한다. 


책의 시작부분을 읽으며 쓴 메모.(아직 실러의 편지에 들어가기 전)

둘째 편지

책 제목 <미학 편지-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이론>이 말해주듯이 인간에게 이성이 내재되어 있다하더라도 실제로 합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성에 복종하고 원칙이 없는 사람은 야만인, 원칙은 있지만 자연을 무시하는 사람은 야만인이라 한다. 

쓸모와 융통성이 시대의 거대한 우상이 되어 모든 힘이 그 우상을 위해 부여하고 모든 재능이 그를 숭배하는 판이지요.” 49쪽.

교육을 통해 조화롭게 형성된 사람은 반대를 통합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실러는 미학적 상태를 통해 길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부터 230여년전 그 시대 철학자의 눈에 비친 세상(프랑스 혁명이 진행중이던 파리)은 그의 ‘미학 교육’에 의해 과연 합리적으로 변해있는가? 


넷째 편지

실러는 자연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을 경고한다. 이념이 현실에 구속력이 있다고 법의 형식으로 규정된다면 자연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국가는 객관적, 종적種的인 품성뿐 아니라 각 개인의 주관적이고 특수한 품성도 존중해야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도덕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이유로 [발현된] 현상의 영역이 줄어들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61쪽.

 

다섯째 편지

사교적 인간은 오만한 자기만족으로 인해 심장이 위축되고 말았지요. 거친 자연인의 심장은 아직도 자주 교감으로 고동치는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불타는 도시에서 그러듯 누구나 자신의 보잘것없는 재산을 챙겨 도망치려고 아우성입니다.” 67쪽.

프랑스 혁명을 보며 실러는 인간이 다시 짐승의 상태로 되돌아갔다고 한탄한다. 실러는 고대 그리스인들을 지나치게 이상화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동시에 정치가, 과학자, 예술가, 운동선수였다. 그가 이상적인 그리스인을 그리는 것은 버릇처럼 되풀이된다. 현대인이 고대 그리스인보다 훨씬 더 뛰어나지만 성격의 조화와 균형면에서 그리스인보다 열등하다고 평한다. 현대인의 세밀화된 분업이 인간을 존재와 행동의 전체로부터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의 이상에 다시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섯째 편지

실러의 고대 그리스인들을 향한 이상화가 계속 언급된다. 

그리스인들이 형식과 내용의 풍부함으로, 철학적인 동시에 창조적으로, 섬세하면서도 힘차게 장엄한 인성 안에 이성理性의 남성다움과 젊은 상상력을 결합시킨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69쪽.

실러는 문화적 소외 문제를 그 당시로부터 몇 십년 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나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관점으로 분석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마치 탐험과 같다. 실러 이전의 철학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하고, 실러 이후의 사회적 철학적 이론도 끌어와야 한다. 그러니 이 탐험에 역부족인 나는 이 책을 잊었다가 생각나서 집어들고, 펼쳤다가 얼른 닫고 집어던졌다가… 이런 반복이었다. 

즐거움이 노동에서, 수단이 목적에서, 노력이 보상에서 분리된 것이지요. 인간은 작은 개별 부품에 영원히 매달린 채 스스로 부품이 되고, 자신이 돌리는 바퀴의 단조로운 소음만을 영원히 들으며 자신의 본질의 조화를 일구지 못하고, 자신의 본성 안에 있는 인성을 발현하는 대신 자신이 하는 사업이나 학문의 복제품에 불과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72쪽

실러는 한 개인(하나의 단위로 본 현 세대)이 과거의 인류보다 우월하다고 봤지만, 동시에 그리스인 개인이 그랬던 것처럼 한 개인도 당대의 대표자가 되어야한다고 요구한다. 


일곱째 편지

실러는 인간의 행동은 물질적 충동(감각충동)과 형식적 충동(형태충동), 이 두 가지 충동이 통제한다고 말한다.

