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책의 우주>
움베르트 에코 + 장클로드 카리에르, 임효경 역. 열린책들, 2011.
영어제목 <This is Not the End of the Book.>
책의 저자를 움베르트 에코라고 썼지만 에코만 저자라고 할 수는 없다. 내용은 에코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책에 대한 대담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생각이 함께 담겨있다.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담을 정리한 사람은 장필리프 드 토낙이다.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이 세 사람에 대해 알고 보는 것이 좋을 것같다.
움베르트 에코 (Umberto Eco, 1932-2016)
에코를 설명하자면 "움베르트 에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다"고 운을 떼게 된다. 중세학자, 철학자, 기호학자, 문화 비평가, 소설가로, 풍부한 역사적 통찰력과 심오한 철학적 탐구를 혼합한 복잡하고 학식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볼로냐 대학교의 기호학 교수로서 에코는 기호와 상징에 대한 이해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문학 이론, 미디어 연구, 미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총 42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명예 훈장을 받았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 외에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한다. 스마트폰 번역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푸코의 추> <장미의 이름>등 수많은 저서가 있다.
장크로드 카리에르 (Jean-Claude Carrière, 1931-2021)
프랑스 출생으로 소설가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배우. 스페인의 유명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 1900-1983)과의 만남은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들은 벨 드 주르(1967), 은하수(1969),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 등 다수의 영화에서 협업했으며, 이 영화로 최우수 각본상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그들의 협업은 1983년 부뉴엘이 죽을 때까지 거의 20년간 지속되었다.
문학과 역사를 전공한 그는 1994년에는 인도의 제14대 달라이라마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불교의 힘>을 출간했다. <양철북>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시나리오가 유명하다.
장필리프 드 토낙 (Jean-Philippe de Tonnac, 1958- )
프랑스의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출판 편집자. 과학 문학 종교 죽음과 불멸에 대한 신념 등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진행했음. 프랑스의 영적 초현실주의 작가, 시인, 비평가인 르네 도말(René Daumal, 1908-1944)에 대한 전기를 썼다.
자, 그럼 이제 천재들은 어떻게 노는지 살펴보자. 아줌마들이 카페에서 수다를 떨듯이 에코와 카리에르의 책에 대한 수다는 방향도 깊이도 정할 수 없이 광대하고 깊다.
<책의 우주>는 단순한 "책 예찬론"이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에코는 책을 단순한 읽을거리로 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지적 세계의 창문으로 바라본다.
특히,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왜 많은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가? 왜 도서관을 방문하면 묘한 경외감을 느끼는가? 에코는 이러한 독특한 경험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분석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책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자책과 인터넷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손에 쥐고 읽을 때 느끼는 감동은 특별하다.
결국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철학적 헌사처럼 느껴졌다. 에코의 글을 읽다 보면, 책장이 가득 찬 서재 속에서 시간을 잊고 빠져드는 경험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요즘은 e-book을 주로 읽으며 종이책 정리에 고민하는 중이다. <책의 우주>는 10년 넘도록 책꽂이에서 버티던 책이다. 많은 책들이 버려지고 새로 들어오고 했지만 이 책은 그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기가 있는 <푸코의 추>와 <장미의 이름>은 오래 전에 나눔으로 나갔지만 이 책은 누가 욕심내고 가져갈 만하지 않은 책이었다. 책을 어떻게 처분할까라는 큰 과제를 안고 책꽂이를 훑어보는 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에코는 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지적 유산을 보존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종이 위에 기록된 활자는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지적 체험을 제공하고, 새로운 사고를 유발한다. 이 과정에서 책은 단순한 사물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며, 시대를 넘어서는 ‘지식의 유기체’가 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에코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책의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달하는 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단편적이고 즉각적인 정보 소비가 만연한 시대에, 책은 깊이 있는 사고를 유도하고 지적 탐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카리에르는 디지털시대의 기록 저장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한다.
"비디오테이프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색채와 선명도가 변질될 뿐만 아니라, 금방 닳아 버립니다. 씨디롬은 이미 끝났습니다. DVD의 시대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 미래에 우리가 우리의 모든 기계들을 돌릴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모든 시청각적 유산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책은 낮에도 읽을 수 있고, 저녁에는 촛불을 켜놓고 읽을 수 있단 말이죠." 28쪽 카리에르.
우리집은 이미 20여년 전에 비디오 VHS필름을 CD에 옮겨뒀었는데, CD의 수명이 20~30여년이라고 하니 그것도 보존기한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 전에 산 컴퓨터엔 CD를 넣을 곳이 없다. 당연히 그 이전의 플로피 디스켓을 읽을 기계도 없다. 지금은 컴퓨터에 영상으로 저장해놓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유지될 지는 알 수 없다. 손가락 한 마디만한 USB에 많은 것을 저장해두었는데 그것의 수명은 얼마나 긴 것일까? VHS필름, 플로피 디스켓, CD, USB,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작동시킬 기계가 없는 한 저장된 모든 것들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아들 딸 손주들은 CD도 별로 사용하지 않고 그저 스트리밍으로 다 해결하고 있다.
