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내 어머니의 모든 것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그리는 인간관계

by E H YOON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99년 작으로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깐느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수상기록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영화다. 알모도바르스타일이라고 할 도발적이면서 끈적거리는 인간관계 -성을 베이스로 한 - 들이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지만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보여주는 여성, 특히 모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이전의 그의 작품에서 느끼지 못했던 향기였다.


마누엘라에게는 세명의 에스테반이 있다. 남편 에스테반과 아들 에스테반, 그리고 아들을 잃고 새로 얻게 되는 갓난아기 에스테반. 이 영화는 그 세명의 에스테반이 어떻게 마누엘라의 삶에 개입하고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날 위해 몸까지 팔 수 있어?'라고 장난스럽게 묻는 아들 에스테반에게 '난 널 위한 것이라면 모든 걸 주었다'라고 진지하게 대답할 만큼 마누엘라에게는 아들이 인생의 전부이다. 그런 아들을 창졸간에 교통사고로 잃고 그녀는 아들의 피로 손을 물들인 채 비가 쏟아지는 거리 한복판에서 피를 토하듯 오열한다. 장기코디네이터로 유능했던 그녀가 정작 아들 에스테반의 장기기증에 대해서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나, 결국 아들의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를 불법적으로 알아내어 퇴원하는 그의 모습을 몰래 숨어서 바라보는 장면. 아들의 살아있는 심장이 그녀의 곁을 지나 점차 멀어지는 것을 통한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던 장면들에서는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왔다.


'모두 반쪽이 찢겨나간 엄마의 사진들을 보며 내 인생도 반쪽인생임을 깨닫는다'는 아들 에스테반의 일기를 보고서야 마누엘라는 아들 에스테반을 가진채 도망치듯 떠나왔던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간다. 반쪽의 인생을 살았을 에스테반에게 그동안 아무 조건 없이 쏟아부었던 사랑은, 세상의 많은 반쪽 인생을 사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끌어안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고, 마누엘라 자신의 상처도 갓난아이 에스테반으로 하여 어느 정도 치유받는 듯하다.


감독 자신도 드랙퀸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여성화현상은 남성의 부재와 함께 이영화에서 읽어내야 할 코드다. 세상이 흑과 백으로 딱 나누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루가 낮과 밤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성으로 명쾌하게 나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누가 그들을 정죄할 수 있으랴. 알모도바르는 단순한 드랙퀸이든 바이섹슈얼이든 동성애자든 혹은 트랜스 젠더든 그들 또한 여늬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며, 성정체성이 모호한 도착자로 배척하기보다 마누엘라가 그들을 품듯 세상 또한 어머니처럼 그들을 품어주길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포스터도 검정과 빨강으로 강렬하지만 영화전반에서 등장인물 대부분이 빨간색옷을 입고 등장한다. 알모도바르의 어머니가 평생 검은색 옷을 입고 살았다는데 그런 어머니에게 원색의 옷을 입혀주고 싶은 그의 소망을 등장인물들에게 투영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본연의 욕망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상처로 허기진 갈증을 원색으로 표현한 듯도 보인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이브의 모든 것'이 영화 속에 삽입되어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하는데 '욕망..'이 이 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알겠으나 제목을 차용한듯한 '이브..'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니나의 대역을 맡은 마누엘라가 호연을 보이는 장면 정도에서는 일치하지만) 사실 두 번째 보는 영화다. 처음 보았을 땐 어찌 된 일인지 놓쳤던 장면이었는데 'Bette Davi's Eyes'를 '이브..'에서 오랜만에 볼 수 있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이 영화는 오래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인간과 성'에서도 작품으로 전시되었었다. 영화 전체가 상영된 것은 아니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우인 위마와 니나가 펑크를 낸 무대에 대신 선 '아그라도'가 성정체성이 모호해진 자신의 변화한 신체를 오브제로 희화화시키면서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게 대상화함으로 관객들을 유쾌하게 하는 모놀로그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줬었다. 당시의 작품설명이 새삼 궁금하여 도록을 찾아 읽어보았다. 서두에 알모도바르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뾰족구두' '나의 비밀의 꽃'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는 여인들'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 영화들은 각각 '하이힐' ' 비밀의 꽃'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알려진 영화다. 하기야 언젠가 일본작가의 작품설명을 초벌 번역한 역자가 '베드타운'을 나쁜 도시라고 해서 모두 뒤집어졌던 것에 비하면 양호하다. 옛날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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