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윌 헌팅」
https://www.youtube.com/watch?v=ZCVGDkXLliY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밥으로 뭘 먹을지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어떤 직장을 가야 할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와 같은 인생의 중요한 사항까지, 우리는 선택의 기로 속에 놓여있다.
그러나 모든 선택이 완벽하게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제한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선택을 내려야 하고, 그 조건과 환경이라는 것들은 대체로 내가 받아들이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인생이 구성된다.
달리 말하면 인생이란 선택과 비선택 사이의 항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자신이 태어나게 될 나라를 선택하지 않았고, 지역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윌은 자신의 친부모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학대한 양부모들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토록 놀라운 재능을 가질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스카일라는 13살에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산을 물려받을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션과 램보는 대학 시절 서로를 룸메이트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윌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선택을 외면한 채 비선택에 묶이며 살아갔다. 겉보기에 누구보다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상 그는 항상 과거의 비선택들에 옭아매여 있었다.
윌은 스카일라와의 데이트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자신과 그녀의 관계를 망쳐버릴까 봐 관계를 더 진전시키는 걸 두려워했다. 또한 스카일라가 자신의 싫은 점을 발견하고 떠나갈 것을,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고, 학대받은 과거를 들키는 것을 두려워했다.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그녀의 모습을 망칠까 봐 두려워했다.
이런 윌을 두고 램보는 재능을 썩히면 안 된다는 비선택을, 션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하게 해야 한다는 선택을 주장하며 서로 대립한다. 그렇게 살아서 성공한 장본인이 바로 램보 그 자신이었고, 또한 그렇게 수많은 비선택들을 겪으며 살아온 인물이 바로 션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션은 윌과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학대받으며 자랐고, 뛰어난 룸메이트에 가려진 학창 시절을 보냈고, 아내의 사별을 겪었다. 그러나 션은 이런 비선택들마저 겸허히 받아들이며 주어진 것들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선택해 왔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MIT에 입학했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서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며, 아내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재혼을 하지 않았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은 램보를 악역과 같이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불편한 현실을 알고 있다. 청소부나 벽돌공보다 MIT의 교수로 사는 인생이 더 수월하다는 걸 말이다. 윌 또한 겉으로는 이를 부정하며 친구들과 함께 패싸움을 하고 술을 마시며 놀지만, 칠판에 적힌 문제를 남몰래 풀어버리고 집에 책을 쌓아두며 읽는 등 자신의 재능을 한껏 활용하기도 한다. 윌은 벽돌공이나 청소부 같은 직업이 어떻냐고 말하며, 그런 '고귀한' 직업들이 있기에 다른 이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다른 곳이 아닌 MIT의 청소부였고, 칠판에 쓰인 문제를 남몰래 풀어버린 행적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윌과 함께 막노동을 하는 친구 처키는 윌이 자기는 여기에서 평생 살 거라고 말하자 욕을 내뱉으며 당장 이곳에서 떠나버리라고 말한다.
"What do I want a way outta here for? I want to live here the rest of my life. I want to be your next door neighbor. I want to take out kids to little league together up Foley Field."
"Look, you're my best friend, so don't take this the wrong way, but in 20 years, if you're livin' next door to me, comin' over watchin' the fuckin' Patriots' games and still workin' construction, I'll fuckin' kill you. And that's not a threat, that's a fact. I'll fuckin' kill you."
(···)
"Why is it always this? I owe it to myself? What if I don't want to?"
"Fuck you. You owe it to me. Tomorrow I'm gonna wake up and I'll be fifty and I'll still be doin' this. And that's all right 'cause I'm gonna make a run at it. But you, you're sittin' on a winning lottery ticket and you're too much of a pussy to cash it in. And that's bullshit 'cause I'd do anything to have what you got! And so would any of these guys. It'd be a fuckin' insult to us if you're still here in twenty years. (···) Let me tell you what I do know. Every day I come by to pick you up, and we go out drinkin' or whatever and we have a few laughs. But you know what the best part of my day is? The ten seconds before I knock on the door 'cause I let myself think I might get there, and you'd be gone. I'd knock on the door and you wouldn't be there. You just left."
겉으로 보면 자신의 재능을 썩히면 안 된다는 압박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한껏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와 온전히 어울려주는 가족 같은 친구들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아니 그들을 떠나는 게 두려웠기에 계속 보스턴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을까.
결국 윌은 램보 교수가 주선해 준 직장에 다니게 된 것 같았으나... 처키가 윌을 데리러 왔을 때 윌은 집에 없었고, 직장을 포기하고 스카일라를 만나러 캘리포니아로 떠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사람들을 떠나보낸 게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사람들을 떠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을 하며 살지만, 모든 선택이 완벽하게 자유로울 순 없다. 때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옭아 매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러한 비선택에 체념한 채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것인지,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선택함으로 삶을 개척할 것인지에 있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그러한 모든 비선택과 선택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이런 장엄한 인생은 소설책 읽듯이 파악하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윌은 예술에도 해박했으며, 온갖 지식을 알고 있었지만 평생 보스턴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벽화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곳의 공기와 냄새는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은 말로 쉬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스스로 경험해야만이 온전히 알 수 있다.
소설 「모순」은 다음의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다. 달리 설명할 말이 있을까.
그러나 살아간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며, 안다고 해서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코끼리를 만지는 맹인과도 같아서 자신이 느낀 감각만을 가지고 해석하고 결론 내린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생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는 모순덩어리의 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일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 수많은 비선택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며 살아간 션이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