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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pr 02. 2024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그림

죽음 이후에 생은 다 끝난 것일까? 어떤 종교인들은 육신과 영혼을 분리하고, 육신 없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강하게 믿는다. 육신보다 영혼을 더 가치있게 평가하고 영혼이 떠난 육신은 물리적으로 썩는 물질일 뿐이라고 한다. 죽음과 동시에 부패할 유기물이 얼마나 귀한 육신인지 생각해본다. 이미 수 세기 전에 그 육신이 귀하게 쓰임받은 기록이 있다. 그림 속에서 죽음 이후의 인간을 살펴본다.


17세기는 단연 과학의 세기였다. 전기, 망원경, 현미경, 미적분학, 만유인력, 기압, 계산기, 이런 것들이 알려졌고, 갈릴레오와 뉴턴은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다. 자연 과학에 대한 탐구정신은 인간 자신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 인간의 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인간의 몸이 어떤 구조와 원리로 움직이는 지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공개 해부학 강의가 열렸다. 그 이전 15, 16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훌륭한 예술작품을 남기기 위해 인체구조를 연구하려고 30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했다.


https://artvee.com/dl/the-anatomy-lesson-of-dr-nicolaes-tulp/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 캔버스에 유채. 170x216cm.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네덜란드.


의학적인 연구에 중점을 둔 베살리우스 (Andreas Vesalius)의 해부학 텍스트인 <여섯 개의 해부도 Tabulae Anatomicae Sex -1538>는 근대 해부학의 시대를 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풍미했던 렘브란트는 인체 해부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 그림은 1632년 1월16일, 니콜라스 튈프 박사가 그날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해부학 수업은 악취를 최소화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 진행되었다. 렘브란트 시대에는 해부학 극장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칭량소(稱量所)인 드 와그(De Waag)에 있는 극장에서 일반인들도 입장료를 내고 해부장면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의 초기 목적은 외과의사협회(Guild of Surgeons)의 구성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집단 초상화, 오늘날의 단체 사진 같은 것이다. 이미지가 특정 조직을 홍보할 수 있도록 종종 공공 장소에 배치되는 회화의 한 방식이었다.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의 큰 대조를 통해 장면에 역동성을 더한다. 인물들은 화가를 의식하지 않고 시신의 머리맡 주위에 모여앉아 다양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일부는 시체를 응시하고, 일부는 강사를 응시하고, 일부는 정면(그림의 관람자)을 응시한다. 얼굴들은 모두 개인적인 표정을 보여준다.

배경과 옷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빛이 시신과 튈프 박사의 손을 환하게 비추어서 자연스레 거기로 시선을 끌어모은다. 튈프 박사 한 사람만 모자를 쓴 사람으로 그려서 의사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다. 인물의 배치는 튈프 박사가 화면의 오른쪽 절반을, 일곱 명의 의사들이 왼쪽 절반을 차지했다. 숫자적으로는 불균형이지만 전체를 삼각형 구도로 안정감을 보여준다.

렘브란트는 해부 장면을 사실대로 그리지는 않았다. 해부학 강의실에 설치된 해부대와 관객을 분리하는 난간이 없고, 해부를 돕는 조수와 해부 도구 소품도 눈에 띄지 않는다. 시신의 발치에는 베살리우스의 책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 1543>이 펼쳐져 있다. 시신은 범죄자 아리스 킨트이다. 아리스 킨트의 오른손은 신체의 나머지 부분과 피부색이 다르고 양손의 방향이 서로 맞지 않는다. 엑스레이(X-ray) 검사 결과 렘브란트는 원래 절단된 위 팔뚝만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자는 이전 유죄 판결의 결과로 이 손을 잃었을 것이라고 한다.  

튈프(Nicolaes Tulp) 박사는 1628년에 암스테르담 해부학 길드(Amsterdam Anatomy Guild)의 총선거인(교수/강사)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은 인체 해부학에 대해 매년 공개 강연을 할 책임이 있었다. 가톨릭의 ‘부활’ 교리는 시체를 온전한 상태로 안장해야 했으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밀리에 인체 해부를 했다. 그러나 개신교 네덜란드에서는 레오나르도가 죽은 지 113년 후에 인간의 해부가 일반적인 관행일 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람거리가 되었다.


