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 살아있는 것들의 색

자연과 물질의 색 - 숲,나무

by morgen

1부 자연과 물질의 색

3화 그린 Green - 살아있는 것들의 색


파랑이 우리를 멀리 데려가는 색이라면, 초록은 우리를 다시 살아 있는 것들 곁으로 데려오는 색이다.


초록은 어디에서 오는가

시에나가 땅의 색이었다면, 블루는 거리와 깊이의 색이었다.

초록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다. 초록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색이다. 동시에 가장 많은 생명이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초록은 땅에서 자라지만 하늘의 빛을 먹고 살아간다. 초록은 언제나 살아 있는 색이다. 우리가 숲을 바라볼 때 느끼는 평온함은 단순한 풍경의 감상이 아니다. 초록은 생명이 숨 쉬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초록은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정중앙에서 가장 균형 잡힌 채 우리를 지켜본다. 식물이 생존을 위해 광합성을 하면서도 정작 초록색 빛만은 흡수하지 않고 우리 눈으로 밀어내 준 덕분에, 우리는 일상 어디에서나 이 평온한 색을 마주할 수 있다.

사람의 눈은 초록을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고 한다. 수많은 색 중에서 인간의 시각이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는 파장도 바로 초록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는 오랜 세월 숲과 풀 사이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초록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단순히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 있는 세계의 호흡을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라카이트(Malachite green)

말라카이트는 염기성 탄산구리 광물이다. 다양한 색상을 띠고, 비교적 영구적인 안료이다. 산과 열에 민감하고 이집트 무덤 벽화에서 발견된다. 유럽 회화에서는 주로 15세기와 16세기에 중요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몬테팔코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그림에는 완만한 언덕과 나무들이 이어지는 풍경이 등장한다.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Pietro Vanucci, 1446또1452-1523)의 그림이다.

페루지노의 풍경은 언제나 부드럽고 조용하다. 하늘은 투명하게 열려 있고 언덕은 낮은 곡선으로 이어진다. 그 위에 펼쳐진 초록은 눈을 쉬게 한다(녹토 earth green).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신의 질서가 드러나는 세계였다.

화살표1 녹색셔츠 - 공작석(말라카이트 malachite). 화살표2 배경 - 녹사, 녹토(earth green).

피에트로 페루지노 <예수탄생> 1503, 프레스코화, 630×480cm. 산 프란체스코 성당(정면 오른쪽 벽), 몬테팔코, 이탈리아.

페루지노의 초록은 단순한 풍경의 색이 아니라 조화와 평온의 색이 된다. 그의 제자였던 라파엘로가 훗날 보여주는 균형 잡힌 세계 역시 어쩌면 이 조용한 초록의 풍경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광물에서 태어난 초록 - 베르디그리스(Verdigris)

초록이 자연의 풀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회화의 역사에서 초록은 오랫동안 금속의 색이었다. 구리에서 만들어지는 안료 베르디그리스는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걸쳐 가장 많이 사용했던 초록 안료였다. 구리판 위에 식초 증기를 쐬어 만들어지는 이 안료는 투명하고 차가운 초록빛을 낸다. 19세기까지 가장 선명한 녹색을 자랑했지만 독성이 강한 위험성이 있다.

아름다운 색만큼이나 변덕스러운 안료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색이 어두워지거나 갈색으로 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종종 초록을 만들기 위해 여러 색을 겹쳐 칠했다. 푸른색 위에 노란색을 얹어 자연의 잎과 풀에 가까운 색을 찾으려 했다. 화가들은 늘 더 안정적인 초록을 찾고 있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비리디언(viridian)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화가들은 변하지 않는 깊은 초록을 얻을 수 있었다.

초록은 그렇게 혼합 속에서 태어나는 색이었다.

베르디그리스는 밝고 산뜻한 초록으로 주로 잎과 풀에 사용했다. 비리디안은 깊고 차가운 청록으로 깊은 그림자를 칠할 때 사용했다.


