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편지 그리고 선물
냉장고를 열어보니 부패해버린 소고기와 돼지고기들이 보였다. 동물들도 원하는 삶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고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고기라는 형태로 유통이 되어 인간 앞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고기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게 좋은 걸까. 잔인한 이야기지만 음식은 먹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먹지 못할 정도로 부패했을 때에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지 않냐는 말이다. 자신이 고기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겠지만 타의로 인해 고기가 되어버린 후에도 부패되어 버려진다는 건 두 번 버림받는 것만 같았다.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당신에게 했던 편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읽히지 못한 편지는 편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어디엔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버려져 지금쯤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형태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편지는 찢어진 종이에 불과하다. 편지에게도 나에게도 미안했다. 내가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나로 인해 우린 저마다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대화 내용을 올려보다가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그만 두기로 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수록 마음의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어차피 을이 되는 것은 마음을 더 많이 쓰는 쪽이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의 존재란 그리 소중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대부분의 상처가 이 간단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함에 그렇다. 나 역시도 그렇다.
당신은 내가 주었던 선물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두 달 후에 우연히 발견했다고 전했다. 나는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무척이나, 무척이나 슬펐다. 실망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그건 원초적인 슬픔이었다. 선물의 의미가 아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소중함의 차이를.
선물을 샀다는 사실조차 잊었다면 선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선물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형식적인 선물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그럼에도 당신이 준 선물은 그 자체로 내게 큰 의미였다. 내용조차 기억 못 할 편지더라도, 존재조차 잊은 선물이어도 나는 행복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