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물질의 색 - 빛, 여백, 침묵
1부 자연과 물질의 색
4화 흰색 - 비어있음에 대한 오해
흰색은 늘 가장 먼저 놓이거나, 가장 나중에 남는다. 종이 위의 첫 번째 색이기도 하고, 모든 색이 지워진 뒤의 마지막 색이기도 하다. 우리는 흰색을 시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흰색은 아무것도 없는 색처럼 보인다. 색이 없기 때문에 하얗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흰색은 비어 있음이라기보다 모든 것이 겹쳐진 상태에 가깝다.
빛을 떠올려보면 분명해진다. 우리가 ‘흰빛’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여러 파장의 빛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다. 보이지 않을 뿐, 그 안에는 이미 수많은 색이 들어 있다. 흰색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에 가까운 색이다. 과잉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빛의 세계에서 흰색은 여러 색이 사라진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색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다.
프리즘을 통과하면 빛은 여러 색으로 흩어지지만, 그 색들이 다시 합쳐질 때 우리는 그것을 흰빛으로 인식한다. 반대로 물감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색을 겹겹이 섞을수록 빛은 흡수되고, 결국 검은색에 가까워진다. 같은 ‘섞임’이지만, 하나는 밝아지고 하나는 어두워진다. 흰색과 검은색은 그렇게 서로 반대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대 사회에서도 흰색을 빛으로 여겼다. 흰색은 곧 광명(光明)이었다. 태양을 숭상하는 원시사회에서는 흰빛을 신성시하여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있을 때 반드시 흰옷을 입고 제(祭)를 올렸다.
우리는 흰색을 비어 있음으로 이해한다. 흰색이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상태. 흰색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고, 의미를 유보한 채 머문다.
흰색은 단순히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언제든지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 있는 준비 상태이며, 동시에 이미 많은 것을 지나온 뒤에야 도달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시작과 끝이 같은 색으로 보이는 것은, 흰색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흰색은 드러내는 색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하는 색이다. 우리는 그 위에 무엇이 놓이는지를 통해서만 비로소 흰색을 이해하게 된다.
정오의 시간에 누가 선명한 파란색 수평선을 보았을까? 태양의 하얀 빛 앞에 강렬한 수평선도 무너진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그곳엔 오직 형체 없는 빛의 일렁임만이 남는다. 하얀 색으로 기억되는 빛.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c) 게티 이미지.
사람들은 왜 눈을 좋아할까? 눈 그 자체가 좋기도 하겠지만, 눈 덮인 풍경에 사로잡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지워내는 고요함, 흰 색으로 다 덮어버리는 단순함에 매료된다. 복잡하고 무질서한 일상의 풍경을 하얀 입자가 덮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평등해진다. 불평등의 세계를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 과부하된 정보를 벗어나 비로소 시각적 정화와 해방감에 편안해진다. 불완전한 흔적들을 덮어주는 '리셋(Reset)'의 마법은 심리적으로 모든 것이 정화되었다는 안도감을 준다.
소리까지 흡수하는 눈 특유의 적막함은 외부 세계와의 소란스러운 연결을 끊고 오로지 내면의 평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결국 흰 눈을 좋아하는 심리는 차가운 계절의 풍경을 넘어, 아무도 밟지 않은 백지 상태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동경과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흰색은 돌아갈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색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흰색은 '리셋'을 의미한다. "백지 상태로 돌아가"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
여름 한낮의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색이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잎과 풀의 초록은 더 이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눈부신 빛 속에서 풍경은 거의 흰빛에 가까운 공기로 번져 보인다. 빛이 가장 강한 순간, 색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 속으로 녹아든다. 초록은 때때로 흰색으로 이어지는 문턱이 된다.
엽록소가 가득한 여름의 생동감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오히려 세상이 텅 빈 흰 도화지처럼 변해버리는 이 순간은 무척이나 고요하다.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초록의 계절에 만나는 하얀 정적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때로는 채우는 것보다 모든 것을 비워내어 하얗게 태워버릴 때, 본질적인 빛의 존재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을.
스페인의 ‘햇빛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 y Bastida, 1863-1923)는 바로 그 찰나, 빛이 색을 집어삼켜 버리는 ‘역설의 화이트’를 가장 완벽하게 포착해낸 예술가다.