먼저 시대의 품성이 깊은 품격 상실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연의 맹목적인 폭력에서 벗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의 단순성, 진실성, 충만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00년 이상 걸릴 과제이기는 합니다만.” 81,82쪽.

“100년 이상 걸릴 과제”를 요구하다니! 물질적 충동은 감각적 경험을 촉진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형식적 충동은 지성을 촉진하여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물질에 대한 욕구와 형식에 대한 욕구는 어느 쪽의 추진력이 우세해서도 안되고, 어느 쪽도 억제되어서는 안된다. 물질적 충동만 따른다면 결코 자신을 능가할 수 없고, 형식적 충동만 따른다면 내용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느끼며 산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속에서 양쪽의 저울추는 한쪽으로 기울기를 반복한다. 


여덟째 편지

교육의 의무는 두 가지 충동을 서로 분리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에게 공감과 이성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또 하나의 충동인 “놀이 충동”이 발현된다. 놀이는 현실의 제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실러는 인간은 놀이 속에서만 완벽해진다고 주장한다. 

사페레 아우데 sapere aude”

지혜로워질 용기를 가져라는 뜻입니다. 천성의 나태함과 심정의 비겁함이 참된 가르침에 맞서 세워둔 방해물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서는 용기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85쪽.

실러는 놀이충동에서 아름다움과 미학과 예술이 나온다고 한다. 놀이충동의 결과로서의 예술을 의미한다. 인간은 놀이 속에서만 완벽해진다는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술은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홉째 편지

예술의 본질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에게 주는 실러의 교훈이 쓰여있다. 27편의 편지글로 엮은 이 책에서 실러는 자신의 사상과 이론을 호소력있는 편지글로 남겼지만, 특히 아홉째 편지는 예술에 대한 그의 견해가 가장 두드러진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의 성찰이 추구해온 핵심에 도달했습니다. 그 도구는 바로 아름다운 예술이고, 순수하게 살아 있는 원천은 불멸하는 예술의 모범들 안에서 솟아납니다.” 87쪽.

정치적 입법자는 예술과 학문의 영역을 폐쇄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진리의 벗을 추방할 수는 있으나 진리 자체는 살아남습니다. 예술가에게 굴욕을 줄 수는 있으나 예술을 위조할 수는 없습니다.”88쪽

“1세기의 로마인들은(로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간 시기) 이미 황제들 앞에 무릎을 꿇었으나 조각상들은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었고, 신들은 이미 오래전에 웃음거리가 되었음에도 신전은 거룩하게 남아 있었으며, 네로나 코모두스(폭군과 난봉꾼으로 악명높은 로마 황제들) 같은 자들의 뻔뻔스러운 범죄는 그런 행위가 이루어진 건축물의 고귀한 양식으로 인해 더욱 수치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성은 그 품격을 잃었으나 예술이 그것을 구해 의미심장한 돌에 보존해두었던 것이지요.” 89쪽

그대의 세기와 더불어 살되, 시대의 피조물은 되지 마라. 동시대인들을 위해 일하되, 그들이 찬양하는 일이 아닌 그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라. 그들의 죄를 함께 범하지 않되, 고귀한 체념으로 그들의 형벌을 함께 나누고, 그들이 벗어던지지 못하면서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하는 멍에를 자발적으로 함께 짊어져라.” 92쪽

230여년 전에 예술가들에게 남긴 실러의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할 수 있다면 대자보를 적어 어디에 걸어두고 여럿에게 읽히고 싶은 구절이다. 


열넷째 편지

이 책 전체의 구심점이 되는 세 가지 충동 – 감각충동(물질충동), 형식충동(형태충동), 놀이충동 대한 풀이가 있다. 또한 “미학”에 대한 정의를 실러는 그의 판단대로 정의한다. 

감각충동은 규정되기를 바라며 대상을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형식충동은 스스로가 규정하기를, 자신의 대상을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놀이충동은 자신이 만들어낸 모습 그대로를 느끼고자 하며, 감각이 받아들이기 원하는 모습 그대로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122쪽.

