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감정의 색 - 감정, 인식, 사회, 조화
2부 인간과 감정의 색
7화 핑크 - 감정이 길들여지는 방식
핑크는 빛의 세계에 뚜렷한 자리를 가진 색이라기보다, 인간의 인식 속에서 완성되는 색에 가깝다. 자연 속에도 분홍은 존재한다. 분홍색 꽃을 흔히 볼 수 있다. 호수나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해변에서 우리는 분홍색 물과 분홍색 모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핑크색을 ‘부드럽다’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방식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핑크는 단순히 붉은 색이 옅어진 결과가 아니라, 감정이 덧입혀지고 해석된 색이다.
핑크는 하나의 색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색이다. 우리가 분홍이라고 부르는 색은 사실 일정한 파장이 있는 빛이 아니라, 붉은색과 흰색이 섞이거나, 혹은 붉은빛과 보라빛 사이를 뇌가 보완하며 만들어낸 감각에 가깝다.
핑크는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는다. 광물에서 얻어지는 안료는 거의 없고, 대부분 식물이나 곤충에서 비롯되었다.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는 꼭두서니 뿌리에서 얻은 ‘매더 레이크(madder lake)’가 사용되었고, 더 선명한 분홍은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코치닐(cochineal)’에서 만들어졌다. 이 색은 값이 비싸 쉽게 소비되는 색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사물의 분홍색은 대부분 합성 염료의 결과다. 19세기 이후 화학 염료가 등장하면서 분홍은 더 이상 희귀한 색이 아니다. 대량으로 생산되고 반복되는 색이 되었다. 만들어진 분홍은 자연의 색이 아니라, 기술과 선택과 시대가 함께 만든 색이다. 연약함에서 강렬함까지 이어지는 감정의 스펙트럼이다.
핑크는 존재하지만 하나의 파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색이다. 빛의 스펙트럼에는 ‘핑크’라는 이름의 단일한 파장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분홍이라 부르는 색은 붉은빛과 보라빛 사이의 간극을 뇌가 보완하며 만들어낸 감각에 가깝다. 자연 속에서도 분홍빛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색이라기보다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이다. 핑크는 물리적으로 측정되는 색이라기보다,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방식 속에서 완성되는 색에 가깝다. 처음부터 감정에 가까운 색, 존재 자체보다 해석을 통해 또렷해지는 색이다.
분홍은 부드럽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다. 아기의 볼을 떠올리고, 봄날의 벚꽃을 떠올린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겹쳐놓는다. 손에 쥐어지는 작은 물건들까지도 분홍색을 두르면 조금 더 다정해 보인다. 우리는 분홍을 볼 때 마음이 풀린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이미 그렇게 느끼도록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분홍을 ‘부드러운 색’이라고 믿게 되었을까.
18세기의 유럽에서 분홍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분홍은 오히려 남성의 색에 가까웠다. 붉은색의 연장선에 있는 색으로 전쟁과 권력, 귀족의 기품을 부드럽게 변주한 색이었다. 어린 소년들의 옷에는 분홍이 사용되었고, 푸른색은 오히려 성모 마리아의 색으로 여성성과 연결되었다.
지금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색의 구분-핑크는 여성, 블루는 남성-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산업화 이후,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의 마케팅과 소비문화 속에서 서서히 굳어진 것이다. 색은 자연의 질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가 만들어낸 규칙이다. 핑크는 그 규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색이다.
“핑크 pink”라는 단어는 비교적 늦게 정착됐다. 그 이전에는 "rose / rosy / carnation"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장미빛이 먼저 있었고, 핑크는 나중에 분리된 색 이름이다. 하늘색, 바다색, 땅색, 이렇게 부르던 색이 블루의 여러 계열로, 품고있는 광물에 따라 다른 여러가지 땅색 이름으로 된 것과 같다. 일부 언어에서는 아직도 “핑크 = 장미빛 계열”로 묶어서 이해한다.
핑크는 팔레트 위에 또렷하게 놓이는 색, 누구나 같은 자리를 가리킬 수 있는 색이다. 색상 스펙트럼에서 명확한 색 이름, 핑크는 색상 분류 용어다.