세잔 - 초록으로 세계를 다시 만들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화가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풍경화에서 초록은 나무와 풀을 묘사하기 위한 색이었다. 그러나 세잔에게 초록은 단순한 자연의 색이 아니었다.

세잔은 프로방스의 산과 숲을 그리면서 색을 작은 면으로 나누어 쌓아 올렸다. 붓질 하나하나는 작은 색의 판처럼 화면 위에 놓인다. 판들이 모여 언덕이 되고 나무가 되고 하늘이 된다. 세잔의 풍경에서는 나무와 산이 단순히 묘사된 것이 아니라 색의 면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세계를 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세잔의 풍경에서 초록은 자연의 표면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가 된다. 풀과 나무의 색이었던 초록은 그의 손에서 공간을 만드는 색으로 변한다. 화면 속에서 초록은 파랑과 노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며 산의 부피를 만들고 공기의 깊이를 만든다. 세잔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색으로 다시 만들어진 세계라는 느낌이다.

폴 세잔 <큰 소나무가 있는 생트빅투아르산> 1887. 캔버스에 유채, 67x92cm. 코톨도 갤러리, 런던, 영국


세잔 이후의 화가들에게 초록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의 색이 아니었다. 공간을 조직하고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훗날 입체주의 화가들이 자연을 기하학적 구조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조용한 초록의 혁명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모네 - 빛의 초록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의 연못에서 초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햇살에 부서지고 물결에 일렁이며 시시각각 연두색에서 청록색으로 변해가는, 짧게 머물다 사라지는 '순간의 호흡' 같은 색이다.

모네의 후기 작품에서 초록은 거의 화면 전체를 덮는다. 햇빛이 잎을 통과할 때 초록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수십 개의 초록으로 나뉜다. 연두, 청록, 황록, 어두운 녹색. 자연의 초록은 언제나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이다.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그는 빛과 물, 나무와 잎이 뒤섞이는 풍경을 그렸다. 모네는 자연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빛 속에서 변화하는 생명의 움직임을 그렸다. 그의 정원은 실제 풍경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색의 세계가 된다.

클로드 모네 <일본식 보행자 다리> 1899. 캔버스에 유채, 81.3X101.6Cm.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 DC. 미국.

모네의 캔버스 위에서 초록은 빛에 따라 끊임없이 산란하는 액체와 같다. 모네가 사용한 초록색은 주로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과 비리디언(Viridian)이다.

빛에 반사되는 수풀과 잎사귀의 밝은 부분을 표현하는 데는 에메랄드 그린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연못의 깊이감이나 그림자 부분의 복합적인 색조를 만드는 데는 비리디언이 사용되었다. 완성된 초록색을 그대로 쓰기보다, 카드뮴 옐로나 코발트 블루등을 섞어 자연의 시시각각 변하는 초록빛을 직접 조색하여 표현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도시의 초록 - 정원과 호수

초록은 특정한 도시 하나의 색이라기보다 도시가 자연과 만나는 순간에 나타난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슈피츠(Spietz)에서는 세상의 모든 초록이 층층이 쌓여 거대한 풍경화가 된다. 언덕 위 연한 포도 잎사귀부터, 시선을 멀리 던지면 닿는 툰 호수의 에메랄드빛 수면, 알프스의 짙은 수풀까지.

툰 호수의 물빛은 투명한 유리를 통과한 빛이 아니라, 수만 년의 시간을 견딘 빙하가 보석 가루를 풀어놓은 듯한 묵직한 에메랄드를 닮아 있다. 과학은 호수가 왜 초록색인지 증명해 주지만, 벤치에 앉아 초록빛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소란이 잦아드는 것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곳의 초록은 시각을 넘어 마음을 정화하는 '침묵의 색'이기 때문이다.


슈피츠(Spiez), 스위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을 걷다 보면 성벽 안쪽에 작은 정원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석조 건물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풀과 나무의 색은 도시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한다. 돌로 만들어진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작은 숲을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초록은 자연의 색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가장 오래 사랑해 온 색이기도 하다.