이 책을 읽으며 사실은 “감각”과 “형식”보다 “놀이”에 대한 이해가 가장 어려웠다. “놀이충동”에 대하여는 더 깊고 넓은 독서를 통하여 이해를 도와야 할 것같다. “놀이”라면 <호모 루덴스> 정도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실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책에서는 같은 단어로 번역을 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게 익숙한 여러 종류의 단어로 재해석이 되었다. 감각-물질-자연, 형식-이성-형태, 충동-본능, 이런 식으로 대치하여 읽으니 문장의 이해가 한결 더 쉬웠다.

놀이충동은 모든 우연성을 없애는 것이므로 모든 강요 또한 없애며, 인간을 물리적, 도덕적으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경멸받아 마땅한 사람을 열정에 사로잡혀 포옹한다면 우리는 고통스럽게 자연의 강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존경해야 할 어떤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고통스럽게 이성의 강요를 느낄 것입니다.” 122쪽.

실러는 강요가 없는 이 자유를 “미적 상태(미학적 상태)”라고 한다. 감각과 형식이 강요하지 않는 완전 자유로운 상태의 놀이본능이 미학적 상태, 이것이 바로 예술 아닐까? 잠시 읽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본다. 예술이 미학적 상태라면, 미학적 상태가 자유로움에서 이루어진다면, 예술이 어떻다 미학이 어떻다는 정의도 틀에 가둬두면 안되지 않나? 자유, 자유, 자유를 거듭 강조하는 이론대로라면 “미학”은 이렇다, “예술”은 이렇다하는 정의내림에도 자유로워야 하지 않나? 왜 정의하고 규정을 하는가?

미학, 아름다움, 예술은 우리를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지혜나 도덕성, 그리고 온전함, 인간에게 필요한 이런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실러에 따르면 미적 상태는 인간이 육체적 삶에서 도덕적 삶으로 넘어가는 다리라고 한다. 인간은 자연상태, 미학적 상태, 도덕적 상태의 세 단계로 변화하며 성숙해간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나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은 “놀이”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으로는 오로지 놀이만을 해야하며, 오직 아름다움으로만 놀이를 해야한다고 말입니다.” 129쪽.

실러, 그는 도대체 우리네 삶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 알고나 있는 건가? 이런 반항이 슬쩍 고개를 든다. 인간은 물질적 근심을 모두 내려놓고 편안할 때에나 놀이와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게되는 데 말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미적 상태에 이를 수 있는데… (저자는 고귀한데 독자는 속물이다.)


스무째 편지

자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얻는가? 자유, 미적 상태, 그것은 어떻게 도덕적인 인간을 만드는가?

인간이 온전해지고 두 기분 충동이 이미 발전되어 있어야만 자유는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직 온전하지 못하고 두 충동 가운데 하나가 배제되어 있는한 자유는 결핍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인간을 온전하게 하는 모든 것을 통해 자유도 다시 복구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155쪽

이 상태의 규정을 없앰과 동시에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이것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이 규정에 다른 규정을 마주 세우는 것이지요. 저울의 접시는 양쪽 다 비어 있을 때 수평을 이룹니다. 그러나 같은 무게를 담아도 수평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감각에서 사유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중간의 정조(Stimmung 분위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중간의 정조에서 감각성과 이성이 동시에 활동하고, 바로 그 때문에 감각성과 이성의 규정하는 힘은 서로 상쇄합니다. 대립을 통해 부정을 이끌어내는 것이지요” 157쪽

미적 상태는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밖에서 강제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한한 충만감을 가질 때 미적 상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스물두째 편지

참된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에 자신을 바치면 그 순간만큼 우리는 자신의 수동적인 힘과 능동적인 힘에 똑같이 주인이 되는 것이고, 진지함이나 놀이에 대해서, 휴식이나 움직임에 대해서, 복종이나 저항에 대해서, 추상적 사유나 바라봄에 대해서 똑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게 됩니다. 힘과 활기가 결합된 이렇게 높은 수준의 평정심과 정신의 자유야말로 진짜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 정조입니다. [어떤 예술 작품이] 올바른 미적인 재보인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이보다 더 확실한 시금석은 없습니다.” 165쪽.

