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1997년에 발표한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는 <채식주의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30대 초반의 여성이 변신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평범했던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름 없는 여주인공은 실제로 식물이 된다. 뿌리, 잎, 열매 모두를 갖춘 실제 식물. 사회적 배경에 대한 미묘하고 다면적인 비판을 제시한다. <채식주의자>의 여주인공 영혜에게는 초자연적인 변화가 없다. 나무로 변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폭력과 예술을 통하여 보여준다.
실제로 변신하는 초자연적인 내용 <내 여자의 열매>를 접하며 카프카(Franz Kafka,1883-1924)의 <변신>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와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 두 인물의 공통적인 주제는 가정 내에서의 고립이다. 가부장적인 구조에 의해 통제되거나 무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과 사회같은 전통적인 구조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에게 가정공간은 여성을 아내이자 주부로서의 역할에 가두는 감옥이다. 변신되어 노동력을 상실한 <변신>의 그레고르에게 자신의 방은 감옥이 된다. 변신의 결과는 서로 다른데 어느 쪽이 해피엔딩이고 어느 쪽이 슬픈 결말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독자들 마다 다 다른 결론을 낼 것 같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아내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평생을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마음을 가두는 남편과 함께 몸을 가두는 좁은 아파트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정착해야 했다. 완전한 변신 후, 아내는 "바람, 햇빛, 물만으로 살 수 있다는"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낀다. <변신>의 그레고르는 변신되기 전의 가족들의 애정을 회상하며 혼자 쓸쓸히 죽는다. 두 소설은 여성의 한계와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상(李箱, 1910-1937)은 한국의 문학가, 건축가이고 쿠사마 야오이(1929- )는 일본의 미술가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강의 예전 논문, 시, 낭독, 노래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석사논문 "이상(李箱)의 회화와 문학세계"역시 재소환되었다. 갑자기 유명해진 석사논문을 나는 읽지 않았다. 노벨상을 타기 이전이라 한강의 작품이 서점 천장을 뚫고 구름위로 올라가지 않았을 때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그럼에도 소설 속 "몽고반점"을 읽으면서 이상이 저절로 생각났다.
"지금 베란다로 달려가, 그녀가 기대서 있는 난간을 뛰어넘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못박혀 서서,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인 듯, ~~" 178쪽.
<채식주의자>의 영혜의 '아무것도 담아본 적 없는 것같은 시선'이 이상의 소설 <날개>의 주인공이 명동 미쓰코시백화점 옥상에 서서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독백하는 장면을 오마주했다는 평이 있다. 학계의 평을 알아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날개>의 "날자, 날자, 날자"가 생각났다.
"처제는 멍한 얼굴로 이 편을 건너다보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이었다. 처음으로 그는 그녀의 눈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177쪽.
한강 작가는 논문에서 “왼쪽 눈을 검게 칠해서 눈동자를 볼 수 없다. 이상 자화상에 그려진 얼굴의 지배적 인상은 주눅든 듯한 측은함을 띠고 있는데, 자기 연민과 짓눌린 감정이 읽힌다”고 썼다. 이어 “이는 단순한 우울이나 존재론적인 피로감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을 구성하는 복합적인 의식구조와 연관된다”고 썼다. 논문의 학술적인 해석이 문학작품으로 독자에게 다가온 장면이다.
"몽고반점"에서 몸에 꽃을 그리는 장면을 읽으며 계속 쿠사마 야오이가 생각났다. '호박'과 '점'으로 유명한 장애인 미술가 쿠사마 야오이의 작품들이 "몽고반점"의 꽃그림 위로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쿠사마 야오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병원에 쿠사마 스튜디오를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한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과 쿠사마 야오이의 작품은 모두 권력이 억압하는 신체를 묘사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주인공 영혜의 이야기를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 인혜를 통해 전달한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각 부분은 다른 캐릭터가 이야기하지만, 모두 제목의 채식주의자 영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편 <채식주의자>(2007)가 발표되기 전에 이미 단편 중편 3작품이 모여 장편을 이루었다.
