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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바에스 <책 파괴의 세계사>

책 리뷰

by morgen Jan 12. 2025

<책 파괴의 세계사> 페르난도 바에스 지음. 조구호 옮김.  북스페인, 2009.




이 책을 접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이다. 물론 <책 파괴의 세계사>는 역사적 책 파괴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지만, 너무나도 방대한 목록에 기가 질려 우선 단순한 개인의 '작품 파괴 요청'을 먼저 생각해본다. 

여러해동안 결핵을 앓고 있던 카프카는 폐열이 심해져 마지막이 가까울 무렵 20년지기 막스 브로트(Max Brod, 1884-1968)에게 자신의 모든 작품과 기록물들을 파기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일시적인 자기혐오일까? 허무주의일까? <심판>, <스토커>, <변신>, <형벌 식민지>, <컨트리 닥터> <헝거 아티스트>를 꼽으며 이 책들의 리뷰가 남을텐데 이것도 재인쇄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막스 브로트는 이 유언을 실행하지 않았고, 상속인인 부모와 자매들은 파괴대신 출판을 했다. 하마터면 지금 우리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놓고 읽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파괴의 세계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연대기(Chronicle) 

뼈대에 살을 조금씩 붙이듯 설명한 구조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목차를 소개하는 방법이 리뷰 쓰기에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목차에 책 내용이 다 들어있다. 책에 언급한 내용들은 이 책 외의 다른 자료들을 찾아 사진을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 



저자 페르난도 바에스(Fernando Báez, 1963-  )는 베네수엘라 작가, 도서관학 박사이다. 이라크에 대한 책<La Destrucción Cultural de Iraq>이 출판된 이후로(참고) 미국은 그를 페르조나 논 그라타(persona non-grata, 기피인물)로 선언했다. 그는 수세기 동안 가해진 책 파괴의 연대기를 편찬하는데 12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독자는 이 책에서 파괴하는 자와 기록하는 자를 만난다. 

(참고; 2003년 3월 20일,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할 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문화재 보호를 보장하라는 전 세계 문화 단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고 약탈했다. 유산을 보호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점령군은 박물관, 도서관, 고고학 유적지를 보호받지 못한 채 약탈자들의 손에 맡겨두었다.)

"가치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라크 옛 왕가들의 문서를 포함하여 오토만 왕조의 역사적인 문서를 소장하고 있던 보물인 국립 도서관과 국립 문서고는 3,000도에 이르는 고열에 재로 변했다." 394쪽

문자와 책의 발상지인 이라크에서 서양 군인들은 책, 사본, 귀중한 예술 작품이 약탈당하는 것을 무관심하게 지켜본 것이다. 그들은 오직 석유 생산 시설만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책 파괴의 세계사는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문명이 탄생한 이라크에서 시작하여 거의 반이나 파괴된 현재의 이라크에서 끝난다.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침공과, 바그다드 점령에 이어, 이라크 국립 박물관이 약탈당한 사건까지 생생히 기록했다.  유실과 파괴를 분리하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책들이 사라졌다. 

"소포클레스의 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120권의 작품 가운데[ 오늘날 온전한 상태로 또는 수백 개의 조각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단 일곱 권에 불과하다" 65쪽.

"레스보스 출신의 위대한 시인 사포는 작품 하나를 아홉 권의 책으로 편찬했으나 오늘날 우리는 거의 온전한 찬가 두 편과 단순한 쪼가리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65쪽.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82편 가운데 단 18편과, 사티로스의 극작품 한 편, 그리고 수많은 인용문만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모든 학자와 소피스트의 작품은 현재 파편으로 남아있다." 66쪽.



책이 유실되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지진, 홍수, 화재와 같은 자연 재해로 유실되기도 한다. 벌레의 해를 입기도 한다. 종이책이 나온 이후로는 종이의 산성화로 책이 삭아 부서지기도 한다. 지금은 책의 산성화 방지 스프레이를 판매한다. 

다양한 이유로 이집트 문학의 80% 이상이 분실되었다.

키티온의 제논(Zeno of Citium, c. 334 – c. 262 BC)이 쓴 <공화국>은 플라톤의 책보다 더 널리 읽혔다. 기원전 48년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도서관이 불타고, 기원전 213년 중국 황제 진시황이 책을 파괴하고(분서갱유焚書坑儒), 1258년 몽골이 바그다드 도서관을 공격하고, 1497년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1452-1498)가 '허영심의 모닥불(bonfires of the vanities/ falò delle vanità)' 피우고, 1562년 멕시코에서 마야 문헌이 파괴되었다. 1933년 나치는 유대인, 반유대인,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평화주의자 학자들이 쓴 책들을 불태웠다. 25,000여권의 '비독일적' 책들이 불탔다.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립도서관이 파괴되고, 2003년 이라크에서 도서관이 불탔다.

