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tion - Emma watson 'La la land ost'를 들으며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할 것은 많아도 심심한 주말.
선풍기를 틀고 후덥지근한 방에서 가만히 바람을 쐬고 있다가 문득 어린 시절 봤던 만화가 떠올랐다.
알록달록한 공룡들이 나오고 공룡들이랑 같이 동화 같은 세상을 여행하는 그런 내용의 만화였다. 제목은 <용용 나라로 떠나요>라는 만화였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만화였는데도 지금은 제목도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검색을 하고서야 다시 알 수 있었다.
올해 초에 친한 동료랑 같이 놀이공원을 간 적이 있었다. 그 제안은 내가 먼저 했었고 그때 그랬던 이유는 그 당시 내 현실이 힘들어서였던 것 같다. 놀이공원은 대표적인 꿈과 환상의 나라이고 그런 곳에 가서 거꾸로 뒤집고 돌리고 떨어지고 하다 보면 무거운 현실에 묶여있는 정신이 좀 떨어져 나갈 거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친한 동료도 나도 그 당시 나름 고민이 많았던 차라 둘이 나란히 앉아서 추로스를 씹으면서도, 다들 웃고 소리 지르는 혜성특급을 타면서도 생각보다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깜깜한 우주 속에서 덜컹거리는 우주선을 타던 고민 많은 지구인 두 명은 일찌감치 놀이기구 타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롯데리아에서 제로콜라를 시켜놓고 앉아 깊지도 얕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플라톤의 손은 이상을 뜻하는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뜻하는 바닥으로 향해있다.
흔히들 플라톤은 참된 진리를 현실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는 이상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진리는 현실에 있다는 현실주의자라 한다. 사실 그동안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상은 현실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에게 괜한 희망을 준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상은 이상이라서 아름다운 거지 그게 현실로 오면 이상으로서 빛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했다.
놀이공원에 가서 느꼈던 이상한 기분은 일상을 살면서도 종종 느꼈었던 것 같다. 이상을 좇고 싶지만 여전히 이상과는 먼 현실에 있는 내가 싫은 기분. 그래서 현실은 더 시시해지고 이상은 더 애달파지는 기분. 그런데 어쩌면 이런 기분의 원인은 내가 현실과 이상을 자꾸만 나누려 해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 속에 또 이상을 두고 현실에는 기대를 두지 않으려 했던 게 일상의 권태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인 중에서 자신은 지나가다 누가 가방이 열려있는 걸 보면 항상 뛰어가서 가방이 열려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시공부를 하며 세상에 찌들었던 시절, 자기만 늘 오지랖인 거 같아서 마음의 문을 다 닫고 이제 아무것도 안 하려는 마음을 먹은 채로 독서실을 가고 있었는데 어느 학생이 뛰어오더니 가방 열렸다고 말해주는데 그날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고 했다.
매번 할머니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아 드는 사람들, 하기만 하고 챙겨두지 않는 헌혈증, 첫 알바라 실수한 아르바이트생을 아무렇지 않게 기다려주는 출근길 직장인, 대신 눌러준 버스벨.
현실 속에 이상이 있었음에도 보지 못했던 건 아마 내가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신의 이상을 티 안 나게 조금씩 내비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반짝인다.
이상은 현실에 존재한다. 다만 현실에 드러나지 않은 이상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더 부지런히 주변을 둘러보고 애정을 가지고 기다리고, 관찰해야 한다.
현실은 겉으로 차갑기 때문에 그 냉기를 이기고 잘 살펴보아야 현실에 발을 붙이고도 이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동안 이상은 현실에 없다고 여겼던 건 내가 현실에서 찾고자 하지 않았던 게으름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