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 칼라 디 소토의 '일 포스티노'

시와 바다와 자전거 그리고 은유

by E H YOON

1996년 오스카 외국영화상 수상작이다. 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정치가이면서 시인이었던 파블로 네루다가, 그의 사상적 계보로 조국으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나폴리의 한 작은 섬에 살게 되었던 것을 근거로 만들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마이클 레드포드'가 메가폰을 잡고 '마씨모 트로이지'가 마리오역을, 시네마천국에서 알프레도로 분했던 '필립 누와레'가 네루다역으로 공연하였다.


마리오는 이탈리아의 '칼라 디 소토'라는 작은 섬에 사는 청년이다. 섬에서 태어나 남자로 할만한 일은 고작 어부가 되는 일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테건만, 그는 배를 타기만 하면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리곤 한다. 그는 '배 알레르기'라고 변명하지만 다 큰 남자가 되어서 노년의 아버지가 잡아오는 고기에 생계를 의탁하는 마리오의 모습은 한없이 무능하고 구차해 보인다.


아름답지만 가난한 이 작은 섬에 칠레의 사회주의자이자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망명하여 살게 된다. 무료하고 조용하던 이 섬은 졸지에 매스컴에 오르게 되고 섬은 잠시 흥분으로 술렁거린다. 우체국에서는 세계 각처에서 네루다에게 보내져 오는 많은 양의 우편물을 전담할 우편배달부가 필요하게 되었고, '더럽게 짜서 영화 값이나 하면 그만'일 월급임에도, 어부가 되기 싫은 마리오는 기꺼이 그 일을 자청하여 네루다의 '일 포스티노'가 된다

공산주의자인 우체국장이 보기에 네루다는 탄압받는 위대한 사회주의자이지만, 마리오가 보기에 그는 매혹적인 연애 시로 뭇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래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시인 일 뿐이다. '나폴리에 여자를 유혹하러 갈 때' 네루다와 잘 아는 사이임을 자랑하고 싶은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그의 책을 들고 찾아가 서명을 부탁한다. 그 책을 계기로 시를 이해해 보려 애를 쓰는 마리오.

난 시들고 멍한 느낌으로 영화구경을 가고 양복점을 들른다.


독선과 주장의 틈바귀에서 시달리고 있는 덩치만 큰 백조처럼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피투성이 살인을 외친다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그의 시들을 외우다시피 한 마리오는 어느 날 네루다가 묻는 말에 그의 시를 인용하여 대답을 한다.

"자네, 왜 그렇게 서있는가?"

"네?"

"우체통처럼 서있잖은가?"

"장승처럼요?"

"아니, 장기판 말처럼 요지부동이었어"

"도자기인형보다도 조용했지요"

네루다는 빙긋 웃으며 '내 앞에서 은유와 직유를 사용하지 말게' 한다. '은유'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그 '은유'라는 것에 대해서 캐어묻는다.

"하늘이 운다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온다는 것이죠"

"맞았어, 그런 게 '은유'야"

"간단하네요. 그런데 단어가 왜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지요?"

마리오는 네루다와의 대화를 통해 '시'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선생님의 시 중에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피투성이 살인을 외친다'라는 구절이 있던데, 그것도 은유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어요. '인간으로 살기도 힘들다'"

"저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표현을 못했거든요.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런데 왜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살인을 외치죠?"

"시란 설명을 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야"

"나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그냥 우편배달부로 있는 게 좋을 거야. 많이 걸어 다니니까 최소한 살이 찌지는 않겠지"

"하지만 시를 쓰면 여자들이 좋아하잖아요.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그럼 '은유'를 쓰게 되나요?"

"당근이지"


네루다와 마리오 사이에 각별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고 마리오는 바다로 열린 창가에 서서, 또는 해가 떨어진 해변을 천천히 걸으면서 시상을 떠올리려 골몰하지만 좀처럼 수월하지가 않다. 네루다가 바다를 보며 '아름다운 곳이야' 했을 때다. 평생을 그 섬에서 낳고 자란 마리오로서는 선뜻 실감이 되지 않아, '정말요?'하고 되묻는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바다에 관한 시를 한편 들려주고 나서 그 시의 감상을 묻는다.

"이상해요."

“무슨 뜻이야? 무서운 비평가로군."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이상하다고요."

"어떻게?"

"단어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어요."

"파도처럼 말이지?"

"맞아요, 파도처럼요."

"그건 운율이라는 것이야."

"멀미까지 느껴졌어요."

"멀미?"

"마치 배가 단어들로 이리저리 튕겨지는 느낌이었다고요."

"..........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뭔데요?"

"그게 바로 은유야, 느낌이란 그렇게 순간적으로 생기는 거야"

"그렇다면 제가 세상을 설명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 바다와 하늘과 비와 구름과 그리고……."

