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무교회가 온다」
제목과 표지는 그냥 어그로다. 그리고 어그로를 끄는데 확실히 성공한 듯하다. 유튜브에 '5무교회'를 검색하면 이 책을 비판하는 영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독 한 분이 많이 보이기는 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인터뷰 영상들의 댓글에서도 이 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내용의 댓글들이 어렵지 않게 보인다. 비판의 정도와 표현과 방법은 다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요지는 "그게 어떻게 교회냐"는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마땅히 교회라면 갖추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정말로 저자가 십자가, 새벽예배, 성경공부, 구역, 장로를 "아예" 없애버리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배경', '현상', '적응'의 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배경' 장은 스마트폰과 팬데믹으로 인해 현대인들의 생활 방식이 아예 바뀌어 버렸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공동체 중심적 삶에서 개인주의적 삶으로 형태가 바뀌고, 직장과 거주지를 자주 바꾸며, 세계 문화를 이끄는 한국의 위상과 그로 인한 글로벌 마인드가 자연스러운 세대가 <요즘 청년>들이라고 설명한다.
'현상' 장은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러니까 요즘 어떤 게 잘 나가고, 사람들은 뭐를 좋아하고 어디에 가길 좋아하는지를 '라이프스타일', '리추얼', '커뮤니티', '로컬'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나눠서 설명한다. 더현대서울, 성수동 팝업 스토어와 같은 공간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왜 수많은 청년들이 이곳으로 몰리는지 설명한다. 또한 사주와 타로에서 알 수 있듯, 리추얼(Ritual)한 것들에 관심이 많고 자신의 마음과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가 <요즘 청년>이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트레바리와 당근 마켓 모임, 러닝 크루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출현했고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당일치기 성심당 투어나 인스타그램 발 감성 공간, 이색 축제들이 흥행하면서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여행과 경험, 체험을 찾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위 예시들은 이런 쪽(?)으로는 정말 무지하고 몰상식한 사람이기에 그나마 아는 대표적인 몇 개만 적어놓은 것이다. 진짜 <요즘 청년>들은 아마 더욱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적응' 장은 "그렇기 때문에" 다섯 가지가 없어야 한다고, 즉 '5무'를 주장한다. 앞서 살펴보았던 삶을 사는 이들이 <요즘 청년>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찾아올만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교회에 사람을 오게 하자"는 방식에서 벗어나 "교회가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건물과 예배당의 한계를 벗어나 카페, 공방, 공유주방, 산책길 등 사람들이 생활하는 다양한 장소에서 관계를 맺으며 교회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본책 200-201p 발췌)
'십자가'가 없다는 말은 '교회 로고'에 십자가가 없다는 뜻이다.
"가장 큰 이유는 선교적 맥락화(contextualization)을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이지만, 종교적 배경이 없거나 교회에서 멀어진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부담스럽거나 위협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특히 탈종교화와 탈교회화가 급속히 진행된 서구 사회에서 십자가는 종교적 거리감을 만드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교회는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먼저 공동체와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가자"는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여전히 메시지의 중심에 있지만, 브랜드 로고나 외관에서는 최소화하는 방향입니다. (···) 이는 신학적 변화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변화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십자가를 신학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이야기 속에서 십자가를 표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즉, 로고와 외관에서 십자가를 덜 드러내는 대신, 설교, 찬양, 성례전 등 실제 신앙 활동 속에서는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 현대 교회들이 로고에서 십자가를 덜 강조하거나 생략하는 현상은 복음의 본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현대 문화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번역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십자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더욱 강렬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책 210-213p 발췌)
마치 기존의 목회자분들의 복장이 양복과 넥타이, 구두에서 청바지와 티셔츠, 운동화로 바뀌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청년들이 모이고 있는 많은 젊은 교회들이 심플하고 세련된 교회 로고를 채택하고 있고, 거기에 십자가는 빠져있다.
개인적으로 충격받았던 점은 '설교에서 메시지로'의 변화였다.
"최근 미국의 많은 젊은 교회들, 특히 기존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교회들은 설교를 의미하는 단어로 ‘sermon’ 대신 ‘message’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웹사이트, 소셜 미디어, 유튜브 같은 디지털 채널에서도 ‘sermon’ 대신 ‘message’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나타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sermon이 갖고 있는 종교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전통적으로 sermon이라는 단어는 일방적으로 교훈을 전달하고, 강단 위에서 가르치는 듯한 이미지로 느껴집니다. 즉 설교자는 말하고, 청중은 듣기만 하는 수직적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반면 message는 더 친근하고 대화적인 뉘앙스를 주며, 마치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나 삶에 적용되는 개인적인 메시지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특히 교회를 처음 접하거나 교회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sermon이라는 단어는 거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지만, message는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표현입니다.
