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2월에 손주들과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를 방문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어디에서고 자리에 앉으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를 손에 들고 캐릭터 인물(기존에 알려진 것이나, 자신들의 창작품이나)을 그리는 손녀들이다. 3월에 중3, 중2, 중1이 된 3손녀와 초딩 둘을 데리고 다녔다. 애니메이션 센터에 들어가니 중학생은 우리아이들 뿐이었다. 뽀로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유치원생과 어린이집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조형물들이지 사실 중학생이 무슨 관심이 있겠나. 손녀들이 좀 멋적어했다. 초딩 손자손녀도 그곳에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 나름 그곳을 방문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아이패드에 평면 그림만 그리니 입체적인 조형물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캐릭터 조형물 주위를 빙 돌며 이쪽저쪽에서 보는 모양을 눈에 익히도록 했다. 평면만 보고 평면을 그리는 것과, 입체를 보고 평면을 그리는 것은 그림의 완성도가 확실히 다르다. 그걸 이해시켜주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센터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뽀로로 벽면이 있다. 이 벽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다.
중학생 손녀들은 어려서 뽀로로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세월을 보냈다. 뽀로로와 함께 놀 땐 더이상 즐거운 일이 없는 것처럼 신바람이 났고, 뽀로로 장난감이 훼손되면 세상 무너지는 일이기라고 한 듯이 슬퍼했다. 이거야말로 동고동락 아닌가.
벽에서 3m쯤 뒤로 물러나서 배경화면을 보도록 했다.
"무엇이 보이니?" 손녀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동시에 "얼음이요." 즉답을 했다.
"그래 얼음인 건 알겠는데, 다른 것은 안보여?" 다른 생각을 유도했다.
아이들은 드디어 사람을 찾아냈다.
그렇지! 그렇지!
중학생이 도대체 어울릴 것같지도 않은 이곳에 왔으니 그냥 놀다가면 되겠나, 뭐래도 색다른 것을 하나쯤 건져갖고 가야지.
얼음벽화에서 사람 몇명을 찾는? 아니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구름>이라는 동요가 있다.
구름이 구름이 하늘에다
그림을 그림을 그립니다
노루도 그려넣고 토끼도 그려넣고
동생하고 나란히 풀밭에 앉아
펴오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바라봅니다
구름이 구름이 하늘에서
재주를 재주를 부립니다
노루도 재주넘고 토끼도 재주넘고
동생하고 나란히 풀밭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그려봅니다
그려봅니다
아이들에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감성이 있다. 누구는 호랑이라고 해도, 누구는 고양이라고 우겨도, 그 주장으로 싸울 틈도 없이 구름은 곧 흩어진다. 다시 그리는 그림은 푸들 강아지도 되고 실뭉치도 되는 것이 구름이다. 아이들이 스케치북이 아닌 하늘에서 구름이 그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 그 넓은 창공에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나는 이것을 참 귀하게 여긴다. 늙은이가 아직도 철이 안들었는지 손주들하고 이런 놀이를 하며 잘 논다. 아, 이것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가!
애니메이션 센터 벽화에서 사람 몇 명을 찾아낸 것은 구름 그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던 것과 같은 놀이이다. 구름이 흘러가면 그냥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 형태에 이름을 붙여보면 남아있게 된다. 벽화는 한 눈에 뽀로로가 있는 얼음이지만, 두 번, 세 번, 다시 살펴보면 그 속에 사람도 몇 명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생각을 달리하고, 생각을 넓히고, 생각을 깊게 하는 아주 작은 훈련을 계속하면서 자란다면 나중에 공동체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어린이집 아이들이나 하는 색칠놀이도 했다. 중학생 셋이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이걸 색칠하자니 남의 눈치도 보이고... 다행이 자리가 있어서 색칠하기를 했다. 이번엔 스토리 입히기이다.
위 그림은 중3 손녀의 색칠 스토리.
1번 집에는 귀족들이 산다. 그들은 감출 것이 많아서 창문에 암막커튼을 치고 산다. 2번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이다. 특별할 게 없다. 3번 파란 지붕집은 하층민들이 사는 곳이다. 사람 수가 많아서 더 넓은 곳에 있다. 가릴 것이 하나도 없으니 창문은 그대로 푸른 유리다.
앞에 성문을 지키고 있는 것은 돌이다. 돌은 단단하다. 그런데 이 돌 문지기가 이 성의 왕이다. 왕은 최고이기 때문에 문지기를 하든지 집밖에 있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가장 높은 사람이니까.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문앞에 있어도 창피하지 않다.
큰 손녀(외손녀)의 스토리에 감동했다. 사실 감동적일 이유도 없는 이야기인데 나는 그 애의 할머니니까 별것도 아닌 일에도 툭하면 감동이다. 아, 이 애가 사회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했구나. 그래 너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가 아니지, 세상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거야. 그러니 사회구성에 관심을 가져야겠지. 네가 살아갈 세상이니까.
할머니의 바람은 이제 눈을 뜨기 시작한 네가 세상을 제대로 바로 보기를,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이 그림은 중2 손녀의 색칠.
고양이에 홀딱 빠져 온갖 길고양이들의 집사노릇을 하는 아이다. 색칠한 것도 모두가 다 고양이다. 문앞에는 왕관을 쓴 고양이가 요술지팡이를 들고 있다. 하늘의 구름(2)도 고양이 모양이다. 햇님(3)조차도 고양이 얼굴이다. 지붕에도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있다. 왼쪽(4) 구름은 고양이 육구肉球 모양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할머니의 바람은 네가 희망하는 것을 향하여 집중하고 노력하여 이루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소유하지 않고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네 마음이 참 고맙다. 그 마음으로 길위의 사람들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쏟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다. 무얼 가르치기는 커녕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운다. 아직은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지만 이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함께 하는 날까지는 서로 좋은 친구로 지내기를 바란다. 할머니와 손주 사이를 넘어서 아끼고 사랑하고 돕는 좋은 친구로. 할머니의 욕심이 과한가?
아, 큰 손녀와 <데미안>을 이야기 할 수 있어서 기뻤다. 함께 간 서점에서 큰 손녀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골랐다. 그래 중3이면 그런 책에 관심을 갖는구나. 중2 손녀(친손녀)는 일본어를 독학하겠다고 일본어 교습서를 샀다. 내가 조금만 더 건강하게 버티면, 손주들이 조금 만 더 성장하면 함께 읽은 책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텐데... 데미안을 읽은 아이와 헤르만 헤세를 이야기하고, 일본어 독학하겠다는 아이에게서 나도 일본어를 배우고.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의 구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구절처럼 세상 온갖 때가 덕지덕지 묻은 할머니도 손주들처럼 맑게 정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