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감정의 색 - 의식, 빛, 사유
2부 인간과 감정의 색
6화 옐로 - 드러나는 색
노랑은 일찍부터 친숙한 색으로 다가온다. 노랑은 담장 너머 흐드러진 개나리의 물결이고, 햇병아리의 보송보송한 솜털이다. 언 땅을 뚫고 솟아난 복수초보다, 키높이 한참 위에 있는 산수유보다 뒤에 오는 봄이지만 더 가깝고 친근한 개나리의 노랑이다.
노란 색은 유치원 교실의 크레파스에서 가장 먼저 뽑아드는 색이다. 도화지 위에 밑그림을 그릴 때, 선생님은 늘 노란색을 쥐여준다. 검정은 너무 단호해서 수정하기 어렵지만, 노랑은 틀려도 그 위에 다른 색을 덮으면 감쪽같이 빛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노랑은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다독여주는 부드러운 색이다.
노란색은 빛을 몰고온다. 햇빛, 전구의 불빛, 창가에 번지는 오후의 온기. 노란색은 어떤 사물의 색이라기보다, 빛이 머무는 방식에 더 가깝다. 우리는 노란색을 본다기보다, 노란색 속에서 보게 된다. 어둠 속에서는 색이 사라지지만, 노란빛은 사물을 드러낸다. 노란색은 언제나 ‘보이게 하는 색’이다.
이상하게도, 노란 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침의 빛은 바로 흰색으로 희미해지고, 저녁의 노을은 붉은색으로 기울어진다. 노란색은 언제나 중간에 있다. 도착하기 직전, 혹은 떠나기 직전의 색이다.
노란색은 빛에 가장 가까운 색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다른 색들처럼 손에 묻히는 물질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오래된 노란색은 흙에서 왔다. 황토(옐로 오커, yellow ochre)는 철 성분이 산화된 흙으로, 선사시대 동굴벽화에서도 이미 사용되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견디는 색이었다.
조금 더 강렬한 노란색은 광물에서 얻어졌다. 비소를 포함한 광물 오르피먼트(orpiment)는 금처럼 빛나는 노란색을 만들어냈지만, 독성이 강했다. 아름다움과 위험이 동시에 존재하는 색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는 납-주석 황색(lead-tin yellow) 같은 인공 안료가 등장한다. 화가들은 더 밝고 안정된 노란색을 얻기 위해 금속과 불, 화학적 변화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근대에 이르러 카드뮴 옐로(cadmium yellow)가 만들어진다. 이 노란색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강렬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그 빛,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노란색은 이러한 안료의 발명과 함께 가능해졌다.
노란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여러 개의 온도를 가진 색이다. 어떤 노란색은 거의 흰색에 가깝다. 레몬 옐로처럼 가볍고 차가운 노란색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빛처럼 느껴진다. 어떤 노란색은 금빛으로 깊어진다. 황금빛 노란색은 물질성과 권위를 동시에 가진다. 빛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색이다.
또 어떤 노란색은 탁해진다. 머스터드 옐로처럼 약간의 갈색을 머금은 색은 햇빛이 아니라 기억에 가까운 색이다. 노란색은 이렇게 미묘하게 달라진다. 빛에 가까운 노란색과 시간에 가까운 노란색 사이에서.
노란색은 따뜻하다. 그러나 그 따뜻함은 안온함이라기보다, 약간의 긴장을 동반한다. 신호등처럼. 신호등의 노란불은 ‘곧 바뀔 것’을 알린다. 주의하라는 색, 멈추거나 서두르라는 색. 완전히 안전하지도, 완전히 위험하지도 않은 상태. 노란색은 그 사이에 놓여 있다. 우리는 노란색 앞에서 잠깐 멈칫한다. 신호등의 노랑은 편안함보다는 선택을 요구한다. 지금 멈출 것인가, 아니면 지나갈 것인가. 노란색은 늘 결정을 유예하는 순간의 색이다.