현대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트렌드에 맞추려는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오늘날 콘텐츠는 TED 강연, 유튜브 영상, 팟캐스트 등에서 보듯이 ‘설명’이나 ‘강의’보다는 메시지 중심, 스토리 중심, 공감 중심으로 변화했습니다. 교회 역시 비신자와 탈교회 경험자에게 친숙한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결과 ‘Watch Sunday’s Sermon(주일 설교를 시청하세요)’보다 ‘Catch This Week’s Message(이번 주 메시지를 들어보세요)’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갑니다. (···) 젊은 교회들이 ‘가르침’보다는 ‘공감’과 ‘나눔’을 더욱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는 교회가 일방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삶을 고민하고 서로 공감하며 메시지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포(preaching)’보다 ‘공유(sharing)’를 강조하는 것이 교회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본책 208-210p 발췌)
이상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맥락화된 교회 생성(Contextual Church Formation)’ 개념은 현대 선교학과 교회론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보편적이지만, 교회는 언제나 지역적 맥락과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제 이식이 아니라 그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해야 합니다. 현지의 관계와 문화 속에서 “우리가 가진 교회의 구조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맥락에 따라 교회가 새롭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실천적 신학적 선언입니다." (본책 202p 발췌)
'성경공부'와 '구역'이 없다는 말은 각 개인에게 맞춰져 있기보다 틀에 맞춰진 기존의 교회 내의 교육 과정이 없다는 뜻이다. 대신 미국의 젊은 교회들은 '트랙'이라는 제도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들 수 있는 '그룹'을 택했다.
"(···) 미국교회를 보니 성경공부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정규 과정을 없애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새신자가 오면 4-8주의 교육 과정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저니 처치의 경우에는 새신자 성경공부라는 말 대신에 'New Steps'라는 표현을 씁니다. 과정이 길지도 않습니다. Step 1에서 기본적인 내용을 배우고, Step 2로 모임에 참석해서 목사님들과 성도들과 인사합니다. 그리고 바로 Team이 되어 섬길 수 있습니다.
문턱이 너무 낮습니다.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성도가 7,000명 이상 모이는 코스탈 커뮤니티 처치도 3단계의 과정만을 두고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 우리 교회의 정체성(DNA)을 확인하고, 2단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로 나를 부르신 이유를 발견(Discover)한 후에, 드림팀이 되어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맞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한번도 교회의 문화를 접해보거나 성경 공부 등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통 교회의 성경 공부는 너무 쉽거나, 난해해서 지루함을 느낍니다. 말씀에 대해 갈급함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이야기들은 낯설거나 나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마음먹은 미국 교회는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남기고 모두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진짜 알기 원합니까?" "당신은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면서 예수님을 발견하는 여정에 참여하길 원하십니까?" "답이 Yes라면, 좋습니다. 이제 당신은 우리의 식구입니다."
진심을 확인하면, 그다음은 영적인 여정을 함께 걸어갑니다.
그렇다면, 미국 교회들이 영적인 성장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 리더십들은 아예 이웃 신학교에서 공부를 합니다. 깊이 있게 말씀을 배우고, 돌아와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평신도로 교회를 섬기며 말씀을 가르치는 리더가 됩니다. (···) 성경공부라는 말 대신에 'Growth Track'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 안에서 말씀을 배우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삶을 나눕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공부'라는 단어의 사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평생토록 처음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첫걸음을 떼어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성경 책을 단 한 번도 펴본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함께 시작하면 됩니다. 인생에 대한 정말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답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는 'Discovery Track'에 속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예전에는 사영리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지금은 우선 초대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주님께서 개인의 삶에 조용히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드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진 일반인들이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손에는 막강한 힘을 지닌 AI 비서의 스마트폰이 모두 들려 있습니다. 각 개인은 이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MZ는 이미 사회에서 그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편의를 위해 만든 '구역' 제도가 성에 차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내 삶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교회 내의 과정을 이수한 후에는 내가 속할 수 있는 '그룹'을 찾아서 참여해도 되고, 직접 내가 '그룹'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부목사님께서 함께 해주실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리더와 함께 공동으로 운영을 해도 됩니다. 자유롭게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해산을 해도 됩니다." (본책 232-235p 발췌)
마지막으로 저자는 '브랜딩'을 언급하며 여러 '5무교회'들의 예시를 소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리브랜딩(Rebranding)이란, 브랜드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단순히 로고나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타겟)의 변화에 맞춘 메시지의 재구성, 시대의 흐름에 맞는 시각적 요소의 현대화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브랜드 재창조 작업입니다.
만약에 교회라면 핵심 메시지와 비전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세대의 문화와 소통방식을 반영하여 예배 형식, 공간 구성,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 교회의 모든 표현 방식을 시대에 맞게 재설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리브랜딩은 단지 겉모습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교회)의 근본적인 정체성과 방향을 현대적이고 효과적으로 재정립하는 전략적 과정입니다. (···) 이제 교회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30년 전, 20년 전, 아니 어쩌면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리브랜딩이란 로고 몇 개 바꾸고 예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예배당 입구에 붙이는 현수막 하나 새롭게 디자인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랜딩이란 교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이 시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감각으로 우리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거치지 않으면 교회는 다음 세대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젊은이들은 전단지나 안내 책자를 보고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어떤 비전을 품고 있는지, 사회와 지역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성도들이 어떤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먼저 봅니다. 그 모든 것이 '브랜드'입니다. (···) 교회 역시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일방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삶의 여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방적 접근인 "전도 → 성경공부 → 제자 훈련 → 봉사" 같은 단선적이고 획일적인 과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개인의 신앙 여정을 존중해서 사람마다 다른 배경과 필요, 관심사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각의 성도들이 삶에서 겪는 실제적인 고민과 질문을 존중하고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본책 251-252, 260p 발췌)
이 책은 진지하고 무거운 신학 책이 아니다. 그저 교회가 <요즘 청년>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이고 방법론적인, 구조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낸 책이다.