"기타 등등이라고 하면 돼"

"기타 등등이 있는 이 세상이 다른 것의 은유라는 말인가요?"

네루다는 마리오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진다. 마리오가 시 세계에 성큼 한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부르조아지의 모습을 한 사회주의자 네루다와, 가난한 인민의 모습을 한 무능한 마리오가, 시라는 매개를 통해 동격의 대화를 나누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즈음, 마리오는 '베아트리체 루소'라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빠지게 되고 네루다에게 조언을 구한다.

"사랑에 빠졌어요."

"사랑엔 치료약이 없어"

"아녜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이대로 아프고 싶어요."

"누군데?"

"베아트리체……."

"단테 알리그제리, 그도 베아트리체를 사랑했지. 베아트리체란 '영원한 나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네."

마리오는 베아트리체를 위한 시를 한편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스스로 시를 지어보려 밤새도록 달을 보며 고심한 끝에 마리오는 베아트리체를 찾아간다.

"베아트리체, 당신의 미소가 나비날개처럼 펼쳐집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가버린다.


네루다에게 녹음기라는 신기한 물건이 배달되던 날, 네루다는 동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음하다가 마리오에게 이 섬에 사는 주민으로 이곳의 아름다움과 고향에 대한 자랑을 해보라며 마이크를 넘겨준다.

"베아트리체 루소."

망설이던 마리오는 그 말 한마디밖에 하지 못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리오를 보고 네루다는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마리오와 함께 베아트리체가 일하는 주점 -- 그녀의 숙모가게인-- 으로 간 네루다는 베아트리체에게 주문을 하며 일부러 펜을 부탁하고 그녀에게 잠시 곁에 서 있어 주기를 청한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노트 한 권을 선물하며 첫 장에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며 동지인 마리오에게, 파블로 네루다 증'이라 서명을 한다.

"자넨 이제 시인이야. 시를 쓰고 싶으면 이 공책에 쓰도록 하게."

베아트리체에게 시위하듯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말하고 과연 베아트리체는 마리오를 이전과 다른 눈으로 쳐다본다.


그날 이후부터, 베아트리체 또한 마리오에게 빠져들게 된다. 베아트리체와 사랑을 하면서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틈틈이 시를 배운다.

"그물이 어떻지, 마리오? 형용사가 필요한데."

"서글퍼요."

"서글퍼? 난 서글픈 그물을 당겼다."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에게 써 준 네루다의 시 '벌거숭이'가 그녀의 숙모에게 들키게 되고, 벌거숭이'라는 단어 때문에 화가 난 숙모는 그 시를 들고 네루다를 찾아가 따진다.

"마리오 루폴로라는 남자가 우리 조카딸을 유혹했어요"

"어떻게요?"

"은유라나요? 그것으로요. 그놈이 은유를 해서 조카딸년을 후끈 달게 했다고요. 가진 것이라고는 발톱 사이에 낀 때 정도밖에 없는 녀석이 말솜씨하나는 비단이더군요. 처음에는 점잖게, 미소가 나비 같다느니 뭐니 하더니, 이제는 그녀 젖가슴이 두 개의 불꽃이라고 한 대요."

숙모의 말을 듣는 네루다의 얼굴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는 기색이 역력하다. 베아트리체의 숙모가 가고 난 뒤 네루다는 하얗게 질린 마리오에게 이죽인다.

"총을 쏘아 자네를 죽이고도 정당방위로 풀려 날 거야."

"시퍼런 칼날과 날카로운 송곳니로 처녀막을 찢듯, 자네가 '은유'라는 백색무기로 조카의 순결을 위협했다고 할 거야."

"시인이며 나의 동지인 분이시여, 그대가 날 이렇게 만들었으니 날 이 곤경에서 구해주세요."

"우표를 붙일 때나 사용하던 혓바닥을 다른데 사용하도록 가르쳐주었으니,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은 그대의 책임입니다."

운율에 맞추어 이죽이는 네루다의 말을 받아 같이 운율에 맞추어 투정하듯 말하는 마리오.

"책을 준 적은 있지만 내 시를 도용하라고 한 적은 없네. 내 아내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체에게 주다니."

"시란 쓴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에요."