스위스의 호수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이질적인 초록의 실체는 과학적으로는 '빙하 가루'였지만, 화가의 캔버스 위에서는 자연의 숭고함으로 재탄생한다.


빙하가 만든 석회 가루 - 에메랄드 그린

빙하가 움직인 자리에는 언제나 아주 미세한 흔적이 남는다. 수만 년 동안 산을 스치며 내려온 얼음은 바위를 가루처럼 곱게 갈아낸다. 그렇게 생긴 입자들은 물속으로 흘러들어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오래 떠다닌다. 햇빛이 물속을 지나갈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색이 된다.

빛은 입자에 부딪히며 흩어지고, 그중에서도 짧은 파장의 빛인 초록과 푸른빛이 더 많이 되돌아온다. 우리가 호수를 바라볼 때 마주하는 에메랄드빛은, 사실 물의 색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 만들어낸 색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호수에는 여기에 또 하나의 층이 더해진다. 물속에 녹아 있는 석회 성분이 빛의 흐름을 조금 더 굴절시키고, 색을 한층 또렷하게 밀어 올린다. 물은 투명하면서도 묘하게 밀도 있는 초록을 띤다.


왼쪽 - 룽거른호수(옵발덴 주), 스위스. 오른쪽 - 그린호수(슈타이어마르크 주), 오스트리아.

물은 본래 아무 색도 없지만, 그 안에 스며든 시간은 색을 만들어낸다. 눈에 보이지 않던 입자들이 빛을 붙잡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초록을 본다.

여름이 되면 색은 더욱 짙어진다. 빙하가 가장 활발하게 녹아내리면서 더 많은 입자들이 물속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겨울이 되면 물은 한층 맑아지고, 초록은 조금씩 물러난다. 대신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푸른빛이 자리를 채운다. 그렇게 호수의 색은 계절에 따라, 보이지 않는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우리가 바라보는 초록은 언제나 고정된 색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는 색이다. 빙하가 수만 년 동안 바위를 깎아내어 빚어낸 눈물 같은 초록이다.


구리, 시간과 함께 한 초록

초록이 언제나 살아 있는 것들에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도시에서는 금속도 시간이 지나며 초록이 된다. 구리로 덮인 돔과 지붕은 세월 속에서 천천히 색을 바꾼다. 반짝이던 금속은 어느 날 부드러운 녹색을 띠기 시작한다. 풀의 초록과 닮아 있지만, 사실은 시간이 남긴 초록이다.


유대교 회당. 피렌체, 이탈리아.


유럽의 교회와 궁전에는 구리 지붕이 많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지붕들은 모두 부드러운 녹색이 되었다. 도시의 하늘 위에는 마치 금속으로 된 초록의 풍경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도 대표적인 구리 돔이 있다.

왼쪽 - 국회의사당, 한국 오른쪽 - 서울역, 한국

처음의 화려한 금속 빛을 내려놓고 비바람 속에 스스로를 단련하며 얻어낸 청록색(Verdigris)은, 인공적인 물감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이 직접 덧칠한 서사다. 구리가 청록색으로 변하는 것은 부식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방어 기제다. 억지로 만들어낸 색이 담을 수 없는 깊은 푸른빛 속에는, 수십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단단해진 삶의 인내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회색빛 도심 속에서 고고하게 빛나는 국회의사당의 돔은, 서울역의 돔은 단순한 지붕이 아니라 도시가 겪어온 파란만장한 역사를 묵묵히 증명하는 초록색 문장과도 같다.

모네가 '순간'을 포착했다면, 구리 지붕의 초록은 '영원'에 가까운 기다림을 보여준다.