사실, 그들의 관심사, 유행을 가지고 와 사역과 설교에 활용하는 행위는 이미 너무나 보편적이다. 예컨대 청년부 프로그램, 활동들이 그렇고 수많은 목사님들, 설교자분들의 설교가 그렇다.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맞춰진 컨텐츠로 만들어진 것들이 이미 너무나 많다. 예컨대 숏츠 설교가 그렇고, 기독교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 페이지들이 그렇고, 기독교 예능과 팟캐스트들, 여러 기독교 팝업 스토어와 콘서트,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은 기존의 것들과 다른 점이 없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의 방법들은 현재 교회의 모습과 신앙생활의 방법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닌, 거기서 더 얹어진, 추가적인 '무언가'라는 점이다. 반대로, '5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기존의 형태와 방법에 변화를 주거나 '덜어낸' 것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책으로부터 '덜어냄의 미학'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 귀한 줄 몰랐고,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 전체적인 모습의 교회 공동체와 그것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왔으니 말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교회이고 행사, 프로그램일까? 이전에 차고 넘쳤던 프로그램들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거둬내고 덜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덜어냄'에는 반드시 '채워넣음'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책이 짚고 있는 <요즘 청년>들과 그들의 일상에 대해서 깊이 공감한다. 일단 나이상으로는(...) <요즘 청년>이 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요즘 트렌드와 청년 세대들의 심리, 특징에 대한 저자의 인사이트에 놀랐다. 청년들의 일상의 모습과 그 중심에 있는 심리와 특징들을 잘 풀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의 내용이 진정성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막연한 아쉬움과 불편함, 씁쓸한 뒷맛이 남아있다. 교회가 교회 됨이 과연 무엇일까? <요즘 청년>들이 교회에 바라고 기대하는 모습이 과연 이런 모습일까? 일하다 지쳐버린 청년들, 의무감과 관계로 인해 묶여있는 청년들, 더 이상의 기쁨이 사라진 청년들은 무엇으로 채워져야 할까? 세상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는 신뢰가 없고, 추락할 대로 추락해 버린 교회의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회복되어야 할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복음이면 충분하다. 나에게 가장 감사한 일이 구원이라는 것, 그것 하나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덜어내는 거 좋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않은가? 넘치도록 채워 넣고 들이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덜어내야만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복음과 말씀과 기도가 삶에 자리잡지 않는다면 채워넣음이 헛되고 덜어냄이 헛되지 않을까.
2000년의 시간 동안 항상 복음은 힘이 있었고, 말씀과 기도는 능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시대가 변해도 늘 정답은 복음과 말씀과 기도였다. 오늘날 우리는 왜 복음을 묵상하기에 힘쓰지 않는가? 왜 말씀을 공부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큰 일들을 행하셨는지 알고, 나의 삶과 내 주변의 사람들과 단체와 나라와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기에 힘쓰지 않는가? 왜 찬양의 가사가 어떠한 뜻인지, 무엇을 선포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힘쓰지 않는가? 내가 고백하는 말이, 읊조리는 기도의 말이 어떠한 뜻인지 알기 위해 힘쓰지 않는가? 왜 악기 연습과, 수련회와 공동체 프로그램과 여러 행사에 더욱 힘을 쓰고 있는가? 정말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즉 감화된다면, 우리는 결코 잠잠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매일 그분을 더욱 갈망하게 되고, 그분의 일하심과 계시에 반응하고 응답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삶으로 살아내게 될 것이다.
5무교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뭐, 오면 어떤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을 알게 되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낼 수 있다면 구조와 방법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10무, 20무, 100무 교회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으리라. 물론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교회들의 모델들 중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유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평불만 가득한 꼰대의 시선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점점 편한 신앙생활, 편리한 예배를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복음이라는 게, 말씀과 기도라는 게 항상 즐겁고 편한 것이었는가? 옛 것으로부터 외형은 덜어내되 본질과 알맹이로부터 충분히 배워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주셨던 하나님과 말씀, 기도 앞에서의 뜨거움, 열정, 헌신을 말이다.
어찌 됐거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오랫동안 허물어져 간다고 생각했던 한국 교회의 모습에 낙담하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제게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 나는 지금도 계속 나의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책 284-285p 발췌)
그 하나님에 일하심에 동참하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내 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게 아닌, 내가 하나님 편에 서있기를 기도한다. Praise the L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