<채식주의자> 창작과비평 2004년 여름호.
<몽고반점>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
<나무 불꽃> 문학관 2005 겨울호.
한강은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 일본의 한국 점령기를 살았던 시인 이상을 소개한다. "나는 인간이 식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구절은 채식주의자의 영감이 되었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가부장제, 폭력, 성, 광기, 복종 거부, 그리고 한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하는 지난한 과정을 섬세하게 전개한다. 마치 혈투, 삶에 대한 잔인한 혈투를 보는 듯하다. 영혜의 몸 자체가 전쟁터가 된다. 먼저 남편에게, 그 다음에는 형부에게, 마지막으로는 의료계에 전쟁터가 된다. 소설 속의 모든 등장인물은 영혜에게 정상성에 대한 해석을 강요하고, 그녀를 연민, 강박관념 또는 임상적 관심의 대상으로 축소한다. 영혜가 처음에는 고기를 거부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많은 인간 활동에서도 물러난다. 마침내 그녀는 인간성 자체를 거부한다.
2016년,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는 한강 작가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에게 모두 수여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어 소설이다.
첫 번째 부분 "채식주의자"는 여주인공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한 결정을 남편의 눈을 통해 기록한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9쪽) 라고 묘사한다. 항상 인생의 중도에 평안히 자리해온 남편에게 평범함이 그녀의 매력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9, 10쪽)
이상한 꿈 때문에 영혜는 삶에서 고기를 제거하게 된다. 이 급진적인 결정을 내린 유일한 이유는 "꿈을 꿨어요."다. 독자는 심리학자가 되어 영혜의 꿈을 해석하게된다. 꿈을 설명하는 부분은 기울임꼴 글자체로 인쇄되었다. 꿈이야기와 영혜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한 부분 씩 교대로 펼쳐진다. 초현실과 일상의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다.
꿈은 피와 고기로 가득 찬 생생하고 불안한 꿈이다. 피 웅덩이에서 자신의 얼굴이 반사된 것을 보고 얼굴이 이상하면서도 친숙하다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빠진다. 꿈은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영혜의 부모, 남편, 자매조차도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영혜의 결정에 반대하고 고기를 먹도록 강요한다. 소설은 강압에 의해 영혜가 광기에 빠지고 그녀의 독립적 정체성이 점차 파괴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영혜의 남편은 아내의 결정에 대한 당혹감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그녀의 안녕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에게 불편을 끼쳤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대 속에 숨겨진 일상적인 폭력을 드러낸다. 중간 계급의 회사원 남편이 아내를 강간하는 장면 "저항하는 팔을 누르고 바지를 벗길 때는 뜻밖의 흥분을 느꼈다.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낮은 욕설을 뱉어가며"(46쪽), 전직 군 장교인 아버지가 그녀의 입에 고기를 강제로 밀어넣으려는 장면 "장인은 처형을 뿌리치고 탕수육을 아내의 입에 갖다댔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내는 신은소리를 냈다. ~~~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아내의 입술에 장인은 탕수육을 짓이겼다."(59-60쪽)은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보는 듯하다. 자본(남편)과 군대(아버지)가 시민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닌가. 소설은 이 야만적인 폭압에 직면하여 영혜가 광기에 빠지고, 그녀의 독립적 정체성이 점차 파괴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붕괴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로 사회적 관습을 깨는 주제이다.
두 번째 부분 "몽고 반점"은 제2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 영화로 상영되었다.
영혜의 예술가 형부가 이야기를 풀어간다. 1부 "채식주의자"에서 입에 우격다짐으로 탕수육을 밀어넣으려는 아버지에 대항하며 영혜가 자신의 손목을 그었을 때 업고 병원으로 달려간 형부이다. 영혜의 형부가 아내의 눈을 피해 영혜와 함께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작가는 형부의 관점에서 영혜의 몸에 남아있는 몽고 반점을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121쪽.