수메르 서판, 고대문명의 원본,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중세 필사본이 파괴되었거나 분실되었다. 수백만 개의 고대 태블릿과 두루마리가 사라졌다.

로마인은 기독교 문서를 파괴했다. 기독교인은 로마인의 문서를 파괴했다. 가톨릭교도는 개신교 사본을 불태웠다. 스페인 파시스트는 자국의 역사를 불태웠다. 



그동안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세계 최초의 도서관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아슈르바니팔 이전에도 도서관이 있었다고 쓰여있다. 우르지역의 도서관들을 최초의 도서관으로 기록했다. 

"기원전 3000년 무렵, --- 우르III 왕조시대가 시작되었다. 더 많은 점토판이 제작되고 첫 번째 도서관이 생겨났는데 도서관 서가에는 경제적인 기록, 사전 편찬을 위한 어휘 리스트, 식물 동물 광물 목록이 포함되어 있었다." 44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더불어 잘 알려진 아슈르바니팔 도서관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신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BC685-BC627)은 아시리아의 군사적 문화적 최전성기를 누렸다. 왕궁이 있는 니네베에 궁전도서관을 세웠다. 서기들에게 모든 문화의 기록들을 베끼도록 시켰다.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과 <길가메시의 시> 그리고 <에누마 엘리쉬> 점토판이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오늘날 그곳에서 발견된 점토판의 숫자는 30,000여개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는데, 그 가운데 적어도 5,000개는 간기(刊記)가 새겨진 문학적 텍스트다." 51쪽.


기록은 물리적인 책 뿐만이 아니다. 

역사에 남은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한 개인으로서 기록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점토판에서 양피지와 파피루스를 거쳐 석판 목판 동판 활자들, 녹음테이프와 마이크로 필름과 비데오테이프를 거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USB가 형태로 남아있다. 손가락 마디 하나만한 USB도 형태없이 사라져 클라우드(Cloud)로 떠있는 숱한 기록들이 언제까지 존재하고 언제 파괴될 지 모른다. 타의에 의해 고의적으로 파괴되고, 안타까운 실수로 유실되고, 자의로 다 날려버린다. 

근래에 '나의 기록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가끔 생각한다. 브런치 작가중에 일찌감치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난 분 몇을 알고 있다. 가끔 그 분들의 브런치에 들어가 남아있는 글들을 새롭게 읽으며 생각은 나의 기록들에 머문다. 남길 것인가, 날려버릴 것인가, 심각히 생각해보면 남길만한 것이 없기도 하고, 어떤 기록들은 날리기엔 서운하기도 하다. 어쨌든 가치없는 문서들은 과감히 쓰레기통에 담고있다. 언제쯤 쓰레기통을 비울지...


역사에 기록된 책 파괴가 순전히 악의적인 파괴뿐만은 아니다. 

플라톤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노트에 기록하지 말고 영혼에 새기라고 했다. 플라톤은 수많은 말을 통해 글의 중요성을 깎아내렸다. 글이 인간으로 하여금 기억을 소홀히 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설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그의 말이 <페드라>에 기록되어 남아있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목가시인 비온(Bion)은 당대 유명 연설가들의 책들을 불태웠다. "이유는 그것들을 모조리 이해했기 때문에 철학에 매진하게 될 아테네로 가는 데 더 이상 필요없기 때문이라는 식이었다." 76쪽.

책을 없애는 데는 책을 먹는 방법도 있다. 책을 먹은 기록이 성서에 있다. 구약성서 에스겔서(2장 8절-10절, 3장 1절-3절)에는 하느님이 에스겔에게 책을 먹으라고 한다. 

"사람의 아들이여, 내가 주는 이 두루마리를 배부르게 먹으라. 그것을 먹으니 꿀맛 같았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10장 8절-11절)에도 책을 먹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받아 삼켜버려라. 이것이 네 입에는 꿀같이 달겠지만 네 배에 들어가면 배를 아프게 할 것이다."

옛날, 정말 옛날이다, 고등학생 때 영어사전을 한장씩 뜯어 씹어먹는다는 괴담(?)이 있었다. 친구 누구누구가 실제로 책을 씹어먹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 것으로 만드는 완벽한 방법으로 우리들 사이에 떠돌던 괴담이었다. 책을 베고 자면 자는 동안 머리속으로 쏙쏙 들어간다는 설도 있었다. 허무맹랑한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중에 책을 베고 잔 경험은 있다.


