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독자와 작가들을 나는 다 '맞구독'하지 못하고 있다.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있다. '맞구독'이 아니어도 내 브런치를 방문하고 내 글을 읽는 분들의 흔적이 남은 브런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분들의 글을 읽고 있다. 다만, 방문 인증같은 '라이킷'을 빠짐없이 누르지는 않지만.
내가 '라이킷'을 누른다는 것은 그 글을 완독했음을 뜻한다. 대충 훑어본 글, 완독하지 않은 글에 라이킷을 누를 수는 없다. 일일히 댓글을 쓰지 못해서 미안할 때도 있다.
어떤 작가들은 구독자가 수 천명이고, 매번 발행하는 글마다 라이킷이 수 백개이다. 경이로운 일이다. 나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난 소소한 지금의 구독자 수를 감당하기도 바쁘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허수의 구독자들은 구독해제를 해주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 나의 구독자들 중에는 이미 브런치를 떠난 분들도 많다. 나는 그런 허수의 구독자 수가 부담스럽다.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는 내가 조정할 수가 있지만, 나를 구독하는 분들은 내가 어쩔 수가 없다.
내심 정하기로는 일년이 훨씬 넘도록 브런치 활동을 하지 않는 작가들을 나는 구독해제하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들인데... 그 분들이 언젠가 다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 나는 또 찾아가고 구독할 것이다.
현재 브런치스토리에 두 개의 연재를 하고 있다.
월, 금요일 "경계, 누가 이 선을 그었을까?" 브런치북 연재와
수요일 "그림 속 철학, 철학 속 그림" 브런치북 맴버십작가 연재다.
글 발행을 한 달 훌쩍 넘긴 적도 있었고, 2주일이 지나 '브런치'에서 알림이 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의도로 '연재'를 택했다. 연재는 약속이니 지켜야 할 일이다.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두꺼운 책은 독서대에 올려놓고 읽는 처지다. 요즘은 큰 글자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내가 읽고싶은 책이 모두 다 큰 글자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e-book을 구매해서 읽고 있으나 글자를 크게 하니 정해진 화면에 들어가는 활자량이 적어서 스크롤을 바쁘게 해야한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e-book에 익숙하지 않다. 종이책과 달리 불편한 점도 있다. 종이책을 읽고나면 어느 내용이 몇페이지 어디쯤에 있는지 또렷이 기억나고, 되짚어 다시 읽기가 편하다. 그러나 e-book에서는 이게 쉽지 않다. 하이라이트나 메모를 할 수 있는 것은 편리하지만 되짚어 읽기는 불편하다. 리뷰를 쓰면서 인용할 때 종이책처럼 정확한 위치를 쓰기도 어렵다.
생활의 여러 일상중에 읽고 쓰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돼버린 나로서는 계속 읽고 쓸 것이다. 쓰는 것이 즐거운데 input이 없이 output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 읽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500쪽 짜리 책에서 단 한 줄을 인용하기 위해서 500쪽을 다 읽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까? 어쨌든 눈이 보일 때까지는 계속 읽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글을 쓸 것이다.
연재하는 요일을 빼고 일주일중에 비어있는 날은 화, 목, 토, 일요일이다.
토요일은 연재를 제외한 일상의 에세이와 미술 이야기, 책 리뷰를 쓰면 발행할 것이다. 매주 그렇게 하지는 못할테지만.
한 가지 더 마음 먹기로는 비어있는 요일중에 하루를 정하여 내 글에 '라이킷' 흔적을 남기신 분들, 댓글을 남기신 분들의 브런치를 찾아가 그 분들의 발행글들을 읽고, 나도 감사의 마음을 표하려고 한다.
멤버십작가 신청에 몇 가지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신청을 했고, 멤버십작가가 되었다. '작가를 구독'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구독'하는 제도가 더 좋을 것같다. 그런 뜻에서 지금의 '응원하기'가 더 좋다. 왜냐면 구독하는 멤버십작가의 모든 글들이 모두다 가치있는 것도 아니고, 취향에 맞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글'에 공감도 가고, 가치도 인정되고, 독서취향에 맞기도 할 때 값을 지불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반 발행글들은 기존대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그림 속 철학, 철학 속 그림"은 멤버십 글로 정하여 발행한다. 그냥 읽기로는 재미도 없고, 길고 지루한 글이니 괜히 멤버십 구독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다만, 관심있고, 흥미를 느끼고, 필요에 의해 읽는 독자들은 글값을 지불해도 괜찮을 것같아서 멤버십글로 발행한다. 읽는 값을 지불하면 좀더 집중하여 읽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비록 단 한 명이라도.
나의 발행글들 중에 “Daum”에 노출되어 조회수 10만을 넘은 것은 제외하고(이것은 비정상이니까), 조회수가 가장 많은 것은 매거진 "책을 읽다"에 모여있는 책리뷰 글들이다. 다음 포털싸이트에 뜬 것도 아니다. 다른 작가들의 글 조회수를 모르니 비교할 수는 없으나, 내 글 자체를 비교할 때 책리뷰글이 가장 조회수가 높다. 라이킷 수는 빈약하지만 미셀 푸코 책의 경우 1만회 정도된다. 그 길고 딱딱하고 지루한 글에. 그외 책리뷰글도 조회수 수 천을 기록한다.
물론 열어봤다고 다 읽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독자는 열었다가 닫았고, 어떤 독자는 반쯤 읽다가 옮겨갔고, 몇몇(?)은 끝까지 읽고 단 한 줄이라도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그 몇몇(?)이면 족하다. 나는 그러한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하여 열심히 쓴다.
고백하건데, 가끔 브런치의 글들을 읽으며 가법다고 느끼며 실망한 적도 있었다. 육아, 퇴직, 직장생활, 시집살이, 이혼, 나는 어느 글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니 관심이 없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글들을 한 때 '가벼운 글'로 여겼던 것은 큰 잘못이라고 뉘우친다. 독자인 나에겐 아니지만, 글쓴 작가에게는 절실한 문제이고, 그런 글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는 세태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게 됐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 글을 쓴 작가에겐 중요한 치유의 방법이기도 할테니까. 그것이 글의 역할이 아니던가!
글이란 무엇인가? 타인에게는 '당신의 일기노트에나 쓰세요'하는 글들이 그 작가에게는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란 것을 이해하게 됐다. 일찍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어느 글이든 다 그 글의 사연을 깨닫고 이해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이것이 바로 나이값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이란 그렇게 다양한 것을!
횡설수설하는 김에 브런치에 대한 불평도 해본다.
"키워드" 고르기가 너무 불편하다. 키워드는 내가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것을 써야하는데, 브런치에서는 쓰는 것이 아니라 '고르기'이다. 글을 발행할 때 제대로 맞는 키워드가 없어서 속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래 전에 브런치 운영팀에게 '키워드를 작가가 자유롭게 쓰도록 해달라'고 연락을 했고, '알았다(?)'는 답도 받았지만 오늘도 그대로이다.
'브런치북'과 '매거진‘의 '좋아요' 누르기에도 허점이 보인다.
나의 경우에, 작가의 브런치에 가면 전체글이 나타나고, 그 중에서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퇴장한다. 그 작가의 브런치북에 별도로 들어가거나, 매거진에 별도로 들어가서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한 그 안의 글에 아무리 '좋아요'를 눌러도 정작 '브런치북'이나 '매거진' 표지에는 '좋아요'가 안 눌러진 것이다. 난 이것도 좀 불편하다.
주말, 떠들석한 카페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섞여앉아, 브런치에 대해 두서없이 횡설수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