더 높은 미적 상태, 심미적 문화가 있는 곳에서만 인간은 더 자유롭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실러가 주장하는 도덕적 인간은 미학적 상태를 통해서 된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학과 윤리를 결합하기 위해 애쓴다. 칸트에서 출발하여 칸트를 뛰어넘으려는!


스물여섯째 편지

최고의 어리석음과 최고의 지성은 모두 실질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단순한 가상에 대해서는 완전 무감각하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감각에 어떤 대상이 직접 나타날 때에만 어리석음은 평화를 잃고, 그 개념들이 경험적 사실로 연결되는 경우에만 지성은 평화를 얻지요. 한마디로 어리석음은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성은 진리보다 아래쪽에 머물지 못합니다.” 194쪽.

이 글에서 실러는 아름다운 겉모습[미학]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것은 실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모습일 것이다. 미학은 이성적 진리인 척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과 다르다. 만약 진실인 척한다면 그것은 논리적 환상이지 미학적 환상은 아니다. 


스물일곱째 편지

권리들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국가에서 인간이 힘으로 다른 인간을 대하고 그 작용을 제한한다면, 그리고 의무로 이루어진 윤리적 국가에서 법칙의 위엄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마주 서며 그의 의지에 제약을 가한다면, 미적인 교류의 영역, 즉 미적 국가에서 인간은 오직 형성력으로만 나타나고 자유로운 놀이의 대상으로만 서로를 대합니다. 자유를 통해 자유를 주는 것이 이 왕국의 기본 법칙입니다.” 211쪽

마지막 편지는 인간의 변화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동물에게 주어진 힘에 대한 기쁨에서 형성 가능성에 대한 기쁨으로, 그 다음에는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내용이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 그의 이름 앞에 붙여줄 수식어는 오늘날의 언어로 “비폭력 저항 운동가”이다. 

적을 무찌르기 위해 더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게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실러는 주창한다. 그가 이 책 <미학 편지-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이론> 을 쓴 이유이다. 

글의 시작 부분에 언급했듯이 이 편지글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귀족의 폭력이 혁명군의 폭력으로 대치되는 현장을 목격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폭력에 대한 실러의 트라우마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정치적인 법보다는 인간에게 미학 교육을 시키는 것이 폭력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라는 실러의 판단은 시쳇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의 허황된 꿈일까? 세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오늘날의 상황도 실러 시대와 다르지 않다.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현실에서 “미학 교육”이나 “예술”의 해결책을 외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실러가 간곡히 써내려간 이 책 <미학 편지-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실러의 미학이론>을 읽는다면 오늘날의 현실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비폭력적이고 근본적인 인간 교육이라는 것에 반론은 없을 것이다. “미학 이론”을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지금은 우리가 다시 인간의 인간됨을 회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길을 닦은 것이 실러의 미학이론이다. 미학과 윤리의 접목, 실러가 닦아놓은 그 길을 한번쯤은 산책해보기를 권한다.

 



실러 자신은 이 책을 쓴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실러의 우정에 가장 큰 매개 역할을 했다. 괴테는 동지를 찾았다고 했다. 시인 프리드리히 휠덜린은 실러를 기반으로 자신의 미학편지를 계획했으나 발표된 것이 없다. 그는 실러가 칸트에 너무 집착한다고 비난했다. 철학자 헤겔은 실러의 미학을 칸트에서 요제프 셸링을 거쳐 자신으로 발전시켰다. 고틀리프 피히테(칸트로부터 헤겔로의 다리 역할을 한 철학자)는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감탄하고 감탄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덜 읽히고 전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만큼은 칭찬하지만,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묻지 않으려고 조심한다.”(나의 감상평도 이 말에 슬쩍 얹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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