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물질의 색 - 물, 하늘
1부 자연과 물질의 색
2화 블루 Blue - 깊이의 색, 거리의 색
시에나가 손에 묻는 흙의 색이었다면, 블루는 손에 잡히지 않는 색이다.
땅의 색은 아래로 가라앉고, 파랑은 위로 열린다. 우리는 발로 흙을 딛고 살지만, 눈은 언제나 하늘을 향한다. 파랑은 처음부터 ‘거리’를 품은 색이었다.
우리 곁에 파랑은 늘 있었지만 오래도록 그것을 "파란색"이라 부르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바다색을 "포도주처럼 검은 색"이라 표현했다. 아마도 인간은 너무 멀리 있는 색을 한동안 이름 붙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 멀어 보이는 색 역시 땅속에서 시작되었다. 코발트 광석은 어둡고 투박한 돌에 불과하지만, 불을 만나면 맑은 푸름을 드러낸다. 하늘을 닮은 색이 사실은 지하에서 채굴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파랑은 언제나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서 태어난다. 땅속의 광물이 가마를 지나 유약 아래에 자리 잡고, 그 푸름은 오랜 시간 도자기의 표면을 떠받친다.
금속 원소인 코발트를 산화알루미늄과 결합해 만든 안료이다. 보랏빛이 거의 없는 맑고 선명하며 차가운 정통 파란색이다. 울트라마린보다 훨씬 차가운 느낌이며, 불투명하고 은폐력이 좋다.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의 청화백자나 고대 유리 채색에 사용되었다. 독성이 있어 다룰 때 주의가 필요했지만, 울트라마린보다 저렴하고 안정적이라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에서 하늘을 그릴 때 애용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채, 73X92Cm. MoMA(현대미술관), 뉴욕, 미국
코발트 블루 특유의 선명하고 깨끗한 발색 덕분에, 노란색 별빛과 강렬한 보색 대비를 이루며 밤하늘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코발트는 신성한 색이다. 사물에 분위기를 불어넣는 데 이보다 더 아름다운 색은 없다."라고 말했다.(1888.12.28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Letter 729)중에서). 고흐는 코발트 블루가 단순히 파란색이 아니라, 사물 사이의 공간감이나 공기의 흐름(atmosphere)을 표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약간의 보랏빛이 감도는 깊고 따스하며 투명한 파란색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나는 보석 청람석(Lapis Lazuli)을 갈아 만든 천연 안료이다. '바다(Marine) 너머(Ultra)'라는 이름처럼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수입해 와야 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금보다 비쌌던 가격 때문에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서 성모 마리아의 옷을 칠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이후에 프랑스에서 저렴한 합성 안료(프렌치 울트라마린)가 발명되면서 대중화되었다.
왼쪽 - 조바니 바티스타 살비 다 사소페라토 <기도하는 성모마리아> 1640-1650. 캔버스에 유채, 73X58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영국
오른쪽 -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44.5X39Cm. 마우리츠하우스, 헤이그, 네덜란드.
소녀가 머리에 두른 파란색 터번이 천연 울트라마린으로 채색되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는 깊고 영롱한 푸른빛을 보여준다. 페르메이르는 비싼 안료를 사느라 큰 빚을 질 정도였지만, 덕분에 이 작품은 푸른색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이 되었다.
르누아르가 코발트 블루에서 새롭고 더 저렴한 인공 울트라마린으로 색상을 바꾸는 과정을 그림 한 장에서 볼 수 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우산> 1881-1886. 캔버스에 유채, 180.3X114.9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영국.
르누아르는 두 단계 사이에서 색채 구성을 상당히 바꾼 것으로 보인다. 단면 분석 결과, 초기 단계에서는 1802년부터 사용 가능해진 코발트 블루만을 사용했는데, 이는 1870년대와 1880년대 초에 그가 즐겨 사용하던 색이었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는 1870년대에 사용되기 시작한 인공 울트라마린만을 사용했다. 오른쪽 여인은 코발트 블루, 왼쪽 여인과 우산은 울트라마린.
