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두 명의 손주들 생일이다. 첫째 외손녀와 막내(셋째) 외손자의 생일이다. 1월 30일엔 친손녀의 생일이다. 내 생일은 2월 초.
호구 조사도 아닌데 이렇게 생일을 늘어놓는 이유는 양력과 음력과 띠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함이다. 나이를 세 개씩이나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양력나이, 음력나이, 만나이가 모두 다른 우리들인데 다행히 올해부터는 만나이로 통일한다고 하니 비로소 나이가 하나인 보통 사람이 된다.
새해가 밝자 많은 언론 지면에서, 방송에서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를 외쳐댔다. 틀린 말이다. 계묘년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직 임인년 흑호랑이 해이다. 그냥 새해가 밝았다라고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띠'를 따질 때는 음력으로 따지는 줄 알고 있지만 이것도 여러 주장들이 있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살다가 막내 손녀가 태어난 후에 알게 되었다. 양력 1월 30일에 태어난 손녀는 아직 음력설이 되지 않아서 띠를 전년도 띠로 여겼다. 그렇게 띠 이야기가 나왔는데 막내 며느리가(홍콩) 띠는 음력설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입춘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내 생일은 입춘 전이어서 띠가 바뀌지는 않았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무관심으로 지나쳤었다. 우연히 "계묘년 새해"라는 말에 귀가 열렸고, 만나이로 통일한다는 정책이 발표되어, 양력과 음력이 걸쳐있는 1월생 손주들 3명이 있으니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그에 괸해 찾아봤다. 이런 일은 한가한 할머니가 해야지 바쁜 엄마들이 어찌 하겠는가.
"계묘년"이라 함은 육십갑자六十甲子로 나타낸 해(年)이다.
육십갑자는 흔히 알고있는 천간天干 10간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와 지지地支 12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가 만나 이루어진다. 60간지의 생성은 목성과 토성이 같은 황경상(黃經上)에 거듭해서 돌아오는 주기가 60년에 가깝다는 천문학적 주기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는 연말연시가 되면 다음 해의 동물에 대하여 듣게 되는데 이때 색깔도 함께 쓴다. 가임여성들의 큰 관심을 가졌던 '황금돼지해'처럼 동물들에게는 색깔이 있다. 십간은 음양 한쌍(2개씩)으로 색깔이 나뉘어지는데 '갑을'은 파랑, '병정'은 빨강, '무기'는 노랑, '경신'은 흰색, '임계'는 검정색이다. 그러니 '계묘년'인 올해는 '검은 토끼'해이다. 이것은 정해져있고 모든 띠는 60갑자에 한 번 돌아온다. 나는 백호랑이 해에 태어났고, 60갑자 후에 큰 손녀딸이 또 백호랑이 해에 태어났다.
띠를 상징하는 동물들 열 두 지지地支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동물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기원후 1세기경 중국 후한後漢의 왕충王充이 지은 책 <논형論衡>에 처음 나타난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이런 동물의 이름을 사용한 것에는 천문학적 역사적 의미는 없다고 한다. 이 동물들은 나라마다 다 똑같지는 않다. 몇 동물은 일치하고 몇 동물들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옛 국가에서는 연호年號를 사용했는데 백제는 특이하게도 연호대신 육십갑자를 사용했다.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군주(왕, 황제)가 시간까지 지배한다는 의미를 담아 사용했는데 백제가 왜 육십갑자를 사용했는지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국립 부여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사택지적비扶餘砂宅智積碑에 '갑인년정월'이라 새겨져 있어 백제가 육십갑자를 사용한 것이 증명된다. (사택은 성이고 지적은 이름이다.)