에코는 책을 보관하는 공간인 도서관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도서관을 단순한 자료 보관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지적 공간으로 바라본다. 도서관은 과거의 지식과 현재의 독자를 연결하는 장소이며, 새로운 사고와 탐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특히, 그는 ‘책을 찾아 헤매는 과정 자체가 지적 탐색의 일부’라고 말하며, 도서관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발견한 책들이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디지털 검색 환경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부분으로, 에코는 바로 이 점에서 도서관이 단순한 데이터베이스와 차별화된다고 말한다.
도서관에 대한 에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은 문화적 공간을 지나치게 어지럽게 만들 수 있는 잡동사니 기억들을 우리가 저장해 놓는 일종의 냉동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잡동사니들을 저장해놓음은 그것들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훗날 마음이 내키면 그것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죠." 69쪽 에코.
냉동고? 나의 냉동고 서랍속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지럽다. 나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바라본다. 역시 어지럽다. '언젠가'를 기약하며 넣어둔 냉동고 속 식자재들, '언젠가'을 기약하며 꽂아둔 서가의 책들, '언젠가'는 언제가 될 것인가...
디지털화는 접근성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인쇄에서는 불가능한 동적 콘텐츠, 검색 가능성 및 대화형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디지털 혁명은 책의 미래에 대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종이책이 점차 사라지고, 전자책과 온라인 콘텐츠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하며, 종이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첫째, 종이책은 기술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으며, 소유와 보존이 용이하다. 둘째,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를 넘어, 물리적 존재로서 인간의 감각과 정서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전자책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종이책을 넘어서지 못하는 감각적 경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정교한 도구들이 폐기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 가는 경향이 있어요. 따라서 이것들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의 새로운 사용범과 언어들을 끊임없이 다시 배우고 또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80쪽 카리에르.
"이같은 끊임없는 변화를 따라갈 능력이 없었던 사람은 여러 차례에 걸쳐 데이터를 부분적으로, 혹은 몽땅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지요. 벌써 컴퓨터의 선사 시대에 속하는 최초의 디스켓들은 지금 나오는 그 어떤 컴퓨터로도 읽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타자기로 쳐놨더라면 그것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말이죠." 81쪽 에코.
인쇄된 책은 배터리 수명,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또는 기술적 노후화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도 열어서 읽을 수 있다. 유형적 존재감을 지닌 인쇄된 책은 지속적인 품질을 가지고 있다. 일부는 수세기 동안 살아남아 디지털 형식이 아직 증명하지 못한 회복력으로 시간과 그 파괴를 견뎌냈다.
디지털 시대를 살고있는 현재의 우리들, 디지털화되기 이전에 100여개의 전화번호를 아무 노력도 없이 쉽게 기억하던, 아니, 저절로 기억되던 우리들은 이제 10개의 번호를 외우기도 힘들다. 이전의 우리는 천재였었는데 지금의 우리는 바보가 됐다. 책속의 재미있는 내용을 옮긴다.
"다음 세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컴퓨터들만이 사고를 하는 어떤 사회에서, 미국 국방성은 아직 구구단을 암기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합니다. 이에 군인들은 의견일치를 봅니다. 이 사람은 전쟁이 일어나 전 세계적 정전사태가 일어나게 되는 날 특별히 귀중하게 쓰일 천재라고요." 80쪽 에코.
대담중에 나온 컴퓨터와 두루말이 고문서의 공통점도 눈에 반짝 띤 장면이다. 생각없이 사용하던 '스크롤scroll'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책장을 넘기며 읽는 것은 인쇄책 제본이 시작된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두루마리 형태의 책이었다. 당연히 두루마리를 풀어가면서 다음 내용을 읽는다. '스크롤'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것 아닌가. 다만 옛 두루마리들은 세로글들을 좌우로 펼쳐가며 읽었고, 컴퓨터 화면(터치 스크린)은 주로 아래 위로 스크롤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인큐내뷸러incunabula에 대한 이해.
"이른바 <인큐내뷸러>란 인쇄술이 발명된 후로부터 1500년 12월 31일 밤까지인쇄된 모든 책을 말하지요. 라틴어 <인큐나불라>에서 따온 <인큐내뷸러>란 말은 활자 인쇄본 역사의 <요람기>, 다시 말해서 15세기에 인쇄된 모든 책을 뜻합니다." 143쪽 카리에르.
이 책에서 말하는 책의 '소장품' 이야기는 주로 인큐내뷸러에 대한 소장품을 뜻한다. 감히 일반인들은 소장할 수 없는 책들을 소장한 에코와 카리에르의 대담이다.