파랑은 때때로 도시가 된다. 포르투갈에서는 그 색이 타일이 되어 벽을 덮는다. 바다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바다를 벽에 붙였다. 바로 아줄레주(Azulejo)다. 이 색은 바다에서 왔지만, 결국 도시의 시간 속에 머문다.
햇빛을 받은 타일의 푸름은 바다를 닮았지만, 동시에 벽이라는 일상의 피부에 붙어 있다. 햇빛을 받은 타일은 눈부시게 반짝이고, 그늘에서는 차분히 가라앉는다. 파랑은 더 이상 멀리 있는 색이 아니다. 골목과 광장, 성당의 표면에서 일상의 배경이 된다. 포르투갈의 아줄레주는 코발트 블루를 사용하여 중국 청화백자의 미감을 타일로 옮겨온 예술이다.
포르투갈의 상징인 아줄레주에 사용되는 파란색은 주로 코발트 블루(Cobalt Blue) 계열이다. 울트라마린(청람석)이 열에 약한 반면, 코발트는 열에 매우 강해 도자기와 타일 채색에 가장 적합한 푸른 안료였다. 또한 코발트는 무역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서 훨씬 실용적이었다.
화가들은 코발트 안료의 농도를 조절하여 옅은 하늘색부터 아주 짙은 남색까지 다양한 층위의 파란색을 표현했다. 타일 위에 정교한 풍경화나 역사적 장면을 그려냈다.
신트라 국립궁전의 문장 전시실
10세기 아랍 지배 시대에 무어인 총독의 거주지였던 신트라 국립궁전은 이후 약 8세기 동안 포르투갈 왕들의 거주지였다. 궁전의 벽은 아줄레주 타일로 덮여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라졌다. 유명한 문장실은 18세기에 제작된 아줄레주 타일 패널로 장식되어 있다.
카펠라 다스 알마스 데 산타 카타리나
포르투갈의 수채화 화가이자 세라믹 아티스트 에두아르도 레이테가 그린 이 타일들은 리스본의 베브 라메고 도자기 공장에서 제작되었다. 360m² 면적에 걸쳐 15,947개의 타일로 이루어진 타일들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성 카타리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블루는 우울의 색이지만, 인도의 조드푸르에서 블루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삶을 지켜내는 가장 시원한 방패이자, 신에게 닿으려는 간절한 염원의 빛깔이다. 13세기에 오아시스 마을로 형성된 인도의 조드푸르다. 구시가지의 집들은 모두 푸르게 칠해져 있다. 뜨거운 햇빛 속에서 파랑은 시원한 그림자를 만든다.
조드푸르의 '블루'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더 깊은 의미를 담고있다. 계급과 생존의 색이기도 하다.
조드푸르는 '선 시티(Sun City)'라 불릴 만큼 강렬한 태양 아래 있다. 주민들은 열기를 식히고 해충(흰개미)을 쫓기 위해 구리에 황산염을 섞은 푸른 도료를 벽에 발랐다. 블루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뜨거움에 맞서는 차가운 생존의 기술이었다.
비현실적인 파란색 속에서 좁고 복잡한 미로를 걷다보면 마치 바닷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딴 세상'에 와있는 듯한 신비로움에 현실을 떠난 것같은 평온함을 준다.
조드푸르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구시가지 곳곳에 자리한 푸른빛 건물들이다. 전설에 따르면 조드푸르의 사제 계급인 브라만들이 자신들의 계급을 나타내고 무더운 여름철에 집을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집을 파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날 미로처럼 얽힌 구시가지 거리는 사진작가들의 천국으로, 사막을 배경으로 선명한 푸른색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색채의 향연을 선사한다.
어떤 도시는 하늘과 같은 색을 입는다. 모로코 북부의 셰프샤우엔이 그렇다. 골목과 계단, 창문과 벽이 모두 파란색이다. 계곡에 흐르는 푸른 물처럼 보인다.
셰프샤우엔의 파란 색은 땅 위를 걷고 있지만 시선은 늘 하늘에 닿아 있기를 바랐던 구도자들의 색이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숨어든 이들을 품어준 고요하고 치유적인 푸른 그늘이다. 셰프샤우엔의 블루는 조드푸르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파스텔 톤'을 띤다. 하늘이 파란 색으로 고정되지 않은 것처럼.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배경이 된 도시 셰프샤우엔.