가까운 역사에서는 조선 세종(1444년) 때 육십갑자를 기년법紀年法으로 사용하였다. 새 간지가 시작되는 기준은 세종 이후로 음력 1월1일이다. 예를 들자면 가장 잘 알려진 육십갑자 기년은 임진왜란(1592), 기미독립선언(1919) 등이 있다. 그런데 사실 기미독립선언은 이미 육십갑자 기년을 사용하지 않게된 후이다. 갑오개혁(1894), 을미개혁(1895) 이후 1896년부터는 양력을 사용하였다. 한일수호조약(1876) 이후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이 사용하던 음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양력을 채택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연호를 사용했고, 독립 후에는 대한민국 연호와 단군기원을 사용했다. 대한민국 연호는 독립선언을 하고 임시정부 수립 선포를 한 1919년을 원년으로 한다. 원년으로부터 세면 올해는 '대한민국 105년'이다. 단군기원(檀紀, 檀君元號)은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한다. 올해는 단기 4356년이다. 세종조에 새 간지의 시작 기준을 음력 1월1일로 정했으니 이에 따르면 우리들 띠가 바뀌는 기준은 음력 1월1일이다. 그러나 또 다른 주장이 있는데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이 띠가 바뀌는 기준이라는 설이다.
태음태양력
우리가 음력 양력이라하는 것은 태음력과 태양력을 뜻한다.
태음력太陰曆은 달의 변화에 따라 만든 달력이기 때문에 태음력만을 쓰면 춘하추동의 계절 변화와 날짜가 맞지 않는다. 태음력의 1삭망월(보름달/초승달이 된 때부터 다음 보름달/초승달이 될 때까지의 시간)은 약 29.53일이다. 여기에 큰 달은 30일, 작은 달은 29일로 정하여 12개월(1년)이 354일이 된다.
지구의 평균 공전주기인 태양력의 1년은 365.2422일이다. 즉, 태음력의 12개월과 태양력의 1년은 약 11일 정도의 차이가 나게 되는데 이를 맞춰주기 위해서 몇 년에 한번씩 태음력에 한 달을 추가하여 13번째 달인 윤달을 두었다. 윤달은 19년에 7번 둔다. 이렇게 태음력과 태양력을 맞춰 함께 사용하는 달력이 바로 태음태양력이다.
역법 체계에서도 서양은 달의 변화를 배제하고 오직 태양력만 추구한 반면에, 동양은 태양과 함께 달의 위상 변화를 세밀히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달을 표제어로 삼는 '달력'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달의 력曆이긴 하지만 순전한 태음력은 아니다. 달력의 표면 곧 역면曆面의 날짜를 달의 위상 변화를 따르도록 하였기 때문에 '음력'이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우리 달력에는 반드시 천구상 태양의 위치 변화를 맞출 수 있도록 24절기를 병기한다. 이 때문에 동양의 역법은 태음태양력 전통이 된다.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23쪽. 저자 김일권, 고주윈 출판, 2016.
태음력은 1년의 계절 변화를 나타낼 수 없다. 농사처럼 계절의 변화와 연관이 깊은 일에는 달빛이 아니라, 날짜가 아니라 태양의 운행에 따른 1년의 길이가 더 중요했다.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을 동지冬至로 정하고 이번 동지에서 다음 동지까지를 1년(365일)으로 정했다. 그래서 새해 시작인 동지에 띠가 바뀐다는 소수의 주장도 있다. 동짓날은 해시계 역할을 하는 막대를 세워 그 그림자의 길이로 정했다. 계절의 변화는 일년을 대략 15일 간격으로 나누어 24절기로 정했다. 계절은 태양의 하늘의 위치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양력으로는 거의 같지만 음력으로는 조금씩 다르게 된다. 24절기에서는 입춘을 일년의 첫 절기로 정했다. 그래서 띠의 기준일이 입춘이라는 주장이다. 음력이 아닌 태양력으로 기준을 삼는 것이다.
24절기는 이름과 설명이 중국 주나라 화북지방의 날씨에 맞춰 지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날씨와는 잘 맞지 않기도 한다. 다만 기준으로 삼을 뿐이다. 현재 기상청에서는 24절기의 지난 30년간의 날씨를 보여주어 2023년의 절기에 따른 날씨를 예상할 수 있도록 한다.