장미빛은 다르다. 그것은 정확히 어디라고 짚을 수 없는 색이다. 핑크보다 조금 더 붉기도 하고, 조금 더 흐리기도 하다. 핑크와 같은 부분도 있다. 따뜻하고 감정적인 느낌, 때로는 빛과 공기에 따라 사라지기도 한다. 문학적이고 시적인 색이다.
핑크가 눈으로 확인되는 색이라면, 장미빛은 감각으로 느껴지는 색이다. 우리는 새벽을 분홍이라 부르지 않는다. 새벽은 언제나 장밋빛으로 온다. 색이라기보다 스며드는 기운에 가깝기 때문이다.
읽은 책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특히 같은 문장으로 여러 번 반복되는 문장은 기억에 남는다. 호머(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묘사된 "장미빛 새벽"이 그렇다. 시작은 <일리아스>에서 처음 등장한다.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이른 아침에 모습을 드러내자...<일리아스>46쪽(1권 477행)
<일리아스>에서 "장미빛 손가락의 새벽"은 여러 형태로 등장하지만 <오디세이아>에서는 일관되게 같은 문장으로 수십번 새벽에 태양 빛이 퍼지는 모습을 묘사한다. 해가 뜨기 직전 하늘로 뻗어 나가는 붉은빛의 햇살을 여신의 손가락에 비유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새벽은 단순한 시간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여신의 활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지닌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오디세이아>250쪽(9권307행)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지닌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오디세이아>447쪽(17권1행)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 명화와 함께 읽는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박문재 옳김, 2025. 현대지성)
분홍은 시각을 넘어 신경계를 달래는 묘약과도 같다. 1970년대 심리학자 알렉산더 샤우스(Alexander G. Schauss)가 증명했듯, 강렬한 분홍색(베이커 밀러 핑크 Baker-Miller Pink)으로 칠해진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단 몇 분 만에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공격성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분홍이 가진 본연의 속성, 즉 빨강의 에너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흰색의 순수함으로 날카로움을 중화시킨 결과다.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반발심을 유발한다는 연구들도 뒤따랐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분홍색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보다, 사람들이 이 색에 무엇을 기대했는가에 있다. 분홍은 부드러움의 색으로 여겨졌지만, 동시에 감정을 다루고 조정하려는 의도가 투영된 색이기도 했다.
베이커-밀러 핑크로 색칠한 스튜디오와 수감시설
베이커-밀러 핑크는 미국 시애틀 소재 형무소 교도관 진 베이커와 론 밀러의 이름을 붙인 핑크색이다. 2015년 기준으로 스위스 교도소 및 경찰서의 20%에 적어도 하나의 분홍색 감방이 있다.
심장이 터질 듯한 열정보다는 갓 태어난 생명이나 뺨에 도는 혈색처럼, 분홍은 우리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과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재미있는 점은 부드러운 분홍색이 걸어온 역사적 궤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분홍을 여성적인 색으로 규정하지만, 18세기 유럽에서는 분홍이 '결단력 있는 빨강의 어린 버전'으로서 소년들의 전유물이었다. 강인함과 활력을 상징하던 분홍색이 부드러움과 섬세함의 대명사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것은 마케팅과 사회적 관념이 결합한 근대의 산물이다. 최근에 이르러 분홍은 다시 한번 경계를 허물고 있다. 성별의 벽을 넘어 개성을 드러내는 젠더리스(Genderless)의 기수로, 혹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투쟁의 상징으로 재해석되며 다른 어떤 색보다 역동적으로 자신의 정의를 고쳐 쓰는 중이다.
현대에 이르러 핑크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사랑을 표현하는 색, 로맨스를 암시하는 상징 색이다. 혹은 부드럽고 안전한 감정을 유도하는 색이다. 광고와 상품, 공간과 브랜드는 색을 통해 감정을 설계한다. 분홍색 포장은 더 친근해 보이고, 분홍빛 조명은 공간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심지어 감정 자체가 색을 통해 규정되기도 한다. 사랑은 분홍이어야 하고, 다정함은 분홍처럼 보여야 한다는 식으로.
이쯤 되면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는 분홍을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분홍이라는 틀 안에서 감정을 배우는 것일까.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현대 사회를 “시뮬라시옹의 세계”라고 말한다. 실제보다 이미지가 먼저 존재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핑크는 바로 그런 색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은 이런 색이다’라는 이미지가 먼저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 이미지에 맞추어 감정을 이해한다. 핑크는 사랑을 표현하는 색이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색이다.