위의 사진에서 <책 파괴의 세계사> 내용을 목차로 확인할 수 있다. 연대기를 훑어보면 좋겠다. 아래 사진들은 이 책을 읽으며 발동한 궁금증에서 찾아낸 기록들이다. 보조 수단으로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침략과 책 파괴 행위

1933년 5월 10일 베를린 베벨플라츠 Bebelplatz 에 있는 나치 서적 소각을 기념하는 도서관 기념관, 배경은 성 헤드비히 대성당. 

기념관은 지하에 있는 방(5x5x5m/큐브)으로, 네 벽이 모두 빈 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공간에는 그 밤에 불타버린 20,000권의 책을 모두 보관할 수 있다. 옆 자갈길에 새겨진 명판에는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1797-1856)의 희곡 <알만조르 Almansor>(1820)에서 따온 인용문이 있다.  

“그것은 서곡일 뿐이었다. 책을 불태우면 결국 사람도 불태워질 것이다. Das war ein Vorspiel nur, dort wo man Bücher verbrennt, verbrennt man am Ende auch Menschen.”


1940년 9월 런던의 홀랜드 하우스. 독일 공습으로 집이 파괴되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책 선반이 있는 도서관 벽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92년 8월 25일 밤, 사라예보에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립 및 대학 도서관은 도시 주변 언덕을 점령한 포수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되었다. 수류탄에 의해 발생한 화재로 역사적인 도서관 건물과 약 200만 권에 달하는 소장품의 대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유네스코는 제27차 총회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적 특성을 상징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립 및 대학 도서관의 복원을 지원하라는 위임을 받았다.


저자 페르난도 바에스는 대중적인 관념과는 달리, 책과 도서관의 파괴를 명령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무지한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분서(焚書)에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일까. 기원전 3세기 진나라는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사상서를 불살라 없앨 것을 명했다. 5세기에 유럽으로 쳐들어가 로마 문명을 참살한 반달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무자비한 문명 파괴를 뜻하는 '반달리즘'이란 말로서만 남아 있다. 사실 책이 탄생한 55세기 전 수메르 시대부터 인간들은 책을 파괴해 왔다. 대신 권력자들, 때로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진실만이 유일하고 다른 모든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랍왕 오마르 1세는 이집트를 원정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 보존된 장서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목욕탕 땔감으로 썼다. 그 책들을 모조리 태워 없애는 데만도 6개월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셀수스 도서관

셀수스 도서관은 에베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로마 상원 의원인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Tiberius Julius Celsus Polemaeanus, AD45-AD120)를 기리기 위해 지었고, 아들이 서기 135년에 완공했다. 코린트식과 복합 기둥으로 장식된 2층 외관은 로마 건축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도서관 내부에는 한때 12,000권이 넘는 두루마리가 보관되어 고대 세계의 주요 학습 센터가 되었다.


현대 20세기에는 기억(기억의 의무와 함께), 정체성(인정에 대한 노력과 열망과 함께), 유산(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등 여러 담론을 들을 수 있다. 한쪽 극에는 탈영토화, 순환, 흐름이라는 주제의 담론이 있고, 다른 극에는 지역적 또는 집단별 기억 증가에 대한 요구와 정체성이 있다.  이러한 양극 사이에서 기록의 파괴와 학살이 난무한다. 역사는 승리자들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수천년 동안 권력, 경제 정책, 종교, 민족 또는 문화에 동기를 부여받은 열성주의자들은 책, 그림, 기록 보관소 및 기타 문화 자산을 고의적으로 공격하고, 약탈하고, 훔치거나 파괴했다. 

페르난도 바에스의 <책 파괴의 세계사>는 이 모든 역사를 기록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책 파괴의 역사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속에 '책은 무생물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책은 무생물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숫자화할 수 없는 생물들의 숨결이 녹아들어 있는가! 갈피갈피마다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역사 연대기를 나열한 듯한 책의 마지막 쪽에서 가장 인상깊은 마지막 문장을 만났다. 작가의 글이 아닌 도서평론가 이권우씨의 추천사중 끝 부분을 인용한다.

"책을 읽으며, 진정한 책의 파괴자는 누구인지 알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성찰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 이들, 그런 것들이 무가치하며 돈의 가치가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오늘을 휘어잡는 새로운 매체로 책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고 선동하는 이들이다. 이 책은 묻는다. 당신은 책의 보호자인가, 아니면 책의 파괴자인가?라고. 424쪽.


눈은 점점 어두워지고 읽고싶은 책들은 쌓여있고, 당분간은 책에 관한 책들을 읽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67681.html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11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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