<책의 우주>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즉 애서가들의 심리에 대한 탐구이다. 에코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유하기 위해’ 책을 구매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도서 수집가들의 심리를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그는 ‘책을 읽지 않고도 책을 사랑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제시하며, 책을 소유하는 행위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독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이는 책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지적 탐구의 일부로 여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수집가의 강박증이라는 것은 많은 경우 어떤 희귀한 대상을 단순히 입수하고싶은 욕구이지, 그것을 오래 보존하겠다는 욕구는 아닌 것 같아요." 152쪽 카리에르.
"진정한 수집가는 소유보다는, 찾아 헤매는 행위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법이죠. 사냥꾼의 일차적인 관심은 사냥 그 자체이듯 말이에요. 물론 잡은 동물들로 요리를 하거나 맛보는 것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 다음의 일이죠." 153쪽 에코.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널리 보급된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며, 실제로 책을 읽기보다 책을 모으는 데 더 큰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물질적 집착이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가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중고서점 알라딘이나 온라인 예스24에 중고책으로 판매할 수 없이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나의 책들에게 가치를 더해주는 반가운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그 내용이나 판본의 희귀성보다는, 예를 들어 어떤 미지의 독자가 텍스트에 때때로 다양한 색깔들로 밑줄을 긋는다든지 여백에다 메모를 적는다든지 하면서 남겨놓은 흔적들 때문에 모종의 가치를 얻게 된 책들을 가지고 있지요..., ~~~ 어떤 고서에 제임스 조이스가 직접 메모를 남겨 놓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책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갖게 되겠습니까?" 125쪽 에코.
나는 하드커버 책들은 10년이 넘은 책이라도 전혀 읽지않은 새책처럼 온전히 보관하고 있다. 읽기 불편하여 독서대에 올려놓고 옆에 놓은 공책에 메모를 해가며 얌전히 읽는다. 하드커버가 아닌 책들은 밑줄긋고 여백에 메모하며 흔적을 많이 남긴다. 내가 흔적을 남긴 책들의 가치는...? 나는 제임스 조이스가 아니니까...
에코와 카리에르는 본인이 글을 쓰는 작가이면서 책의 수집가이며 장서가이다. 글과 책을 이어주는 출판, 이들의 출판에 대한 대담은 어떤 내용일까? <푸코의 추/푸코의 진자>를 읽은 독자는 "배니티 프레스"를 기억할 것이다. "vanity press", 허영의 출판사라고 번역하면 될까. <책의 우주>에서 두 거인의 대담에 또 배티티 프레스가 등장한다. 현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런 식으로 출판된 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왜 이렇게 씁쓸한 기분이 들까.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 부분을 읽으며 출간에 대한 허망함을 느꼈다. 물론 이 상황이 모든 출판을 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에 전시회 작품 카달로그 대신에 책으로 출판한 것은 자비출판이었고, 출판사에서 브런치 글을 보고 출판제안 연락이 와서 출판한 것도 있다. 작년에 출간한 책은 출판사에서 텀블벅 펀딩으로 출판했다.
토낙은 두 장서가에게 죽은 후에 책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는다.
"내 아내와 두 딸애가 결정하겠죠. 아마 어떤 책들은 유언을 통해 내 친구 중의 누구, 누구에게 줄 것입니다. 사후에 주는 선물로서, 어떤 징표로서, 어떤 연결고리로서, 그가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354쪽 카리에르.
"나는 물론 그것이 흩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우리 가족이 그걸 어떤 공공 도서관에 기증하든지, 혹은 어떤 경매를 통해 팔 수 있겠죠. 이 경우, 예를 들면 어떤 대학교 같은 곳으로 가서, 컬렉션 전체가 통째로 가야 합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것 뿐이에요." 354쪽 에코.
책장의 책을 죽기 전에 처분(?)해야 할 가장 많은 물건으로 여기고 고심하는 나는 어쩌나... 내 생전에는 귀한 보물이지만 내가 죽으면 재활용터의 폐지로 던져질 나의 책들의 운명이 아닌가. 카리에르의 소장품처럼 친구에게 유물로 줄만한 가치가 있을지, 에코처럼 통째로 기증할만한 가치가 있을지...
<책의 우주>는 단순한 책 예찬론이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분석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사들이는 이유, 그리고 책을 모으는 것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지적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는 점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또한, 도서관에 대한 에코의 통찰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도서관을 단순한 지식 보관소로 생각하기 쉽지만, 에코는 도서관이야말로 우연한 발견과 지적 탐험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책과 만나는 경험이 더욱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코는 책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담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책이 여전히 가치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가 왜 책을 읽고, 모으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고, 새로운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에코가 말하는 ‘책의 우주’는 단순한 도서 목록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세계를 확장하는 끝없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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