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 이준익의 '님은 먼 곳에'
이준익이 그리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이준익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부정적인 소문만 넘쳐났지만
그래도 뭔가 있질않겠나라는 이준익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뭔가가 있었나?
'님은 먼 곳에'는 이준익의 김추자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김추자에게 헌정하는 영화에 다름 아니었다.
70~80세대에게 더 정확하게 70년대에 청춘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 김추자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사람이 또 있을까
그녀의 나른하게 흐느적거리던 몸짓과 비음이 심하게 섞인 퇴폐적인 음색 그리고 당시로서는 아슬아슬했던 무대의상까지
김추자에게 헌정하는 영화를 찍으려면 그녀의 노래가 배경으로 쓰여야 할 것은 너무나 자명하고
그러자니 베트남전을 비켜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베트남전을 곁가지로 가볍게 건드리고 말 것인지, 아니면 정면으로 직시할 것인지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없지 않았으리라
이준익감독은 '어정쩡한' 후자 쪽을 선택했고 그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월남전은 이미 식상한 소재로 그동안 빛나는 감독들에 의해 너무나 많이 다루어져 왔으며 그로 인해 월남전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각은 보다 냉철해졌고 영화를 보는 수준 또한 한없이 고급스러워져 버렸다.
미군의 틈새에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내몰린 한국군의 입장을 말하고 싶었다면 김추자의 님타령과는 분리시켜 보다 그 주제에 집중해서 치열하고 냉정하게 다루어야 했을 것이다.
베트남전을 무게 있게 다루면서 김추자의 노래로 옷을 입히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미안하지만) 월남전은 이제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주제가 되었다.
나는 김추자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자 했고 이준익감독과 교감하고자 했다
하지만 감독은 욕심이 과해 적은 용량으로 지나치게 많은 주제를 비빔밥처럼 마구 집어넣고 있어서
보는 동안 적잖이 짜증스러웠다
캐릭터는 일관성이 없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개연성도 없으며, 각각의 시퀀스들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맥락 없이 튀기까지 했다.
외면하는 남편 상길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면회를 가고
다른 여자의 남자인 그가 뒤돌아서 자는 모습을 참아내는 순이
언감생심 총알이 빗발치는 월남 전쟁터에 며느리를 혈혈단신 씨받이로 내모는 시어머니
설정이 억지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순이는 월남에 간다
그리고 화려하게 순이에서 써니로 거듭나는 과정들은 좋게 말해 키치스러웠다
수애를 캐스팅했을 때는 이준익감독 나름의 깊은 뜻이 있었겠지만 도대체 왜 수애인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처연한 눈매에 늘씬한 외모,
한없이 착하고 순종적이지만 그렇게 바보스럽지는 않은 (사실 월남에 갈 때까지는 멍청해 보이긴 한다) '본처'를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다는 것인지. 하기야 세상의 모든 본처는 단지 '본처'라는 이름 때문에 매력이 없는 것인지도
요즘 노래 잘하는 배우는 좀 많은가. 수애를 포기할 수 없었다면 노래연습이나 시키고 내보내든지..
단지 군인들에게 눈요깃감으로 세우기위해서였던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영화를 본 사람들은 말한다. 왜 죽을 고생을 하고 찾아간 남편의 뺨은 때려? 이준익감독은 이 영화의 모든 대답은 마지막 장면에 있다고 했다. 왜 뺨을 때려?라고 물으니 감독은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대답이란다 이준익감독의 심오한 깊은 뜻은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듯하다. 한동안 나는 그 대답을 시원하게 말해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나는 그 마지막 장면만큼은 이준익감독이 옳았다고 본다
내가 순이라면 어땠을까? 나도 뺨을 때렸을 것이다.
순이처럼 몇 대고 계속 후려쳤을 것이다
순이는 미션이 주어지면 미련스럽게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앞만 보고 가는 캐릭터다 그렇기에 매달 하늘을 보고 별을 따오라는 시어머니의 명령을 준행하고
(비록 별을 따는 데는 실패하고 말지만)
집을 나가라면 나가고 출가외인이라고 내치는 친정아버지의 외면에 시댁귀신이 되려고 다시 돌아간다 얼토당토않은 월남행도 시어머니의 명령 때문이었고 남편을 만나려면 가수가 되는 수밖에 없는데 가수로 무대에 서려면 야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니 또 순응한다
그런데 노래하는 것이 뜻밖에 즐거운 거다 예전처럼 노래한다고 면박주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환호하는 것이 신기하다 순이는 좋아하는 김추자의 노래를 맘껏 부르면서 공연을 즐긴다 그러나 한 가지 미션이 남아있다 남편이 있는 호이안에 가야 하는 것
왜 순이는 그토록 남편을 만나려고 했을까
심지어 미군간부에게 몸까지 제공하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노래 하면서 이 기회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다시 내가 수애였다면...
궁금했겠다 그리고 남편에게 묻고 싶었겠다
나를 피해 군대로 도망갈 만큼 내가 끔찍한가?
얼마나 끔찍하면 한 달에 한번 내가 찾아가는 것도 싫어서 지옥 같은 이곳 월남까지 도망을 왔는가?
(순이는 상길이 어쩔 수 없이 월남으로 내몰린 것을 몰랐다)
그를 만나 대답을 듣고 난 뒤에서야 '이제 내가 당신을 버리겠다' 이별을 선언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남편은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패닉상태다
뺨을 때려 남편을 때리며 순이는 말하고 싶었겠지
'나를 피해 도망간 곳이 고작 이곳이었니!'
철썩!
'네가 어디에 서있는지 네 모습을 좀 들여다봐!'
철썩!
'이 천지 분간도 안 되는 멍청한 놈아!'
철썩!
충분히 상길은 뺨을 맞을만하지 않은가
뺨을 맞으면서 상길은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자괴감도 함께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흐느껴 울게 되었겠지.
그렇더라도 인생은 즐거워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였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영화가 끝난 뒤 돌아오는데 김추자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져 혼자 흥에 겨워있는데
친구가 무안하게 면박을 준다
'누가 들으면 귀신 나온 줄 알겠다!'
이런, 철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