참고 https://data.kma.go.kr/climate/solarTerms/solarTerms.do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서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이 세종24년(1442)에 왕명으로 편찬되었다. 이순지李純之, 김담金淡이 이 일을 맡았다. 칠정七政은 해, 달,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을 뜻하는데 일월오성日月五星의 천체 운행을 추산하는 법을 다룬 책이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칠정산내편>을 번역(강민정, 이은희, 한영호, 2016)하여 현대인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입춘은 정월의 첫 번째 절기이고, 봄을 알리는 날이기 때문에 새해(新年)로 여겼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입춘을 기점으로 간지干支가 바뀐다는 것이 정설이다.
띠의 기준에 대한 설은 분분하다. 새해의 기준조차 각 왕조에 따라 달랐으니 띠의 기준이야 여러 주장들이 있을 수 있다. 하夏나라 때는 입춘의 인시, 상商/은殷나라 때는 소한의 축시, 주周나라 때는 동지의 자시, 진秦나라 때는 해월亥月(음력10월) 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이렇게 띠의 기준일이 엇갈리는 것은 해와 달의 두 천체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동양천문학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24절기의 입춘을 기준으로 띠가 바뀌면 음력 기준과 아주 다르다. 입춘은 양력 2월4일인데 설날(음력)이 입춘 전에 오기도 하고, 입춘 뒤에 오기도 한다. 세종 때 기년법에 따르면 음력 1월1일이 띠가 바뀌는 때인데 입춘 기준으로는 설날 전에 띠가 미리 바뀌기도 하고, 설날이 지난 후에 띠가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양력 달력을 주로 사용하는 현대에는 띠의 기준일을 양력으로 해가 바뀌면 띠도 바로 따라서 바뀌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양력, 음력, 24절기, 어느 것에 따라야 한다는 국가가 정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2023년, 이제 나이는 만나이를 표준으로 정했다. 태어난 날이 나의 새해가 되는 것이다. 물론 공적인 새해는 그레고리력에 따른 양력이지만. 우리 명절인 설날과 추석날은 음력으로 정해져 있다. 이 음력날짜에 따라 그레고리력의 날짜는 해마다 달라 설날과 추석날이 해마다 바뀌는 것이다.
현재 달력은 편의에 따라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지만, 각 나라와 민족의 전래된 문화를 던져 버릴 이유는 없다. 경우에 따라 선택해가며, 나라는 나라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기준을 세우고 날짜를 보면 될 것이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인터넷이 지금 같지 않았던 시절에 외국에 있을 때 음력이 적힌 달력을 한국에서 가져다 봤다. 집안 어른들의 생일을 다 음력으로 기념하기 때문이었다. 제삿날도 음력이어서 음력 달력은 필수로 있어야 했다. 우리집 가장은 음력날짜를 양력으로 변환하여 지금은 양력 생일을 기념한다. 그러나 생존해계신 집안 어른들, 그리고 우리세대 형제자매들은 음력 생일이 많다. 일찍 돌아가신 어른들 기일은 음력, 근래에 돌아가신 어른들 기일은 양력이다.
나는 올해에도 음력이 함께 기록된 새해 달력을 걸어놓았다. 우리 자식들은 양력 세대인데 어느 때쯤이면 그 아이들이 날짜의 혼동없이 지내게 될지... 어쨌든 우리 후대에 양력만을 기준으로 살아가더라도 수백년을 이어왔던 우리나라의 민속문화는 기억해주면 좋겠다.
서양에서는 율리우스력이 그레고리력으로 바뀌었고, 동양에서도 위에 열거했듯이 중국의 왕조마다 기년법이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와 현대로 이어오는 과정중에 연호에서 음력으로 양력으로 기년법이 바뀌어왔다. 우주 천체의 질서가 왕(통치자)의 생각에 따라 바뀌어왔다. 우리 후대에는 통치자가 해와 달과 별, 시간을 지배할 수 없기를 바란다. 시간은 인류 모두의 것이지 통치자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