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Sep 25. 2020

엄마, 보고싶어요.

음력 8월10일은 어머니 생신이다. 돌아오는 11월 21일은 돌아가신 후 두 번째 기일이 된다.

어머니 앨범을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북받쳐올라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사모곡이라도 한 편 지어야지, 생각뿐이다.

어머니가 많이 보고싶다. 내가 이만큼 늙었어도 엄마가 많이 보고싶다. 아이에게나 젊은이에게나 늙은이에게나 엄마는 엄마다. 

묵은 파일을 열고 아주 오래된 글들을 모아봤다. 모두 어머니 생전에 썼던 글들이다.




<어머니, TV, Living Room>


거실 한쪽 벽에 낮은 장식장이 있고, 그 위에 TV가 있고, 의자들이 그 쪽을 향하여 놓여있는, 이런 모양의 거실을 나는 원치 않는다.

눈높이로 낮은 곳에 맑은 수채화 몇 점을 화랑처럼 걸어놓고, 둥근 테이블에 꽃무늬 프린트의 테이블보를 덮고, 편안한 팔걸이 의자를 두개 마주보게 놓아 누구와 함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고, 커다란 창 밖을 향해 흔들의자를 놓고, 출력이 낮은 스피커를 네 귀퉁이에 설치하고, 작은 오디오셋트를 한 구석에 놓고, 좋아하는 CD와 책 몇 권 가지런히 놓아둔 그런 거실이 내가 꾸미고싶은 모양이다.

웅장한 오디오, 한 벽에 가득찬 책, CD, 그런 것 다 싫고, 공간을 넓게 남기고 물건은 간단히 조금 둔 모양이 좋다.
그렇지만 나는 가족이 함께 TV를 볼 수 있도록 거실에 TV를 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 소파를 놓았다.
어머니는 다른 집들처럼 어머니 방에 TV를 따로 두고싶어 하실지도 모른다. 편안한 자세로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어머니께 TV 한 대 사드리는 것에 인색하다. 효도를 한답시고 어머니 전용의 TV를 사드리면 그것은 효도가 아니라 어머니를 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어머니를 방에 가두는 일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TV 연속극을 즐겨 보신다. 우리가 함께 앉아서 보면 지난 줄거리의 설명에 열중하셔서 상영되고 있는 화면의 대화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극중에서 남자가 바람을 피운다든지 그럴 때 '저런 죽일 놈'하고 내가 한 마디 하면 어머니는 그 남자의 그간의 행각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신다.

내가 그 극을 열심히 보고있는 표를 내는 것이 어머니의 '연속극 보기'에 얼쑤 추임새가 되는 것이다.
모두들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집안의 노인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드릴지…
TV에 눈팔고 있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이가 있다면 하루에 얼마나 집안의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지, 그 대화의 내용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노인과 나눌 수 있는 공동의 대화는 무엇인지를.
"Midnight in Paris"의 내용이 적합한지,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이 적절한지 생각해 보자.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질 낮은(?) 연속극 내용을 서로 얘기하고, 가요무대의 세련되지 못한 노래를 같이 듣고 그러는 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TV나 들여다보고 있는 수준낮은 삶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증조할머니가 되면서부터 우리집 거실은 나의 손주들 놀이방으로 바뀌었고, TV는 어머니 방에 자리를 잡았다.

돌아가시기 2년전쯤부터는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까지 오시는 일도 어려웠다. 음식을 침상에서 편히 잡숫도록 몇 번을 침대까지 날라다 드렸었다. 그 몇번만 그랬고 이후로는 식탁으로 모시고 나와서 식사하시도록 했다. 하루 세 번 식탁까지 힘겹게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이 어머님 걸음걸이의 전부였다. 거실에 한번 나오시면 그래도 식사후 소파에 30분 정도는 앉아계셨다. 증손주들의 재롱에 미소도 짓고 몇 마디 말씀도 하셨다.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어머니는 조금씩 사그러들었다.