시에나가 흙의 색으로 도시와 연결된다면, 셰프샤우엔은 도시 전체를 뒤덮은 색감 그 자체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이 도시를 '모로코의 파란 진주'라 부른다. 15세기 유대인 정착민들이 하늘과 천국을 상징하기 위해 집과 거리를 온통 파란색으로 칠하기 시작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도의 조드푸르가 뜨거운 대지에 맞서는 강인하고 생존적인 블루라면, 모로코의 셰프샤우엔은 험준한 산맥 속에서 천국을 꿈꾸는 섬세하고 영적인 블루다.
20세기에 이르러 블루는 더 이상 풍경을 설명하는 색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된다. 이브 클랭(Yves Kjein, 1928-1962)은 파랑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색을 대상에서 해방시켰다. 그에게 파랑은 바다나 하늘의 재현이 아니라, 존재의 공간이었다. 파랑은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간이 된다. 파랑 자체가 공간이 된 사례다.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이 탄생시킨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는 지중해 니스의 깊은 바다색에서 영감을 얻었다.
IKB의 핵심 성분 - 합성 울트라마린
이브 클랭은 천연 울트라마린의 깊고 신비로운 푸른빛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일반적인 안료 고정제 린시드기름(linseed oil)은 안료 특유의 광택이 죽고 색이 어두워진다. 클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자들과 협업하여 '로도파스(Rhodopas M60A)'라는 투명한 합성수지를 고정제로 사용했다. 특수 수지 덕분에 안료 가루가 캔버스 위에서 본연의 벨벳 같은 질감과 강렬한 채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떠 있는 듯한 효과를 낸다.
코발트 블루와의 차이
코발트 블루가 맑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면, IKB(울트라마린 기반)는 약간의 보랏빛이 감도는 훨씬 깊고 어두우며 영성적인 느낌을 준다. 코발트 블루가 자연의 '하늘'을 묘사하는 데 주로 쓰였다면, IKB는 형체가 없는 '무한함'이나 '허공(Void)'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클랭은 자신의 예술적 영혼인 '블루'를 구현하기 위해 치명적인 독성 물질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한 건강 악화로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브 클랭 비너스 프로젝트 2017.12.26. –2018.1.28. 갤러리 그무르진스카, 쥬리히, 스위스
이브 클랭 탄생 90주년 기념 전시회 2018.7.18.-2018.10.7. 블렌하임 궁전, 옥스퍼드셔, 영국
왕실 벽에 이브 클랭의 인체측정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모든 블루가 불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쪽빛은 식물에서 얻는 남색이다. 발효와 기다림을 거쳐 섬유 속으로 스며드는 이 색은 코발트처럼 선명하게 빛나지 않는다. 대신 깊어진다. 코발트가 표면에서 빛을 반사한다면, 쪽빛은 섬유 속으로 스며들어 빛을 머금는다. 하나는 낮하늘의 푸름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밤의 깊이에 가깝다.
낮하늘과 밤하늘이 서로 다른 감각을 품듯, 광물의 파랑과 식물의 남색은 다른 시간을 품는다. 하나는 눈을 멀리 데려가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안으로 데려간다. 물질의 차이이면서 동시에 감각의 차이다. 광물의 블루가 거리와 밝음을 만든다면, 식물의 남색은 내면과 침잠을 만든다.
사진 출처;국가유산진흥원
"남(藍)"이라는 말은 단순한 식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藍)의 색소를 가지고 있는 파란색의 총칭이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의 문헌에서는 남(藍)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전통적으로 한글 용어로는 쪽이나 쪽물이라고 불렸다. 쪽은 인도, 이집트를 시작으로 전파되어 중국, 한국, 일본으로 건너왔다. 기원전 3세기 중국 문헌 중 순자가 저술한 "권학편(勸學篇)"에 ‘청출어람(靑出於藍)’[청(靑)은 남(藍)에서 나와 남(藍)보다 푸르다 ;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를 가리키는 뜻]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쪽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환기에게 파랑은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하늘과 동해의 바다를 떠올리며 푸른 점을 찍었다. “우리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파랑은 풍경의 색이면서 동시에 그리움의 색이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그는 거대한 화면을 푸른 점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점들은 별이 되고, 친구의 기억이 되고, 땅의 울림이 된다. 반복되는 점의 리듬은 마치 소리의 파장처럼 번진다. 화면은 점으로 채워지지만, 동시에 마음은 비워진다.