"갓난아이의 손바닥만한 연푸른 피멍들이 마치 날염한 듯 또렷이 얹혀 있었다."-<내 여자의 열매>
몽고반점의 식물적인 느낌은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성적 욕망에 불을 붙인다. 아내가 아기 지우에게 목욕을 시켜주면서 영혜는 아직도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을 때 형부는 '꽃그림'과 '섹스'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했다. 온 몸에 꽃을 그린 남녀가 섹스하는 이미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드디어 계획 대로 처제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린다. 모델이 된 후배 J의 몸에도 꽃을 그린다.
"목덜미에서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주와 빨강의 반쯤 열린 꽃봉오리들이 어깨와 등으로 흐드러지고, 가느다란 줄기들은 옆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오른쪽 엉덩이의 둔덕에 이르러 자줏빛 꽃은 만개해, 샛노란 암술을 도톰하게 내밀었다. 몽고반점이 있는 왼쪽 엉덩이는 여백으로 남겼다. 대신 그 푸르스름한 점 주변으로 그보다 흐린 연둣빛을 큰 붓으로 깔아, 연한 꽃잎 그림자 같은 반점이 도드라지게 했다." 122쪽.
"그는 J의 성기를 중심으로 선혈 같은 진홍의 거대한 꽃을 그렸다. 마치 J의 음모가 검은 꽃받침처럼, 성기는 꽃술과 같이 보이도록." 150쪽.
"몽고반점"은 두 가지 중요한 장면을 나란히 놓았는데, 비디오 촬영 장면이다. 첫 번째 장면에서 형부는 영혜와 제자 J의 몸에 꽃을 그리고 에로틱한 방식으로 촬영한다. 일종의 포르노그라피. 그 장면은 너무 성적으로 야해서 남자 모델 J가 촬영을 마치기 전에 포기했다. 두 번째 장면에서 형부는 후배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리게하고 영혜와 진짜로 섹스를 한다. 외설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정확한가, 모호한가, 알 수 없는가?
형부와 영혜의 예술작품 촬영 테이프는 동생이 걱정되어 들른 언니 인혜에게 발견되었고, 영상을 돌려 본 인혜는 경악한다. 형부와 처제 영혜의 섹스, 그것은 예술의 한 부분이었을까?
2부 "몽고 반점"의 결말은 영혜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으로 맺는다.
"가까워진 앰블란스의 사이렌, 터져나오는 비명과 탄성, 아이들의 고함, 골목 앞으로 모여드는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그는 들었다. 어려개의 급한 발소리들이 층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178쪽.
남성적 시선의 묘사는 형부가 영혜에게서 초월적인 것을 보는 듯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망을 영혜에게 투사하고 있다. 감정적, 심리적 지배를 포괄하며 주인공의 목소리, 행위력, 심지어 정체성까지 벗겨낸다.
2부 "몽고 반점"에서의 섹스, 섹스는 영혜의 자유에 대한 욕망이 승화한 것일까? 이것은 형부의 폭력일까? 물음표만 계속 달라붙는다. 섹스의 폭력은 책의 화자인 두 남자, 영혜 남편과 인혜 남편에게서 모두 행해진다.
1부 "채식주의자"에서 영혜가 남편에게 강간을 당하고(46쪽), 2부 "몽고 반점"에서는 인혜가 남편에게 강간을 당한다. "며칠 전 처제의 집에 다녀온 밤 그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의 힘으로 어둠 속의 아내를 안았었다. 신혼 때에도 아내에게 느껴본 적 없는 강한 욕방에 스스로 놀라며, 아내 역시 놀라게 했다. '당신 왜 이래요?' 아내의 비음을 듣고 싶지 않아 그는 아내의 입을 막았다."(118쪽)
남편에게 강간당하는 아내들을 누가 구제해 준단 말인가? 사회? 가족? 소설이 제기한 사회적 질문이다. 사실 소설은 작가가 쓴 답이 아니라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세 번째 부분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영혜는 공허한 관습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고, 욕망에서 벗어나고, 피와 연민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애착에서 벗어난다.