<어머니와 기꼬망 간장>

묵을쑤었다. 양념 간장을 만들어 야들야들하게 잘 쑤어진 묵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양념 간장을 만들며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다.
모든 할머님들 대개가 그렇듯이 우리 어머님도 옛날 일제시대 때 어렵게 살던 얘기를 자주 하신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다는 얘기, 모든 것을 다 배급타서 썼다는 얘기…
그 중엔 먹는 음식에 대한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요즘 제 맛을 잃은 도미, 민어, 청어의 맛을 그리워하신다.
나는 그때의 맛을 모르니 비교할 수는 없고 다만 짐작으로, 어머니께서 그 때보다 잡술 것이 풍부해진 지금, 연세 드셔서 입맛을 잃은 지금, 그 어느것을 해다 드려도 모든 게 궁하던 그 시절 귀하게 여기며 잡숫던 그 음식들 맛을 따라갈 순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내 입맛만 해도 변해서 옛 맛을 찾기 어려운데 90 넘은 어머님이야 오죽하랴.
방금 딴 오이를 뚝 잘랐을 때 약간은 찐찐하고 풋풋한 진이 송글송글 맺힌 그것을 우적우적 베어먹던 맛을 지금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그리워하는 음식(?) 중에 방금 지은 고슬고슬한 ‘흰 쌀밥에 왜간장’이 있다. 특히 '기꼬망'간장을 좋아하신다. 고소한 달걀 노른자라도 하나 있으면 물론 더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되고.
어머니는 일제 기꼬망 간장이 맛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아파트 상가의 외제물건 파는 집에서는 왜 된장도 기꼬망 간장도 팔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 한번을  사지 못했다. 일본 간장을 산다는 것이 왜 그렇게 창피하게 생각되는지…
나는 외국에서 중국간장 한국간장 일본간장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먹는다.
기꼬망 간장이 있을 땐 그걸 사게 된다. 그러면 그 간장이 맛있었다고 옛날을 회상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다음에 가면 기꼬망 간장을 사다 잡숫게 해야지,하고 맘 먹지만 한번도 사드리지 못했다. 원래 외제물건 파는 가게에 얼씬거리지 않는 성격인데다가 간장까지 외제인 일제를 사다 먹는다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선뜻 사게 되지 않는 것이다.
다음엔 정말 한번 기꼬망 간장을 사드려야겠다. 어머니께서 지금도 쌀밥에 왜간장 한가지로 맛있다고 감탄하실지 의문이지만.

또 어머니가 좋아하시지만 제대로 잡숫지 못하는 음식으로 순두부 찌개가 있다.
외식을 하는 날 "어머니 뭐 잡숫고 싶으세요?"하고 여쭈면 순두부 찌개라고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그런 건 나중에 동네 상가에서 사 잡숫고요 오늘은 더 맛있는 것 잡수세요"하고우리 맘대로 정한 식당으로 간다. 외식을 하는 모습이 늘 그렇고보니 어머니는 순두부 찌개를 잡술 기회가없다. 동네 상가에서 혼자 사 잡숫는 성격도 아니시고…
어느 날 병원 구내 식당에서 값싼 순두부 찌개를 사드렸더니 얼마나 맛있게 잡수시던지, 그동안 우리 맘대로 사드렸던 그 값의 열 배나 되는 음식들이 다 무색해졌다.

자꾸만 마음이 바빠진다. 좋아하시는 음식, 맛있다고하시는 음식, 빨리빨리 많이 잡숫게 해드려야지! 이런 생각은 어쩌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나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 세상으로 가신 후 쏟을 나의 눈물을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줄여보자는… …


친정 어머니는 우리집에서 함께 사셨다. 내가 엄마로서 많이 미숙할 때는 함께 우리 아이들을 키워주셨고, 외국에 나가 있는 8년동안 내 딸과 남편을 보살펴주셨다. 많은 불편함이 있었지만 고맙고 또 고맙고 지금은 죄송한 마음만 가득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내가 환갑을 넘었어도 나는 그냥 엄마 앞에서 철없는 딸이었다. 후회되는 일이 어찌도 그렇게 많은지 눈물로 씻겨지지 않는다.