우리 부부가 사후 신체 기증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극구 반대했던 이유가 바로 시신의 존엄성이 훼손된다는 이유였다. 언론매체를 통하여 기증된 시신을 해부실에서 함부로 다루는 험한 기사가 가끔 보도되어 왔으니 염려할만도 하다. 렘브란트의 이 그림을 보는 나의 심정도 편안하지만은 않다. ‘해부장면 관람’은 그 당시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정중한 예를 갖추며 연구한다고 한다. 그러리라고 믿는다.

내 생명의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내 육신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것이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빛나는 성과가 아니어도 좋다. 내 육신이 질병의 강을 건널 디딤돌 하나가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하기로 한 곳은 우리가 1988년부터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병원이다. 그곳에 우리 의료기록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작정 갑자기 던져진 시신 한 구가 아니라, 수 십년간 의료 기록이 함께 넘겨진 시신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병원을 택했다. 물론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죽은 후에 어찌어찌 연구를 할 것인지는. 우리 자식들에게는 연구가 끝난 후에 화장한 재 한 줌으로 돌아갈 것이다.


위의 글은 출간도서 <삶의 미술관>에 실린 글중 일부 발췌했습니다.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이미 시신기증을 하기로 했고 서류도 다 내놨는데 갑자기 무서워졌다. 무섭다기 보다는 불쾌해졌다. 기증을 취소할까 궁리중이다.

기증 후 과정이 어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른채 결정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몸이 파헤쳐진다는 것은 사실 끔찍한 일이다. 죽었다고 부끄러운 걸 모를까? 그러나 내 몸이 아주 조금이라도 의학의 발전을 위해, 언젠가 아픈 사람을 위해 연구용으로 사용할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두려워하는가? 난 해부용으로 내놓은 몸이 여느 물건과 같다고 생각지는 않았었다. 생명은 끝났지만 시신일지라도 생명의 존엄성은 육신에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발가벗겨져 연구생들의 시선에 노출돼있어도 거기 인간의 존엄성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구 교육 실습용 시신은 늘 부족하다.

요즘 아주 끔찍한 말을 들었다. 교육 실습용 시신이 더많이 필요할 경우, 시신을 사용하고 남은 부분은 또 다른 해부교실로 넘겨줘 다시 사용하면 된다는 말이다. 시신이 모자라면 그렇게 돌려가면서 재활용 재사용한다는 생각을 어찌 감히 인간으로서 한단 말인가. 죽었으니 그냥 물건인가? 이리저리 돌려가며 재사용하고 버리는 물건? 사체 기증을 서약한 내 마음이 동요한다.

비록 생명이 없는 시신이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달라. 아주 소중히 귀하게 다루라. 쓰던 물건 돌려 쓰듯이 함부로 이곳저곳으로 굴리지 말고, 한 장소에서 엄숙하고 정중하게 해부에 임하라. 해부에 참여하는 교육 실습생을 적정한 인원으로 한정해야 한다. 그래야 엄숙한 가운데 진정한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해부교실이 무슨 도떼기 시장도 아니고 떼거리로 몰려들어 구경하는 곳은 아니잖은가. 사후 시신 기증을 서약한 사람으로서 한 마디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전이나 사후에나 아주 소중한 것이다!

필요한 시신이 부족하면 재활용 재사용하면된다는 편한 생각을 거둬라. 교육생 증원을 위해 더 많은 시신 기증을 사회에 호소하고 독려하든지, 실습환경이 충분히 확보될 때까지 철저히 준비하라.

의사와 환자와 환자 보호자, 의사 아닌 사람과 환자 아닌 사람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고 있다. 정작 자신의 몸을 내준 연구 실험용 시신 기증자들의 목소리는 없다.

의대생 증원에 대한 찬반의 어느편에 편승하거나, 지식을 받침으로 한 의견 제시가 아니다. 아주 단순히 몸의 반응일 뿐이다.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내몸에 내마음이 담겨있는 몸의 반응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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