대표작 <해변의 산책>을 보면,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푸른 바다나 황금빛 모래가 아니다. 화면의 주인공은 여인들의 드레스를 타고 흐르는 압도적인 ‘광휘(Luminosity)’다. 소로야는 캔버스 위에 단순히 흰색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라,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부서지는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을 올려두었다. 눈부신 광휘는 감상자의 시선을 마비시키며, 화려한 원색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호아킨 소로야 <해변의 산책> 1909. 캔버스에 유채, 205×200cm. 소로야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햇빛이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사물의 본래 색깔이 하얗게 날아가 버리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마치 모든 색이 표백된(Bleach-out) 것처럼.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구성: 흰색 위의 흰색> 1918. 캔버스에 유채, 79.4x79.4cm. 현대미술관 (MoMa), 뉴욕, 미국
강렬한 햇빛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하얀 풍경은 단순한 시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번잡한 색채의 세계에서 해방시켜, 가장 본질적인 자아와 마주하게 하는 정신적 경험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소로야의 흰색에서 시작된 여정은, 모든 것이 비워진 말레비치의 고요한 흰색에 머물며 비로소 완성된다.
말레비치의 "흰색 위의 흰색"은 현대 미술이 그 자체 외의 어떤 현실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기하학적 형태를 배치하여 움직임과 무한한 공간의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 최초의 그림 중 하나였다. 회화적 수단을 최소한으로 줄임으로써 깊이와 부피의 환상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회화의 마지막 필수 요소처럼 여겨졌던 색채마저 제거했다. 말레비치가 도달하고자 했던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이 존재하는' 무한한 공간으로 이끈다. 의도적으로 모든 장식과 형상을 덜어내어 궁극의 순수에 도달한다. 여기서 흰색은 더 이상 뜨거운 물리적 빛이 아니다. 무한한 우주이자, 아무것도 오염되지 않은 정신의 심연이다.
말레비치와 소로야, 두 화가 모두 우리에게 '보이는 것 너머의 무한함'을 하얀 빛으로 증명해 보였다. 소로야의 흰색이 ‘눈이 멀어버릴 듯한 찰나’를 그린 것이라면, 말레비치의 흰색은 그 찰나를 지나 도달한 ‘영원한 평온’을 상징한다. 찰나의 색이기도 하고, 영원의 색이기도 한 흰색이다.
남부의 도시들은 유난히 눈부시다. 햇빛 때문만은 아니다. 빛을 받아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와 이탈리아의 오스투니를 걷다 보면, 도시는 빛을 품고 있기보다 오히려 빛을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밀려난 빛이 다시 공중에 흩어지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색으로 만든다. 흰색이다. 우리는 흔히 흰색을 순수의 색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상태로 인식한다. 시작의 색, 비어 있음의 색이라고 한다. 하얗게 펼쳐놓은 도시의 흰색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비어 있기 때문에 하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덧칠되어 있기 때문에 하얗다.
안달루시아의 집들은 오랫동안 석회로 칠해졌다. 석회는 햇빛을 반사하여 벽을 식히고, 동시에 세균을 죽인다. 뜨거운 태양과 반복되는 전염병 속에서, 사람들은 벽 위에 흰색을 바르며 살아남았다. 미적인 선택이 아니라 생활의 기술이었고, 취향이 아니라 필요였다. 일종의 생존방식으로 흰색을 칠했다.
안달루시아 올베라 하얀마을(푸에블로 블랑코), 스페인 남부
올베라는 웅장한 교회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성 덕분에 도착하기도 전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멀리서 보면 마치 수채화처럼 하얀 건물들이 푸른 언덕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마을 아래쪽에는 자연 암석 위에 세워진 예수 성심 기념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순례자들은 서원을 지키기 위해 수 마일을 손과 무릎으로 기어가 성모 마리아 레메디오스 성지에 이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스투니도 다르지 않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기와 남부의 강한 햇빛을 동시에 견뎌야 했다. 사람들은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석회를 반복해서 덧발랐다. 병이 돌 때마다, 여름이 시작될 때마다 벽은 다시 하얘졌다. 그렇게 도시의 색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흰색은 한 번 완성되는 색이 아니다. 유지되어야만 존재한다. 칠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멈추면 곧 다른 색으로 돌아간다. 흰색의 도시에 보이는 흰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정지된 색이 아니라, 반복된 행위의 흔적이다.
오스투니, 폴리아지방, 이탈리아
지금의 흰색은 더 이상 병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니다. 석회 대신 페인트가 사용되기도 하고, 위생보다 관리의 편의가 앞서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벽을 하얗게 유지한다. 이제 흰색은 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기억의 형식이 되었다.
한때는 두려움 때문에 칠했던 색이, 이제는 그 두려움을 잊지 않기 위해 남겨진다. 도시의 흰색은 순수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햇빛을 견디고, 병을 통과하며 시간을 버텨낸 표면이다. ‘하얗다’고 부르는 이 색은, 사실 수없이 덧칠된 시간의 두께다. 흰색은 빛을 받아들이는 색이 아니라, 빛을 밀어내며 만들어진 색이다.
서양화에서는 하얀 공간에 흰색을 칠한다. 동양화에서는 채색없이 빈공간으로 남긴다.