인혜가 영혜를 병원에 입원시킨 후 그녀를 돌보는 모습을 따라간다. 인혜는 열심히 일하고 자기희생적인 큰딸이었다.
"영혜는 그녀보다 네살 어렸다. 터울이 제법 져서인지, 그녀들은 자매간에 흔히 볼 수 있는 티격태격하는 갈등없이 자랐다. 손이 거칠던 아버지에게서 차례로 뺨을 맞던 어린시절부터 영혜는 그녀에게 무한히 보살펴야 할, 흡사 모성애와 같은 책임감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188쪽.
뒤늦게 인혜는 자신의 역할이 성숙의 표시가 아니라 비겁함의 표시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음을." 231쪽.
구경꾼, 욕망의 대상 또는 자매의 '광기'를 고발하는 사람이었다. 3부에서 인혜는 영혜와 자연세계 사이의 연결망을 더욱 짙게 하는 반면, 자신은 인간 세계와의 모든 연결을 끊으려고 노력한다. 인혜는 영혜의 정신적, 신체적 안녕을 걱정하는 유일한 사람이며 자신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여동생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채식주의자 영혜가 본격적인 광기에 빠지고, 그녀는 나무가 되어 가고 있다.
"언니, 내가 물구나무 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186쪽, 216쪽.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224쪽.
"내가 요즘 왜 이럴까?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고, 밖에만 나가면...... 햇빛만 보면 옷을 벗고 싶어져." <내 여자의 열매>
영혜는 물과 햇빛 외에는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는데, 이는 폭력에 대한 거부의 물리적 표현이다. 그녀의 나무로서의 이미지는 강렬하며, 작가는 생존, 잔혹함, 자연 세계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인혜는 동생처럼 자신도 영혜가 거부한 것과 동일한 사회적 기대에 의해 형성된 조용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영혜의 반응이 물러나고 벗어나는 반면, 인혜의 반응은 계속 견뎌내는 것이다. 광기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탈출하려는 욕망인가, 아니면 제약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인가?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237쪽.
작가는 이런 감각이 자아가 완전히 붕괴되는 지점까지 강렬하게 묘사한다.
소설은 햇빛에 타오르는 듯한 나무의 강력한 이미지로 끝난다.
"나무 불꽃"에서 인혜는 그 동안의 일을 되돌아 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언제부터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채식주의자들이야 이제는 흔해졌지만 영혜의 경우 특이한 점은 그 동기가 불분명하다" 198쪽.
3남매의 가운데 낀 딸 영혜에 대한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작용됐을 수 있다. 어려서 인혜와 함께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영혜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했다. 그때도 이미 아버지의 폭력은 영혜에게 두려움이었다. 폭력을 밖으로 분출할 수 있었던 남동생과 달리, 아버지의 술국을 끓여주는 큰 딸 인혜와 달리, 영혜는 만만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230쪽.
불분명한 이유, '꿈 때문'이라는 이유를 영혜의 꿈을 재생해보면 알 수 있다. 영혜가 어려서 개에게 물렸을 때 아버지는 개에게 잔인한 복수를 했었다. 처참한 복수룰 당한 개는 영혜의 꿈속으로 찾아들었다. 꿈은 영헤의 인생을 흔들어놓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어. 그 개의 꼬리털을 태워 종아리의 상처에 붙이고, 그 위로 붕대를 친친 감고, 아홉살의 나는 대문간에 나가 서 있어. ~~~ 아버지는 녀석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리면서 두들겨패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 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있어." 62쪽.
"그날 저녁 우리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 먹었어. ~~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63쪽.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는 것은 꿈 때문이 아니다. 꿈 속에 찾아들어온 처참하게 죽은 개 때문이 아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아버지 때문이다. 시간 속에 파묻혀 있던 트라우마가 발현된 것이다. 아버지의 잔인함은 성품일까? 아니, 아버지 역시 베트남 전쟁 참전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유받지 못한 트라우마의 무서운 습격일 것이다. 한 인간을, 가정을,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치유받지 못한 트라우마.