분홍을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분홍이라는 틀 안에서 감정을 배우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색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도록 길들여지는가에 대한 문제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하늘과 공기 사이에 번지는 연한 분홍을 바라볼 때, 이유 없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학습된 것인지,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아마도 이미 오래전부터 섞여 있었을 것이다. 자연의 빛과 사회의 기억이. 색과 감정이.
분홍은 감정을 느끼는 방식,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도록 길들여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흔적이다. 분홍을 볼 때 느끼는 따뜻함은 색이 아니라, 우리가 그 색에 대해 배워온 시간의 온도다.
분홍은 때로, 설명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호주의 힐리어 호수는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비현실처럼 보이는 색을 띤다. 과학은 그 원인을 미생물과 염분에서 찾지만, 처음 분홍색 호수를 마주할 때 느끼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감정이다. 핑크는 자연에도 있지만, 이해 이전에 감정으로 온다.
호주 서쪽의 힐리어 호수 hillier lake.
호주의 서쪽 끝, 바다와 맞닿은 힐리어 호수(길이 약600m. 넓이 약250m)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선명한 분홍빛을 띤다. 과학자들은 원인을 고염도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미생물-특히 두날리엘라 살리나와 같은 조류와 색소를 지닌 박테리아-에서 찾는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붉은 색소가 물 전체를 물들이는 것이다. 이 설명은 충분하면서도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분홍색 호수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이유보다 먼저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실의 일부라기보다 꿈속 한 장면처럼 보이는 분홍은, 자연이 이렇게까지 부드러운 색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낯설게 만든다. 결국 힐리어 호수의 색은 설명으로 이해되기보다, 감각 속에서 오래 머무는 하나의 인상으로 남는다.
인도네시아 코모도섬의 핑크빛 모래밭
자연이 빚어낸 분홍의 향연은 물과 대지라는 서로 다른 질감을 통해 경이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서호주의 힐리어 호수가 미생물의 신비로운 연금술로 빚어낸 '액체적 신비'라면, 바하마나 인도네시아의 핑크 샌드 비치는 붉은 산호와 조개껍데기가 파도에 잘게 부서져 내려앉은 '질감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컵에 떠내어도 그 빛깔을 잃지 않는 호수의 짙은 분홍빛 물결과, 에메랄드빛 바다와 맞닿아 파스텔톤으로 일렁이는 몽환적인 모래사장의 대비는 분홍이 지닌 생명력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핑크색 중에서 가장 선명한 색이다. 마젠타 원색에 형광 핑크색 입자가 살짝 섞인 듯한 색. 노란색과 섞으면 눈부신 오렌지색이 되고, 파란색과 섞으면 화려한 보라색이 된다.
무대 위에서 멀리까지 또렷하게 보이도록 설계된 이 색은, 단순히 밝은 분홍이 아니라 빛을 머금고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강도를 지닌다. 형광에 가까운 오페라 핑크는 합성 염료와 형광 안료를 통해 구현된다. 부드러움의 색이라기보다, 감정을 과장하고 확장하는 색에 가깝다.
분홍이 조용히 스며드는 색이라면, 오페라 핑크는 끝까지 남아 있으려는 색이다.
오페라 핑크는 빛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멈추지 않고 발산되는 색이다. 형광 파우더의 오페라 핑크는 공중에 흩어지는 순간, 색은 더 이상 표면에 머물지 않는다. 가루로 부서진 분홍은 빛을 붙잡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공간을 물들인다. 그 짧은 순간의 색은 형태를 가지지 않기에 더 강렬하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눈을 놓아주지 않는 색, 바로 그 점에서 오페라 핑크는 존재라기보다 사건에 가깝다. 머무르지 않고 퍼지며, 사라지면서도 더 또렷해지는 색이다.
한국의 봄산을 지배하는 핑크빛 진달래. 사진-공공누리 CC BY-NC 4.0
폴 고갱의 그림에서 분홍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타히티 연작 속 분홍빛 하늘과 피부는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 그가 상상한 원초적 세계의 감정에 가깝다. 그곳에서 분홍은 부드러움이 아니라, 문명 이전의 시간과 신화의 온도를 품는다.
