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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14. 2020

폴 클리 - 정원의 회상

비전문가의 그림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투명하여 다 들여다 볼 수 있음에도, 가로막은 두께가 아주 얇음에도,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쪽과 저쪽의 세상은 어찌 그리도 다른지.
실내에 꽉 들어찬 모든 것들이 지니지 못한 생명력을 정원은 넘치도록 가득 지니고있다. 그곳에서 생기를 호흡하고나면 나는 서서히 다시 살아난다.
정원은 세상살이의 멀미에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시켜주고, 때로 얼룩진 영혼을 말끔히 씻어주기도 한다.
창가에 서서 정원을 한참동안 내다보다가 문득 클리의 그림 <정원의 회상>이 떠올랐다.

클리의 작품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그 그림을 마치 내 자신이 그린 것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내가 정원을 그린다면 아마도 그 그림과 똑 같은 그림을 그리리라. 그림에 가득히 들어선 방들, 그 칸칸 마다에 가득히 쌓여있을 어떤 기억들! 각기 다른 추억을 담아둔 방들이 빼곡히 들어선 우리집 정원에서 나의 소중한 옛 기억들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www.archive.com에서 가져옴

Paul Klee

Remembrance of a Garden 1914, Watercolor on linen paper,

25.2 x 21.5 cm;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usseldorf


정원을 한칸 한칸 분할하여 숱한 방으로 나눈다. 이미 사라진 것들,아직도 살아있는 것들, 땅속에 묻혀진 것들, 하늘로 향하여 발돋움하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을 그 방에 차곡차곡 담아둔다. 그 방들은 금방내 꽉 차서 더 이상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게된다. 평면의 방만으로는 부족하여 나는 다시 그 위로 또 방을 만든다. 다시 또 위로, 또 위로…

정원은 방으로 가득찬다. 그 방들엔 숱한 기억들이 가득가득 채워진다. 나는 앞뒤로 양옆으로 헤매고 다니며 사춘기에 감춰둔 파란 하늘조각을 찾는다. 위 아래층으로 오르내리며 고이 간직해둔 내 아이들의 배냇저고리를 찾는다.
어느 모퉁이에선가 클리를 만난다!
바그너와 모짜르트에 심취했던 클리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튀니지 여행중 다이어리에 꼼꼼히 기록한 클리의 메모를 슬쩍 들여다본다. 클리는 <이제야 화가가 되었다(now,at last, a painter)>고 고백한다.

클리의 초기 작품은 어두운 판화가 많은데, 1914년 튜니지를 여행하며 그 자신이 “나는 색에 사로잡혔다”고 한 것처럼 그 후로는 섬세한 색의 조화를 보여준다. 독일에서 손꼽히는 예술학교 바우 하우스(Bauhaus)에서 10여년간 교사 생활을 한 클리의 그림자와 나는 여러 번 만났었다.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러 렌바흐 하우스에 갈 때면 나는 꼭 그 곁의 바우하우스 전시회도 들여다보곤 했었다.
클리가 걷던 거리,클리의 예술혼을 불러일으켰던 뮌헨의 거리거리들. 아,다시 뮌헨에 가고싶다. 잉글리쉬 가르텐(EnglishGarden)에 차곡히 쌓아둔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으며 나보다 100년 앞서 클리가 쌓아둔 정원의 기억들도 엿볼 수 있으리라, 뮌헨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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