노란색은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색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크레파스에서 가장 빨리 닳던 색, 햇빛에 바랜 책장, 오래된 사진 속 누렇게 변한 종이. 노란색은 시간이 스며든 흔적이다. 하얀 것은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변한다. 완전했던 것들이 조금씩 닳아 부드러운 편안함을 주고, 기억이 되는 과정에서 색은 노랑으로 기울어진다. 노란색은 시작의 색이면서 동시에, 이미 지나간 시간의 색이기도 하다. 옛날 집 벽에 걸린 빛바랜 사진들처럼 시간을 쌓아놓은 색이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9년 1월(아를). 캔버스에 유채, 95x73cm.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재단),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고흐는 꽃병에 담긴 해바라기에서 꽃을 세 가지 노란색 색조만으로, '그 외에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총 다섯 점을 대형 캔버스에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하나의 노란색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밝고 연한 레몬 옐로(Pale Lemon/Lemon Yellow)로 배경이나 꽃잎의 밝은 부분을 표현했다. 가장 전형적인 중간 톤의 노랑은 황금빛 노란색, 꽃의 중심부나 잎의 중간 색조를 담당한다. 주황색 기운이 도는 짙은 오렌지빛 노랑(Orange hue/Chrome Orange)으로 꽃의 윤곽이나 그림자, 화분 등을 묘사하며 입체감을 부여했다.
안타깝게도 고흐가 사용한 '크롬 옐로'는 빛에 매우 민감한 성분(연화 크롬)을 포함하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올리브 갈색으로 어둡게 변하고 있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판지위에 템페라와 파스텔. 91×73.5cm. 국립미술관, 오슬로, 노르웨이
미술에서 노란색은 때로는 가장 밝고, 때로는 가장 불안한 색으로 사용되어 왔다.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색은 빛이 아니라 거의 열에 가깝다. 해바라기는 빛을 받는 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고흐의 노란색은 따뜻함을 넘어, 타오르는 감정이다. 너무 밝아서 오히려 불안한, 넘쳐흐르는 색.
반대로 에드바르 뭉크의 노란색은 빛이 아니다. 공기 속에 번지는 불안이다. <절규>의 하늘은 밝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감정을 견디다 변질된 색처럼 보인다. 같은 노란색이지만, 어떤 노란색은 생을 향해 있고, 어떤 노란색은 붕괴를 향해 있다.
노란색은 가장 가볍게 보이고, 사실은 가장 쉽게 사라지는 색이다. 빛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빛이 바뀌면 가장 먼저 변하고 가장 먼저 사라진다. 책꽂이에 꽂힌 책에서 노란색 책등이 제일 먼저 하얘진다. 노란색은 늘 잠시 존재한다. 확실하게 붙잡히지 않고, 조금 머물다가 흘러가는 색이다. 우리는 노란색을 ‘본다’기보다 사라지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무언가가 완전히 시작되기 직전, 혹은 끝나기 직전의 시간.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붙잡을 수 없는 상태. 노란색은 바로 그 순간의 색이다. 노란색은 말한다. 지금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고.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은 살아 있다고. 노란색은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지기 직전까지 가장 밝게 빛난다.
노란색은 단순한 빛의 색에 머물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노랑은 감정과 판단을 담기 시작한다.
조토 디 본도네 <유다의 입맞춤>1304-1306. 프레스코. 200x185cm, 스코르베니 예배당, 파도바, 이탈리아
유다는 노랑색 망토를 걸치고 있다. 배신의 색으로 노랑을 입혔다.
노랑은 다른 색들과 참 친하다. 잘 섞이어 변화한다. 파랑과 만나면 초록이 되고, 빨강과 만나면 주황이 된다. 노랑은 이런 점 때문에 변덕을 나타내고, 배신ㆍ시기ㆍ질투ㆍ질병 등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색이 되었다. 사회 적응력과 친화력이 좋다는 긍정적인 색으로 봐줘도 됐을텐데...
성서 속 유다를 그릴 때, 화가들은 종종 그에게 노란 옷을 입혔다. 눈에 띄는 색이면서 동시에 신뢰할 수 없는 색. 사람들 사이에서 노란색은 점점 의심의 표식이 되었다. 유대인에게 강제로 달게 했던 표식이 노란 색이었다. 격리와 검역을 알리는 깃발도 노란 색이다. 이 색은 빛이 아니라, 경계가 된다.