조선의 그림에서 여백은 비어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남겨진 자리다. 중첩된 산자락은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떼어놓는다. 산등성이를 뚝 잘라놓고 칠해지지 않은 곳을 보고 사람들은 안개가 끼었다고 생각한다.
산과 산 사이의 안개가 길이 되고, 보이지 않는 공기가 화면의 중심이 된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빈 공간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안개를 보고, 흐르는 냇물도 보고, 쏟아지는 폭포도 본다.
서양은 세계를 드러내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동양은 세계와 함께 머물러야 할 것으로 보았다.
서양 회화의 전통은 기본적으로 재현(representation)이다. 세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다. 대상은 분리된 객체이고, 화가는 그것을 완성된 이미지로 만들어야 했다. 흰색의 캔버스는 그림으로 채워져야 하므로 서양에서 ‘비어 있음’은 아직 그리지 않은 상태,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동양 회화, 특히 조선의 수묵화는 애초에 목표가 다르다. 형태보다 기운(氣)을 중시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흐름, 대상보다 관계와 상태가 중요시되었다. 동양화에서 빈 부분은 의도적으로 남겨진 자리이다. 서양화는 세계를 드러내려 했고, 동양화는 세계가 스스로 드러나기를 기다렸다.
동서양 철학과 회화의 관계 역시 서로 다르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르네상스의 흐름에서 서양철학은 세계는 인식하고 재현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들의 그림은 세계를 화폭 안에 붙잡아 두었다. 노자-장자-유교적 자연관으로 흐르는 동양사상은 세계는 함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함께 있다는 것은 빈 자리조차 허용하는 것이다.
서양은 비워두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비워둠을 ‘의미 없는 상태’로 보았고, 동양은 채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채우지 않음을 ‘의미 있는 상태’로 보았다. "노자의 빈 항아리"가 의미있듯이.
아래 그림을 보기위해 밑으로 내려가다가 나무가 중간쯤에 오면 이미 완성된 그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더 내려가보자. 아래에 강이 있고 사람이 탄 배도 있다.
김홍도 <舟上觀梅圖주상관매도/선상관매도> 수묵담채, 164X76Cm. 개인소장. CC BY 공유마당.
화폭은 그려진 공간보다 비어있는 공간이 더 넓다. 그림 중간에 “노년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인 듯 희뿌옇게 보이누나(老年花似霧中看)”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는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의 시 ‘한식날 배 위에서 짓다(小寒食舟中作)‘에 나오는 한 구절을 따왔다. 화면에는 하늘과 산과 배의 경계가 없지만 감상자는 위에 매화꽃나무가 있는 산, 그 위의 하늘, 배를 띄운 강을 다 인식할 수 있다. 간결한 그림에서 여백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종이에 먹, 79.2×138.0cm, 2021년 이건희 기증, 국보.
비가 막 그친 뒤, 먹으로 그려진 바위는 단단하지만,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은 형태가 아니다. 흐릿하게 번진 여백, 그 비어 있는 듯한 공간 속에 공기가 머물러 있다. 습기, 안개, 비가 지나간 뒤의 냄새 같은 것.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몸으로는 느낄 수 있는 상태. 그 순간 알게 된다. 여백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두는 방식이라는 것을.
서양의 회화가 형태를 통해 세계를 붙잡는다면, 동양화의 여백 그림은 형태를 지우는 방식으로 세계를 드러낸다. 흰색은 여기서 색이 아니다. 빛도 아니고, 반사도 아니다. 오히려 사라진 것들의 자리,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의 상태에 가깝다. 비어 있지 않다. 말하지 않지만,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다.
왼쪽 - 김시 <동자견려도> 16세기 후반. 비단에 담채, 111x46Cm. 리움미술관, 한국.
오른쪽 - 신윤복 <유곽쟁웅> 18세기. 종이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 한국.
동양 회화는 모든 것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만 남기고, 필요한 곳만 채우는 것이다. 여백이 세계를 열어두는 공간이라면, 색칠한 흰색은 그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최소한의 표시다.
<동자견려도>는 나귀를 이끄는 소년의 모습을 그렸다. 소년의 옷이 하얗게 빛난다. 흰색은 주로 호분(굴껍질 가루)을 사용했다. 조선 후기에는 채색화가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신윤복의 그림은 강한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의상의 흰색도 칠했다.
김시(金禔, 1524-1593)와 신윤복(申潤福, 1758년-1814년경)의 활동시기를 짚어보면 조선 회화에서 채색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색의 우주> 연재글 1화는 "시에나"에 대한 글이었다. 지금 글은 "흰색"에 관한 글이다. 흙의 색깔은 참 오묘하다. 붉은 흙, 누런 흙, 검은 흙, 회색 흙에 더하여 흰색의 흙도 있다. 고령토(Kaolin)가 바로 흰색 흙이다. 백색이나 유백색을 띠는 광물 고령토는 철분이나 티타늄 같은 불순물이 적을수록 눈부신 흰색을 띤다.