기념일을 물들이는 초록 - 성 패트릭의 날

초록은 때로 하나의 나라를 물들이는 색이 되기도 한다. 3월 17일 아일랜드의 도시는 온통 초록으로 숨을 쉰다. 거리의 사람들은 초록 옷을 입고, 건물은 초록빛으로 물들고, 맥주잔마저 초록으로 빛난다. 성 패트릭을 기리는 날이다. 가톨릭,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에서도 패트릭(Saint Patrick, 387-461)을 성인으로 인정하고 공경한다.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기독교 선교사이자 주교인 그는 작은 세 잎 클로버 하나를 들어 보이며, 셋이면서 하나인 신의 이야기(성부 성자 성령)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단순한 식물에서 신의 질서를 보았고, 그날 이후 초록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믿음의 색이 되었다.

아일랜드는 오래전부터 ‘에메랄드 섬’이라 불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의 들판은 그들의 풍경이자 기억이었고, 결국 하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 날의 초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되새기는 색이다.

이제 성 패트릭의 날은 종교를 넘어 하나의 축제가 되었다.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초록빛으로 물드는 이 날, 사람들은 잠시 같은 색을 입고 같은 기억을 나눈다. 초록은 그렇게, 개인의 색을 넘어 공동의 색이 된다.


왼쪽 -북아일랜드 다운패트릭에 있는 다운 대성당은 성 패트릭의 매장지로 여겨진다.

오른쪽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시청은 도시에서 열리는 축하 행사를 앞두고 초록색 불빛으로 환하게 빛난다.

성 패트릭의 날은 처음에 종교적인 엄숙함으로 시작됐으나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아일랜드 사람들은 미국의 축제문화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1995년, 정부는 관광 진흥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더블린에서 첫 번째 성 패트릭 축제를 후원했다. 아일랜드는 오늘날까지도 퍼레이드와 다양한 공연 및 행사가 펼쳐지는 이 축제를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다.


청록산수 - 자연의 숨결을 그리다

"초록"이라는 단어는 사실 근대 이후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청(靑)’이라는 색은 오늘날의 파랑과 초록을 모두 포함하는 범주였다. 신호등의 초록불을 ‘파란불’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래된 문헌에서는 산도 풀도 모두 ‘푸르다’고 표현된다. 우리가 숲을 보며 ‘푸른 산’이라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파랑과 초록이 아직 분리되지 않았던 오래된 색의 기억이 남아 있다.


동양의 회화에서 초록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동양의 화가들에게 초록은 자연의 표면이 아니라 자연의 숨결을 보여주는 색이었다.

조선 말기 화가 안중식(1861-1919)의 청록산수는 자연을 묘사하는 동시에 자연의 기운을 담아내려 한다. 청록산수에서 사용되는 안료는 말라카이트와 아쥬라이트 같은 광물이다.
서양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초록은 광물에서 태어난 색이다. 표현 방식은 전혀 다르다. 서양 회화의 초록이 빛과 원근을 따라 변화한다면, 청록산수의 초록은 산의 기운과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붓의 선은 바람처럼 이어지고 초록의 층은 산의 숨결처럼 겹쳐진다. 청록산수의 초록은 자연을 묘사하는 색이라기보다 자연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색이 된다.

왼쪽 - 안중식 <도원문진도> 1913. 비단에 채색, 164.4x70.4cm. 리움미술관, 서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를 주제로 그린 대표적인 청록산수화. 각이 심하게 진 바위산의 윤곽선에는 청색을 사용하고, 안쪽으로 갈수록 밝은 녹색을 더해 골짜기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듯한 효과는 동양의 유토피아인 도원을 연상시킨다.