항구에 걸린 노란 깃발은 빛이 아니라, 질병을 알리는 신호였다. 노란색은 사람을 나누는 색이 되기도 했다. 1941년 9월부터 독일의 유대인들은 노란 별을 달도록 강요받으며 낙인찍혔다. 나치 독일이 점령한 지역에서 이미 도입된 것이었다. 노란 별을 옷의 왼쪽 윗가슴 부분에 잘 보이도록 부착해야 했다.
노란색은 질투의 색이기도 하다. 영어에서 ‘yellow with envy’라는 표현처럼, 노랑은 타인의 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색으로도 남아 있다.
또한 노란색은 병의 색이다. 쇠약해진 몸이 띠는 빛의 잔여. 빛에 가장 가까운 색이 어느 순간 가장 불안한 신호가 된다. 몸이 약해질 때, 빛은 노랗게 남는다. 그것은 건강한 빛이 아니라, 소진된 빛이다. 노란색은 이렇게 뒤집힌다. 밝음에서 의심으로, 따뜻함에서 불안으로.
노란색은 때로 한 장의 캔버스를 넘어서 하나의 도시가 되기도 한다.
이사말에 들어서면 도시는 하나의 색으로 숨 쉬고 있다. 집도, 담장도, 교회도, 심지어 공기마저 노랗게 느껴진다. 도시가 노란색으로 칠해진 이유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야 문명의 태양신을 기리는 색이었다는 이야기, 20세기 교황 방문을 맞아 도시 전체를 단장하며 노란색으로 통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사말의 노란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빛을 도시 전체에 고정시켜 놓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햇빛이 사라져도, 도시는 계속 빛나고 싶었던 것처럼.
호이안의 노란색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이곳의 노란색은 햇빛을 닮았다기보다, 시간에 닿아 있는 색이다.프랑스 식민지 시기, 벽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석회와 안료가 이 도시의 색을 만들었다.
습한 기후 속에서도 견디기 위해 칠해진 노란 벽은 세월이 지나며 조금씩 바래고, 더 부드러운 색으로 변해간다. 호이안의 노란색은 빛의 색이 아니라 기억의 색처럼 느껴진다. 햇빛이 비치면 밝아지고, 비가 오면 더욱 깊어지는 색이다. 시간과 함께 숨 쉬는 노란색. 같은 노란색이지만, 이사말의 노란색이 ‘빛을 붙잡은 색’이라면 호이안의 노란색은 ‘시간을 머금은 색’이다. 하나는 태양을 닮아 있고, 하나는 오래된 종이를 닮아 있다.
이사말과 호이안, 두 도시 모두 한 가지 공통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다는 것. 빛이든, 시간이든, 결국은 흘러가는 것들이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색으로 남긴다. 두 도시의 노란색은 한 순간의 빛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마음의 색이 된다. 도시는 그 마음을 벽에 바르고, 사람들은 그 안을 걸어간다. 노란색은 그곳에서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 빛이 된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의 노란색은 어땠을까. 이곳에서 노란색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가장 기본이 되는 노란색은 역시 흙에서 왔다. 황토는 땅의 색이자, 삶의 색이었다. 집을 바르고, 옷을 물들이고, 그림을 채우는 색. 화려하지 않지만 안정된 색, 삶을 지탱하는 바탕의 색이다.
식물에서도 노란색은 얻어졌다. 치자 열매로 물들인 등황(藤黃) 계열의 색은 맑고 투명한 노란빛을 만들어냈다. 이 색은 흙의 노란색보다 가볍고, 빛에 더 가까운 노란색이다.
변시지 <귀로> 2012. 캔버스에 유채, 50X60,2cm.
기당미술관 특별전 <변시지, 그림으로 기억되다> 2023.11.28 - 2024.1.28
변시지의 노란색은 빛이 아니다. 바람에 닳은 땅의 색이다. <귀로>에서 노란색은 밝게 드러나지 않고, 오래 눌려 있다가 스며나온 것처럼 화면을 덮는다. 고흐의 노란색이 타오르는 빛이라면, 변시지의 노란색은 바람 속에서 마른 흙의 색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제주의 바람이 분다. 그는 '노란 색의 화가'라기 보다는 '황토색의 화가'에 가깝다. 바람과 흙이 있는 황토색. 그러나 노란 빛이 더 강한.