<채식주의자>는 이야기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을 다른 캐릭터가 서술하는 구성이다. 나는 얼마전 단편소설로 여러 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모아 장편소설을 펴낸 작품을 읽었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이미리내 저, 정해영 옮김. (https://brunch.co.kr/@erding89/358)
이처럼 각기 다른 화자에 의해 전개되는 구성은 화자의 편견과 해석을 가져와 주관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화자의 개인적인 관점은 독자역시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게 만든다. 앞선 단편에 대한 반복적인 설명이 다음 편에 이어지는 구성으로 독자는 지나온 책의 앞부분을 상기할 수 있다.
비평가들은 종종 채식주의자를 한국 사회의 위계, 특히 가족적 의무와 가부장적 통제에 대한 묘사에 대한 해설로 규정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소설이 한국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진정한 초점은 폭력, 즉 인간 삶에서 만연한 폭력에 있다고 설명한다.
마틴 보이드(Martin Boyd)의 에세이 "문학 번역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견해: 나보코프 대 보르헤스"의 글(2013/06/28)을 참고한다.
https://dialogos.ca/2013/06/two-opposing-views-of-literary-translation-nabakov-vs-borges/
두 가지 언어로 글을 쓴 나보코프(Vladimir Vladimirovich Nabokov, 1899-1977)는 "가장 서투른 문자 그대로의 번역은 가장 예쁜 의역보다 천 배나 더 유용하다"고 믿었다. 반면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는 번역자는 텍스트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변형하고 풍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르헤스는 "번역은 문명의 더 진보된 단계"라고 주장했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영역본이 소개되자 한국에서는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과 한강의 원본의 차이로 시끌시끌했다. 작가 한강은 번역본을 읽고 승인했지만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는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했다.
원본에 없는 다른 강조적 단어, 원본의 간결한 스타일을 확대했다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우리는 수많은 외국 소설을 읽는다. 원본이 어떤지 알지도 못한 채 우리글로 된 책을 읽는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외국어로 번역된 우리 소설들을 읽는 외국인들이 우리말 원작을 알고 읽는가? 모르고 읽을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원본이 궁금해서 못견딜 지경이라면......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면 되지 않을까?
한강이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관심이 폭등한 <채식주의자>는 엉뚱한 곳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몰아내야한다거나, 안된다 그건 문하작품에 대한 몰이해라는 의견이 팽팽했다. 팽팽하다. 극도로 폭력적이고 잔혹하다,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정도로 문란한 성적 표현이 있다는 설전이 벌어졌다.
2023년에 중학교2학년이던 손녀가 <채식주의자>를 샀다. 그 아이가 나보다 먼저 읽은 후 나는 그 책을 빌려서 읽었다. 내가 읽기에도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우리 손녀가 이 부분을 읽었단 말이지?'이런 마음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곧 내 마음을 다스렸다. <채식주의자> 한 권이 그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큰 자극이 될 수도 있고, 약간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인생이 다만 <채식주의자> 한 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마음을 다스렸다.
연령제한을 한다거나 그런 것은 보호자들이 알아서 하면 될 것이다.
"어머니 자꾸만 같은 꿈을 꾸어요. 내 키가 미루나무만큼 드높게 자라나는 꿈을요. 베란다 천장을 뚫고 윗집 베란다를 지나 ~~~ 터질듯 팽팽한 물관 가득 맑은 물을 퍼올리며, 온 가지를 힘껏 벌리고 가슴으로 하늘을 밀어올리는 거에요. 그렇게 이 집을 떠나는 거에요. 어머니, 밤마다 그 꿈을 꾸어요." <내 여자의 열매>
작가 한강에 대한 우리집 토론.
인간에 대한 집요한 질문.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에 대한 시대정신. 어려서부터 책에 파묻혀 지낸 가정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