고령토는 도자기의 태토가 되어 조선백자를 탄생시켰다. 새하얀 설백(雪白), 우아한 유백(乳白), 편안한 회백(灰白)으로 다채로운 흰색을 보여준다. 단색화의 대가 정상화(1932-2026)의 캔버스에서는 수행적인 재료가 되기도 한다. 서양화에서는 그림의 밑바닥을 받쳐주는 조연이 되기도 한다.
사진출처 https://www.arte.co.kr/art/review/article/1688
정상화(1932-2026) 작가의 화면 위에서 고령토는 단순한 바탕재를 넘어 수행의 매질이 된다. 캔버스 전체에 두터운 고령토 층을 올리고, 그것이 바싹 말라 단단해지면 작가는 화면을 격자로 접어 균열을 낸다. 갈라진 틈 사이로 조각들을 일일이 떼어내고 그 빈자리를 다시 아크릴 물감으로 채워 넣는 반복적인 행위는, 고령토 특유의 매끄럽고 단단한 질감 속에서 숭고한 시간의 층위로 치환된다. 완성된 백색의 화면은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공간감을 머금으며, 보는 이에게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그린 그림’이 아닌, 수없이 반복되는 규칙적인 행위로 ‘만든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과물로서의 작품 이전에 제작 과정 그 자체가 곧 작품이다.
왼쪽 -백자달항아리, 18세기, 높이49cm 입지름20.1cm 밑지름15.7cm, 국보, 우학문화재단
오른쪽 -백자달항아리, 18세기, 높이44cm 입지름21.5cm 몸지름42.0cm 밑지름16.5cm, 국보, 리움미술관
조선백자의 단아한 자태는 산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고령토, 즉 백토(白土)라는 든든한 뼈대에서 시작된다. 철분을 걷어내고 정제된 하얀 흙은 섭씨 1,300도가 넘는 가혹한 불길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비로소 투명하고 단단한 백색의 피부로 다시 태어난다.
달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완벽하게 균일한 흰색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딘가는 미세하게 흐리고, 어딘가는 빛을 머금은 듯 부드럽게 번진다. 불균일함 속에서 오히려 숨결 같은 온기가 느껴진다.
흰색이 이렇게 따뜻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낯설다. 아무것도 없는 색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열을 통과한 뒤에야 남겨진 색이기 때문이다. 조선백자의 흰색은 비워진 색이 아니라, 끝까지 남겨진 색이다.
서양 회화의 역사에서 고령토는 캔버스라는 거친 무대를 부드럽게 다독여 물감의 생명력을 끌어올리는 조연이었다. 19세기 화가들은 거친 섬유 조직 사이에 고령토 혼합물을 켜켜이 발라 유리처럼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었다. 고운 흙 입자들은 물감을 겉돌지 않게 붙잡아주면서도, 빛이 물감 층을 통과해 다시 튀어 나오게 돕는 반사판 역할을 한다. 오늘날 제소의 핵심 성분으로 녹아든 고령토는 화가가 올리는 붓질 한 번 한 번이 선명한 발색과 깊은 색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캔버스 밑바닥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여는 흰색을 숭상하여, 흰옷을 널리 입었다.” “푸른 들에서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사람들의 옷이 모두 희었다.”<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魏書)30,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의 기록이다.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1488년(성종 19) 조선을 다녀간 후 지은 <조선부(朝鮮賦)>에서 “조선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는다.”고 기록했다.
헤르만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868-1945) <흰옷입은 사람들> 사진. 1906-1907.
조선 사람들이 흰옷을 즐겨 입었던 이유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흰색은 염색을 하지 않은 가장 자연스러운 색이었고, 세탁과 표백을 반복하기에도 용이했다.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집요함이 있다.
흰옷은 쉽게 더러워지고, 그만큼 자주 빨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흰옷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선택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태도에 가까웠다. 유교적 절제와 검박함 속에서, 흰색은 과장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었고, 아무것도 덧입히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윤리였다. 조선의 흰옷은 화려함을 거부한 결과가 아니라, 덧붙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가까웠다.
조선의 흰 옷은 반상(班常)제도에 따라 상민들의 일상복이기도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 색으로서 저항의 색이기도 했다. 조선의 흰옷은 삶의 형식이었다.
흰색은 아무것도 없는 색이 아니다. 빛이 너무 강해 색이 사라질 때 드러나는 색이다. 비어 있기 때문에 하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통과했기 때문에 하얗다. 그렇게 남겨진 흰색은 조용하다.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이제, 그 흰색 위에 처음으로 번지는 색이 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린 자리에서 가장 강렬하게 피어나는 색. 다음은, RED다.
2부 인간과 감정의 색
5화 빨강 Red - 피, 열정,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