폴 고갱 <해변의 기수들 II> 1902. 캔버스에 유채, 73x92cm.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컬렉션, 그리스
화풍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암시하는데, 하늘의 붓놀림과 색채는 인상파를 연상시킨다. 고갱 특유의 분홍빛 전경은 야수파를 떠올리게 한다. 파스텔 색조, 말들의 간결한 묘사, 오른쪽 상단에 있는 두 마리의 말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방식은 고갱보다 조금 후대에 그려진 피카소의 그림과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폴 고갱 <부름 The Call> 1902. 캔버스에 유채, 131.3×89.5cm. 클리브랜드 뮤제움, 오하이오, 미국
마르케사스 제도의 넓은 작업실에 살던 시절에 그린 것으로. 자주 사용하는 프리즈 구도가 이 그림에서도 다시 한번 드러난다. 왼쪽에 있는 커다란 좌상은 고갱이 다른 작품에서도 사용했던 소재다. 불규칙한 무늬의 색 띠는 추상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다. 그림 제목의 유래가 된 오른쪽 인물의 몸짓은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색채 조화, 특히 붉은색과 분홍색, 연보라색과 보라색, 자주색과 파란색의 좁은 색 범위는 고갱 고유의 색표현이다.
(내 눈에는 오른쪽 여인의 복부에 표현된 굴곡의 음영이 꼭 고흐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을 찾을 수는 없지만, 자꾸만 고흐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나의 이 증세가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이라고 한다.)
폴 고갱 <신의 날> 1894. 린넨캔버스에 유채, 68 × 91cm. 아트인스티튜드 시카고, 미국
고갱이 타히티를 처음 방문했던 직후 파리에서 제작되었다. 환상과 기억에서 영감을 얻은 환각적인 구성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전위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고갱의 캔버스 위에서 분홍은 서구적 관념의 '연약함'을 벗어던지고 원시적인 생명력으로 거듭난다. <신의 날Mahana no Atua>의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분홍빛 대지는 신성한 의식이 흐르는 무대이자, 인간과 신이 만나는 초월적인 공간의 색이다. 비현실적인 색채는 <부름 The Call>에서 두 여인의 발밑을 물들이며, 마치 땅에서 피어오르는 영적인 기운처럼 감상자를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로 초대한다.
후기작 <해변의 기수들 II>에 이르면 분홍은 절정에 달한다. 끝없이 펼쳐진 분홍빛 모래사장은 푸른 바다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현실의 풍경을 환상적인 낙원의 장면으로 치환시킨다. 고갱에게 분홍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었다. 문명의 때가 타지 않은 순수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자, 화가 자신의 내면이 갈구하던 안식과 평화를 투영한 '영혼의 조색'이었던 것이다.
비슷한 색의 기억은 도시에서도 반복된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아산 만질 박물관(Ahsan Manzil Museum)은 분홍빛 궁전으로 불린다. 건물의 색 역시 자연이 아니라 선택된 것이다. 권력과 부, 식민지 시대의 기억이 덧입혀진 색이다. 이처럼 도시의 분홍은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환대이거나, 과시다. 기억의 표면이기도 하다.
아산 만질 박물관 Ahsan Manzil Museum, 다카, 방글라데시
아산 만질은 단순히 ‘분홍색 궁전’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라, 19세기 벵골의 정치와 권력, 식민지 체제 속 계급 질서가 응축된 장소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식민지 시대, 이 건물은 권력 구조 속에서 형성된 지역 엘리트의 상징 공간이었다.
건물의 색은 흔히 ‘핑크’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연한 장밋빛(rose-pink)과 테라코타 계열이 섞인 색조다.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유럽식 건축 양식, 특히 무굴 양식과 유럽 신고전주의가 혼합된 ‘인도-사라센 양식(Indo-Saracenic style)’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인 벵골 건축이라기보다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혼합된 권력의 미학’을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아산 만질의 핑크는 왜 ‘식민지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물 자체가 영국 식민 통치 하에서 성장한 지역 지배층의 권위를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와브 가문은 영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했고, 아산 만질은 그러한 권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무대였다. 건물의 핑크색과 양식은 현지의 전통이라기보다, 제국과의 연결을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분홍빛 외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우리는 제국과 연결된 존재다”라는 시각적 선언이기도 했다.