그 무렵 그 작은 섬에도 선거 바람이 불어닥치고 선거철만 되면 수도공사를 공약으로 들고 나오는 민주당 대신 마리오는 사회당에 투표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마리오 또한 조금씩 사회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숙모의 반대에도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은 깊어가고 마침내 네루다가 증인이 되어 결혼식을 올린다. 그날 네루다는 조국 칠레에서의, 그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칠레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약속을 하고 언제 또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될지 모르니 남기고 가는 짐들을 가끔씩 들러 살펴봐 달라는 부탁을 한다. 깊은 포옹을 하고 헤어지는 두 사람…


혼자 섬에 남겨진 마리오는 신문에 오르내리는 네루다의 기사로 그의 근황을 알게 될 뿐 약속을 했던 그의 편지는 오지 않는다. 민주당의 승리로 선거가 끝나고 수도공사를 한답시고 법석을 떨던 인부들도 선거가 끝나면서 모두 돌아가버린다. 마을 주민들은 다시금 배신감을 느끼고 마리오는 점차 사회주의에 깊게 빠져든다.


1년 만에 고대하던 네루다로부터의 편지가 오고 마리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편지를 뜯어보지만 남은 짐을 부쳐달라는 네루다 비서로부터의 사무적인 편지임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네루다의 집에서 그의 짐을 챙기던 그는 예전에 녹음을 했던 네루다와 자신의 음성을 듣는다.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게."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어, 말해봐."

"베아트리체 루소"

"좋아 잘했어"

추억에 잠겨 그 녹음을 듣던 마리오는 네루다를 위해 섬 곳곳을 다니며 섬의 아름다움을 녹음기에 담기 시작한다. 베아트리체 루소 외에 아무 의미가 없던 무료한 섬이 시를 통해서 살아있는 섬으로,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운 섬으로 보인다.


제1번 '칼라 디 소토'의 파도, 작은 파도

(작게 일렁이는 파도소리 녹음)

제2번 큰 파도

제3번 절벽에 이는 바람소리

제4번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소리

제5번 내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제6번 신부님이 치시는 교회 종소리

제7번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제8번 '파블리토'의 심장소리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네루다가 그의 아내와 함께 섬을 찾아온다. 베아트리체의 주점으로 들어섰을 때 한 작은 사내아이가 뛰어다니는 것을 보게 되고 그 아이를 '파블리토!'라고 부르는 베아트리체와 조우한다. 그녀로부터 마리오의 소식을 듣게 되는 네루다. 베아트리체의 출산을 며칠 앞두고 대규모 공산주의 집회가 있어 시위에 참석하러 갔다가 군중들에게 깔려 그만 죽고 말았다는 얘기와 함께 마리오가 그에게 남긴 녹음 테이프를 건네받는다.


'마리오입니다.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선생님 친구 분들에게 우리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 적이 있었죠.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아 이 테이프를 보냅니다. 전 선생님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다 가져가 버리신 줄로 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저를 위해 남기신 게 있다는 것을 알겠어요. 제가 결국 시를 썼습니다. 곧 있을 집회에서 그 시가 읽히게 될 것입니다. 바다에 관한 내용이지만 선생님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마리오의 순박한 음성을 듣는 네루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마리오가 군중들에게 읽어주기로 되었던 그 시는 어떤 시였을까. 바다에 관한 내용이라 하지만 그 시가 어떠했을지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 시가 썩 수준 높은 시였다면 그래서 납득할 수 없었을 테니 실망스러웠을 것이고 아주 졸작이라면 또 그래서 실망스러웠을 테니, 마리오의 그 단 한 편의 역작인 시를 끝내 묻고 만 감독의 연출이 재미있다. 어쩌면 네루다의 말처럼 , 그 시에 대해 궁금함을 갖는 것조차 '진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다지만, 마리오의 죽음은 좀 허무하다. 사회주의로 확고하게 무장을 하여 그의 지반을 넓혀가고 네루다에게 전수받은 시적 영감으로 사회의 비리를 신랄하게 꼬집어 군중을 선동하다 모종의 음모에 의해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 대충 그런 구성이 눈에 짚혀졌는데 뜻밖에도 그가 유일하게 썼던 시를 읽기 위해 연단으로 나가다 그것을 채 읽어보지도 못하고 시위군중들에게 깔려 압사하고 말았다니.. 감독의 장난기에 심술끼까지 엿보였다.

나사 하나가 풀린 사람처럼 늘 흐느적거리는 몸짓에 검게 그을린 얼굴, 그 위로 항상 땀이 흐르고 눈꼬리는 쳐져 있지만 눈동자만큼은 아주 맑은,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적영감이 번득이는 말을 한마디씩 툭툭 내뱉는, 눈동자보다 더 맑은 영혼의 소유자, 마리오. 마리오 역으로 분한 마씨모는 영화가 완성된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는데, 그는 천상 '마리오'역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영화는 네루다의 시를 마지막으로 페이드아웃된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한다

겨울인 것인지 혹은 강으로부터인 것인지

언제 어떻게였는지

누가 말해주었던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었던 것도

침묵으로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아름다운 대사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대사가 그대로 '시' 이기에 시놉시스로 대충 뭉뚱그려 재단하고 마름질하기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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