<나는 특별하다?>


병원에 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만원.
접수 창구에서 진료예약을 하려는 사람들의 심각한 표정들을 보게된다. 원하는 날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지정해주는 날짜는    후에나 진찰이 가능하다는 답을 듣는 환자들의 표정이 밝을  없다.각자 개인의 사정이야   없지만, 굳이 특진 의사의 진찰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자 한명이 일반진료로 물러나면  필요한 위급한 환자  명이 특진을 받을  있을 것이다.
벌써 4 , 퇴행성 질환으로 똑같은 약처방을 받아오는 어머니, 의사와 면담은  5 정도 뿐이다. 녹음기  것처럼 같은 질문과 답변이다.
요즘 어떠세요? 그냥 그래요. 할머니 나이드셔서 그래요. 그럼  낫나요?  아프지 않으시면 다행이지요.
 분야에선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특진의사, 그에게서 오늘도 4년전과 똑같은 문진과 답을 주고받은  역시 똑같은 약처방을 받았다.

 달전에 예약할 때부터 굳이  의사에게 하지 않아도 이미  의사가  처방으로 똑같이 다른 의사가 해준다고 설명을 드렸으나 어머니는 화를 내신다.  의사가 제일  본다고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제일 용하단다.
나는 불효자인가? 어머님을 최고의 의사에게 모시는 것을 막으려는 못된 딸인가?  마음은 그게 아닌데.........
노환보다  위급한 환자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노환을 소홀히 여겨서도 아니다. 다만, 다른 일반 의사가 대신할  있는 환자가꼭  특진의사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정말 특진 의사의 진료가 필요한 위급하고 위독한  사람이애타게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자꾸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특진의사가 어머님께 멀리 다니시기 힘든데 굳이 여기 오시지 말고 동네 가까운 곳에 가셔서  처방받으시라고 말을  것이다. 약처방은 변함없이 같이 하도록 서류를 만들어 줄테니 어느 병원을 가셔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며 어머니를 설득시킨 것이다.
 의사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자기를 절실히 필요로하고 있는 위급한 환자들에게 시간을 내주고싶은 마음이었을 게다.


의사가 그렇게 설명을 하니 어머니도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일이 어머니에겐  쇼크였나보다.
정형외과 진료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가정의학과 진료에서 그만 혈압이 엄청 올라간 것이다. 병원에가실 때만해도 기분이 좋으셨었는데.....

병원에 가면 이런 부류의 환자들이  많다. 유명의사, 일류의사, 최고의 의사에게만 진료받기를 고집하는 일종의 "일류병" 환자들이 정말 많다. 육안으로  판정할  없지만, 병원출입을 오래 하다보면 대충 그런 일류병 환자들을 감으로 식별할  있는데,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사용하는 물품을 최고로 고집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는가.
나는 남과 다르다, 나는 특별하다, 나는 특별한대접을 받아야한다는 의식을 병원진료에서까지 고집한다면 그들의 일류병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서 기다리는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어쩔 것인가?
오늘도 나는 예약을 하지 못해서 낙심하는 환자들의 신음소리 때문에 양보해도  형편이면서도 먼저 차지한 진료시간이 마냥 미안하고 마음이무거웠다.

나보다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릴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  기도한다.


어머니는 명품(?)병원 명품(?)의사를 좋아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물론 어머니의 뜻을 따라 모시고 다녔지만 그런 문제로 가끔 어머니를 속상하게 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 생각을 하면 후회가 된다. 어차피 어머니 뜻대로 하면서 나는 왜 듣기 싫은 소리를 했을까. 내 생각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에겐 명품의료가 당신의 레벨과 효와 불효의 문제였다.




언젠가는 사모곡을 쓸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눈물이 앞을 가로막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눈물이 마르고 활자가 제대로 보일 때 나의 사모곡은 시작될 것이다.


-끝-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은 무슨 색깔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