노란색은 동아시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오행에서 토(土)의 색으로 가장 중심에 있으며 균형을 잡는다. 오행(五行)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 기운이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순환하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동양의 전통 사상이다. 오행의 중심에 있는 노란 색은 왕과 권위의 색으로 풍요와 안정을 상징한다. 좋은 기운을 더하는 색으로 믿는다.
중국에서도 노랑이 권위와 부귀를 상징했다. 금색과 같기 때문이다. 중국 황제는 노란 황룡포를 입었다.
왼쪽 - 고종이 입었던 황룡포. 순종황제의 계비인 순정효황후가 국경일 대례복으로 착용했던 황후 황원삼. 세종대박물관
오른쪽 - 청 황제가 입은 황룡포. 국립고궁박물관.
석지 채용신 <고종 광무황제 (49세)> 국립전주박물관.
붉은 색 곤룡포(袞龍袍, 임금이 시무복으로 입던 정복)는 홍룡포라고 한다. 홍룡포(紅龍袍)는 제후국의 왕이 중국의 신하로서 입는 옷이었다. 세종(재위 1418~50) 26년부터 입었다.
대한제국 시대를 선포한 고종(재위 1863~1907)은 중국 황제처럼 황룡포(黃龍袍)를 입었다. 고종은 1897년 10월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한 뒤 황제위에 올랐다. 고종은 중국의 신하라는 의미가 있는 홍룡포를 입지 않았다. 연호를 광무(光武)라 하고 황제국의 지위에 걸맞게 황룡포를 입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노란색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서양에서 노란색이 의심과 배신의 표식이 되었다면, 동양에서의 노란색은 중심과 균형의 색이었다.
같은 색이 어떤 곳에서는 배제의 표식이 되고, 어떤 곳에서는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이 된다. 노란색은 하나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다른 감정을 입는다.
오방색, 치자열매, 치자물들인 비단.
노랑은 우리 전통의 오방색의 치자(황색)를 만나 우리 삶으로 낮게 내려왔다. 가장 높은 곳의 색(황제)이 가장 가까운 곳(치자 물들인 옷)에 머물렀다. 치자는 예부터 한국에서 가장 흔히 쓰인 천연 염료다. 치자물을 들인 고운 옷감부터, 비록 시작은 이국(일본)이었으나 우리 식탁의 친숙한 조연이 된 단무지의 노랑까지. 단무지뿐 아니라 전(부침개)에도 치자의 노랑은 살포시 내려앉았다. 치자물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잔치 음식이나 제사 음식에서 전을 부칠 때 치자물을 더하여 노랗게 만드는 것은 그 음식을 더 완전하게 만드는 행위에 가깝다. 전해내려오는 신빙성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한국의 음식에서 노란 색은 종종 맛이 아니라 의미로 쓰인다.
치자물을 풀어 부친 전의 노란색은 음식 위에 얹힌 빛이다. 빛은 맛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만 느껴지지 않는 색, 노란색은 그렇게 음식 속에서도 의미로 남는다.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노랑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이들을 실은 스쿨버스의 노란색과 경기의 흐름을 끊어내는 옐로카드는, 시각적인 강렬함을 넘어 '주의'와 '보호'라는 약속된 온기를 품고 있다. 빛의 파장 중 인간의 눈에 가장 민감하게 읽히는 노란 색은, 혼란스러운 도로 위나 격렬한 승부의 현장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가 되어준다.
어둠 속에서도, 거센 빗줄기 사이에서도 검은색과 대비된 노랑은 유독 선명하게 빛난다. 멀리서도 '여기에 아이들이 있으니 멈춰달라'는 간절한 부탁이 되기도 하고, 경기장 위 뜨거워진 열기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라'는 단호한 신호가 되기도 한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노랑은 우리를 지키고 연결하기 위해 인류가 선택한 가장 직관적이고 따뜻한 안전의 언어인 셈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머물기로 한 노랑.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우리 곁을 지키는 가장 선명하고 든든한 파수꾼의 색이기도 하다.
권위와 배신, 경고와 보호, 예술과 생활, 자연과 인공, 여러 의미로 우리 곁에 머무는 노랑의 감정에 더하여 다음엔 인간의 감정을 강렬히 표출하는 핑크색을 관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