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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Jan 19. 2024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저자는 과학과 민주주의를 동일한 선상에 둔다. 과학은 자연현상을 잘 설명하는 ‘최선’의 방법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회의주의를 그 방법론으로 택하고 있다. 현재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그 어떠한 가설이든 회의주의의 엄격한 ‘헛소리 탐지기’와 ‘소비자 테스트’를 통과하기만 하면 기꺼이 채택된다. 모든 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수많은 이들이 협력하여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서 지금의 현대과학이 만들어졌다. 때로는 잘못된 이론이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나, 훌륭한 자정 능력을 바탕으로 과학은 발전해 왔다. 그리고 민주주의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중들 간의 상호협력과 토의로 발전해 가는 체제이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그 자유로움에 있어서, 또한 인간의 연약함과 오류를 인정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아주 유사하다.


    저자는 당시에, 그리고 현대에도 만연한 UFO, 채널링, 음모론과 같은 유사과학, 미신 등은 이러한 회의주의의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것들은 마땅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 회의주의를 적용시키지 않아 이것들을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받아들인다.


    저자는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 대답들의 공통적인 핵심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은 연약하고 오류를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참과 거짓, 합리성에 목매기보다는 자신에게 신체적, 정신적 이득을 주는 방편을 택하고, 관성에 이끌려 지금까지 유지해 온 관념에 도전하는 것들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단순히 위의 주장들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될 수도, 존재의 증거가 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적인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의심의 태도를 견지하자는 것, 언제든지 테스트를 실시할 준비를 하자는 것이 과학적 회의주의의 입장이다.


    나는 책에서 말하는 ‘악령’이 단순히 위의 것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유사과학, 미신들을 아무런 검증 없이 전달하는 매체들과 과학적 사고 방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행 교육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중세시대에 성행했던 마녀사냥을 언급하며 권력을 가진 집단이 조직적으로 회의주의를 탄압했던 역사를 되짚는다. ‘악령’이란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 유행하는 유사과학, 미신 등은 단순히 증거의 부재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신봉하는지 그 이유를 인간의 본성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역사적 과정을 조망해야 한다. 이는 10장 <내 차고 안의 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저자는 이러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의 해결책으로 과학의 대중화와 과학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대중 매체에서 과학을 주요하게 다루며, 단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겪으며 발전해 온 과학을 소개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회의주의적 사고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회의주의를 전적으로 완벽하다는, 일종의 과학만능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늘 연약하고 오류를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과학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왔고, 윤리적 모호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양날의 칼이다. 과학은 때로는 독재자들의 무기가 되기도 했으며,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과학적 회의주의 또한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의심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모든 이들이 많은 연습과 훈련을 바탕으로 책임감 있는 태도를 유지하며 철저하게 의심하는 사유 습관을 들일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도구는 과학인데, 과학의 주요 정신은 ‘경이와 의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과학적 사고 방법과 저자가 말하는 과학의 소중한 정신(경이와 의심이라는 상호 섞일 수 없어 보이는 그것들), 그리고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언급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 세상은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발전하리라 기대한다. 칼 세이건의 다른 저작이 더욱 기대되는 경험이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 책을 읽은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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