아산 만질의 핑크색은 환대와 과시의 이중성을 동시에 지닌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우아한 색이지만, 내부에는 권력의 위계가 자리한다. 또한 식민지 경제 구조, 협력과 종속의 관계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아산 만질의 분홍은 단순히 ‘아름다운 색’이 아니라, 부드럽게 보이도록 연출된 권력의 표면이다.
하와 마할의 동쪽 정면,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 인도. 사진 Chainwit. via Wikimedia Commons.
인도의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 불린다. 하지만 실제로 도시의 건물들을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분홍과는 조금 다르다. 하와 마할(Hawa Mahal)의 외벽은 연한 장밋빛이라기보다, 햇빛에 바랜 테라코타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이푸르를 "핑크 시티"라 부른다.
19세기, 영국 왕세자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도시 전체를 장미빛으로 칠한 이후, 그 색은 ‘환대’의 상징이 되었고, 이름으로 굳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 색이 아니라, 색에 부여된 의미다. 자이푸르의 핑크는 눈으로 보이는 색이라기보다, 기억되고 불리는 색이다.
어쩌면 핑크라는 색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존재해왔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그 색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느껴지고 그렇게 불리면서.
하와 마할 건물은 핑크 시티의 상징이라 불리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분홍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에, 우리가 ‘핑크’라고 부르고 싶은 색은 오히려 파트리카 게이트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파트리카 게이트, 자이푸르. 인도
분홍색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파트리카 게이트는 "핑크 시티"라는 자이푸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핑크색을 띠고 있다.
문에는 라자스탄의 역사, 풍습, 유명 명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벽화, 디자인,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각 기둥과 장식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어 라자스탄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대문을 통과하면 밝게 채색된 벽, 아치, 기둥들이 마치 예술 작품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사실 이 문은 역사적인 건물은 아니다. 인도의 유명 미디어 기업인 파트리카 그룹이 2016년에 건설하여 자이푸르의 상징색인 핑크색을 칠한 것이다.
동양의 회화에서 분홍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심사정의 <모란도>에서 분홍은 부드러움이 아니라 풍요와 번영의 색이다. 꽃의 색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삶의 이상과 질서를 상징한다. 여기서 분홍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바람에 더 가깝다.
왼쪽 - 심사정 <모란도(부분)> <제가화첩>. 조선 후기. 종이에 채색, 29×19cm. 국립중앙박물관 본관5041.
오른쪽 - 심명연 <화훼도>. 조선. 비단에 채색, 33.1x20cm. 국립중앙박물관 덕수1101.
우리나라에서 모란과 관련된 가장 이른 기록으로는 선덕여왕과 모란꽃 이야기, 그리고 『삼국사기』에 전하는 설총(7세기 말~8세기 전반)의 「화왕계花王戒」가 있습니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와서도 모란을 심는 기록이나 모란에 대한 시가 빈번히 등장하여 모란에 대한 사랑이 꾸준히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모란은 우리 민족이 신분을 초월하여 사랑하던 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췌
고갱의 분홍이 타히티의 뜨거운 태양 아래 타오르는 원시적 생명력과 신비로운 해방감을 분출한다면, 심사정의 <모란도> 속 분홍은 겹겹이 쌓인 꽃잎 사이로 은은하게 스며든 절제된 화려함과 군자의 품격을 동시에 품어내며 동서양이 해석한 '분홍'의 서로 다른 미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현대에 이르면 분홍은 다시 개인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윤정미의 "핑크 앤 블루 프로젝트"는 아이들의 방을 같은 색의 물건들로 채워 보여준다. 방은 취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선택된 세계다. 분홍으로 채워진 공간은 누군가의 자유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감정의 형식일지도 모른다.
윤정미 <서우와 그녀의 핑크색 물건들> 2006. C-프린트(Chromogenic print). 50.5×50.5cm. 파인아트 뮤제움, 휴스턴, 미국
딸은 여성스럽고 플라스틱 같은 과잉 소비에 거의 파묻혀 있는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타임 , 베스트앤코, 마셜필드, 할리스 같은 대형 백화점과 미디어 대기업들이 주도하여 분홍색을 여성적인 색으로 재포장하려는 노력을 비판하는 것이다.
