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eng Oct 19. 2022

청개구리 심보

5. 흰 죽




가방을 메고 있는 데 지나가던 행인이 가방이 열려있다고 말을 해주었다. 고맙다고 말을 한 후에 잠그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나는 가방을 열어놓고 다니고는 했다. 정말 어릴 때부터 그랬다. 사람의 대한 믿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가져갈 테면 가져가 봐라는 식의 심보였다. 그중에는 훔치는 물건의 값어치보다 양심의 값어치 훨씬 더 높다는 기조가 깔려있었다. 애초에 훔치려는 의사가 있다면 지퍼고 자물쇠고 하등 의미가 없다 생각하기에 생겨난 청개구리 심보인 것 같다. 언젠가는 고쳐야겠지만, 신기하게도 한 번도 가방의 물건이 없어진 적이 없어서인지 아직도 이 버릇은 고쳐지지가 않고 있다.




나는 흰 죽이 싫다. 맛도 없을뿐더러 마치 아프다고 티를 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흰 죽을 맛있어서 먹는다고 반박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우리 모두 솔직해져 보자. 어느 누가 흰 죽을 맛있어서 먹는가. 식감도 별로고 이렇다 할 맛도 없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먹기 편하다는 점만 빼면 이미 도태되어 세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이렇게 꼬인 심산으로 바라봐서인지 흰 죽은 마치 “너는 소화도 못하고 속도 안 좋잖아. 네가 먹을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어 얼간아. 고마운 줄 알아”라고 하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약이 올랐다.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 그 길로 흰 죽을 버려버리고 호기롭게 라면 한 봉지를 끓였다. 물론 한 젓가락도 채 먹지 못하고 버려야만 했다. 그 후로 얌전히 흰 죽을 먹고 있다. 그래, 너도 흰 죽으로 태어나기는 싫었겠지. 근데 나는 아무래도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 마음을 아는지 흰 죽은 나한테만 유독 더 맛없게 복수하려는 것만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얼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