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이닝 홀
눈이 부시게 맑은 날이었다. 근처 학교에 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 죽이기 연습을 했다. 역설적으로 생각 죽이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생각을 죽일 수 없다. 이미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도서관에 도착했다. 학생 카드가 필요한 걸 알고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계속해서 걷다가 학교 다이닝 홀에 들어갔다. 여기도 학생 카드가 필요하길래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안에 있는 나이 지긋한 분이 문을 열어주셨다. 추레한 몰골로 캠퍼스에 있는 걸 보니 아마 시험기간인 학생 정도로 보았나 보다. 식비는 신용카드로 계산하겠노라 했다. 일정 가격을 내면 뷔페 식으로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골라가는 식이었는데 조그마한 피자 한 조각과 초콜릿 우유 한 잔을 받아왔다. 피자 한 조각과 초콜릿 우유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따위 조합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먹어본 적도,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먹어볼 생각도 없는 조합이었다.
자리를 잡아서 앉고 나니 나를 등지고 있는 한국인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나는 충혈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 채 피자를 씹기 시작했다. 고무 같았다. 분명 다른 때 먹었으면 꽤나 괜찮은 피자라고 했을 법도 한데 그때는 고무 같기만 했다. 한국인 같이 생긴 사람이 피자 한 조각을 세상에서 제일 맛없게 먹고 있으니 관심이 생겼나 보다. 여자가 먼저 뒤에 있는 사람 한국인 같지 않냐며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라는 투였고 남자는 등을 돌려 내 얼굴을 오 초간 바라봤다. 여자는 남자에게 왜 이리 대놓고 보냐며 나무랐고 남자는 그럼 어떻게 하냐며 웃었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 행복이 내게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둘은 그 후로도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떠났다.
달리 할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허공을 응시한 채로 꽤 오랜 시간을 있었다. 많은 생각들을 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여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같이 시야 안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눈을 돌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싫어서 눈을 마주쳤는데 갑자기 내게 대뜸 다가오더니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나는 질문의 대한 답보다는 근처에 살지만 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는다고 했고, 그냥 학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왔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외부 사람이 들어와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곧 떠날 것이겠노라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 자기는 상관없다고, 근처 살면 연락처를 교환해 친구나 하자는 것이 말의 요였다.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안 됐다. 미안하게도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 말 걸어줘서 고맙다, 언젠가 학식 또 먹으러 올 테니 그때 볼 수 있으면 보자는 식의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하지만 내게는 호의를 보여준 그 사람을 다시 알아볼 가능성이 없다. 신기하게도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모양의 머리였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조차 골똘히 떠올려봐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당사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어떠한 질문도 한 적이 없다.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는 것은 이 날의 기억들이 내게 전혀 중요치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러고 보면 나의 기억력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내게 기억력이 참 좋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게 기억력이 참 나쁘다고 했다. 몇몇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기억력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억력이 나쁜 사람도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생일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할 수 없지만, 다른 누군가의 생일은 잊어보려 해도 잊을 수 없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그 사람을 소중히 여겼다는 방증이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들을 지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생각을 지우려 할수록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중요한 것을 지우려 할수록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진을 그리고 추억을 지워 나가야만 한다. 머지않은 미래, 중요한 것들이 중요했던 것들로 변해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