심사정의 <모란도>에서 분홍은 자연의 순리와 부귀(富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는 '축복의 색'이다. 붓끝에서 번져나가는 은은한 분홍은 꽃의 생명력을 예찬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고귀한 기품에 동화되게 만든다. 여기서 분홍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미덕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합치된 평온한 상징물이다.
현대 미술가 윤정미의 렌즈 안에서 분홍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생명의 색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핑크 프로젝트>는 동시대 아이들의 방을 가득 채운 분홍색 물건들을 집요하게 포착하며, 이 색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획'되고 '소비'되는지를 폭로한다. 심사정이 꽃잎 한 장에 우주적 질서를 담았다면, 윤정미는 쏟아지는 분홍색 공산품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특정 성별에 강요해온 고정관념과 자본주의의 욕망을 투영한다.
이처럼 두 예술가의 시선은 '분홍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하지만, 심사정이 욕망을 긍정적 기원으로 승화시켰다면 윤정미는 그것을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는 분홍이라는 색이 시대를 건너오며 '자연의 섭리'에서 '사회적 기호'로 성격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증거이다.
매뉴팩처 내셔널 드 세브르 <포프리 꽃병> 1757-1758. 연질도자기, 44.8 x 37.5 x 19.4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미국
18세기 세브르 도자기에는 특별한 분홍빛이 있었다. 그 색은 훗날 ‘로즈 퐁파두르’라 불리게 되는데,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았던 퐁파두르 부인이 이 색을 특히 사랑하고 후원하면서 널리 퍼진 이름이다.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색이라기보다, 그녀에 의해 기억된 색에 가깝다.
18세기 프랑스 세브르에서 만들어진 작은 꽃병이 분홍이라는 색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포프리 꽃병은 향기를 담기 위한 그릇이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면에 얹힌 장미빛이다. 지나치게 강하지도, 그렇다고 흐릿하지도 않은 분홍색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장식과 곡선, 금빛의 세부들이 서로를 넘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분홍은 여기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감정을 다듬는 색이다. 넘치지 않게, 그러나 사라지지 않게. 오래 바라볼수록 이 색은 눈에 남기보다 마음에 잔잔히 스며든다.
공장에서 생산된 가장 큰 용기 중 하나인 이 화병은 소성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몸체의 여러 개의 개방형 구멍이 전체 구조를 약화시켜 가마에서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다 . 결과적으로 약 12개만 생산되었으며 그중 10개가 오늘날 남아 있다. 분홍색, 녹색, 청색 등이 있다.
분홍은 특별한 순간에만 등장하는 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 약국에서 받는 분홍색 알약, 베이커리 진열대의 딸기 크림 케이크, 봄날 길가에 흩어진 벚꽃, 아이의 장난감과 학용품, 편의점에서 쉽게 집어 드는 분홍색 포장지의 간식들. 심지어 병원에서는 벽을 연한 분홍이나 살구빛으로 칠해 긴장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이 색은 늘 우리를 설득한다. 괜찮다고, 안전하다고, 부드럽다고.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받아들인다. 분홍은 그렇게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감정을 미리 준비해두는 색이다. 우리가 무엇을 느낄지 결정하기 전에, 이미 그 방향을 은근히 정해놓는 색이다.
진달래 화전 사진 - CC BY-SA 2.0
봄이 오면 들과 산이 먼저 분홍빛으로 말을 건넸다. 아직 바람은 차가운데, 어느 날 문득 진달래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꽃을 따다가 부엌으로 들여왔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지지고, 그 위에 꽃잎을 하나씩 얹어 노릇하게 부쳐내던 손길에는 계절을 맞이하는 조용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특별한 재료도, 거창한 이유도 없었지만, 작은 화전 한 장에는 봄을 입안으로 들여오는 느낌이 있었다. 분홍빛 꽃잎은 금세 사라지지만, 그때의 온기와 향기는 오래 남는다. 아마도 우리는 그 색을 먹으며, 봄이 왔다는 사실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펴본 분홍은 단순히 가시광선 너머의 환상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자연, 예술이 빚어낸 가장 입체적인 스펙트럼이었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아산 만질(Ahsan Manzil) 궁전이 뜨거운 태양 아래 분홍빛 위엄을 뽐내고, 서호주의 힐리어 호수(Lake Hillier)가 자연의 신비로운 연금술을 증명하듯, 분홍은 세계 곳곳에서 생명력과 경이로움을 상징해왔다.