그의 파랑은 더 이상 하늘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천지인(天地人)이 한 화면 안에서 호흡하는 우주다. 광물의 파랑이 표면에 머물고, 식물의 남색이 섬유 속으로 스며든다면, 김환기의 파랑은 공간 전체를 우주로 확장시킨다.
(공정이용(fair use) 작품입니다. 아래 url을 클릭하여 감상하세요.)
조선의 청화백자와 네덜란드의 델프트 블루는 모두 코발트를 품고 있다. 흰 바탕 위에 푸른 무늬를 올린다는 점에서 두 세계는 닮아 있다. 그러나 같은 광물에서 태어났지만 한쪽은 침묵에 가깝고, 다른 한쪽은 표면의 리듬에 가깝다. 색은 물질보다 문화의 호흡에 따라 다른 색이 된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호흡을 지닌다. 다른 숨결을 지닌다. 청화백자의 푸른 선은 유약 아래에서 약간 번지며 살아 있고, 여백과 함께 호흡한다. 붓의 속도와 농담이 남아있고, 여백이 색과 함께 숨쉰다. 선은 장식이 아니라 기운이 된다. 반면 델프트 블루는 선명하고 장식적이다. 패턴과 윤곽이 또렷하고, 색은 표면 위에서 정돈된 리듬을 만든다.
파랑은 물질보다 태도의 차이에서 더 달라진다. 반복되는 패턴과 분명한 윤곽, 표면 위에 또렷하게 얹힌 색. 같은 광물이지만, 한쪽은 숨을 쉬고 다른 한쪽은 정돈된다. 파랑은 이렇게 문화에 따라 다른 리듬을 얻는다.
왼쪽-백자청화 송학녹문 필통 조선, 19세기 백토(白土) 높이 11.8cm, 입지름 9.3cm, 굽지름 9.5cm
가운데-백자청화 모란문 대합 조선, 1852년 백토(白土) 높이 29.0cm, 입지름 25.0cm, 굽지름 10.1cm
오른쪽-백자청화 매화문 육각향로 조선, 19세기 백토(白土) 높이 14.3cm, 입지름 15.0cm, 굽지름 14.6cm, 몸지름 21.7cm
델프트에서 제작된 도자기들. 조롱박 모양 꽃병(1665-75), 손종(1770), 다니엘 마로 꽃병(1690), 담배 항아리(1800), 뚜껑 있는 꽃병(1764-88) 등이 포함되어 있다.
https://fineart-restoration.co.uk/guides-and-advice/delft-blue-an-expert-guide-to-dutch-ceramics/
델프트 도자기가 17세기 델프트의 시각적, 경제적 풍요를 상징한다면, 화가 페르메이르는 그 풍요 속의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낸 화가로, 두 분야는 델프트라는 도시의 문화를 함께 완성했다.
블루는 늘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은 닿을 수 없고, 바다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깊이가 우리 안에서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파랑은 바깥의 색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색이다.
코발트는 불을 지나 푸름을 얻었고, 청화와 델프트는 다른 문화의 리듬을 만들었다. 아줄레주는 파랑을 도시의 벽에 붙였고, 쪽은 남색을 섬유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현대에 이르러 블루는 마침내 존재와 우주의 언어가 되었다.
시에나가 시간을 붙잡았다면, 블루는 우리를 놓아 보낸다. 멀어짐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깊이를 만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다시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다음 색은 초록이다. 파랑이 거리와 깊이의 색이었다면, 초록은 숨과 생명의 색이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멀어졌던 시선은 다시 나무와 풀, 살아 있는 것들 사이로 돌아온다.
다음 글에서는〈그린 Green — 살아 있는 것들의 색〉을 이야기하려 한다.
1부 자연과 물질의 색
3화. 그린 Green - 생명·정원·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