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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27. 2020

에드워드 호퍼-밤을 새는 사람들

비전문가의 그림 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사진출처 https://www.artic.edu/artworks/111628/nighthawks

Oil on canvas, 30 x 60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자주 볼 수 있는 이 그림, 나는 시카고에 있는 진품을 보진 못했다. 그런데 매우 강렬한 인상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그림이다.
여자의 옷 색깔인 분홍색이 특별한 걸까, 아니면, 까페를 환히 밝혀주는 형광빛 때문일까.
이 그림에선 백열등의 따사로움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난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를 그린 소설이고, <나이트호크>는 1940년대의 그림으로 시대적 거리가 있으나, 나에겐 두 개의 작품이 한꺼번에 떠오르곤한다.
개츠비의 좌절된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리얼리즘 화가의 그림, 둘은 무슨 관계로 얽혀 나를 알싸하고 씁쓰레한 고독감에 빠져들게 하는 걸까?
째즈음악을 좋아하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 벼룩시장엘 가면 커다란 나팔을 달고있는 옛날 유성기를 볼 수 있고, 난 그 나팔에서 흘러나오는 LP판의 째즈음을 들으며 데이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개츠비의 파티장으로 끌려들어간다.
그리곤 호퍼가 그린 이 그림의 까페 분위기가 연달아 생각난다.
수선스러운 움직임이 있는 개츠비의 파티장과 시간이 얼어붙은 듯한 <나이트호크>의 바 분위기는 사뭇 다른데도 "아메리카"와 "좌절한 인간의 고독"이라는 공통점에 묶인 두 작품은 나란히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게츠비는 혼자 있을 때보다 재즈음으로 꽉찬 파티장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더 고독하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귀절이 떠오른다.
"마법에 걸린 듯한 대도시의 황혼 무렵이면 나는 종종 떨쳐버릴 수 없는 외로움에 휩싸이곤 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를 서성이며 혼자만의 저녁식사를 위해 너절한 식당으로 들어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사무원들 - 어둠 속에서 밤과 인생이라는 가장 황홀한 순간들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는 젊은 사무원들에게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내가 개츠비에 갖는 애잔한 감정을 호퍼도 느꼈었을까?


또한, 나는 <Nighthawks>에서 숨은 글자 찾기 놀이하듯 하우스먼의 시 한 구절을 찾아내기도 한다.
호퍼는 영국 시인 하우스먼의 시를 알고 있었을까?호퍼가 이 그림을 그리기 몇 년 전에 하우스먼은 죽었다. 굳이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나는 이 그림에서 이런 글귀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I, a stranger and afraid/in a world I never made" A.E. Housman이 그의 시 <The Laws of God, The Laws of Man>(시집 Last Poems)에서 읊은 시의 한 구절이다.
어쩜 오늘 밤, 호퍼는 내 꿈속에 찾아와 차디찬 한마디를 남기도 갈지도 모른다.
“난 그런 시는 알지도 못한다”고.
어쨋거나, 나는 이 그림을 보며 <갯츠비>와 <나이트 호크>와 시집 <라스트 포엠>을 한꺼번에 감상한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 편을 봤는데 나는 옛날(1974년 영화지만 한국에서는 1977년에 개봉했다.) 영화가 더 좋다. 그 해 2월28일에 첫아이를 낳고 백일 무렵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으니 얼마나 날아갈듯한 기분이었겠는가.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페로가 주연한 영화가 나중에 본 영화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첫 영화의 기억이 강해서 그런지 나중에(2013) 상영된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출연 영화는 내 감성과 별로 맞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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