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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에드만 May 11. 2018

6. <조선일보> 작문 합격글 검토記

언론사 준비생 가이드 [6] 무슨 수를 쓰든, 완성해야만 한다.

앞선 글에선 2014년 <동아일보> 작문 시험을 돌아봤다. 작문에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짚어보면서 기존 해석틀을 너무 고수하진 말아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번에 <조선일보> 작문을 검토한다.

      

<조선일보> 작문은, 논술과 다르게 주제가 파격적이다. 2013년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후배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편지쓰기’ 여기까진 괜찮다. 2014년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10억이 있다면’, 2015년 ‘내가 지구를 지배하는 외계인이라면’, 2016년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2017년 ‘내로남불’(800자 내)이다. 물론 상상력이 풍부한 응시생이라면 이만큼 탐나는 주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10억이 있다면’을 받아든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다소 엉뚱한 질문이 던져졌으니, 독창적인 답을 써야할텐데 무난한 답조차도 떠오르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종합교양 시험을 마치고 2교시에 논술과 작문을 묶어서 2시간을 배당한다. 응시자가 스스로 시간을 배분해서 글 2개를 완성하라는 것이다. 

늘 시간이 문제다. ⓒ픽사베이

난 우선 작문 고민은 나중에 하자는 생각에 논술부터 썼다. 다 쓰고 고개를 드니 85분이 지나 있었다. 남은 35분 만에 10억에 대한 소비 방안을 내놔야한다. 이럴 때가 있다. 시간은 부족한데, 새로운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논제까지 당황스럽다.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면서 나만의 개성을 보여줘야할 것 같은 압박감에 붙들린다. 


난 모험을 강행할 수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소설가들은 보통 자신의 집필 이력에서 궁지에 몰리는 순간이 오면 본인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난 소설가가 아니지만,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시간은 35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절약해야했다. 

     

우선 내가 현장에서 다급히 내놓은 글을 읽어보자.     


주제 :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10억이 있다면       


제목 : 통섭을 생중계하기     


내 삶의 근본 질문을 모색하던 시기에 난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불멸>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쿤데라는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말했다. ‘매일 점점 더 많은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 얼굴들이 날이 갈수록 서로 닮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나만의 유일성을 확신하고,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쿤데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덧셈법과 뺄셈법이다.  

    

뺄셈법은 이것이다. 내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외적인 것과 빌려온 것들을 모두 도려내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삶이라는 고단한 순례길에 들어선 우리는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허례허식으로 우리를 치장하고 있는가. 그 모든 첨가물들을 다 발라내면 유일한 자아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쿤데라의 예리한 지적처럼 내 외부를 다 벗겨내면 자칫 나 자신이 ‘0’이 되어버릴 위험성도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덧셈법 쪽으로 기운다. 내 앞엔 10억원도 있지 않은가. 이 돈으로 세계에 대한 내 얄팍한 인식을 부풀리고 싶다.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싶다. 시민 사회의 지적 성장 역시 돕고 싶다. 이를 위해 10억원으로 내가 그동안 책으로만 만나왔던 석학들을 초청해 ‘지식인 마을’을 만들 것이다. 인지 철학의 댄 대닛, 진화심리학의 거장 스티븐 핑커, 미국문학의 대가 필립 로스 등등.      


그들을 광화문 대형 원탁에 모셔놓고 내가 사회를 보는 것이다. 나는 ‘공생’이란 주제를 테이블에 던져놓는다. 이 모습은 전 세계로 생중계될 것이고 대가들의 불꽃튀는 논전이 실시간으로 전파된다. 저기 논쟁의 한가운데 거장들의 통찰로 부풀어오른 내가 보인다.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마치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유일한 통섭의 리더가 된 듯 보인다.       


마침표를 찍으니 종이 울렸든지 채점관이 손을 들라고 했든지 둘 중 하나였다. 이렇게 극적인 시험은 처음이었다. 개요고 뭐고 쓸 새가 없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한달음에 달렸다. 원고지엔 지금도 글씨가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우선 총평부터 하자. 말이 안되는 작문이다. 논리가 없다는 뜻이다. '작문에 무슨 논리?' 라고 묻는다면, 개연성 정도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소설에서도 ‘개연성’이 없는 작품을 읽으면 덮게 되지 않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닐 뿐더러, 있을 법하더라도 내 글에서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고민은 ‘어떻게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였고 난 이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전개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의지한 것이 쿤데라였다. 1, 2문단은 전적으로 쿤데라의 통찰에 빚졌다. 3, 4문단이 문제였다. 시간이 없었다. 그 때 출판사 <김영사>에서 오래 전에 시리즈로 기획한 '지식인 마을'이 떠올랐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그림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를 접목했다. 10억도 있으니까.

      

말이 되지 않는 글이었으니 되레 독창성은 얼마간 평가받았을지 모르겠다. 반면 글 구성력, 감수성, 문장력 등은 아마 평균 이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붙었다. 앞선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정도만 쓰면 된다. 이 무슨 글인가 말이다. 실제로 10억이 주어진다면 난 저런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교훈적인 이야기만은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10억을 기부하거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 등등.      

ⓒ픽사베이

이 글에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제한 시간 내에 글은 반드시 완성해야한다는 것이다. 말이 앞뒤가 맞든 그렇지 않든 결론은 맺어야한다. 그리고 결론이 자기 안의 깨달음에 머물러선 안 된다. 둘째는 독창적이되 문사철에만 내용을 한정짓진 말자는 것이다. 뉘앙스로나마 내가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영역이 그보다 훨씬 더 넓을 수 있음을 글에 내비치자는 것이다.     


첫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난 나 자신의 사유를 전적으로 쿤데라에 의존했다. 내 생각을 조금 덧붙이긴 했지만 그건 분량 맞추기에 불과했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나? 시간이 없었다. 원고지는 채워야했다. 다행히 내가 현장에서 하고 있는 고민을 쿤데라가 대신 해준 대목이 순간 떠올랐다. 둘째는 독창성 확보하기. 1, 2문단은 쿤데라에 의지했으니 나만의 독창성이 없다. 그러니 그나마 남들이 쓰지 않을 <지식인 마을>을 접목한 것이다. 마치 난 인문사회학에 국한하지 않은 인재인 것 마냥.

     

그러니 시간이 없을 땐 과감한 인용을 두려워하지 말자. 언론사를 준비하면서 신문을 포함해 여러 글을 많이 접하고 있을텐데, 몇 가지 가슴에 남는 구절들은 외워두자. 억지로 외울수도 있지만 감동받으면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다. 그리고 전혀 다른 두 영역을 이어붙이는 것도 효과적이다. 문학+천문학, 역사+생물학, 철학+양자역학. 이 얼마나 매력적인 조합인가. 자신이 붙들고 있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 분야의 해석을 동원하면 글에 입체감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런 글을 현장에서 쓰지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조언하는 것이 낯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 다시 쓴다면 이같은 조합으로 내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 메시지로 승화시켜볼 것 같다는 뜻이다. 그것이 기자의 글쓰기니까.

      

*좋은 인용 문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에 대해선 다른 포스팅에서 논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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