오른쪽 - 안중식 <도원행주도> 1915. 비단에 채색, 238.6X65.5cm. 국립중앙박물 소장품 동원2556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배를 타고 복사꽃 마을을 찾아서"라는 서정적인 한글제목을 붙였다. 화면 위쪽에 적힌 ″을묘년 늦은 봄 심전 안중식(時乙卯暮春心田安中植)″이라는 글을 통해 1915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수묵화의 담백하고 운치 있는 묵향을 고결한 정신으로 여기며 선호했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는 청록산수는 오히려 천박하거나 화려함만 앞선 것으로 인식됐다. 또한, 광물성 안료로,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매우 귀한 재료였다. 선비 문화와 귀한 안료의 수급이라는 제약 때문에 안중식 이전에는 청록산수가 활발하지 않았다. 안중식은 이러한 전통을 넘어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청록산수화를 확립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초록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회화에서 사용된 청록의 안료가 광물에서 얻은 귀한 색이었다면, 일상에서 입던 옷의 초록은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식물에서 색을 얻었다. 쪽으로 파랑을 물들이고, 그 위에 노란 염료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비로소 초록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색을 얻기 위해 두 번의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옷의 초록은 그림의 초록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흔들리는 색이었다.

광물이 만들어낸 초록이 단단한 색이라면, 식물이 만들어낸 초록은 살아 있는 색에 가까웠다.


녹의홍상(綠衣紅裳)

예술작품이 아니어도 일상에서도 색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색은 때로 말보다 오래 남는다. 오래된 혼례의 장면을 떠올려 보면, 먼저 기억나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색이다. 붉은 치마와 푸른(초록) 저고리. 서로 다른 두 색이 한 몸처럼 맞닿아 있다.

붉음은 밖으로 향하는 힘이고, 푸름은 안으로 스며드는 기운이다. 하나는 타오르고, 하나는 감싸 안는다. 사람들은 두 색이 만나는 순간을 ‘결혼’이라 불렀다.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니라, 두 개의 기운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혼례복의 색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의 약속이었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내야 할 조화에 대한.

또한 붉은색은 액운을 막고, 푸른색은 생명의 흐름을 이어간다. 그 사이에서 삶은 이어지고, 새로운 세대가 태어난다. 우리는 그 옷을 ‘녹의홍상’이라 부른다. 이름은 오래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바람은 지금도 낡지 않았다.

동래고무 춤사위 복식, 사진출처-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초록은 농도에 따라 수만 가지의 이름을 갖는다. 이제 막 돋아난 새싹의 설렘을 닮은 민트 그린부터, 말린 허브처럼 절제된 다정함을 지닌 세이지 그린,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념을 품은 포레스트 그린,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에메랄드 그린. 너무 가깝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세이지 그린 같은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초록이 살아 있는 것들의 숨결이라면, 흰색은 그 숨결이 잠시 머무는 침묵이다. 숲이 무성해질수록 우리는 언젠가 다시 아무것도 없는 빛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다음 색은 흰색, 비어 있음의 색이다.




부록 - Green과 Blue

나는 신호등을 '파란불'이라 하고, 손주들은 '초록불'이라고 한다. 근대의 언어습관이 남아있는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단어에도 초록과 파랑의 혼동이 있다. 청산(靑山)→푸른 산(실제로는 초록 산). 청죽(靑竹)→대나무 (초록). 청초(靑草)→푸른 풀(초록).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 '파랑'과 '초록'을 구분해서 쓰기 시작한 것은 근대라고 하지만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 문학작품의 현대 번역에서도 초록과 파랑은 혼용되고 있다. 책에서 한 문장을 찾아보았다.


<템페스트>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2010. 문학동네


초록과 파랑이 구별되어 있지만 번역에서는 모두 파랑으로 적었다. 한국인의 언어감각에 초록과 파랑은 의미의 혼동없이 거의 같은 단어로 쓰인다.

When he comes back; you demi-puppets that

By moonshine do the green sour ringlets make,

Whereof the ewe not bites; and you whose pastime

Is to make midnight mushrumps, that rejoice

To hear the solemn curfew; by whose aid,

Weak masters though you be, I have bedimmed

The noontide sun, called forth the mutinous winds,

And ’twixt the green sea and the azured vault.....


사육신 성삼문의 시를 보자.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에

낙락 장송(落落長)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 청청(獨也靑靑)하리라.

소나무는 초록색이지만 문장에서는 독야 청청(獨也靑靑)이라 했다.



1부 자연과 물질의 색

4화 흰색 White - 빛, 여백,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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