예술 속에서 분홍은 더욱 역동적으로 변주된다. 고갱의 <해변의 기수들 II>나 <신의 날>에서 포착된 분홍은 현실의 색을 넘어선 근원적인 생명 에너지를 뿜어내며, 조선 시대 심사정의 <모란도> 속 분홍은 부귀와 영화를 염원하는 은은한 기품을 담아낸다. 나아가 윤정미 작가의 현대적 시선은 분홍에 투영된 사회적 관념과 고정관념을 날카롭게 질문하며, 이 색이 단순한 취향을 넘어 시대의 거울임을 보여준다.
결국 분홍은 차갑고 딱딱한 세상을 부드럽게 완충해주는 '정서적 완충지대'와 같다. 과학적 근거가 말해주듯 우리 뇌가 만들어낸 따뜻한 착시는,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다정함과 위로를 잃지 않도록 돕는다. 층층이 쌓인 분홍의 층위를 읽어내며 발견한 것은, 결국 타인을 향한 연민과 삶을 향한 긍정의 마음이다. 분홍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한, 세상은 조금 더 말랑하고 온화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분홍이 내면으로 스며드는 색이라면, 이제 감정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선명해지며 밖으로 번져나간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색을 만나게 된다.
분홍이 아직 식지 않은 열을 품고 있다면, 오렌지는 열이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의 색이다.
2부 인간과 감정의 색
8화 오렌지 -에너지, 생기, 밖으로 향하는 색
"핑크"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고전문학에서는 핑크색을 "장미빛"으로 표현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핑크'를 '로자 rosa'라고 말하곤 한다. <오디세이아>에서 거듭거듭 반복되던 "장밋빛 손가락"이 떠올라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장밋빛 손가락"을 발췌하던 중, 몇 군데는 문장이 약간 다름을 발견했다. 원전을 읽을 수 없으니 아주 조금씩 달리 번역된 이유는 알 수 없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묘사할 때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으로 같은 문장을 쓰지만, <일리아스>에서는 약간 씩 다른 묘사를 쓴다. 아래 발췌문은 2025년에 발행한 신간에서 뽑았다.
명화와 함께 읽는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박운재 옮김. 2025. 현대지성 출판.
2권 항해를 시작한 텔레마코스 1행(책54쪽)
3권 필로스의 네스트로 404행(96쪽), 491행(101쪽).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4권 라케다이몬의 메넬라오스 306행(117쪽)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576행(133쪽)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지닌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5권 칼립소, 난파당한 오디세우스 228행(157쪽).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지닌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8권 오디세우스의 송별 경기와 연회 1행(206쪽).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 에오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자..."
9권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들 152행(244쪽), 170행(245쪽), 307행(250쪽), 437행(256쪽), 560행(263쪽),
10권 아이올로스, 안티파테스, 키르케 187행(274쪽),
12권 세이렌 자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헬리오스의 가축 8행(332쪽), 316행(348쪽),
13권 이타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 18행(360쪽),
15권 집으로 향하는 텔레마코스 189행(410쪽),
17권 구혼자들 앞에 나타난 거지 노인 1행(447쪽),
19권 페넬로페이아와 손님 오디세우스 428행(511쪽).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지닌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박운재 옮김. 2025. 현대지성 출판.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묘사할 때 <오디세이아>처럼 다 같은 문장으로 쓰지 않는다.
1권 아킬레우스의 분노 477행(책46쪽).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이른 아침에 모습을 드러내자..."
8권 헥토르와 트로이아군의 맹공 1행(250쪽).
"금빛 옷자락을 두른 새벽이 대지를 덮자..."
9권 아킬레우스와 화해를 시도하는 아가멤논 240행(289쪽)
"그는 고귀한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어서 모습을 드러내길..."
24권 헥토르의 장례 789행(765쪽)
"이른 시간에 태어나는 장밋빛 손가락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